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의 결정적 시기

정구언(상대교주) 2022. 5. 13. 09:18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 삶이 불행하면 어른이 돼도 행복한 길을 가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좀 오래 된 조사지만 2012년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유니세프(UNISEF)에서 만든 어린이의 행복지수 검사방법을 이용해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학교의 사회발전연구소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해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OECD국가 중 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것도 4년 연속이란 보고서다.

헝가리가 22위로 그 지수가 86.7점인데 비하여 한국은 23위로 65.98점이다. 한 단계에서 무려 20.72라는 현격한 격차로 떨어진 점수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아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2016년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서울대사회복지연구소가 조사한 경우도 행복지수가 10점 만점에 8.2로 네팔의 8,6보다도 떨어진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부유한 국가로 발전하였고, 민주화된 국가로 UN에서 선진국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경악할 정도로 나쁘다면 어른들이라고 다를까?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반성을 해야 하고, 자녀들의 교육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한다.

과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자주 한국의 부모들처럼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된다고 기회 있을 때 마다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의 교육이 남들 보기에 겉으로는 매우 훌륭하게 비쳐지는듯하지만 내면을 들어다 보면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확실하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을까? 일생에서 어린 시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늘 강조해 왔지만 영유아시절부터 잘못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들을 다른 아이들과 늘 비교하고, 자녀들을 경쟁에 적응하기 위해 학원에 보내고 어려운 선행교육을 강요한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과 적응력 이상으로 부모들의 생각과 욕심에서 선행교육을 시키려고 학원으로 내 몬다. 너무 지식위주의 공부를 일찍부터 강요한다.

어린이들은 안정감과 자존감을 얻지 못한다면 늘 마음속에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게 된다. 불안한 마음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불안감은 누가 조성해 주는가? 일차로 부모님들이고 부모 중에서 어머니의 영향과 압박이 크게 작용한다.

자녀들에게 바라는 기대의 방향이 잘못돼 있다고 본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어떤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생활했던 과거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오직 모든 삶의 문제를 경제에서 찾으려는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자녀가 경제적으로 남보다 잘 살게 해주고 싶어 한다. 물론 건강하면 우리의 삶은 먼저 경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이 좋은 직장(의사, 법관, 고급공무원 등)을 얻어 주위로부터 훌륭하게 키웠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칭찬받는 자랑스러운 부모로 남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자녀들보다 부모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때문에 먼저 적자생존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경제적으로 앞서가야 한다는 생존경쟁을 너무 부추기고 강조한다. 늘 경쟁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히 여기며, 누구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사회풍조가 커져가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되고, 싸움에서 이겨야 된다는 것은 보편적인 삶의 자연이치지만 세상이 모두가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이기고지는 승패적(勝敗的)인 삶도 있지만 서로가 협력하고 모두에게 이로운 승승적(勝勝的)인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삶임을 알려야 한다.

컴퓨터게임이나 오락프로그램까지도 대부분 경쟁에서 이기는 생존게임(survival game)이 많다. 생존경쟁보다 더 치열한 게임은 없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어려서부터 너무 강조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회 환경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생존경쟁이 아닌 운동경기에서도 오직 승리를 위해서만 투쟁한다. 운동경기의 원래목적은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건강하고 즐겁게 즐기면서 화합의 길을 찾기 위해 시작됐다. 그런데 운동경기가 지금은 생존경쟁처럼 승리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바뀌었다. 서로가 돈독한 삶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하는 승리의 목적으로 변질됐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자녀를 압박하고 심지어 구박하고 협박까지 한다. 자녀들이 부유하게 되는 것만이 행복한 삶이라고 착각하도록 해서 어떻게 하면 부유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녀를 독려하며 키운다.

물론 기본생활이 안 되는 가난은 불행해질 수 있지만 부유한 것으로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라는 권위주의로 통제하고 억제하면서 일생동안 오직 경제적 부를 향해 최선을 다하도록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자녀의 자존감을 짓밟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그런 조건 하나를 걸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 자녀의 행복을 위함인가?

자녀의 소질(素質)과 자질(資質)을 외면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진로를 결정하고 요구하기 쉽다. 공부를 잘하면 의사가 되고, 법관이 되고, 고관대작이 되기 위한 고급공무원의 진로를 강요한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 법관이 되고, 고관이 되면 성공한 사람의 삶으로 여기는 풍토지만 결론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불행한 일생이다.

이 풍토는 오래 동안 전래된 조선사회의 사(), (), (), ()과 같은 순서의 차별화된 계급사회의 삶을 살면서 만들어진 풍토였다. 이조 말에 국민의 45% 이상이 노예의 신분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래 없는 수치(數値). 그런데 오늘날 경제가 우선시 되면서 경제가 풍요롭지 안하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젊은이들조차 경제적 어려움에 헬조선(Hell朝鮮)이란 말을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자녀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부모님들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 언제 우리가 연예인이 되는 것을 반겼는가? 언제 우리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을 바랬는가? 그러나 세상은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자녀들의 다양한 선택에서 노력하고 달인이 되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 그러기 위해 자녀의 안정감과 자존감을 높여주고 일생동안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기의 길을 가도록 지도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감정적 불안을 제거하고, 정서적 발달에 충분히 배려한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좋은 감정계좌를 높여 간다.

자존감을 갖도록 존중해준다.

자신감을 갖도록 칭찬을 많이 해준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보는 범위가 넓혀주어 꿈이 진화해가도록 한다.

늘 인정해주고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경제적 삶이 중요하지만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도록 지도한다.

9월 말로 다음블로그가 폐지 된다 합니다.
충격적인 소식이네요. 교수님 블로그에서 많은 지식 배워갔는데, 차후에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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