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choyeung 2008. 12. 22. 10:15

 

 

1.꽃잎 / 나태주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2.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3.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 나태주


  전화 걸면 날마다

  어디 있냐고 무엇하냐고

  누구와 있냐고 또 별일 없냐고

  밥은 거르지 않았는지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허기는 아침에 일어나

  햇빛이 부신 걸로 보아

  밤사이 별일 없긴 없었는가 보다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이제 지구 전체가 그대 몸이고 맘이다.


4.강아지풀을 배경으로 / 나태주


  1

  어린것들일수록

  왼쪽으로 자라 삐끔히

  

  햇빛을 탐하여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새파란 귀때기 바람에

  마주 부비고 있었다

  

  그들은 맨 몸으로도 온통

  깃발이었다.

  

  2

  손질이 덜된 그림이 아직은

  남았는데

  

  살금살금 다가와 발목을 잡는

  어둠의 손

  

  우뚝우뚝 앞길을 막아서는

  산과 나무들

  

  그리다 만 강아지풀들 한사코

  울먹이며 매달리는데

  

  저녁놀 눈부셔라

  흐려지는 파스텔.

  

  3

  서 있기보다는

  누워있는

  

  아주 눕기보다는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혼자서보다는

  두 셋이서

  

  난 그런

  강아지풀.

5.유월은 / 나태주


유월은 

네 눈동자 안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화사한 네 목소릴 들려주셔요.

  

  유월은

  장미 가시 사이로 내리는 빗방울처럼

  화안한 네 웃음 빛깔을 보여 주셔요.

  

  하늘 위엔 흰구름 가슴 속엔 무지개

  너무 가까이 오지 마셔요.

  그만큼 서 계셔도 숨소리가 들리는 걸요.

  

  유월은

  네 화려한 레이스 사이로 내다보이는 강변

  쓸리는 갈대숲 갈대새 노래 삐릿삐릿.....

  

  유월은

  네 받쳐든 비닐우산 사이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늘빛

  비 개인 하늘빛 속살을 보여 주셔요



6.어쩌다 이렇게 / 나태주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가고 싶었는데

  아는 듯 모르는 듯

  잊혀지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대 가슴에 못을 치고

  나의 가슴에 흉터를 남기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의 고집과 옹졸

  나의 고뇌와 슬픔

  나의 고독과 독선

  그것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과연 좋은 것이던가

  사는 듯 마는 듯 살다 가고 싶었는데

  웃는 듯 마는 듯 웃다 가고 싶었는데

  그대 가슴에 자국을 남기고

  나의 가슴에 후회를 남기고

  모난 돌처럼 모난 돌처럼

  혼자서 쓸쓸히.

 


7.대숲 아래서 - 나태주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서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죽대에 별빛 어리듯

  그을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두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찌기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 시인 나태주



그날, 충남 공주의 가을은 마지막 절정에 올라서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 가지들이 짧게 잘린 채 고적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의 이파리들도 이미 노랗게 익어버렸고, 온통 붉은빛으로 타고 있는 산딸나무도 그날이 가을의 절정임을 알리는 증좌였다. 그렇지만 공주시 장기면 장기초등학교 교장 나태주(59) 시인을 만나러 간 그날, 단풍보다도 가을의 느낌을 더 섬세하게 전하며 시인의 가슴속 떨림판을 자극한 것은 희미하고 누렇게 교정을 덮어버린 가을 오후의 사양(斜陽)이었을 것이다.

“똑바로 보지도 않고 옆으로 희미하게 쳐다보는 듯한 가을빛은 사람 애간장을 다 태우지요. 갈 것은 가게 하고 올 것 오게 하며 설 것은 서게 하고 앉을 것을 앉게 하는 자연의 대긍정이 진행되는 중이겠지만, 나는 이 가을이 빨리 갔으면 좋겠네요. 차라리 겨울이 오면 추워서 콜록거리기라도 하지요. 때로는 질병도 생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가을의 중심에 맑은 정신으로 서 있으면 시가 찾아와서 정신없이 나를 휘둘러요.”


시가 언제 찾아드냐는 질문에 나태주는 손님이 찾아오는 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듯이 그에게 시는 잠잘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출근길에도 때를 가리지 않고 온다고 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주로 가을에 시가 더 몰려왔는데 요즘은 가뜩이나 허전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져서 시에 휘둘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시에는 막강한 힘이 있어서 시인이 시를 휘어잡을 수 없고, 시인은 그저 시에 휘어잡힌 사람이요, 시의 그릇일 뿐이라는 말이다.


바람 부는 날 나무들이 휩쓸리듯 시에 휩쓸리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라는 생각이다. 유난히 떨림판이 예민한 존재인 시인들이 시에 휩쓸리는 건 행복이지 않을까.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강건하게 시의 폭풍을 견디어낼 조건일 때 태풍이 자고 난 뒤 많은 소출이 있을 터이지만, 나태주는 지난해 병을 앓았고 요즘은 몸을 추스르면서 회갑을 앞두고 자꾸만 삶을 정리하는 듯한 심정이 되면서부터 시의 폭풍도 그리 달갑지만 않은 듯하다.


나태주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단에 나와 시업 30여년째요, 19세부터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니 교직은 만 40년째 이어오고 있다. 경기도 연천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그의 고향인 충남 서천 인근을 거쳐 공주에 정착했다. 전원 속의 시인이자 교사로 살아온 셈인데, 그를 이른바 ‘전원 속 작가’라는 틀에 가두자면 정작 그가 살아온 지역보다도 그의 시가 평생 추구해온 전원 정서가 그를 더 강력하게 특징짓는 요인일 것이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히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대숲 아래서’ 부분)


아이들이 그네를 타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가을 오후 장기초등학교 교정을 배회하다가 교장실에 들어섰을 때 음악 소리가 아담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 몇 편을 암송하며 자탄하듯 말했다. 내 시는 초기 시로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어쩌면 시인에게 시는 ‘단벌’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시를 크게 달라지게 할 힘을 지닌 시인은 별로 많지 않다고. 그래서 자신이 없다고. 그의 이러한 자조는 역설적으로 온갖 해체시니 관념시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오로지 전통 서정시에 매달려 한생을 지나온 외로움과 소외의 심정을 강변하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가 그의 ‘서정’의 외로움을 대변한다고 보면 어떨까.


“다른 아이들 모두 서커스 구경 갈 때/ 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이처럼/ 모로 돌아서서 까치집을 바라보는/ 늙은 화가처럼/ 신도들한테 따돌림당한/ 시골 목사처럼.”(‘서정시인’)


그렇지만 다분히 그의 ‘시단의 외로움’에 대한 강변은 ‘엄살’일 수 있다. 그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한 맥락을 충분히 지켜오면서 문단에서 뚜렷한 위상을 확보했고,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흙의 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들이 그의 노고를 위로해준 터이다.


그는 서천에서 태어나 공주에는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되는 공주사범학교에 다니기 위해 처음으로 유학왔다. 이후 연천과 서천 등지를 돌다가 공주에 정착한 지 벌써 28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공주에 살면서도 공주가 그립다고 했다. 공주는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청명한 대기 속에서 먼 곳의 풍경까지 보이는 지세여서 늘 ‘높고 쓸쓸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는 그리워하는 마음을 공주에서 배웠다.


“그리움과 기다림은 다른 정서입니다. 기다림은 예전에 있었는데 없어진 것을 되찾기 위한 심리적 작용이지만, 그리움은 예전에 있었기도 하지만 한번도 없었던 것일 가능성이 크고 기다림보다 구체적이지 않은 뜬구름 잡는 감정입니다. 인간을 끝없이 못살게 구는 건 기다림보다 그리움이지요. 그리움은 무엇이 자신에게 결핍된지도 모른 채 끝없이 애달파하는 감정인데, 인생의 애달픈 면은 그리움에 있고 시는 그 그리움에서 출발합니다.”


시인도 시인 나름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것에 더 특별히 예민하게 상처받고 반응하는 고달픈 일인지도 모른다. 나태주는 자고로 예술가란 조울증 환자가 아니면 정신분열증 상태라고 말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야말로 그 선명한 증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교장실에서 나와 공주시내 금강변 음식점에 들렀을 때 그는 고복수의 ‘짝사랑’을 잠시 읊조리면서 눈물지었다. 자신은 세상과 사람을 평생 짝사랑해왔을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세상의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반응했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노래를 낮게 불렀다.


“젊어서 곱살했을 한때는/ 한약방 집 첩실이었던 아낙/ 지난해 겨울, 팔을 다쳐/ 붕대로 팔을 묶어 어깨에 메고/ 전실 아들이 대신해서 살고 있는/ 남편네 집 앞길을/ 어슬렁어슬렁 지나가고 있다// 상한 짐승이 되어”(‘백목련’)


하지만 나태주 시인을 여리고 여린 시인의 캐릭터로만 보는 것은 다른 일면을 보지 못한 왜곡일 수 있다. 헌신적으로 교직에 봉사해 최고의 자리인 교장까지 올랐으며, 딸 민애(26)씨는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시를 연구하는 박사과정에 들어서 있고, 내년 회갑을 앞두고 제자와 지인들이 준비한 회갑문집이 곧 나올 예정일 뿐 아니라 다음달에는 학교 두 칸짜리 교실을 튼 식당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갈무리하는 힘은 시인의 생래적인 여린 감성을 보완하는 또 다른 자산일 것이다.


어둑한 금강변을 걸어 다리를 건널 때 공산성 위에 떠오른 반달이 시인의 발치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2∼3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서 시화전도 준비하는 중이며, 동화를 쓰기 시작해 다음달에는 ‘외톨이’라는 연작동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자신이 바로 그 동화의 주인공 외톨이라고 했다. 사실 시인은 알고 있다. 자신의 외로움이야말로 타인의 외로움이라는 것을. 23번째 시집 ‘산촌엽서’에서 실린 그의 고백.


“남의 외로움 사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외로움만 사 달라 조른다/ 모두가 외로움의 보따리 장수.”(‘시인학교’ 전문)

평생 동안 잘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네 가지 있는데요. 초등학교 선생을 한 일, 쉬지 않고 시 쓴 일, 한 번도 시골을 떠나지 않고 산 일, 아직도 자가용을 갖지 않고 사는 일입니다.”


40여 년을 산골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시인 나태주 교장선생님. 장학사 시절에 관료주의가 싫어 시골 학교를 자청했던 그이는 스스로 산골 선생님인 것에 보람을 느끼며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와 삶을 밀착시키며 살아왔다.


그이가 근무하는 공주 상서초등학교는 꼬불꼬불 계룡산 산모롱이 마티재를 몇 굽이나 돌고돌아 내려가는 길 위에 있다. 그 작은 산촌을 낀 초등학교 2층에 교장실이 있다.

교장 나태주'라는 명패도 없고 그저 작고 아담한 예술가 작업실 같은 분위기였다. 교장실은 쓰다 만 원고지 더미 등 영락없이 어느 시인의 작업실 풍경이었고 아이들은 교장실로 우르르 몰려왔다가 나가곤 한다. 교장실이 아이들 사랑방인 셈이다.


이따금 교장실에서는 교장선생님이 연주하는 오르간 반주에 맞춰 아이들이 합창을 하곤 한다. 나태주 교장선생님은 아이들과 놀다보니 전교생의 집안 환경을 꽤 차고 있을 정도였다. 특히 6학년 효상이와는 4학년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낸 사이다.


이유인즉슨 급식비 한번 못 낸 어려운 아이이기 때문. 녀석은 학교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품팔이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생활하며 두 끼를 굶고 등교했다가 기절했던 것. 그날 교장선생님의 안쓰러운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녀석은 등교도 하교도 제일 늦게 한단다. 늘 말수가 적어 교장선생님이 길동무가 되어 주곤 했단다.


<강물과 나는>

- 나태주 시인

 

 

맑은 날
강가에 나아가
바가지로
강물에 비친
하늘 한 자락
떠올렸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
흰구름 한 송이
새소리도 몇 움큼
건져 올렸습니다

한참동안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을
기르다가 공연스레
죽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걸음을 돌려
다시 강가로 나아가
그것들을 강물에
풀어 넣었습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
새소리 모두
강물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
강물과 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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