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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신화와 옛이야기

길고양이 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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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2020. 6. 18.

 

 

 

미래 때문에 현재가 피곤한 아이들에게

 

길고양이 방석(박효미 글/오승민 그림/사계절/2008년)

 

 

 


두 남매가 있다.
상이란 상은 늘 싹쓸이 하면서 일등만 하는, 특목고반 학원에 다니는 누나 지은이. 구루병 때문에 늘 앉아서 방석만 끌고 다니는 동생 지명이.
지은이는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엄마가 정해놓은 대로 학원에 가고 학습지를 풀고 영어 테이프를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낸다. 엄마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미래를 위해 온갖 공부를 흔적으로 남기면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명이는 다르다. 오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데 중심이 맞춰있다. 지은이한테는 절대 허락될 수 없는 일도 지명이에게는 가능하다. 집에서 친구들과 노느라고 온 집안을 다 어지럽혀 놓는 것도, 쉬고 싶을 때 맘껏 쉬는 것도 가능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말할 줄도 안다.
지은이는 인생의 지름길이라는 외고에 가기 위해서 현재의 모든 자유와 행복을 고스란히 바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피곤하다. 반면 지명이는 현재를 즐겁게 보내려고 무리해서 놀기까지 한다. 아픈 지명이에게 미래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두 아이지만 모든 것이 대비된다. 태생은 같지만 두 남매처럼 서로 다른 운명을 사는 건 길고양이 방석도 마찬가지다. 지명이 돌 무렵에 엄마가 검은 고양이가 그려진 방석 두 개를 사왔는데, 지은이는 그 방석을 길고양이 방석이라 이름 붙였다. 그 당시 집 없는 새끼 고양이가 혼자 사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고양이>가 방송이 됐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은이의 길고양이 방석은 지은이 신세처럼 빨래할 때를 빼고는 의자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 채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명이 길고양이 방석은 지명이의 분신이 됐다. 지명이는 길고양이 방석에게 ‘냥이’라 이름을 붙여주고 언제 어디나 끌고 다녔다. 비록 엉덩이 아래 눌려 돌아다니느라 너덜너덜해지고 말았지만 심심할 일은 없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아이의 운명은 동생인 지명이가 아프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지명이가 아픈 것을 떠나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을 준다. 두 아이를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 때문이다.   
할머니는 지나치게 티가 날 정도로 지은이만 챙긴다. 아픈 지명이를 걱정하기는커녕 지명이 병원비며 어린이집 비용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만을 걱정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집안은 냉랭해지고 만다. 지명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인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분명 할머니 행동은 도가 지나치다.
덕분에 처음부터 긴장감이 감돈다. 남매를 대하는 할머니의 지나친 편애, 얼음이 쨍하고 갈라질 듯 팽팽한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 그 속에서 불편해지는 두 아이들. 작가는 독자를 처음부터 긴장감 속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들을 하나씩 터뜨려 놓는다. 문제를 야기했던 뿌리는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야 해소된다. 문제를 다 풀어놨다가 마지막에 다 수습하는 꼴이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중간 중간 ‘이건 뭐지?’ 하고 궁금했던 일들이나 ‘왜 그런 거지?’ ‘어떻게 되는 거지?’ ‘잘못 되면 안 되는데……’ 하며 마음 조이던 여러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면서 감동을 준다.
이 책의 중심인물은 이 책의 화자인 지은이다. 작가는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보통 일인칭 시점은 화자와 독자가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이 보기엔 지은이가 너무 잘났고, 집안 분위기도 보통 아이들과는 좀 다르지만 지은이의 고민에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지은이 입장에서 함께 바라보면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과 달라 보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같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피곤하게 살고 있는 건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엄마의 의지로 말이다. 꼭 민유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5학년쯤 되면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할 때인 것이다.
특이한 건 이 책에 또 한 명의 화자가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와 대비되는 인물, 바로 동생 지명이다. 그렇다고 지명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아니다. 각 장의 끄트머리에서 지명이는 마치 독백을 하듯, 남들은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내보인다. 일인칭 시점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들이기 쉬운 반면 화자의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한 점들은 놓치기 쉽다. 지명이의 이야기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주면서 좀 더 섬세하게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덕분에 지은이의 고민은 고민대로, 또 뒤로 갈수록 자꾸 졸려진다는 말이 나오는 지명이 말에 불안감은 불안감대로 고스란히 다가온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은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딪칠 사람은 엄마다. 엄마가 왜 전혀 반대의 방식으로 지은이와 지명이를 대하는지를 풀어내야 한다. 더불어 할머니와의 관계도.
지은이가 엄마를 속이고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영재 시험을 빠진 날,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 지은이는 엄마에 대한 마음을, 엄마는 너무 부족한 게 많아서 할머니가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긴장감 있게 읽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상투적이라 느낄 만큼 맥이 풀리는 엄마의 이야기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하고 싶어 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다행인 건 이런 상투성을 길게 생각할 틈이 없다는 점이다. 지명이가 위독해지는 바람에 다들 정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이다. 엄마와 관계를 풀지 않는다면 지은이 고민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고민의 실마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풀린다. 늘 지은이 옆자리에서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던 짝꿍 장민기의 한 마디 때문이다. ‘엄마 거예요.’ 이 한 마디는 그동안 장민기가 보여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단숨에 이해하게 해 줄뿐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장민기의 외로움까지 한 번에 전해지면서 아주 진한 감동을 주는 명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동생 지명이는 산에 묻혔고, 지은이는 특목고 반에서 잘렸다. 하지만 여전히 지은이는 학습지를 풀고 영어 테이프를 듣고 있다. 엄마가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42호(2009년 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