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이야기)

choyeung 2009. 1. 5. 10:49

 

도마(多黙 Thomas)라는 세례명

의사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1909년 10.26일로 의거 100주년이 된다. 안중근은 19세의 1897년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조선교구  홍석구(洪錫九) 신부(1889년 제물포 본당주임으로 부임,1912년부터는 1914년 본국으로 귀국한 전까지 해주본당 신부로 지냄.  

프랑스 이름은 니콜라스 조제프 마레 빌렘 (Nicolas Joseph Mare Wilhelm, 1860~1938)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토마(多黙)'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홍석구 신부로부터 프랑스 말과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새로운 사상에 눈뜨게 되었다. 그 이후 안중근은 홍석구 신부와 함께 황해도 일대를 돌며 카톨릭 선교를 전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  

그는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재를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홍석구 신부와 함께 서울에 있는 민덕효 주교 (1890년부터 1938년까지 48년간 조선교구장으로 근무, 프랑스 이름은 뮈텔 Mutel)를 찾아가 한국에 대학을 세우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을 당한 적도 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두에서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등박문을  사살하는 의거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1910년 3월 8일에는 여순감옥에 한국으로부터 빌렘신부가 찾아와서 3월 9일부터 10일까지 빌렘신부가 안의사의 영생영락을 위하여 고해성사와 미사성제 대례, 예수의 성체성혈을 받아 모시는 대예식을 행하였다.

 

안중근은 이 미사 중에 직접 복사를 하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이때 감옥소의 일반관리들도 함께 참례하였다. 면회실에서 검찰관, 전옥, 통역, 간수장, 두 변호사 등이 입회하에 안정근, 안공근 두 아우와 빌렘 신부를 면회하고 20분 동안 기도를 드린 후 동포에게 고하는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

 

그는 1910년 2월14일 선고공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그는 사형 집행일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던  수난일인 성금요일 3월 25일에 집행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제는 보복의 의미에서 이등박문이 죽은 지 꼭 5개월째 되는 날 같은 시각(3월 26일 오전10시)에  32세의 일기로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내 온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여순감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안의사는 순국을 앞두고 동포와 어머님, 부인, 두 아들 그리고 빌렘(Joseph Wilhelm)신부와 뮈텔(Mutel)주교  6인에게 미리 준비된  유언을 남겼다.  

 

 

 

 

 

 

 

 

 

다묵(多黙) 안중근의 초상 (Portrait Of Thomas An,Joong-Geun) 72.7x53.0cm, 20P,Oil on Canvas, 2008

 

 

 

어머님(조 마리아) 전 상서

 

예수를 찬미합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現世)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있으니 마음을 평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분도(안 의사의 장남)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길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시옵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이상이 대요(大要)이며, 그밖에도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아들 도마 올림 

 

분도(맏아들)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예수를 찬미하오.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히 모이려 하오.

 

반드시 감정에 괴로워함이 없이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고 두 동생과 화목하여 자식의 교육에 힘쓰며 세상에 처하여 심신을 평안히 하고 후세 영원의 즐거움을 바랄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많고 많은 사연은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보고 상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 1910년 경술 2월 14일 장부 도마 올림

 

 

 

 

☧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 최후의 유언-두아우와 홍석구 신부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한국인 안중근

 

[도마(Thomas 다묵 多默) 안중근의사의 초상화] 116.7x91.0cm () Oil on canvas, 2010년 제작, 조영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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