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국내소식(한겨레)

채널만호 2007. 7. 15. 10:52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24) ‘실향민’ 의 삶 디아스포라
입력: 2007년 07월 13일 15:07:35
-조국이냐 거주국이냐 ‘새우잠’-

# 사이드가 선택한 실향의 의미

누스바움의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 막다른 골목에 갇힌 사내가 검문하는 관원에게 외국인등록증을 내보이는 그림으로, 사내는 난민 일반을 표상한다.
디아스포라는 나의 e메일 주소다. 십년쯤 됐을까? 처음에는 그게 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더니 요즘에는 왜 그걸 쓰게 됐냐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다. 그중에는 월남한 ‘실향민’ 집안이냐는 자문자답도 있다. 아마 ‘이산(離散)’이라는 번역 탓이겠지만 진실의 일면은 담겨 있다. 그만큼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시민권을 획득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낯설었던 이 단어를 내가 쓰게 된 계기는 사이드(Edward Said)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무엇보다 미국 국적의 아랍계 디아스포라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은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인용한 성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상냥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기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라는 고향, 제국주의 분할에 의한 실향, 미국이라는 시오니즘의 타향에서 새로운 고향 찾기로 이어진 사이드의 사상적 궤적과 어우러지면서 이 잠언의 기묘한 울림이 내게 전해져 왔던 것 같다.

사이드에게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아랍의 역사적 곤경을 표상한다. 자신의 이름 자체가 그 기괴한 낙인이다. 아랍계 이름 ‘사이드’에 억지로 짝지어진 영어식 이름 ‘에드워드’에 불쾌감을 덜 느끼게 되는 데에만 50년이 걸렸다고 그는 증언했다. 자서전의 제목처럼 사이드는 늘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Out of Place)’ 다수파 ‘우리’와는 유리된 ‘실향민(homeless)’의 삶을 강요당했지만 난관을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그 삶을 선택했다. 코스모폴리탄의 삶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삶을. 성 빅토르 위고의 말은 그 궤적을 담고 있다.

# 조국과 거주국의 틈바구니에서

근대 제국주의의 산물인 디아스포라는 식민지 지배라는 구조적 강제에 의해 타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조국과의 관계와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초국적 네트워크의 형성을 지향한다. 디아스포라 사회는 대개 제국주의 전쟁이나 박해에서 벗어나거나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한 월경(越境) 또는 국가의 강제이주를 통해 성립되기 때문에 거주국과 조국의 틈새에서 각종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먼저 거주국에서는 자국 사회와 이질적인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어떻게 수용해 국민통합을 이룰 것인지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한다. 이 과정에서 터키인이나 모슬렘에 대한 서유럽의 외국인 혐오증처럼 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싸고 심각한 정치문제로 발전하는 사례가 생겨난다. 스리랑카의 타미르인 디아스포라처럼 당국의 극단적 억압이 분리운동을 유발하거나 인접국의 정치적 개입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병합을 전후해 만주로 이주했던 조선인 디아스포라도 이중국적 상황 아래서 중국과 일본 민족주의의 충돌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한편 디아스포라와 조국의 관계는 상상된 문화적 귀속감이나 정치경제적 연계성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이른바 ‘원격지 민족주의’의 대표격인 미국 유대인 사회는 거주국의 국익에 편승해 조국 이스라엘에 유리한 로비를 벌여 논란을 야기한다. 반면에 프랑스의 마그리브인 사회처럼 이슬람 원리주의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 가운데 양쪽 반체제파의 거점이 될 때도 있다. 재일조선인처럼 조국이 분단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는 그 균열이 디아스포라 사회에도 복제·증폭되어 재생산되기도 한다.

# 난민의 운명에 대한 감수성의 촉각

이처럼 거주국과 조국 사이의 불안한 ‘균형’ 위에 자리한 디아스포라 사회는 대개 세 가지 대응방식을 보인다. 조국으로 귀환해 그 재건을 지향하거나, 귀환을 포기하고 거주국으로의 동화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거주국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기본적 인권과 민족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것은 마지막 지향성과 연관된다. 이제는 불가능하기에 귀환도 동화도 모두 거부하며 국민국가의 자명성과 폭력성에 대해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의 ‘실향’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국민국가 이후의 미래를 선취하는 선택으로써 적극적 의미를 갖게 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 ‘아웃 오브 플레이스’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는 국민국가의 다수자가 가하는 억압과 소외에 맞서 자신의 뿌리·경로(루트)에 대한 기억을 재구축하는 존재다. 그렇게 재구축된 기억 속에서 ‘조국’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재일조선인 사상가 서경식은 아랍 소설가 카나파니(Ghassan Kanafani)의 유작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이란’ 식민지 지배와 인종차별처럼 부조리한 ‘모든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그렇게 디아스포라는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디아스포라의 거울을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성찰할 수 있을까? 서경식은 나치에 희생된 예술가들 가운데 누스바움(Felix Nussbaum)에 주목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 사내가 검문 관헌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내보이는 그림인데, 그것은 난민 일반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화가의 운명은 결코 예외가 아니라 난민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덫에 걸린 우리는 국가와 분리된다거나 국가가 자신을 추방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신자유주의의 폭력 앞에 스러져 가는 비정규직이나 ‘홈리스’의 곤경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자신도 그 난민적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상상력의 부재가 팽배해 있는 지금, 디아스포라는 난민의 운명에 대한 감수성의 소중한 촉각이다.

▲ 디아스포라는?

디아스포라의 어원은 그리스어 ‘디아스페레인(diaspeirein)’이다. ‘디아’는 ‘여러 방향으로(through)’, ‘스페레인’은 ‘씨를 뿌린다(to scatter)’는 뜻으로, 원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근의 소아시아 및 지중해 지역을 정복한 뒤 자국민을 이주시켜 식민지를 건설한 것을 가리켰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는 대개 유대인의 이산 체험을 가리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소위 바빌론 유수 이후 팔레스타인 밖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역사적 고난의 경험을 일컫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좁은 맥락을 뛰어넘어 조국으로부터 추방되어 타국에 소수자로 존재하는 공동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일반화되었다. 유대인뿐 아니라 구미의 아프리카인, 인도인이나 아시아의 화교·화인처럼 세계 도처에 산재한 민족의 역사적 존재형태를 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디아스포라는 근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파고 아래서 발생한 수많은 난민, 이주노동자, 망명자, 소수민족 공동체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의 정치학자 사프란(William Safran)이다. 그는 ▲특정 지역에서 외국의 주변적 장소로의 이동 ▲조국에 대한 집합적 기억이나 신화의 공유 ▲거주국 사회로의 온전한 진입에 대한 희망의 포기와 그로 인한 소외와 고립 ▲후손들이 결국 귀환해야 할 장소로서 조국의 이상화 ▲조국의 회복과 유지, 번영을 위한 정치경제적 헌신 ▲조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와 공속의식 등을 그 특징들로 지적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념형이어서, 예컨대 조국으로의 귀환을 포기하거나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은 디아스포라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이주요인의 비자발성이라는 측면, 그리고 조국과의 관계 및 민족적 정체성의 유지, 초국적 네트워크의 형성에 대한 의지라는 측면에서 공통된 역사적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용어로는 민족적 소수자(ethnic minorities)와 크레올(creole)을 들 수가 있다. 우선 ‘민족적 소수자’는 거주국의 소수자로서 지닌 디아스포라의 민족적 특성은 공유한다고 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국민국가의 틀을 전제로 삼기 때문에 국민과 난민 사이에 놓인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위치는 반영하지 못한다. 한편, 혼혈까지 포함하지만 주로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과 그 언어를 뜻하는 ‘크레올’의 경우는 디아스포라와 정치적 역관계에서 비대칭적이지만, ‘화이트 디아스포라’라고도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문화적 혼종성과 경계성의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임성모|연세대 교수·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