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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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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8.

- 복 타러 간 총각-

 

 

1.

지지리도 복이 없는 총각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 가는 곳은 서천서역국 혹은 하늘나라, 저승, 바다 속 등 다양하다. 그 어느 곳도 산 사람은 가기 힘든 곳이다. 이 모두가 이승을 벗어나 죽음의 경계인 저승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이 길을 가는 이유는 하나다. 누가 봐도 지지리 복도 없다고 혀를 찰 만큼 고단한 삶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팍팍한 삶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 이런 처지라면 살아도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신세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기 분에 못 이겨 시도 때도 없이 벌컥벌컥 화만 내며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총각은 큰 결심을 한다. 저승의 영역인 서천서역국에 가서라도 내가 왜 이다지도 복이 없는지 묻거나 복을 타오겠다고 말이다.

총각의 태도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문제에 대한 분노를 밖으로 폭발하는 게 아니라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런 점에서 총각이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아의 내면을 탐색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아주 막막한 길이다. 그 누구도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방법은 단 하나. 혼자서 무작정 걷고 또 걸어가는 것뿐이다.

이렇게 혼자서 무작정 걷고 또 걸어가는 일은 힘들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일은 혼자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 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총각은 누군가를 만난다.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해도 큰 틀에서 보면 혼자 사는 여자, 꽃을 못 피우는 나무를 가꾸는 사람 그리고 이무기다. 추가로 장기 두는 노인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하지만 이는 큰 틀에서 보면 약간 벗어나 보이고 중요한 건 크게 세 가지인 듯싶다.

이 세 가지는 분명 총각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며 발견한, 자신의 감추어진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는 길을 가는 중에는 알 수 없다. 다만 잠시 머물며 문제가 있음을 파악할 뿐이다. 서천서역국에서 자신이 부탁받은 이것들을 묻고 해결책을 알게 됐을 때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무기는 욕심껏 갖고 있던 2개의 여의주 가운데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무기는 남은 여의주를 총각에게 준다. 여의주를 갖고 가는 총각의 몸에서는 귀한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서기가 비친다. 이무기가 욕심을 내려놓고 용이 되어 승천했듯이 그 비밀을 몸소 체험한 총각도 귀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 복이 없다 여겼던 총각도 알고 보면 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스스로 복이 없다고 여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을 못 피우는 나무는 땅속에 박혀 있는 생금짱 때문에 뿌리를 제대로 못 뻗기 때문이었다. 생금짱을 파내자 나무는 뿌리를 제대로 뻗어나가고 바로 꽃을 파워 낸다. 꽃이란 생명의 상징이다. 이런 점에서 서천꽃밭에 물 주는 아이가 등장하는 화소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꽃을 못 피우게 했던 생금짱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금짱이란 제련하지 않은 상태의 원석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원석이지만 이는 땅에서 캐낸 뒤 제련을 거치고 난 뒤에야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나무는 생금짱을 캐내고 나서야 진정한 생명을 얻었고, 총각은 땅속 깊이 박혀 있던 귀한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했다. 생금짱을 갖고 돌아가는 총각은 이제 가져간 생금짱을 제련하여(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자신의 복을 찾아낼 것이다.

혼자 사는 여자는 총각과 결혼을 한다. 땅에 내려와 처음 만난 사람이든, 몸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든, 이러이러한 남자와 함께 살라고 한 해답이 총각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짝을 만났으니 두 사람은 잘 산다. 총각은 드디어 복을 찾은 것이다.

 

2.

겉으로 줄거리만 볼 땐 지지리도 복 없는 총각이 서천서역국에 복을 타러 가서 결국 여의주(보통 뭐든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이 있다)도 얻고, 생금짱도 얻었으니 평생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됐다. 처음 서천서역국으로 가야만 했던 문제의 원인은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게다가 평생을 함께 할 여자도 만나고 말이다.

내가 처음 만났던 복 타러 간 총각은 이것뿐이었다. 그래도 복을 타겠다며 길을 나선 총각의 결단에 감탄을 하며, 과연 복을 탈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고 또 읽으며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총각이 만난 사람들의 문제에 집중하게 됐다. 또 그 사람들의 문제 해결이 총각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또 내 문제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참 이상한 걸 발견했다. 지금껏 나는 총각이 힘들게 서천서역국까지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복을 타러 간 사람이 자신의 복 이야기는 묻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만 줄줄이 묻고 돌아가다니! 물을 수 있는 질문의 수가 정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천만 다행으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총각의 복으로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한편으론 자신의 문제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우선 묻고 가는 총각을 보며, 정말 착한 사람이라 결국엔 복을 받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며 총각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도대체 그렇게 반복해서 보면서도 놓치는 것이 이다지도 많은지!) 물론 총각이 자기 걸 묻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소수였다. 총각은 처음부터 당당하게 복 타러 왔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총각이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총각이 복을 타러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총각을 위해 바로 복을 주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총각은 오다가 만났던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상황은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게 펼쳐진다.

- “날 때 복 못 탄 걸 이제 무슨 복을 탄다 하느냐. 나가거라.” 하는 호통에 그럼 물어볼 게 있다며 오다가 만났던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법을 묻기도 하고

- 총각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너 올 때 본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해서 이야기를 하니 복을 다 탔으니 내려가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 나 만났으니 이제 됐다. 니 마음대로 되니 가라하고 말하기도 한다.

그 어떤 경우도 총각에게 직접 복 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총각이 오다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나 만났으니 이제 됐다는 말처럼 중요한 건 총각이 그곳에 갔다는 점이고, “너 올 때 본 사실대로 이야기하라!”는 말처럼 총각은 오다가 만난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뜻을 알고 있었던 거다.

복이란 어디서 갑자기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이란 마치 생금짱처럼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 속에 감춰 있던 걸 찾아내고 제련해서 반짝반짝 귀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인 듯 싶다. 자꾸만 내 삶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이유다.

 

3.

기도하다 보니 난생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기도문이 아니라 기도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중략)

나는 바로 그 순간 기도는 하느님에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차피 하느님은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상태로 저기 밖에, 아니면 여기 앉아, 아니면 뭔지 모르지만 창공의 옥좌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그 앞에서 몇 주 동안 기도문을 되풀이해도 하느님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물론 분명 듣고는 계시겠지만 그 기도를 듣는다고 이렇게 저렇게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기도에 의해 바뀌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앤치, 시간을 지배하다(닐 슈스터만 글/장미란 옮김/한림출판사) 303-304

 

책을 읽다 갑자기 이 대목에 팍 꽂혔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져 수술을 하는 동안 예배당에 가 있던 엄마를 찾아간 앤치가 엄마와 함께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다.

복 타러 간 총각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대목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복을 타러 간 총각과 기도를 하는 앤치의 마음이 같은 것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