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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는 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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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2021. 1. 27.

‘밥 많이 먹는 색시’,  ‘밥 안 먹는 색시’


1.
색시가 밥을 많이 먹는 것이 불만인 찌질한 남자. 그 남자는 부인을 죽이거나 혹은 내쫓는다. 그리고 밥을 안 먹는 여자에게 새장가를 든다. 색시가 밥을 안 먹으니 부자가 될 거란 기대와는 달리 곳간은 텅 비어간다. 밥을 안 먹는 줄 알았던 색시는 알고 보니 뒤통수에 커다란 입이 있어 가마솥 가득 한 밥을 주먹밥으로 뭉쳐 꿀꺽꿀꺽 삼켜버리는 존재였다. 

<밥 안 먹는 색시> 이야기는 통쾌하다. 찌질한 남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인 것 같다. 밥 한 끼 먹으면서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억압받는 여자들에 대한 모습이 더해지면서 이런 마음은 더 커진다. 
실재로 <밥 안 먹는 색시>의 구연자는 대부분 여자다. 《한국구전설화 1-12》와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찾은 38편의 이야기 가운데 여자가 구연한 이야기가 33편이다. 5편 가운데도 남자로 표기된 자료는 2편뿐이다. 나머지 3편은 특별히 성별 표기가 안 되어 있다. 하지만 최초로 채록된 자료인 《한국구전설화 8》에 실린 <밥 안 먹는 마누라>를 구연한 ’이씨‘의 경우 따로 이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여자로 짐작할 수 있다.
여자들은 비록 이야기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야기의 흐름이 분명 남자의 시각으로 흘러가는 듯 싶지만 결국엔 남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 스스로 자충수를 둔 격이다. 여성 화자가 이야기하는 남성 중심의 서사,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자충수로 망하고 만다. 뭔가 판을 뒤집는 묘미가 있는 이야기다. ‘밥 많이 먹는 색시’와 ‘밥 안 먹는 색시’의 대비도 흥미롭다. 게다가 뒤통수에 달린 커다란 입이라니! 괴기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인상이 찡그려지진 않는다. 여러 가지로 흥미를 끄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2.
‘밥 많이 먹는 색시’와 ‘밥 안 먹는 색시’는 여러 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밥 많이 먹는 색시’는 밥을 많이 먹긴 하지만 집안 살림살이를 축내지 않는다. 이렇게 많이 먹는 색시를 데리고 살다가는 망하겠다는 남편의 말과는 다르다. 남편이 밥을 많이 먹는 걸 싫어해도 개의치 않고 대놓고 먹는다. 씩씩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밥 안 먹는 색시’는 겉으로는 밥을 안 먹는 것처럼 하지만 뒤통수의 커다란 입으로 곳간에 있는 곡식들을 다 먹어치운다. 겉으로 내숭,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모습이다. 남편은 밥 안 먹는 색시를 얻으면 곳간이 가득 찰 줄 알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그런데 밥을 많이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밥 많이 먹는 색시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38편의 이야기 가운데 ‘밥 많이 먹는 색시’와 ‘밥 안 먹는 색시’가 모두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실 일부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은 그냥 밥 많이 먹는 색시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핵심은, 어쩌면 밥 안 먹는 색시보다는 밥 많이 먹는 색시 쪽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으니까 그 집이 그 밥 열 사람 먹던 밥도 못 해다 먹을 정도로 가난뱅이가 돼버렸데.”(과천 김옥순)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죽으면 밥 많이 먹는 사람이 없으니 부자가 되어야 할 텐데 반대로 가난뱅이가 됐다. 밥 안 먹는 여자가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밥 안 먹는 각시의 유무와 상관없이 밥 많이 먹는 여자를 죽인 것이 화가 됐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먼 두 말 밥을 먹으먼은 기운은 얼매나 시냐고."  
"기운은 솔찬히 있다고.  
당신 농사 지어야 내 한 짐을 다 져올 수가 있어. (전북 정주시, 오문삼(남))

밥 많이 먹는 여자는 힘이 엄청 센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젖을 짤랐더니 젖구녕마다 밥알이 다 끼었더래. 
그러니까는, “어, 이거 우리 자식이 젖을 먹고서 사는 거 그랬구나.” (의왕시 고천동, 이영호)

젖을 잘라 죽였는데 젖구멍마다 밥알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밥 많이 먹는 것이 자식들을 먹이기 위함이었음을 남자가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아럴 하나 놓고 둘 놓고 서이를 놓았다. 그런디 이놈으 각시가 밥얼 어텋게 묵넌지 감당얼 몬 하도록 밥얼 마이 묵어싸. 또 아이럴 논는디 다섯 놓고 여섯, 일곱, 여덜얼 떠억 놓고나이 아 이놈으 밥얼 어떻기 묵넌지…. (<한국구전설화 11>, 경남 창령군 영산면, 나말순)

여기서는 여자가 처음부터 밥을 많이 먹은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밥을 많이 먹었다는 말이 나온다. 

죽어서 사라지는 순간 집안이 가난해지고, 힘은 엄청 세고, 자식들을 먹여 키우는 젖을 가진 여자, 아이를 여덟을 낳고 키우며 여자.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존재다. 여자의 생산력과 밥은 뭔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문득 콩이 떠오른다. 이야기를 보며 내내 콩이 마음에 걸렸다. 옛이야기에서 아무 이유 없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물이나 사물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콩은 왜 등장했을까 궁금했다. 이야기에서처럼 콩의 역할이 단순히 밥을 삭히기 위한 것이었을까?
남자는 여자가 밥을 잔뜩 먹고 콩까지 볶아 먹는 것을 보고 여자를 죽인다. 그리고 배속을 보고서야 콩이 밥을 삭히고 있었음을 안다. 즉 콩과 밥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동아시아)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곡물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콩과 곡류가 대립되어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했다. 콩이나 곡류 모두 우리의 생명과 관련이 있지만 곡류는 생명에 가까이 있는 먹을거리고, 콩은 죽음에 가까이 있는 먹을거리로 간주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콩이 죽음과 가까운 영역에 있다는 증거를 세계 여러 문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럴 듯하다. <밥 안 먹는 색시> 이야기에서도 콩이 밥을 삭히고 있다고 했으니 콩이 죽음과 가까운 곡물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여자는 밥을 먹고 난 뒤 콩을 먹어가며 밥을 삭히려 했을까? 분명 여자에게는 밥을 삭혀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서 남자는 여자가 밥 많이 먹는 걸 확인하고자 일꾼들에게 줄 밥을 가지고 나오라 시킨다. 그리고 일꾼들이 안 왔다며 그냥 둘이서 밥을 먹자고 한다. 여자가 밥 많이 먹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 굳이 이런 화소를 넣었다는 건 농사일과 밥 많이 먹는 여자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여자는 남자가 부른 일꾼 열 명만큼의 생산력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농사란 씨앗을 파종하고 수확하는 일이다. 파종한 씨앗에서 새싹이 난다는 것은 기존의 씨앗은 죽고 새로운 생명이 나온다는 뜻이다. 파종한 씨앗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확할 곡식도 늘어난다. 
여자의 몸은 땅의 상징이다. 밥 많이 먹는 여자가 밥을 먹고 콩을 먹는 것 농사와 닮아 있다. 많은 씨앗을 파종하듯 많은 밥을 먹고, 씨앗이 죽어 싹을 틔우듯 콩을 먹어 밥을 삭힌다. 당연히 여자는 일꾼 열 명의 생산력 이상의 일을 해냈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밥을 많이 먹는 걸 보고 ‘이런 년 두었다가넌 집안 망허겄다’(《한국구전설화 8》, 전북 정읍군 소성면 두암리 이씨) 하고 여자를 죽인다. 집안 망하겠다는 말은 없는 집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재산이 있으니 망할 걱정도 하는 것이다. 여자가 들어온 뒤 재산이 늘었는지 아닌지는 이야기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밥 많이 먹는 여자가 들어온 뒤 재산이 늘어난 건 확실하다.  

“죽으니까 그 집이 그 밥 열 사람 먹던 밥도 못 해다 먹을 정도로 가난뱅이가 돼버렸데.”(과천 김옥순)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재산 형성과 관련이 없다면 이런 말은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죽고 난 뒤 남자는 밥 안 먹는 여자와 결혼한다. 밥을 안 먹으니 당연히 집안 살림도 더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남자의 기대와는 달리 집안 살림은 좋아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곳간은 점점 비어간다. 밥 안 먹는 여자는 작은 입으로는 밥을 안 먹지만 뒤통수에 있는 커다란 입으로 커다란 주먹밥을 꿀꺽꿀꺽 삼켜버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밥 안 먹는 여자였지만 실은 전 부인보다도 더 밥을 많이 먹는 여자였던 것이다.
비록 먹는 방법은 다르지만 똑같이 밥을 많이 먹는데, 왜 이 경우는 곳간이 텅 비게 되었을까? 나는 ‘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부인은 밥을 꿀떡꿀떡 삼키기만 했지 그걸 삭히질 못한다. 농사로 치자면 파종한 씨앗이 그대로 있는 셈이고, 곳간으로 치자면 쌀을 쌓아놓고 가둬놓은 셈이다. 땅속에 묻혀만 있는 씨앗은 싹을 틔우지도 못한 채 썩어 들어갈 테고, 곳간의 쌀도 마찬가지다. 농사일이든 무엇이든 순환이 되어야 한다. 죽음(콩의 삭힘)은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다. 
남자는 밥 안 먹는 색시의 끔찍한(!) 모습을 확인한 뒤 어떻게 됐을까? 밥 많이 먹는 색시를 죽이는 대신 쫓아낸 이야기에서는 가끔 그 색시를 데려와 다시 살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냥 남자가 밥 안 먹는 색시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서 끝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남자가 하던 행실로 미루어 보건데 집안에 더 이상 들어가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남자도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옛날부터 한곳에 쌓여만 있는 재물은 사(邪)가 된다고 했다. 옛이야기에는 (邪)가 된 재물이 집안 식구들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남자의 운명도 비슷하지 않았을 런지.

 

4.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 그림책은 2권이다. 그런데 두 권은 서로 다른 판본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가 밥 안 먹는 색시를 원한다는 사실은 똑같다. 

길벗어린이 책은 '밥 많이 먹는 색시를 죽이고 밥 안 먹는 색시를 얻는 이야기'이고, 사파리에서 나온 책은 '처음부터 밥 안 먹는 색시를 구해서 결혼을 하지만 색시가 진짜 밥을 안 먹는지 확인하려다 봉변을 당하고 색시에게 먹을 것을 사다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