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생각함

미완의광복 2010. 1. 2. 11:01

대한민국, 해방된 나라가 맞습니까?

 

2010년 새해를 맞으며 역사학도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나라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35년이 지난 후 '해방'을 맞았습니다만, 식민지 기간의 갑절 가까운 65년이 더 지나 망국 10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이 사회의 이런저런 모습을 살펴보며 '이 나라가 해방된 나라 맞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년 이 의문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1987년 군사 독재가 끝나고 뒤이어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나라 안팎의 군사적 압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한국이 한국인의 뜻에 따라 진로를 찾아갈 여건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주권국가다운 모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족국가 완성의 길을 외면하는 행태가 정권 차원에서까지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피상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남한 사회 내부의 통합성조차 시간이 갈수록 더 약해지는 상황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주권 의식이란 것이 없는 듯 하기까지 합니다. 100년 전의 조상들은 총칼의 위협 앞에 피눈물을 삼키며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은 총칼의 위협 없이도 통상 주권, 영토 주권을 미국과 일본에게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정권을 쥔 소수 집단의 행태만이 아닙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포기할 수 있는 많은 국민들이 '7-4-7' 공약에 현혹되어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그 집단에게 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더 그럴싸한 미끼가 있다면, 또는 조그마한 위협이라도 있다면, 나라인들 못 팔아먹겠습니까?

 

연전 <뉴라이트 비판> 작업을 하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을 문명의 길로 이끌어주었다"고 평가하는 한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신기해했습니다. 그런 의식이라면 서아프리카에서 붙잡혀 조지아의 면화 밭에서 일하게 된 노예가 문명 세계에 살게 해준 것이 고맙다고 백인들에게 "주인님, 주인님," 하고 굽실거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노예는 고향에 있었을 경우보다 굶어죽을 걱정 덜 하며 더 오래 살았기 쉽지요.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 여기지만 않는다면, 이웃과 가족에 대한 아무 애착이 없다면, 충분히 고마워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식민 지배를 고마워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상황이 잘된 것이라고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잘됐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이겠지요. 그런데 이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편안히 느끼는 사람의 수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다른 어떤 이유보다 경제적 이유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고통이 이 사회의 문제의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함께 아끼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바닥이 있습니다. 한국이 많은 다른 나라들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데도 많은 한국인들이 경제적 고통을 받는 것은 사회의 통합성이 약한 문제에서 오는 것입니다.

 

함께 아낄 사회로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습니다. 내 민족, 내 국가만 아끼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를 까뭉개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개인을 희생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 내 가족을 아끼는 마음과 국가, 민족을 아끼는 마음, 그리고 인류를 아끼는 마음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하면 사회가 망해버립니다. 그런데 100년 전 나라가 망할 때의 상황을 돌아보면 지금보다는 한국 사회가 건강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하는 말로 '정체성'이 뚜렷했습니다. 그런데도 외부의 충격이 너무 강해서 주권을 잃었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보다 훨씬 약한 자극 앞에서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권리와 책임이 함께 갑니다. 혜택을 많이 누리는 사람들이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재산, 수입, 교육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 의식이 일반인보다도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측면이 많습니다. '지도층'이 전면적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건강에 큰 위험 요인입니다.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역사학도로서 저는 식민지 경험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통치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식민지 사회를 불건강한 구조로 이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건전한 '지도층'의 성장을 가로막고 '협력자' 집단에 그 역할을 맡기는 것입니다.

 

협력자로서 성공하는 조건은 기술적 능력이 있으면서 사회의식이 약한 것입니다. 개인의 영달을 바라는 '향상심'으로 효율적 식민통치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제하의 '실력자' 계층으로 자라났고, 그중 심한 경우는 향상심의 목표를 자신이 황국 신민이 되는 데 둔 친일파도 있었습니다. 이 집단이 해방 후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논객들이 있는데, 일리 있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소위 '지도층'은 일제 시대의 친일파가 일본에 의지한 것처럼 미국에 의지하는 행태를 많이 보여 왔습니다. 자기가 속한 이 사회의 안위는 종주국에서 책임질 일로 생각하면서 종주국이 원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함으로써 개인의 영달을 꾀하고, 스스로 종주국 백성이 되기 바라는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대한민국이 독립국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친일파가 대중을 조작한 미끼는 '근대화'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 의식 없는 지도층이 대중을 조작한 미끼는 '경제 성장'입니다. 두 구호는 서로 닮은꼴입니다. 실제로는 종주국의 이익에 영합하면서 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처럼 가장하고 일체의 사회 의식을 억압한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그 허구성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뉴라이트 논객들이 '문명의 길'이라 떠받든 것은 결국 '근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지요. 한국에 근대적 공장도 세워지고 교통 시설도 만들어지고 교육, 의료 등 근대적 사업이 시작된 것이 일본의 식민 통치 덕분이라는 겁니다.

 

히말라야 오지나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것도 아닌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런 변화를 겪지 않고 '은둔의 나라'로 남아 있었을 수 있을까요? 20세기 중엽까지 쇄국 정책을 지키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일본 통치 밑에서 겪은 근대화 정도는 어떤 상태에서라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20세기 초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요는 근대화라도 어떤 근대화였냐 하는 질(質)의 문제입니다. 산업화 중심의 유럽식 근대화는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갈라지는 구조 분화의 과정이었습니다. 통치국인 일본은 착취자 입장에서 근대화의 양지에 서고 식민지 한국은 피착취자 입장에서 음지에 서게 된 데 국권 상실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양지쪽 근대화의 무엇보다 부러운 점은 전통의 발전과 근대화 과제를 얼마만큼이라도 융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멀리 볼 것 없이 당장 일본을 보세요. 일본에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 속에서도 전통의 힘이 한국보다 훨씬 더 큰 몫을 맡고 있습니다. 근대화를 겪으면서도 전통의 힘을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두었기 때문에 탈근대 상황의 새로운 변화 앞에서도 그 힘에 의지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이 식민지 경험의 가장 큰 피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이라 하면 흔히 근대성과 대비되는 과거의 물건으로 여기는 경향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이어주는 정체성의 연속은 미래를 헤쳐 가는 데도 지표가 됩니다. 나라 잃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침략자를 미워하는 것보다, 전통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해방"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유럽식 근대화와 다른 '전통적 근대화'를 생각해 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가들은 폐쇄적 농업사회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질서의 변화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농부와 직공, 상인들도 상황 변화에 적응하려 여러 모로 애쓰고 있었습니다. 산업화 중심의 유럽식 근대화를 부득이 채택하게 되었더라도, 전통적 근대화의 노력을 어느 만큼이라도 접목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참혹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글 쓴 이 : 김 기 협 역사학자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31155159&Section=04&pag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