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기고

채널만호 2021. 1. 8. 21:29

 

1#
나의 모친은 파킨슨병으로 광주 삼거동의 효정요양병원에 입원중이십니다.
지난 2일 공중파에서 비공개로(모자이크처리) 광주 시골의 요양병원서 종사자와 입원환자 등
7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됐다고 보도합니다.
모자이크 영상이 모친이 요양중이신곳인듯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맞았습니다.
이후 3일 언론이 효정요양병원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하며, 코로나에 3일 58명,
4일 15명, 5일 5명 등 총 8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나옵니다.
제 모친도 불행히 3일에 확진판정되었다고 이날 오후에 요양병원서 알림문자가 옵니다.


가족중 본인 다음으로 출가한 여동생이(예비 부양의무자) 모친을 좀 신경쓰는데요,

3일 저녁에 염려의 전화를하길래 침착히 대처하려하니 과한 염려는 말라했습니다.
모친이 기저질환이 있으나 아직 무증상감염 상태이고(지금까지),
인생사에 예측이라는게있는데, 모친이 갑자기 운명할 확율은 적을듯하다 했습니다.
요양병원이 시골에 있다하나 병원 총직원이 무려 150여명이고 대부분 시내인근에 사니,
좀 일찍 확진자가 발생해서 문제일뿐 언젠가는 발생될 상황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안심했으면한다해서 여동생도 침착히 받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런 모친의 코로나 확진이라, 마음이 아프며 먹먹했습니다.

현 코로나사태 시대에 연세든 부모가 코로나 확진일시,
자녀는 마음이 아플뿐아니라 때론 눈시울마저 불거질것입니다.
가정에 버림받다시피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스스로 일찍 자립한 저로서는,
눈물까지 나온다는 그 자녀가 한편으론 그저 부럽기도합니다.

그냥 친지 어머니일이듯 먹먹하기만할뿐인 속사정은,
생전에(소년기까지) 제게 칼부림까지하며 학대를 일삼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뿐아니라,

모친도 제가 5세때 제게 고의적으로 칼을 던지어 목숨을 위태롭게한 중대한 실수를 하여서입니다.
이 만극한 사건 이야기을 자서전식의 나의 생활수기에서 대략 밝혀서 아실분도 있을것입니다.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됩니다.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아래에 그때의 사건을 다시 재구성해 자초지경을 기록해봅니다.


2#

나의 부친의 고향은 지금의 큰집터인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금동마을입니다.
신씨 집성촌에서 동네 유지에 속하는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 평산신씨 사간공파 신종식공의 후대 신진식(고조;제2종손) 후손의 족보
blog.kakaocdn.net/dn/TL1Bt/btqSNl55n9F/HZ2ZNKievdMKIVV84lvLlk/img.jpg )

인근 성산에(광주시 신동 산55) 고인돌이 있는데, 조선후기때부터 제 조상이 관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sdsms/2R8A/12
그런데 한국전쟁때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무장공비에게 납치.실종을 당하셨다고 하며,

할머니는 전쟁 후유증에 지병까지 겹쳐 끝내 일찍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여 제 아버지는(작은 아버지) 어렸을때 동쪽마을(내기) 고씨네의 부농에 의해 자랐고,
후에 (광주시)내기마을에서 독립은 하셨으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어떤 문중은 가문의 재산을 본가 큰아버지가 대부분 물려 받은터라 그런듯하다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실상은 문중이(특히 당숙들) 큰집의 유산을 편취해가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더 기막힌것은 유산편취 사건 공모자중 제 부친도 가담된것이었습니다.
즉 큰형을 배신하고 배다른 당숙에 빌붙어서 유산을 일부 할당 받으려다,
결국은 당숙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된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친은 그리 당한것을 당숙에게 추궁해 해결받거나 하려하지않고,
아무 상관없는 가족에게 풀었습니다.

(모친에게 술주정을 부리면서 자주 시비 걸었으며 폭력행사도 종종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학대를 일삼았는데, 특히 제게 더심했으며 칼부림까지했었습니다.)
또한 적반하장으로 큰집에 가서 재산을 더 떼달라 때를쓰는 패악질을 부렸드랬습니다.


아무튼 부친으로 인해 집안 부부싸움이 잦았는데, 약5세때 어느날 부부싸움 며칠후였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는 잠시 무엇을 각오한듯하더니,
갑자기 저에게 맞아 죽거나말거나 막무가내로 부억칼을 던지었습니다.
하여 그칼이 그대로 머리에 맞아 꽂히어 피가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황망하게도 어머니 칼에 맞아 사경을 해맸으며, 거의 죽다살아났더랬습니다.
당시 머리부상인데도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 머리에 쑥이나 지혈제, 연고를 몇번 바른게 전부였고,
그때부턴가 뇌의 일부가 기능상실되어, 사고후 머리부상은 아물었으나,
한동안 기억상실증, 앞면장애, 정신착란증까지 겹쳐 꿈과 현실을 구분못하기도했습니다.

하여 어릴때 정신적 충격으로 부모님 모두에게 마음문을 닫고 가족을 가슴에 묻은지 오래입니다.

자매에게도 서운함은, 상식적으로 제 부친은 분명 가정파괴범이 맞은데,

불의에 타협하는자마냥 막내남동생과 여동생마저도 그래도 부친이라며 좀 두둔하며,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의 기일을(제사) 거의 해마다 챙긴다고합니다.
이 사실만 생각하면 조만간 그 한심한 자매와도 인연을 끈고,
귀촌생활을 접고 고향을 등지고 영영 떠나야겠구나하는 생각이 수차례입니다.
(역술로볼때 이번의 갑작스런 모친의 코로나 확진도 제 큰집의 유산을 편취하는 못쓸짓을 하고 떠난
당숙과 거기에 빌붙은 부친도 구천에서마저도 업을 씻기는커녕 악귀가 되어,
이승의 모친도 괴롭히고 있는듯하다고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


3#
∇ 한편 또 어떤 문중삼촌은 저희 증조신태술가문에 맡기었던(조상땅찾기 최초 단독명의),
큰종손성산을(큰부산;나주시 양천리 산8-1), 현제 증여된 공동명의인 의사와 달리 개판으로 관리합니다.
(아래 고추대 중간묘가 문중조상대표묘인데, 조상턱밑까지 로터리쳐 밭만들어 놓는등의 엽기행각을 벌임.
원래 이 대표묘가 옛날엔 무등산,금성산 봉우리가 보이는 북동쪽 명당에 위치해 있었는데,
유신시대때 당숙들이 아래처럼 아무 봉우리도 않보이는 아래 서쪽 졸당으로 이장시킨 누를 범함)


하여 본인이 나서서 본 신태술가문과 힘을 합해, 아래와 같이 현 공동증여.명의인을 설득시켰습니다.
"원래 이 성산은(큰부산) 잔디 추모공원 형태로 큰종손과 작은종손이 명의등기하에 종손들만 묘를 쓰거나 땅을 쓰는게 원칙이었으며, 큰종손이 본 작은종손 증조신태술 가문에 맡기었고(조상땅찾기 최초 단독명의), 줄곳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당숙이 끼어들어 작은종손댁 신태술후손 신철수를 등기해준다고 농락하고는 결국 배제하고 당숙이(신용섭) 슬쩍 등기입적했습니다. 이러한 사실 증언을 문중과 친지들에게서 녹취로 확보한바, 변호사도 이 임야가 임의등기된 정황이 확인된다고하니, 조상땅찾기를 준비중에 있으며, 다만 큰집 늦장남을(신태주) 공동명의인으로 포함해줄것을 바랄뿐입니다.
그러나 조상땅찾기 소송보다 현 공동명의인에게 유리한 아래와 같은 협상을 원합니다.

현제 성현삼촌이 여러 문중땅을 쓰는 대신 큰부산 성산을 잘 관리해야하는 조건이건만 그렇지를 않았으며,
시정하려는 의지도 없습니다. 문중땅을 쓰면서도, 문중.조상을 위해 해야할 의무는(문중기금 기탁) 뒷전인것이지요.
(그 삼촌은 이제 큰부산에서 손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미련을 못버리고 간보고다님)

하여 이제 그 삼촌을 배제하고 대타로 본 신만호가 본 성산을 관리하고자하며,
이미 본인은 귀촌후 몇년전부터 시간있을때 댓가없이 큰부산내 쓰레기제거와 잡목제거를 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대표묘가 싼티나는 풀묘인것을 2020년 겨울에 아래와 같이 잔디입힘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차후 대표묘를 예전의 명당인 윗자리로 이장시켜주고, 현 너저분한 상태의 성산 중앙을 모두다 잔디작업해줄터이니,
대신 제 큰집 신태주를 공동명의인으로 등기해주셨으면합니다.

그렇다고 예전의 이상한 삼촌처럼 큰부산을 쓸 생각은 없으며, (등기상 임야이기에 밭은 불법임)
다만 명의인과 공동으로 따갈수있는 관상용 공동과일나무 정도만 가상에 식재하고자합니다."

이에 큰부산 공동명의인은 알았다며, 상의해 나중에 되도록 긍정적인 답변을 주도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삼촌은 큰부산주가 화난것을 알고 이 큰부산에서 잠정 철수한 상태입니다.

 

큰부산 고등기;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산8-1 (평산신씨 사간공파 신종식공 종손 성산)

 

성산(큰부산) 북쪽 도랑 우측에 일부의 공동 과일나무를 식재함(작년 상반기때)


4#

다시 앞에서의 본인 성장기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합니다.
아무튼 어릴때 머리다침 사고 이후 사고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였기에 정신착란증은 가셨으나,
건망증이나 일시 앞면장애는 휴유증마냥 좀 있서, 그것도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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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채널만호, 추천: 8 , 조회: 11,485, 2015.12.31 댓글 116)

모친에게 한편으론 지금도 조심스레 그 모진행동의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고싶기도하나,
귀촌후 모친과 첫 재회에서도 모친이 스스로 입을 열지않는한 생애 한번도 묻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짐작하기를 아마 부친이 가족과 큰집에게도 패악질을 저질르니,
자녀들을 죽이고 자신도 이생을 하직하려는듯한 것이라 생각할뿐입니다..



5#
1월 3일 저녁 강진의료원에서 제 모친이 이곳으로 격리이송됐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격리상태라 생필품과 간식사러 병원매점도 이용하면 않되고 보호자가 별도로 택배로나마,
챙겨줘야합니다. 4일 모친에게 필요한 의류,생필품,간식등을 사서 박스를 꾸리어,
5일 오전에 강진에 직접 내려가 의료원에 모친 물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집안의 상황이 어찌하든 문중 때문에 가세가 기운 큰집을 위한 나눔행보는 계속됩니다.

 

 

 

 

 

 

 

 

 

 

http://cafe.daum.net/myrefarm/14Lb/38483

http://cafe.daum.net/refarm/5dFA/19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