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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신화와 옛이야기

꼭 가요 꼬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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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2021. 1. 2.

 

 

 

 

옛이야기를 오늘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꼭 가요 꼬끼오》

(서정오 글/오윤화 그림/문학동네/2007년)

 


 

 

요 근래, 창작에서 옛이야기를 발견해내는 일이 잦아졌다.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쓴 작품들도 있고,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옛이야기가 그저 ‘옛날’이라는 시간 속에 갇혀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나는 작품은 2001년에 나왔던 『수일이와 수일이』(우리교육)다. 아이는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자기랑 똑같은 모습을 한 가짜 수일이를 만들어낸다. 쥐가 손톱을 먹으면 그 손톱 주인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옛이야기 그대로의 방법으로 말이다. 2005년에 나온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바람의아이들)도 생각난다. 가사 도우미로 들어온 할머니 모습 속에서 마고할미를 떠올리는 주인공 아이의 모습도 그렇지만 이야기 중간 중간에 옛이야기도 감초처럼 녹아있다. 올해 나온 『환생전』(다림)은 저승을 소재로 한 여러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모험이 펼쳐지고, 『자린고비 일기』(시공주니어)는 300년 전 자린고비가 쓴 일기를 헌책방에서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서 쓴 책들도 있다. 2006년에 나온 『청아, 청아 눈을 떠라』(청년사)는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눈을 떠야 할 사람도 심청이다. 심청은 세상의 겉모습만 볼 뿐 참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나온 『심청이 무슨 효녀야?』(바람의 아이들)는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우렁색시, 콩쥐팥쥐, 춘향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다시 써냈다.

그리고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책이 있다. 지난해에 나온 서정오의 『꼭 가요 꼬끼오』다. 1995년에 나왔던 첫 동화집 『언청이 순이』 이후 실로 12년 만에 나온 책이다. 그 긴 기간 동안 작가는 옛이야기를 연구하고 새로 쓰는 작업을 해 왔다. ‘옛이야기’ 하면 ‘서정오’란 이름을 떠오를 만큼 말이다. 만일 작가가 새로 동화를 쓴다면 그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옛이야기가 반영될 건 뻔한 일이었다. 궁금한 건 동화 작가이며 옛이야기 전문가인 작가가 두 가지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였다.

역시 그랬다. 「꼭 가요 꼬끼오」「군밤 파는 산신령님」「우리 집 우렁각시」「도깨비 빗자루」「콩쥐 언니」「반쪽이 삼촌」「북두장이 할아버지」. 이 책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이야기는 제목부터 옛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나는 이런 인물을 내세워 옛이야기가 곧 오늘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이것으로 옛날과 오늘날을 잇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맞다. 옛이야기는 그저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옛이야기가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전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지나가는 세월의 모습까지도 계속 이야기 속에 투영되며 그 시대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잊고 만다. 옛이야기는 그저 ‘옛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일 뿐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옛이야기가 곧 오늘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 오랜 세월 옛이야기와 함께 살아온 작가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을 볼 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옛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옛날과 오늘날을 잇는 징검다리로서 얼마나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는지가 될 것이다.

표제작인 「꼭 가요 꼬끼오」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이본도 많은 이야기다. 선녀가 선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간 뒤에 나무꾼도 하늘나라에 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뒷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늘나라에서 잘 살던 나무꾼이 땅 세상(어머니)이 그리워 내려왔다가 먹지 말아야 할 죽을 받아먹는 바람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만 수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늘나라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서 하늘나라 사람으로 인정받아 잘 살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는 원래는 나무꾼이었던 수탉이 등장한다. 수탉은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잘 살게 되는 이야기까지만 아는 농사꾼 점수 아저씨에게 자신이 어쩌다 수탉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보통 여러 이본이 있어도 한 종류의 이야기만 아는 경우가 많은데, 한 이야기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같은 이야기가 서로 다르게 전해지기도 하는 옛이야기의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선녀와 나무꾼’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이제 와서 그 수탉이 바로 자기라고 말할 수 있냐고 따지지는 말자. 수탉 말에 따르면 자기 나이가 이천 살도 더 됐다고 주장한다. 죽으면 병아리로 태어나고, 죽으면 또 태어나고, 그러니까 자꾸 나이를 먹어서 이렇게 됐단다. 천연덕스러운 그 말이 밉지 않다. 늘 새롭게 태어나는 옛이야기의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수탉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점수 아저씨 모습도 재미있지만 수탉의 캐릭터는 너무 생생하다. 어디선가 수탉 소리만 들어도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수탉이 떠오를 만큼 말이다.

다른 작품들도 비슷하다. 불암산 산신령은 평소엔 절 앞에서 군밤을 판다. 엄마가 안 계실 때마다 날마다 밥상을 차려놓고 가던 우렁각시는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고, 교실 청소도구함에 들어있는 몽당빗자루가 도깨비로 변하기도 한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고민하던 ‘나’는 버스에서 콩쥐 언니를 만난다. 독후감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에 나오는 북두장이 할아버지에게 편지글을 쓰자 북두장이 할아버지한테 전자편지로 답장이 오기도 한다. 여자 집안의 반대로 의기소침해진 삼촌에게 아이는 반쪽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탉의 생생한 캐릭터처럼 옛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선명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군밤 파는 할아버지를 보면 산신령을 떠오르게 하고, 몽당빗자루는 도깨비를 떠오르게 한다. 막연히 ‘맞아, 그런 옛이야기가 있었지.’ 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옛이야기가 떠오르게끔 해준다. 더불어 옛이야기의 의미까지도. 이렇게 볼 때  ‘옛날과 오늘을 잇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던 작가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된 듯싶다.

아쉬움은 남는다. 옛이야기가 조금은 날것으로 그냥 드러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그 아쉬움은 옛이야기와 창작, 어느 쪽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 모른다. 옛이야기를 오늘날의 이야기로 잇는 징검다리로서는 성공적이지만 창작으로서 옛이야기를 수용하는 방식에는 약간 무리가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쉬움은 또 다른 기대를 낳는다. 분명 다음엔 무게 중심이 옛이야기에서 창작으로  좀더 넘어오리라.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30호(2008년 8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