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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yeung 2019. 2. 26. 10:21

한국의 3.1운동의 발생은 사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기획하고 실행한 운동이었다.

 

오늘은 1919.3.1.절 독립운동의 100년 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이른바 을사조약”(을사늑약)을 통해서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그리고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다. 이후 1910한일합병조약을 통해서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3.1 운동은 그로부터 9년 후인 191931일에 발생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 원칙>

사실 이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민족자결 원칙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입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이 마치는 해인 1918.1.8일에 미국의회에 보낸 연두교서인 평화원칙 14개조 중의 1개 조문으로 밝힌 내용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민족자결주의였다.

 

3.1운동의 발생 배경은 단순히 우리 민족이 독립정신을 외친 결과물만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이 1914에 발발하였으나 미국은 처음부터 참전하지 않았다. 미국은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주창으로 유럽정세에 대하여 간여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계속 지켜왔다. 그러나 1915년에 독일잠수함이 영국으로 가던 영국상선 루시타니아호를 피격하고 미국인도 128명의 사망자가 생기자 그후 1917년에 미국은 1차 대전에 참전을 선언하였다. 즉 그때까지 오랜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우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지역의 슬라브 민족들을 자극하기 위해 민족자결 원칙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민족자결 원칙의 핵심내용은 피지배민족에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파리평화회의”(1919118~ 1920121)에서 윌슨 미국 대통령은 국제문제를 풀어나갈 원칙으로 “14개 조항”(The Fourteen Points)을 다시 제시했는데, 여기에서는 원칙적으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모든 피지배 민족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 식민지를 크게 보유한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은 탐탁지 못한 것이다. 대신 식민지가 거의 없고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주도한 미국으로서는 향후 세계주의로 주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자결원칙은 막상 1차 대전을 마치고 나니 운용이 변절되고 말았다. 전 세계 모든 식민지 국가에 독립을 보장해야 했지만 승전국이 되는 영국, 프랑스 등은 식민지에 따른 자국이익을 위해 이를 완강히 반대했다. 그 결과 승전국들이 지닌 식민지는 독립을 할 수 없도록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민족자결원칙은 윌슨이 제안한 것보다 수정되어 선포되었다.

 

즉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1차 대전의 패전국에 속한 식민지 국가들에만 독립이 가능했다. 1차대전시 일본은 승전국으로 한국의 식민지는 해당되지 않고 제외되고 말았다. 2차 대전 이후인 1945년에야 비로소 독립이 가능했다. 결국 미국은 승전국과 협의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패전국의 피지배 민족에 국한하여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세계전략으로 민족자결원칙을 발표되자 식민지 국가들은 그제야 눈을 뜨고 각기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버렸다. 인도 간디의 저항운동과 중국의 5.4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 시절의 임시정부도 3.1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1919.4.11일에야 중국 상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승만과 윌슨대통령의 관계>

이승만 대통령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과 총장의 사제지간이었고 집에도 초대받는 수제자였다. 이승만이 5년의 단기간에 학사, 석사, 박사의 학위를 얻은 사례는 세계최초의 일이었다. 윌슨총장은 이승만이 장차 독립운동가와 한국에서 지도자가 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19181111, 4년간 계속됐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승전국 미국은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윌슨 미국 대통령이 직접 대표단을 대동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승만은 1차 세계대전이후의 국제질서를 논하기 위한 파리강화회담이 미국의 주도로 열리는 것은 알았다. 일제의 식민지하에 놓여 있었던 우리로서는 독립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다가온 셈이었다. 당시 하와이에서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이승만 박사는 자신이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프린스턴 대학시절 자신의 은사이었던 윌슨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독립 문제를 상정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리강화의 참석을 위해 여권발급을 신청하고 대통령 면담을 시도했으나 이승만의 계획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로 된 나라에 여권을 발급될 수 없었다.

 

<식민지 국가의 독립에는 민중봉기의 필요성>

"한국에서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일종의 봉기 같은 것이 있지 않는 이상 파리 강화회의에서 한국문제를 상정하는 것은 곤란하며 이 박사가 (파리에)오는 것은 유감"이라는 윌슨의 답변을 국무장관 폴크가 전달해주며 여권발급 불가 통보를 해 왔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신의 비망록에서 `1919 MOVEMENT(3.1운동)`이란 제목으로 밝히고 있다.

 

"내가 하와이를 떠나 워싱턴으로 갈 때쯤, 전국에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내가 윌슨 대통령에게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문제를 상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통령은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일종의 봉기가 있지 않는 이상, 그로서는 평화회의에 한국문제를 상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변했다."

윌슨의 답변을 받은 이승만은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바로 국내에 연통을 넣어 독립을 요구하는 큰 시위나 봉기를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하와이에는 때마침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가는 여운홍(여운형의 동생)과 샤록스 선교사가 와 있었다. 이승만은 여운홍에게 `적당한 시기에 자신의 외교활동을 지원하는 민중운동을 국내에서 전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평소 국내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던 송진우, 김성수, 함태영, 양전백 등에게 전달토록 했다. (* 김정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제1부 개화와 독립" 청미디어 P268)

 

송진우와 김성수는 국내 각종 정파의 대표와 단체는 물론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종교지도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국내에서도 무언가 거족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것이 바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발단이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122일 고종황제의 급작스런 죽음이 있게 된다. 일제의 독살설이 퍼져나가면서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민족지도자들은 이 때야 말로 독립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준비하기로 작정하였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했던 중심세력은 기독교, 천도교, 불교 지도자들이었다. "민족 지도자 대표 33인 중에서 기독교인이 16(목사10, 전도사 3, 장로2, 집사 1)"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1918년 인촌 김성수에게, 임영신에게 밀서 전달>

이승만은 한해 전인 191812월에 인촌 김성수에게 민족자결과 독립만세 실행의 밀서를 전하여 이에 뜻을 같이한 송진우, 현상윤은 천도교 손병희에게 독립만세 33인을 결성케 하였다. 1918년에 교육자 임영신여사도 이승만으로부터 비밀메시지를 받고 3.1만세를 펼쳤다.

 

<191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독립선언 발표, 1919.2.8. 도쿄 독립선언서 추진>

이승만은 191810월에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1919.2.8 도쿄 독립선언서도 그가 추진한 사실이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1899년 한성옥중에서 독립선언 (464) 저서>

그보다도 무려 20년 전인 1899년에 이승만은 조선왕조를 공화국으로 해야 한다는 죄로 24세의 나이로 한성감옥에 무기징역으로 있을 때 [독립정신]이라는 저서를 지었고 이는 이상재 등 43인의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케 하였다.

이승만은 한국이 독립국가로서 왕정국가가 아니라 자유민주체제를 확립케 한 명실 공히 한국의 국부가 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경제선진국이 될 기초를 세운 것이다.






 

이승만의 밀서(密書)3.1운동 일으켰다

http://www.newdaily.co.kr/mobile/mnewdaily/article.php?contid=2019022400050

 

   

http://www.newdaily.co.kr/mobile/mnewdaily/article.php?contid=2019022400050

 

세계 최단기간 최고의 학력(학사, 석사, 박사를 5년만에 획득 )보유자 이승만



http://이승만기념관.com/bbs/board.php?bo_table=episode&wr_id=5&page=2


저서 : 독립정신


《독립정신》(獨立精神,영어:The Spirit of Independence)은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수감되어있던 1904년에 저술한 책이다. 당시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및 대한제국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저술하였으며, 기독교입국론을 주장하였다.


   

이승만은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고종의 양위 문제에 연루, 1899 1월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수감 중이던 1904 2 19일부터 같은 해 6 29일 사이에 이 책을 집필하였다. 집필 동기는 러일 전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이 높아져 민족 독립에 대한 조선민중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집필 중 이승만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읽혔으며 탈고한 1904년에는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환경 때문에 대한제국내에서 출판할 수 없었다. 이후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10년 2 10일 로스앤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내내 일본 제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절판되었다가 1993 1월 정동출판사에서 재출간하였다.


 

구성은 51장과 후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0장에는 조선이 처한 상황을, 11~25장에는 민주주의와 자유·백성의 권리·의무를, 26장부터는 국제정세를 기록했다.

  

이승만의 주장은 아래의 여섯가지로 요약되며, 모든 것의 근본을 기독교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1. 통상해야 한다. 외국과 교류하는 것이 부국의 방법이다.

 2. 신학문을 익혀야 한다. 신문물이 본인과 국가발전의 근본이다.

 3. 외교를 잘 해야 한다. 강대국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4.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국기는 주권의 상징이다.

 5. 도덕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6. 자유를 존중하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서 평>

​국민다운 국민이 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물을 마실 땐 그 근원을 생각하고(飮水思源), 과일을 먹을 땐 그 나무를 알아야 한다(食果問樹)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가 마시고 있는 물의 근원을 모르고 거기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자기가 따먹는 과일 나무의 뿌리를 뽑거나 줄기를 베어버린다면, 사람들은 그런 자를 가리켜 뭐라고 하겠는가?

우리민족의 5천년 역사에서 왕과 왕족, 소수 양반계급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오늘날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았던 적이 있는가?
조선왕조실록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조말 전체 백성들 중 10% 미만이 양반이었고, 50%는 무지렁이 상민들, 40%는 노비였다고 한다. 그리고 10%에 속하는 양반들조차, 비록 그 아래 상민이나 노비들보다는 자유롭고 유족했으나, 그들 역시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당연한 듯 누리는 자유, 독립, 자주, 자율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예속적인 삶을 살았다. 일제치하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수천 년간 이런 역사를 가진 이 땅의 백성들이 지금과 같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근원은, 그 뿌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1948년 8월 15일에 우남 이승만이 주도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데에 있고, 그 건국의 정신적 기초는 바로 여기에서 소개하는 책 『독립정신』에 담겨 있다.

『독립정신』은 20대 청년 우남 이승만이 옥중에서 집필한 그의 대표 저서로서, 5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우리나라 왕정(王政)의 역사를 민주 공화정(共和政)으로 탈바꿈시키고, 대륙문화권에 속해 있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적 전통을 해양문화권으로 옮겨놓는 데 이론적 기초가 된 책이자, 세계화와 선진화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왕조 5백년간 쓰여진 모든 책들 가운데 최고의 경세서(經世書)이자 정치사상서, 국민계몽서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전까지의 모든 책들은 주권자는 단지 왕 한 사람이고,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피치자라 보면서, 전제군주가 백성을 어루만져 주는 인정(仁政)이 최선의 정치라고 생각하였을 따름이다. 반면에 우남의 『독립정신』은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주인이며, 그들 각자가 자유, 독립, 자주, 자율적인 존재이고, 스스로 시비(是非)를 판단할 줄 아는 각성된 개인이며,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나라 집”이란 단체를 만들고, 법을 제정하여 운영해 간다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국내 최초로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책에 표명된 사상을 기초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건국되도록 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남 이승만의 옥중생활 5년의 총결산일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경영하고, 6.25전란 후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전 과정에서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 및 경제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 국민들이 자유, 자주, 독립적이 개인이 되고, 국가 정체성을 체화한 국민다운 국민이 되기 위한 필독서이다.


http://이승만기념관.com/bbs/board.php?bo_table=oneswork&wr_id=1


미국의 신문에 실린 3.1독립만세운동의 기사 (번역)


https://translate.google.co.kr/translate?hl=ko&tab=TT&sl=auto&tl=ko&u=http%3A%2F%2Fkoreajoongangdaily.joins.com%2Fnews%2Farticle%2Farticle.aspx%3Faid%3D3059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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