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이야기)

choyeung 2019. 5. 4. 09:45

여태까지 최초로 한국의 초상화 중에 유화로 그려진 것은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화가인 휴버트 보스(1855-1935)1898년을 전후하여 유화 기법으로 그린 '민상호 초상(1898)'보다 55년 앞서 제작된 조선인 유화 초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고종의 초상화1899년에 그렸다.

http://blog.daum.net/choyeungart/73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초상화>

 

박회수(1786~186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철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본관은 반남이다. 박회수는 1810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의릉 참봉을 시작으로 호조참판, 병조참판, 평안감사, 우의정, 좌의정 등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1833년부터 1849년까지 중국 북경을 외교사신으로 네 차례 연경사행(燕京使行 :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박회수(1786~1861)의 초상화] 70.4x52.8cm, 캔버스에 유화, 1833년, 작가 미상,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박회수(1786~1861)의 초상화, 세밀부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졌던 박회수 초상의 제작 시기는 1833년으로 추정된다 하는데 이는 초상화에서 박회수가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차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학정금대는 종2품 관리가 차던 띠다. 박회수가 종2품 관직으로 연행을 했을 때는 1833년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박회수 초상은 중국에서 제작된 조선 사신의 초상화 가운데 서양인이 그린 것으로는 유일하게 전하는 그림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화 초상"이 되고 있다 .

 

나무로 제작한 보호곽인 목감(木龕)에 초상화를 부착했다. 반신이 그려진 초상화 속 주인공은 사모(紗帽·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와 시복(時服·관원들이 입는 옷)을 착용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초상화는 반남박씨 경주공 종가가 소장해오다 지난 2011년 대전시립미술관에 기탁한 것이다. 이 그림은 가로 52.8, 세로 70.4크기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헌종 12(1846) 922일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헌종과 대신들은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놓고 담화를 나눴는데, 이 자리에서 박회수는 "신이 몇 해 전의 연행(燕行· 사신이 베이징에 가는 일) 때 서양인으로 하여금 (초상) 그리게 했습니다. 온전히 기름만 사용해 그렸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기름기가 사라진 뒤에야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회수의 초상]  희원 이한철(希園 李漢喆 1808-?) 작품으로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20146월 경매에 출품

 

위의 박회수 초상과 유화 초상 속 인물의 전체적인 인상과 수염이 자란 모습, 입 모양 등이 닮았다는 점에서 대전시립미술관 그림이 박회수를 그린 초상이 맞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은 신민규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원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펴낸 학술지 '미술자료'에 게재한 논문에서 발표하였다.


1833년 전후의 서구미술

서양미술에서 1833년 전후는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가 유행하는 스타일이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은 신고전주의 화단의 중진으로 활동하던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아틀리에에 들어갔다. 그는 로마에서 고전회화와 르네상스의 거장인 라파엘로의 화풍을 연구했다.  그는 신흥 낭만주의에 대항하여 고전파의 중심에 섰다. 그는 드디어 로마에서 신고전주의와 관학파의 아카데미의 관장이 되었다. 또한 고직과 동방적인 화풍에 리얼리즘 등 다각적인 스타일을 겸하여 근대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세기초 중국에는 천주교의 전파로 서구미술이 소개되고 있었다. 위와 같은 스타일로 유화를 소재로 초상화를 그리는 초상화가들이 왕래하였다.  아직 박회수의 초상화가 누구의 작품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참고로 앵그르가 1832년에 그린 언론인이던 [루이 프랑수아 베르탱의 초상] 을 참고로 소개해 본다.  

출처 : [거장화가 100인이 그린 어머니의 초상, 아트월드출판사, 2015년, 지은이 조영규] 


[루이 프랑수아 베르탱의 초상] 1832년, 캔버스에 유채, 114.3×93.4cm,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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