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choyeung 2010. 2. 4. 23:31

◯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서는 2002년에 “文化란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藝術), 문학(文學), 생활양식(生活樣式), 가치관(價値觀), 전통(傳統), 신념(信念) 등의 독특한 정신적(精神的), 물질적(物質的), 지적(知的)특징”으로 정의하였다.

 

이는 예절, 언어, 종교, 법률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사회 전반의 생활 양식이며 따라서 문화재(文化財)란 예술(藝術), 과학(科學), 문학(文學), 종교(宗敎) 등의 구체적 형상을 말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世界遺産, UNESCO World Heritage Site)은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것으로 1972년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

 

세계유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문화유산]과, 지구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자연유산], 그리고 이들의 성격을 합한 [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2009년까지 전세계 148개국에서 890 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중에 689곳이 문화유산, 176곳이 자연유산, 25곳이 복합유산으로  되어 있다. 전체 890곳 중 세계유산을 많이 가진 국가로는 이탈리아(44곳), 스페인(41곳), 중국(38곳) 순이다. 또한 대한민국(9곳)과 북한(1곳)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되어 있다.

 

 

(1) 현재 지정된 문화유산 목록 

▴ 문화유산

1995년 1) 종묘 2) 해인사 3) 대장경판전, 4) 불국사와 석굴암   1997년 5) 창덕궁, 6) 수원화성   2000년 7) 경주역사유적지구, 8)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유적   2009년 9) 조선왕릉

 

▴ 자연유산

2007년 10)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2)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 문화유산

1) 강진 도요지 2) 안동 하회마을 3) 경주 월성 양동마을 4) 중부내륙 산성군 5)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 6)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 7) 익산 역사유적지구 8) 남한산성 9) 한국의 염전

 

▴ 자연유산

1)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2) 남해안 일대 공룡화석지 3) 서남해안 갯벌

 

(3)현재 세계문화유산 추진목록

 

▴ 문화유산

1) 아산 외암마을 2)순천 낙안읍성

▴ 자연유산

1)창녕 우포늪 

 

 

◯ 김구 선생님의 소원

 

文化라는 말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 한사람으로 백범 金九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는 일제지배의 조국이 대한민국으로 해방된 직후에 국내경제가 가장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아래와 같이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식견으로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文化이며 ,그 文化의 소중함과 文化의 힘을 키우자 라고 말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았다.

 

즉 김구는 백범일지  “나의 소원(所願)중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願)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侵略)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願)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富)는 우리 생활을 풍족(豊足)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足)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幸福)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根源)이 되고,

목표(目標)가 되고, 모범(模範)이 되기를 원(願)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平和)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實現)되기를 원(願)한다“

라고 하였다

 

◯ 한국이 선진국 진입의 선결조건

 

이미 OECD 26개국에 가입한 한국의 국력은 명실공히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어서 21세기 초반에는 분명히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을 넘어 최고수준의 선진국에 진입을 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한국인의 우수한 지능(知能)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세계의 전눈가들이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金九 선생님의 소원처럼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의 높은 수준에 오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 한국인의 지능(IQ)은 세계1위

 

오늘날 한 국가가 경제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 나라 사람들의 지능(知能)의 우열에서 좌우된다고 하는바 즉 국민의 지능과 GDP(국내총생산)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전세계 국가중에서 지능지수가 3자리 즉 100을 초과하는 나라는 불과 몇나라 뿐이다. 한국인의 IQ는 106으로 185개국 중 사실 최고수준이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2003.11.10일자 「더 타임스」誌 보도에 『영국 얼스터 대학교의 심리학교수 <리처드 린>과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의 <타투 반하넨>의 연구팀이 세계 185개국의 국민 평균 IQ와 세계 60개국의 IQ 및 국민소득을 조사 연구한 결과 해당 국민의 지능과 국내총생산(GDP) 간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였다.

 

이 연구팀은 『한국을 비롯해서 일본, 대만,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태평양 연안 국가 국민들의 평균 IQ가 105 정도 이상 및 이하로 가장 높게 나왔으며, 그것이 바로 이 지역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한 것이다. 

즉 "홍콩이 107로 1위, 한국이 106으로 2위이나 국가별 랭킹에선 도시국가인 홍콩과 중국(100)을 한개의 국가로 보고 합산할 경우, 한국이 1위이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자권(漢字圈)의 국가들의 IQ가 영어권(英語圈)을 누르고 지능이 높은 이유는 "漢字를 쓸 때에 좌ㆍ우뇌 양쪽을 다 사용하여 知能 발달하지 않나" 라고 보고 있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우뇌(右腦)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예술적,시간적,공간적,직관적, 감성적(感性的) 기능을 가지게 되고, 좌뇌(左腦)는 말을 하거나 계산하는 식의 이성적, 인지적, 분석적, 논리적(論理的)인 기능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같은 점을 볼 때 한국인은 좌뇌 즉 이성적인 IQ면측에서 여러 국가중에서 가장 발달한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키는 우뇌도 과거 수천년부터 훌륭히 전승(傳承)되어 왔기 때문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사실 과거부터 한국은 전세계인들에게 문화적으로 우수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문화예술의 근간이 되는 언어에 있어서도 한문 사용과 더불어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을 사용하여 특히 오늘날 각광받는 IT시대에 가장 훌륭한 언어적 도구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하게끔 세종대왕 등 훌륭한 선조들이 이미 500년전부터 마치 컴퓨터 세상을 휜히 내다 본듯이 개척해 놓은 것이다.  

 

 

 

◯ 외국의 국립초상화 갤러리

 

영국 런던의 국립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는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뒤편에 154년전인 1856년에 개관하여 영국역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모습을 담은 초상화 자료등 33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즉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 리처드 3세 등 왕실인물과 윈스턴 처칠, 대처 수상등 정치가 및 세익스피어, 버지니아 울프 등 문학가와, 다윈, 스티븐 호킹 등 과학자들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 위인들이 총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Michel Sittow(1469~1525), 케서린의 초상 (Portrait of Catherine of Aragon(1485-1536)) 런던 국립초상화 박물관

 

미국 와싱턴 DC의 국립초상화 갤러리(The National Portrait Gallery)는 1836년부터 스미소니언 미술관(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과 같이 나누어 분할되어 있는데 미국역사상 과거 및 현재의 중요한 인물의 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현재 10만의 자료와 6만 5천의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의 초상화 등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페어리(Shepard Fairey)작, 오바마의 초상 Portrait of Barack Obama  60x44in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소장

 

호주도 최근 2008년부터 수도 켄버라에 국립초상화 갤러리(The New National Portrait Gallery)를 재개장하여 운영하고 있다. 초상화를 통하여 호주의 정체성과 역사와 독창성과 문화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로버츠 (Tom Roberts(1856-1931)작, Portrait of George Selth Coppin(호주의 연극인,정치인 1816-1906) 1898. National Portrait Gallery, Canberra, Australia  

 

이와같이 영국과 미국등의 국립초상화 갤러리는 그 나라의 문화를 나타내는 랜드마크(Land Mark)나 아이콘이 되고도 남을 만큼 인기가 있고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 등 외국인들도 부러워 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은 과거부터 초상화의 왕국

 

한국은 과거 고려, 조선시대 및 그 이전부터 명실공히 [초상화의 왕국]이라 할 만큼 널리 초상화가 성행하였다. 수많은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일제와 열강의 침략으로 훼손되거나 망실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귀중한 문화재로서 현재까지 전국에 흩어져서 아직 잔존하여 있는 작품을 보더라도 그 가치를 세계인들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가까운 장래를 생각할 때 명실공히 선진 경제대국(先進 經濟大國)으로 진입하여 나갈 것이 분명하므로 金九선생님의 소원(所願)이나 온국민의 열망(熱望)처럼 文化的으로도 자랑스런 선진국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속히 체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 국립 초상화 갤러리 The Korea National Portrait Gallery]

 

과거 우리나라가 [초상화 왕국]이었듯이 훌륭히 후손에게 전승(傳承)되어 온 빼어난 전통을 살려 나가는 방향에서 정부나 각 기관 및 미술을 담당하는 곳에서는 속히 [대한민국 국립 초상화 갤러리 The Korea National Portrait Gallery]를 건립하도록 한데 뜻을 모으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그리되면 과거나 현재에 걸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하고 효과적으로 전시하여 나감으로써 우리 선조와 우리국민들의 훌륭한 모습을 우리들 마음속에 새삼 새겨 나갈 것과 외국인들에게 자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갈망해 본다. 사실 국립초상화 갤러리가 존재한다면 미술등의 예술분야 만 아니라 국가사회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시너지 (上昇)효과가 막대할 것이다.

 

 

 

 이명기(1760`1820) 작-영의정 번암 채제공(1720-1799)의 초상, 초상비단에 채색 121x 80cm  1793년, 대영박물관 소장

 

< 채제공이 쓴 화폭의 명문을 보면 자자손손 전하려 한다는 글이 적혀 있으나 어떤 연유인지 한국을 떠나 대영박물관에 걸려있다>

 

화폭에 쓰인 명문은 아래와 같다.

 

기유(1789)년 정조께서 명하여 나의 초상화를 그려 들여오게 하였다. 이 여분의 작품을 아들 홍근으로 하여금 보존케하여 자자손손이 전하려했으나, 내 아들이 나 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슬프도다. 이명기의 그림에 몇자 적고 있노라니 두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번옹 (채제공) 73세 자필

 

 

 

이명기 작 -채제공 초상비단에 채색 121x 80cm 179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재관(李在寬, 1783~1837)작 - 유학자의 초상 

 

 

 

이재관 작-약산 강이오(강세황의 손자로 문인화가)의 초상, 63.9x40.3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85호 

 

 우측에 세로쓰기로 “具足慧相現宰官身 是惟丹靑之??逼眞 誰更知天地弧線 羅心胸隨遇而神 老髥題”라는

추사 김정희의 찬문이 특유한 추사체 해서로 적혀있되 노염제(老髥題)라는 서명이 있고 염(髥)과 추사(史)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초상화, 국보 239호, 가로 56.5㎝, 세로 97㎝, 상단에는 정조의 찬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초상(1287∼1367) 국보110호, 가로 177.3㎝×세로 93㎝, 중앙박물관소장

 

 

 

 회헌 안향(1243∼1306) 의 초상화 국보 111호 가로 29㎝, 세로 37㎝소수서원

 

 

 

  -윤두서 ( 1668 ~ 1715 )자화상 국보 240호

 

 

  -김홍도(화체) 이명기(화면)작, 서직수의 초상 1796년 비단에 채색 147.9 x 73.2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강세황 자화상 1782년  비단에 채색 88.7x51cm  보물 590호

 

◯ 정조어진,10년 단위로 어진제작

 

정조실록 12권,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8월 26일(병신) 1번째기사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

 

각신(閣臣)을 소견하였다. 하교하기를,

 

“내가 어진(御眞) 1본(本)을 모사(摹寫 베낌)하려 하는데, 이는 장대(張大 일을 크게 벌리다)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삼가 선조(先朝 영조) 때를 상고하여 보건대,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였는데, 이것이 곧 우리 조가(朝家)의 성헌(成憲)이 되어 있다.

 

지금 나의 이 거조는 실로 선조께서 이미 행한 규례(規例)를 몸받아 오늘날 소술(紹述)하는 뜻을 붙이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선조<영조>께서는 21세 되던 갑오년에 1본을 모사하여 창의궁(彰義宮)에 봉안(奉安)하고 작은 것 1본은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였으며, 31세 되던 갑진년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이는 초본(草本)이었다.

 

40세 되던 계축년에 2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毓祥宮)에 봉안하였으며, 51세 되던 갑자년에 2본을 모사하여 1본은 영희전(永禧殿)에 봉안하고 1본을 만녕전(萬寧殿)에 봉안하였으며, 61세 되던 갑술년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정축년에 비로소 장황(粧?)하여 육상궁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창의궁에 봉안하였다.

 

71세 되던 계미년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였고, 계사년에 보령(寶齡)이 80세가 되자 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에 봉안하였다.

 

이렇게 반드시 10년을 기간으로 하였다는 것을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 나는 나이 22세에 명을 받들어 1본을 그렸었으나, 참모습과 어긋나는 것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즉시 세본(洗本)하여 버렸다. 금년부터 시작하여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여 선조(先朝)께서 어진(御眞)을 모사한 뜻을 몸받도록 하겠다.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것이 본래 그렇게 하여 온 고례(古例)인데, 선조 계사년 이전에는 도감을 설치한 일이 없었다. 간혹 대신(大臣)과 척신(戚臣)·상방신(尙方臣)에게 명하여 감동(監?)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절약하려 한 성덕(聖德)을 볼 수 있다. 나도 또한 도감을 설치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송(宋)나라의 천장각(天章閣) 등에 어제(御製)·어용(御容)을 봉안한 데 대한 글이 있으니, 이번에 그림을 그린 뒤에는 규장각(奎章閣)에다 봉안하면 비용이 덜릴 뿐만이 아니라, 실로 고례(古例)를 원용(援用)하는 것이 된다. 나의 의견은 이러한데, 제신(諸臣)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정민시(鄭民始)등이 대답하기를 ,

 

 

“지금의 이 성교(聖敎)는 또한 겸손을 고집하고 폐단을 덜으시려는 성덕(盛德)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사체에 있어 존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임금이 하교하기를,

 

“나의 뜻은 있는 데가 있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신한평(申漢枰)·김홍도(金弘道)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 초상화의 빼어난 가치(價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는 人間이다. 물론 사람이 사는 자연환경도 더없이 아름다워지고 소중한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고유한 생(生)의 단면이 표출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 작품의 주인공을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사람의 모습 중에서 속마음은 헤아려 볼 수 없지만 오직 얼굴로부터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 싶다. 훌륭한 예술품이란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唯一)한 것이라고 한다면 高貴한 인간의 각자마다 얼굴 모습은 최고의 예술품(藝術品)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초상화를 통하여 그 시대의 역사를 배우고 선조의 사상과 넋을 따르며 그 시대의 가치와 사회상을 가장 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현재를 살찌우고 보다 낳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초상화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말한 사람중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젖어 살다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가 기억된다.  “아름다움 중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의(義)롭고 투명(透明)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超越)하는 아름다움일지니 그래서 인간을 그린 조선시대 초상화(肖像畵)는 그저 단순한 얼굴그림이 아니다”라는 초상화에 대하여 명언을 남겼다.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