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choyeung 2019. 2. 7. 09:25

우리가 모르는 임진왜란의 배경과 장래 일본에 대한 우려

 

1592-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7년전쟁의 배경은 이미 1526년에 이와미(石見) 은광을 발굴하여 일본이 전 세계 은생산의 1/3을 차지했던 거대한 부를 축척한 확고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의 정부는 쇄국으로 사대주의의 명나라를 제외하고 같이 쇄국으로 보았던 일본이 감히 임진왜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고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너무나 어두웠다. 당시 일본은 반세기 이전에 이와미 은광으로 깊은 쇄국에서 벗어나 유럽과 교역국으로 활발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실크로드 Silk Road가 아닌 전 세계 Silver Road를 이루어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의 선진 문물을 선별적으로 흡수하여 동남아 제패의 야망을 저절로 키울 수 있었다. 당시 세계 최초의 글로벌 상품은 은()과 은화(銀貨)의 무역이었다.

 

[ 전세계 은의 무역 지도] 


즉 일본은 과거 중세시대에서 근대시대로 발전을 중국과 조선보다 먼저 이루었다. 일본은 유럽에서 이미 개발된 소총을 구입하여 조총을 개발하고 동남아의 3축인 인도네시아 축과 중국(한국 포함)축 및 일본의 본조 축을 통틀어 지배하려는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의 선봉장인 가토 키요마사는 함경도의 단천(端川)은광이 목표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8년 전인 1584년에 이율곡은 선조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을 올린 [만언봉사]로 일본을 우려하여 10만 대군의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당시 붕당인 노론과 소론 및 동인과 서인의 코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누란직전과 같은 내우외란의 현재 국내 상황에 이율곡 같은 현자와 지자가 아쉽기만 하다. 국가가 위험에 치달으면 임진왜란 당시처럼 일본 왜구와 중국 되놈들에게 특히 인구의 절반인 여자들은 치욕의 역사를 안아야 했다.

 

세상의 온갖 전쟁은 그냥 생기는 법이 없다고 지나간 세계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한 국가가 엉청난 부를 모으면 반드시 주변국에 전쟁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일본은 아베정권이 들어서고 19452차 대전 후 가장 번성하여 눈부신 경제력으로 국방력은 넘쳐나고 있다. 그는 200690, 2012년부터 3대째 즉 96,97,98. 도합 4번째의 내각총리를 맡고 있다.

 

조선을 침략하고 지배한 이토 히로부미는 1, 5, 7, 10대의 내각총리를 4번째 장악한 전철과 비슷한 것이다. 아베정권 들어 해외파병의 헌법이 개정되고 최대의 경제호황을 누려 정치와 경제에서 막강한 힘을 지닌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문 정부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미국과 일본에 반미와 반일에 반하여 공산.사회주의 체제의 중국과 북한에 친중과 친북의 정책을 급진적으로 추진하여 혼란을 가속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경제가 뒷걸음 치고 있다.

 

일본이 장차 국제사회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까? 너무 안일하고 낙관적으로 대처하는 것 같다. 북한의 핵보유를 미국이 용인하거나 인정한다면 한국은 핵개발이 어렵지만 일본은 동북아에서 공산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부득이 미국은 일본의 핵 개발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불과 3개월 동안에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술적 상황으로 사실 잠정적인 핵무기 보유국가가 바로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둘러싼 미,,,러와 북한의 5개국 사이에 한국만 비핵화가 되어버리고 이것도 요즘 벌어지는 미북협상에서 피치 못할 굴욕적인 한반도 비핵화 협상으로 영구적인 봉쇄가 될 것이 아닌가?

 

미국은 자국에 북한의 실제적인 위협을 제거키 위해 ICBM의 제거 또는 발사중지에만 급급하게 변해 버렸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더라도 한국의 자체역량으로 핵개발은 미국에 의해 허락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미일 우호관계의 급진상황으로 일본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해의 표기를 일본해 단독이나 일본해와 서해를 같이 병기하도록 되어지고 있다. 또한 독도 영유권에 있어도 미국은 한국의 영토주장에 벗어나서 미 일의 중립적인 위치에 놓아져 버리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배경을 삼아 중국의 센카쿠 열도의 사례도 독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우선의 영토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비교해서 같이 보아야 한다.

 

일본과 외교관계에서 최근 초계기 사건에서 알력의 증폭이나 과거의 대일협상 문제를 문정부가 재차 거론하거나 또한 일본 위안부 문제에 박 정권이 체결한 외교를 국제외교 관례를 무시한 들쑤심은 문정권이 반일정책으로 돌리기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미국을 등지고 반일까지 가중하는 외교처사는 지금의 국제정세에 너무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많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전쟁과 분쟁 시에 미국 입장으로 가세되었고 우방이 되었기에 장차 한국의 국제적인 외교고립은 불리한 상황이 여지없이 될 것이다

 

 

일본의 이와미 은광과 16-17세기 아시아 무역 네트워크

http://yellow.kr/blog/?p=1583


임진왜란에 동원된 명나라와 조선의 피해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0406021855021


임진왜란의 국력비교와 여성의 피해  

http://yellow.kr/blog/?p=1400


● 일본의 가토 키요마사 군사는 함경도 탄천 은광을 목표로 진군했다.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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