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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과학자는 봄이 와도 밭을 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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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28.

[내일의 기후] 기후 위기에 더 주목받는 '무경운'과 '최소경운' 농법

21.04.22 07:29l최종 업데이트 21.04.27 10:32l

노광준(kbsnkj)

   한 농민이 파종을 앞두고 경운기로 밭을 힘차게 갈아엎고 있다. 자료사진.

봄이 오면 들녘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논을 갈고 밭을 가는 농부들의 소리다. 예전에는 말 잘 듣는 황소가 쟁기를 끌 때마다 딸랑딸랑 워낭소리를 냈다면 요즘에는 힘센 트랙터와 경운기가 텅텅거리는 엔진소리와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땅을 뒤집는 전기동력 관리기도 나왔지만 기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봄이 오면 겨우내 묵혔던 땅부터 갈아 엎어야 한다고, 그게 한 해 농사의 시작이고 그래야 흙이 부드럽고 잡초나 병해충을 줄일 수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등골이 휘어지도록 밭을 갈고 조금이라도 더 깊게 갈아야 부지런하다고 칭찬받았다.

그런데 이 오래된 관념에 질문을 던져온 사람들이 있다. 꼭 밭을 갈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논과 밭을 갈아엎을수록 땅속에 저장된 탄소가 배출돼 지구도 힘들고 농부는 등골이 빠져 힘들다는, 오히려 밭을 갈지 않고 관리했더니 돈은 덜 들어가고 수확량은 갈수록 늘더라는, 무경운과 최소경운 농법의 실천가들이다.

묵묵히 현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해온 그들의 목소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끔찍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 더욱더 주목받고 있다.

자연재해로 망해가던 농장을 '무경운'으로 되살린 게이브 브라운

건강한 토양을 움켜쥔 게이브 브라운(오른쪽)과 그의 아들 폴 브라운.ⓒ 브라운 농장

남의 나라 이야기부터 하자. 미국의 곡창지대인 노스다코타주에 게이브 브라운(Gabe Brown)이라는 농부가 있다. 가업으로 물려받은 목장에서 소를 키우며 밀밭을 일구던 그는 자연재해로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1995년과 1996년 거대한 우박이 떨어져 작물을 망쳤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쳐 소들이 죽어 나갔고 그 이듬해인 1998년에는 또다시 우박이 떨어졌다.

 

웬만한 농민은 거기서 나가떨어졌지만 게이브 브라운은 포기하지 않고 농사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토양을 되살리는 '재생농업', 즉 밭을 갈지 않고(무경운) 작물로 흙을 덮어(피복작물) 토양 유기물 함량을 늘리고 흙 속 생태계를 되살려 땅심을 높였다. 화학비료와 살충제, 살균제를 뿌리지 않았고 잡초를 잡는 제초제 사용량을 줄여나갔다.

유전자 변형(GMO) 종자를 쓰지 않았고 GMO 작물에 뿌리는 치명적인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도 뿌리지 않았다. 소를 방목했고 목초지를 윤작했다. 사람이 중장비 기계로 밭을 갈아엎고 농약과 비료로 농사짓던 기존 농법과 과감히 결별하고 자연의 힘으로 농사지으며 생산성과 수익성, 그리고 농부의 삶의 질을 높여나갔다.

20년 만에 그는 5000에이커(612만 평)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토양 관리의 모범사례로 우뚝 섰고 NBC 방송은 그를 '재생 무경운 농업의 개척자'로 소개했다. 2020년 개봉된 넷플릭스의 기후 위기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에 출연한 게이브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흙 속) 유기물이 1% 증가할 때마다 토양은 4000제곱미터당 10톤의 탄소를 더 흡수합니다. 효과가 굉장하죠? 우리는 경운(논밭갈이)을 줄여야 해요. 덮개 작물을 기르고 늘 (작물) 뿌리가 살아 있게 해야 해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나지 기간이 없어야 하죠. 물의 순환을 복원하려면 이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게이브 브라운은 20년 재생농업의 성과를 지역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출간했다. 책 제목은 <흙에서 토양으로>(Dirt to Soil)이며 부제는 '재생농업에 이르는 한 가족의 여정'이다. 그의 아들은 노스다코타대학을 졸업한 뒤 함께 농사짓고 있고 딸도 지역에 살면서 가능할 때마다 농사일을 함께 한다.

무경운 농법 연구해온 농민과학자 양승구 "수량과 품질 올라간다"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양승구 박사.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 관료들은 늘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냉소적이다. 무경운 윤작은 경지면적이 넓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나 가능한 사례이고 경지면적이 적은 우리 실정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거다.

지난 3월 농업 분야 탄소중립 관련 국회 토론회 때도 그랬다. 농식품부 관료는 이날 '식량안보 때문에 농업 분야 탄소중립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무경운 등 탄소 농업을 실천하려 해도 생산량이 떨어져서 농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논리였다.

그러자 무경운을 해도 생산량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발언한 농민이 있었다. 그는 이날 토론회에 정식 패널로 초대받지 않았지만 탄소중립에 관심이 많아 일부러 찾아온 양승구 박사였다.

"저는 농촌지도사로 농업연구도 하고 퇴직 후 농사를 지으며 저탄소 인증도 해봤고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1호로 등록해 벼농사를 했습니다. 제가 수경재배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경운에 빠져가지고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무경운 연구만 해왔고 퇴직 이후로 제 논에서 올해까지 5년째 무경운 논농사를 해왔습니다."

양승구 박사는 전라남도 농업기술원에 근무하던 지난 2011년 '고추 무경운 재배 기술'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정부 근정포장을 받은 농업연구자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쟁기질 없는 농업'을 통해 농민이 행복하고 소득도 높일 방법을 찾다 무경운 농법에 빠져든 그는 '힘든 밭일'로 통하는 고추 농사에 무경운을 적용해보고 가격폭락을 거듭하는 배추와 온실재배 하는 멜론에도 적용해보며 자료를 모아갔다.

결론은 무경운을 해도 수확량이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해가 갈수록 수량이 올라갔다. 그런 그도 때로는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어떻게 밭을 안 갈고 수확량을 유지하느냐', '데이터를 못 믿겠다'는 불신이었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방대하고 탄탄한 실험데이터를 보강해 토론했다고 밝혔다.

"굉장히 많은 저항을 받았었어요. 발표도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생물도 모른다. 토양물리성도 모른다. 제가 모든 자료를 제공하면서 이제는 무경운이라는 말이 연구자들이나 토양전문가들도 쉽게 말하는 상태가 됐는데 처음에 발표할 때는 거의 발표를 못 하게 하는 수준이었어요."
   
앞으로 농업은 '탄소 저장 산업'으로 가야

 

고추 무경운재배 수량 증감 추이.

그는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인 과제도 농사짓는 농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말한다. 농업도 업이기에 소득이 높아야 하고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래서 탄소를 저장하는 좋은 취지의 농업이 성공하려면 농민소득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줄곧 수확량 증감 추이를 관찰해왔는데, 이제는 확신 있게 '무경운을 할수록 수량과 품질이 올라가며 고된 농사일을 덜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1년에 3~4번씩 밭을 갈아엎는 멜론 재배) 시설하우스 안에서 로터리를 치게 되면(밭을 갈아엎으면) 먼지도 많이 발생해서 건강 문제도 크거든요. 그래서 비극적으로 우리가 감축해가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라보면 앞으로 무경운 같은 사례를 통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토양에 비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국가연구기관인 농촌진흥청이 3년 계획으로 시행하는 '무경운 등 탄소 농업 시험 재배' 연구를 소규모로 할 것이 아니라 실제 농가에 적용될 만큼 단지화된 규모로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2020년 6월 논농사 모내기에 필요하던 경운, 로터리, 써레질의 3단계 농작업을 생략한 '최소경운' 방식으로 노동력과 생산비도 절감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양승구와 게이브 브라운처럼 오래된 관념에 맞서 실전 데이터를 모아온 농민 과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의 관점'이라는 지적이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가 아니라 '한번 해보자'는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식량안보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적'을 낳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대응농생명연구소 소장인 최우정 전남대 교수는 관점의 변화가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말한다. 농업은 탄소 배출량이 적어 무시해도 좋은 그저 그런 산업이 아니라 대기 중에 떠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할 수 있는 '탄소 저장 산업'이자 다가올 식량 위기에서 먹거리 안보를 지켜낼 '우리 모두의 미래'로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편협된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쪽만 본 거죠. 농업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배출량의 2.9% 정도 된답니다. 어떻게 보면 농업 분야의 국내총생산(GDP) 비율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요, 농업분야 배출량이 적으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배출량 산정에만 너무 관심을 두어왔죠. 중요한 목적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즉, 대기 중 온실가스를 지구로 흡수해 저장해야 하는데 그 적절한 장소가 어디냐 하면 '토양'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도시나 제조업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농업농촌이 다시 흡수해준다면 그만큼의 효과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농업을 '탄소를 저장하는 산업', 농촌을 '탄소를 흡수하는 마을'로 방향을 잡아보면 어떨까."

[참고자료]

Jeff Turrentine, 'How Did Farmer Brown Bring His Dying Land Back From the Brink?' (국제환경단체 NRDC 운영 온라인저널 'onEarth', 2018.9.28)

Gabe Brown, 'Dirt to Soil - One Family's Journey into Regenerative Agriculture' (Chelsea Green Publishing, 2018.10.11)

게이브 브라운의 농장 홈페이지 (http://brownsranch.us)

보도자료 '고추 무경운 재배기술 개발 공로로 정부 근정포장 수상' (완도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 2011.12.29)

서상현, '최소 경운 모내기로 온실가스 감축' (한국농어민신문, 2020.6.2)

양승구, '무경운 농업 혁명은 가능할 것인가 - 시설농업 무경운 유기재배 중심' (한국무경운농업연구회 홈페이지, 전라남도농업기술원 발표자료)

영상자료 '탄소중립을 위한 농업분야 주요과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유튜브 채널, 2021.3.24)

 

출처 :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7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