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choyeung 2010. 7. 9. 08:01

ㅇ1936년 중국 광명중학교에 진학하여 詩작품을 통한 항일

민족정신의 기초를 닦음

ㅇ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진학 후 민족정신과 조국독립을

위해 '서시’,‘별헤는 밤’등 많은 항일민족시를 발표

ㅇ1942년 일제의 징병제를 반대하며 저항정신 시작품을 발표하는 등 민족적 문학관 확립에 전념하다 체포됨

ㅇ1944년 징역 2년형을 선고

ㅇ1945년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

ㅇ1990년에 독립장 서훈을 받다

 


<윤동주의 초상> 45.5x53cm Oil on canvas 2010


윤동주(1917~1945)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편으로 대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생존시에 문인으로 자처하지도 않았고 문단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흔한 동인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문단 친구도 없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시집이 발간되면서 '사후(死後)의 훈장'처럼 그에게 시인의 타이틀이 붙여졌고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 징역형을 받고 옥사했다고 해서 '저항 시인'이라는 '덤'까지 붙여 주었다. 그래서 윤동주는 '죽어서 시인이 된 시인'이다.

 

 

 

1918년에 태어나서 45년 해방을 6개월 앞둔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옥사한 그는 참으로 여한이 많은 일생을 산 인물이다. 우선 그는 장가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 공부한다고 일본을 오락가락 하다가 결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 감옥살이 신세가 되었고 감옥에서 사망하니 물론 혈육이 있을 리 없다.

 

 

생존시에 '시인' 소리를 못 들은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직장이란 것도 가져 보지 못했다. 그 시절 남자 나이 20세 전후가 되면 결혼하고 취직해서 남자로서 갖출 것은 대충 갖추는 것이 관습인데 그는 문학 공부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모든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성격이 무섭도록 침착한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전혀 오불관언이었다.

 

윤동주는 자기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결벽증이 있어 다듬고 또 다듬고 해서 완벽하다고 스스로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보여주지 않았다.

 

또 그는 작품을 무슨 잡지에 발표하기를 몹시 꺼려했다. 남들이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붙이는 것을 그는 불쾌하게 여겼다. 하얀 항아리에 흙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생시에 이처럼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그가 사망한 이듬해 경향신문에 쉽게 씌어진 시가 발표되었고 2년 후인 48년 1월에 그의 시 30여편을 수록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10주기가 되는 55년에 같은 제목의 시집이 나왔는데 이 책에는 88편의 시가 실려 있다.

 

앞에 적은 그의 시 서시의 깨끗함에 비해 그의 죽음은 너무나 처참하다. 맑게 살고 싶은 그의 뜻과는 정반대의 죽음이었다. 그는 2년 선고를 받고 일본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목도 대단히 애매 모호하다. 43년 한국 학생 대표들이 중국 장개석(張介石) 총통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가던 도중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조선 독립을 도와 달라는 탄원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일경(日警)은 한국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멍청한 학생은 빼고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은 무조건 잡아갔다. 공부밖에 모르는 윤동주가 여기에 휘말린 것이다.

 

윤동주를 비롯해서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된 한국 학생들은 정체 모를 주사를 매일 맞았다고 한다. 면회 간 친척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東柱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몸은 살이 다 빠져 해골 같았고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또 형무소 간수의 말에 의하면 東柱는 운명할 순간에 뜻모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무렵 그의 고향집에 2통의 전보가 배달되었다. 먼저 온 것이 '2월 16일 東柱 사망 시체 가져가라.'였고 후에 온 전보는 '東柱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사망 시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구주 제대에 해부용으로 제공함.'이었다. 그러니 먼저 붙인 전보가 나중에 도착한 것이다. 시체를 가져가라 한 것은 해부용으로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몸이 엉망이었다.

 

 

윤동주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 입니다.

그때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 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은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윤동주「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또 다른 고향 」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윤동주「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29. 9.

 

-윤동주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보면 손바닥에는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 윤동주의 詩碑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년 봄 이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윌 16일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그 나이 29세였다. 그가 이 동산을 거닐며 지은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그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 시 한 수를 새겨 이 시비를 세운다."

 

연세대 구내(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 시절 지냈던 기숙사 앞이라고 함)에 세워져 있는 시비의 비양에는 「서시」가 작시 일자와 함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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