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choyeung 2009. 11. 20. 19:26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다. 1954년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다음 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했으며,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그 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다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는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본래의 수행승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제자들에게조차 거처를 알리지 않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가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대표 산문집 <무소유>는 그 단어가 단순히 국어사전에 있는 사전적 개념을 넘어 ‘무소유 정신’이라는 의미로 현대인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서 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홀로 사는 즐거움> <아름다운 마무리> 등의 산문집과 명상집 <산에는 꽃이 피네>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적시고 있다.

 

 

가을 이야기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들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박힌 존재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 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고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 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대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법정 스님 -

 

미리쓰는 유서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 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스님의 글 

 

으뜸 가는 행복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어진 사람과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분수에 알맞는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고 바른 서원을 세워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술을 절제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마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가르침을 들으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근심이 없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이와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법정 스님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자신이 쏟아 놓는 말을 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다면 그렇게 도나캐나 마구 쏟아 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명심하라 누군가 반드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듣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곧 그사람의 속마음을 열어 보임이다

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 그의 내면 세계를 훤히 알

수가 있다

 

입 다물고 귀 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으면 진리로 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이 끊어진 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경탄할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내부는 텅~ 비어 있다

무엇 보다도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열매를 그대들에게 가져올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고 만다

 

우리는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지켰던 마하트마 간디는 이와 같이 타이르고 있다

 

"먼저 생각하라 그런 다음에 말하라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그쳐라,

 

인간이 짐승보다 높은 것은 말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

우선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법정스님...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내 마음속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 해지면 바늘 하나 꽃을 여유조차 없다.

그런 마음을 돌이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 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바라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中에서 -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법정스님.

 

세상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잠시도 편히 쉴 때가 없다.

논밭이 있으면 땅 걱정, 농사 걱정, 집이 있으면 가축 걱정, 의식 걱정,

돈 걱정, 집 걱정 등 소유하면 소유로 인해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부자라고 하더라도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빈궁하고 못난 사람들도 늘 가난에 찌들려 걱정한다.

논밭이 없으면 땅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하고,

집이 없으면 집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하고,

가축이나 재물, 노비가 없으면 그것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한다.

 

이렇듯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결여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결여하여,

이같이 살아가므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온갖 재물과 욕망만을 탐하고 있다.

 

[아미타경]

 

있으면 있기 때문에 괴롭고, 없으면 없기 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있고 없음의 집착을

놓으면 있으면 있어서 즐겁고, 없으면 없어서 즐거울 수 있다.

어리석은 이는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괴롭고,

자식이 있으면 자식 때문에 괴로우며,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괴롭지만,

지혜로운 이는 집이 있으면 집이 있어서 좋고,

집이 없으면 집이 없어서 좋으며,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있어 좋고,

자식이 없으면 없어서 좋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좋고 나쁜 양 면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쪽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불교는 무조건 무소유에만 치우친다거나,

돈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자식도 버릴 것 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있고,

집이 있고,

자식이 있고,

소유한 바가 있다면 그것도 좋다.

 

다만 거기에 집착해 그로 인한 번뇌에 시달리며,

쓸 때 쓸 줄 모르고,

나눌 때 나눌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지만 그 소유에 집착하면

그로인한 온갖 괴로움이 뒤따르고,

소유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 소유에 온갖 지혜와 복덕이 깃든다.

불교는 있다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서

좋을 수 있는,

어느 쪽이라도 자족으로써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너무 있음에만 치우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없음이라는 미덕,

공(空)과 무(無)의 지혜를 심어주기 위해 무소유를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사고가 부정적인 사람은 늘 나쁜 것만 보기 때문에 항상 괴롭지만,

긍정적이며 밝은 사람은 좋은 면만 보기 때문에 항상 즐겁다.

그 어떤 상황도 거기에는 장점이 있고,

우리에게 도움 되는 면이 있다. 바로 그 점을 보라.

 

만남과 마주침

   

 

살아있는 영혼끼리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가 생명의 환희를 누리는 일을

'만남'이라고 한다면,

 

생명의 환희가 따르지 않는 접촉은

'마주침'이지 만남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한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그런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메아리가 없다.

 

영혼의 메아리가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누가 인생을 만들어 주는가 / 법정 스님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교는 시샘과 열등감을 낳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런 자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몫이 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자족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 할 줄 알아야 한다.

 

내 그릇과 내 몫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남의 몫을,

남의 그릇을 자꾸 넘겨다 보려고 한다.

 

소유를 제한하고 자제하는 것이

우리 정신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환경과

자연을 덜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듭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순한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거듭거듭 안으로 살펴봐야 한다.

 

내가 지금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일이 인간의 삶인가,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을 해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스스로 물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내 인생을 만들어 주는가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 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거느리고

휘적휘적

지평선 위를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

 

차 茶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에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 순간을 뜻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번이고 만날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지만, 이것이

처음이면서 마지막 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수 없다.

 

기회란 늘 있는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일기일회(一期一會),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공해와 같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라.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얻었다고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기죽을 것도 없다.

괴롭고 힘든 일도

그때 그곳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 한때다.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도 다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다.

<일기일회(一期一會)>에서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그러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은 생에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 법정 스님 법문집, -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에서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 에서 -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만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뿐인걸요.

누가 알아요.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세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죠.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하세요.

 

즐거워하세요.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세요.

최선을 다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죠.

 

지금 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 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입니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법정스님-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종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 된다.

 

법정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을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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