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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신화와 옛이야기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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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2021. 6. 19.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정하섭 글, 조승연 그림, 보림, 2013)

 

 

1. 신선한 첫 만남

어? 이 책 우리 거 맞아?

이 책을 봤을 때의 솔직한 느낌이었다. 묵직한 내용과 섬세한 펜화, 세련된 디자인은 지금껏 우리 책에서 보지 못한 특별한 느낌을 줬다.
그러니 이 책이 번역본이 아니라 우리 책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수준 높은 외국 책들에 대한 열등감인지 아님 부러움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우리나라 책의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게다가 자전거라니! 이거다 싶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보행기, 유모차를 졸업하고 세발자전거를 만나기 마련이다. 처음엔 어른들이 밀어 주지만 다리에 힘이 어느 정도 붙고 나면 혼자서 신 나게 타고 다니고, 조금 더 크고 나면 두발자전거로 옮겨 간다.
간혹 두발자전거 타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두발자전거 타기에 실패했다 해도 자전거에 대한 추억은 있다. 어린 시절에 탔던 세발자전거는 물론이지만 두발자전거 도전에 대한 실패담마저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용기 있게 도전했던 인생의 멋진 도전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자전거와 함께 자라는 셈이다.
이처럼 자전거는 중요한 아이들 놀이 문화의 하나였다. 어려서 몸으로 익힌 자전거 타기는 십여 년을 잊고 지내도 언제든지 너끈하게 탈 수 있다.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도 취미 생활로 자전거를 타고 즐기거나, 간단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유용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이 책에 관심이 가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자전거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평생의 친구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2. 자전거의 역사와 과학적 원리

이 책은 최초의 자전거 탄생에서 지금 현재의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자전거의 역사를 보여 준다. 또 동시에 자전거가 서양과 조선에서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도 보여 준다. 한편으론 자전거의 작동과 관련한 과학적인 설명도 빼먹지 않는다. 자전거의 역사를 보여 주는 주제사이자, 생활사이고, 서양사이자 한국사이고, 과학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전거에 대한 모든 걸 담은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참으로 매력적인 책이다.
이런 성에 걸맞게 첫 번째 장면에서는 ‘자전거는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자전거의 분해도와 함께 이 책의 내용 전반을 포괄하는 글로 빼곡히 채웠다. 그리고 다음 쪽에선 앞쪽에 나온 글들을 자세히 조곤조곤 설명해 나간다.
자전거가 나름 의미 있는 모습이 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최초의 자전거는 나무로 만든 말 모양에 두 개의 바퀴를 달아 두 발로 번갈아 땅을 치며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최초의 자전거는 모양 면에서나 달리는 모양에서나 어른들의 사치스러운 장난감에 불과했고, 당연히 그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속도도 문제였지만 방향을 바꾸려면 무거운 자전거를 들어서 바꾸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장난감으로 일시적인 관심을 끌고 말았던 최초의 자전거는 이후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화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자전거로 발전해 나간다. 말 모양의 머리 대신 방향을 바꾸는 핸들이 도입되고, 두 발로 땅을 번갈아 치며 나아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앞바퀴에 페달이 도입되면서 진정한 자전거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는 사람들 사이에 열풍을 일으키며 개인용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도 자전거는 끊임없이 개량된다. 주된 개량은 속도에 맞춰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람 키만 한 앞바퀴를 한 ‘하이 휠 자전거’였고, 고무 타이어로 승차감도 좋아지면서 자전거 경주 대회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문화가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 휠 자전거’는 위험했고, 이 문제를 해결한 건 지금 우리가 아는 자전거의 모습인 ‘안전 자전거’다. 덕분에 자전거는 여성들에까지 인기를 끌었고, 여성들의 답답한 삶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해서 ‘안전 자전거’는 남성과 여성, 부자와 서민, 어린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타고 즐기는 탈것이 되었고,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 모든 것이 약 100년 만에 생긴 결과다.
19세기 말 자전거는 조선에도 들어온다. 그리고 ‘개화차’로 불리며 빠르게 조선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복동이란 걸출한 자전거 스타도 배출했고, 중산층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자전거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중학생들이 가장 받고 싶은 입학 선물로 등극했고, 이렇게 받은 자전거는 학생들의 재산 목록 1호가 되었다. 게다가 계엄령이 내려져 모든 정치, 사회, 스포츠 활동이 중지되었을 때도 자전거 경주 대회는 허용될 정도였다.
1990년대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자전거가 도로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자전거의 진화는 계속됐다. 여전히 자전거 경주는 인기가 있었고, 색다른 자전거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자전거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환경을 지키는 교통수단의 대안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역사지만 그 속에 시대의 흐름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게다가 자전거의 발전 과정에는 자전거에 숨겨진 과학이 담겨 있다.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노력이 왜 ‘하이 휠 자전거’를 낳았는지, 기어가 동력 전달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경주용 자전거에 쓰이는 디스크 바퀴가 어떻게 공기 저항을 줄여 높은 속도를 내는지 등 자전거에 담긴 과학을 알아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소소하면서도 일상적인 정보도 많다. 온갖 종류의 자전거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바퀴 달린 목마 형태의 최초의 자전거부터 현재의 자전거까지의 변천 과정은 물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온갖 자전거 종류를 만나 볼 수 있다. 또 자전거를 타기 전에 점검할 것은 무엇인지, 또 자전거를 탈 때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자전거 관련 표지판에는 무엇이 있는지까지 그야말로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겼다.
이 모든 걸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정말 자전거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 책 또한 대단하다.

3. 그래도 굳이 아쉬움을 이야기한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있다. 우선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는 정보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낯선 서양인, 낯선 탈것
미국인 선교사 알렌은 1884년에 조선에 들어와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렌은 자전거를 즐겨 탔으며 자전거와 관련된 기록도 여럿 남겼다. 캐나다인 의사 에비슨은 1893년에 조선에 왔으며 제중원 원장을 지냈다.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보림, 2013) 27쪽 캡션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광혜원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미국인 선교사 알렌은 자전거를 즐겨 탔고 자전거와 관련된 기록을 여럿 남겼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독자가 궁금해지는 건 어떤 기록을 남겼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다음 문장은 생뚱맞게도 캐나다인 의사 에비슨이 1893년 조선에 왔으며 제중원 원장을 지냈다는 내용이다. 자전거가 중심이 아니라 제중원이 중심이 된 뜬금없는 설명인 셈이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본문과 다른 캡션에서도 이처럼 자전거가 글의 중심에서 밀려난 듯한 경우가 간혹 보였다. 좀 더 주인공인 자전거로 글이 집중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들어오고 난 뒤 절정기를 맞은 1970년대까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 4장으로 끝내기엔 뭔가 서운하다. 앞서 나온 캡션에서 밝혔던 것처럼 알렌의 기록을 더 보여 줘도 좋고, 무거운 짐자전거가 어떻게 짐을 싣고 다니는지, 또 자전거를 갖고 싶은 아이들이 발도 안 닿는 어른들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 자전거포의 상세한 모습이나 한국전쟁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생산되던 국산 자전거 공장의 모습도 좋다. 기왕이면 자전거가 우리 생활 문화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니 말이다.
자전거와 관련된 과학 정보도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4. ‘작은 역사’의 다른 책들이 더 기대된다

이 책은 『한양 1770』(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에 이어 ‘작은 역사’ 시리즈로 나온 두 번째 책이다. ‘작은 역사’를 표방한 건 역사하면 으레 떠오르는 거시적 안목에서 쓰는 통사와는 달리,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삶과 관련된 역사를 다루겠다는 뜻일 게다.
이런 점에서 이 시리즈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느끼는 약간의 아쉬움은 이 시리즈의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 이어서 나온 한반도 음식 문화사를 다룬 『밥상을 차리다』(주영하 글, 서영아 그림) 역시 기대되는 책이다. 얼른 찾아 읽고 싶다.


- 이 글은 어린이와문학에서 펴내는 《월간 어린이와 문학》 2013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