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이야기)

choyeung 2020. 2. 15. 12:46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를 제작한 모습

 

1. 우석(雨石) 장발(張勃 루도비코 1901-2001)<김대건 신부상>

 

 

 

제작년도 : 1920(19)

크기 : 60.5x50cm

소장 : 명동성당 소장

가톨릭미술의 선구자로 불리게 한 대표작 김대건 신부상’.

제작경위 : 용산중학교 교장인 기낭 신부의 사제수품 은경축 기념으로 그렸다

⚪작가이력 :

일본 도쿄 미술학교 전문학사 , 서울대 대학원 미술학 석사,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미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미술학 석사,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 초대 학장 및 교수

경력 - 미술교육가, 서양화가, 대한민국 외교관

 

  

2. 프랑스인 선교사 플뢰레(Fleuret)가 펜화으로 그린 <김대건 신부 초상>

 

 

 

제작년도 : 1925

제작경위 : 당시 79위 시복식을 앞두고 그려졌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452호에 따르면, 방상근(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프랑스 선교사 플뢰레의 펜화 그림이 1896년 간행된 조선과 프랑스 선교사들이란 책에 실려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러나 플뢰레의 작품이 최초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라는 설도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 제452호에 따르면 방상근(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프랑스 선교사 플뢰레의 펜화 그림이 1896년 간행된 「조선과 프랑스 선교사들」이란 책에 실려 있는 것을 찾아냈다. 장발 화백의 그림보다 30여 년 앞서 프랑스 선교사가 그린 게 최초라는 것이다.

 

3. 우석(雨石) 장발(張勃 루도비코 1901-2001) <김대건 신부 초상>

 

 

 

제작년도 : 1928-1929

재료 : 캔버스에 유화

크기 : 81x43.5cm ,

소장 : 절두산 순교자기념관

초상화 : 79위 시복식 후 그린 복자화

제작경위 : 1925년 장발은 로마에서 거행된 시복식 참석 후 1928~1929년 사이 '복자 김대건 성화'를 새로 제작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인상이 한결 부드럽고 색채가 자연스러운 점이 특징이다.

 

4.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요셉 1912-2005)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

 

⚪제작년도 : 1954년

⚪재료 : 동양화

⚪소장 :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충북 충부 출생으로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역임하고 한국 동양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문학진 토마스(1924-2019) 서울대 명예교수의 <김대건 신부초상>

 

 

제작년도 : 1983

재료 : 캔버스에 유화

크기 : 91x73cm (30)

초상화 : 복자화

제작의뢰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표준 영정제작위원회의 제작의뢰

소장 : 명동성당

모습 :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영대, 성경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오른손에는 십자가상을 잡고 있다.

작가이력 :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서울대 교수,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가톨릭 103위 순교복자 벽화>

      

6. 호암(湖岩) 정채석 비오, 동양화가의 <김대건 신부 복자화 >

 

 

제작년도 : 1971

재료 : 동양화

크기 : 미상

소장 : 당진 솔뫼성지 김대건신부 기념관

모습 : 검은색 수단에 모관(毛冠)비레툼)을 쓴 모습이다. 그가 죽고난 뒤 신자들이 수습한 유해에서 두개골을 따로 보관한 것을 바탕으로 복원한 이미지이다. 당대 조선인답지 않은 서구형 외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관은 전례의 집전을 위하여 성전에 입장과 퇴장할 때 성직자가 사용하는 예절용 모자이다

 

 

7. 호정(湖亭) 조영규 레오나르도, 서양화가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화>

 

 

 

제작년도 : 2011

재료 : 캔버스에 유화

크기 : 91x72,7cm (30)

소장 :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성당

제작의뢰 : 오전동성당의 전합수 주임신부의 제작의뢰, 주보성인인 성인 임치백의 초상화도 동시에 제작의뢰됨

참고 :

성 김대건 초상화 http://blog.daum.net/choyeungart/202

 

성 임치백 초상화 http://blog.daum.net/choyeungart/206

⚪작가이력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미술실기과정 수료, 서울대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 한국초상회화협회(KSOPA)창설, 미국초상화가협회(ASOPA)회원 역임, 2011년 미국 뉴욕 맨해튼 인터내셔널 사실인물화전 수상,)초상화 개인전 10회 개최, 안중근순국100주년기념 42인독립운동가 초상화 특별기획전 개최( 2010년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평촌아트홀)

 

8. 호정(湖亭) 조영규 레오나르도, 서양화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초상화, Oil on canvas, 72.7x53.0cm, 20P, 2020년, 조영규

 

제작년도 : 2020.2월

재료 : 캔버스에 유화

크기 : 72,7x60.6cm (20)

소장 : 수원시 매교동성당

제작의뢰 : 수원시 매교동성당의 전합수 주임신부의 제작의뢰, 정채석 동양화가가 그린 <김대건 신부상>을 유화로 제작의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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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복식 전문가들께서 고증을 거쳐 제작한 상본이겠습니다만
도포를 입고 술띠를 맬 때 옷고름 매듭 아래로 매면 흘러내려서
옷고름 매듭 위로 둘러서 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본 중에는 옷고름 매듭 아래로 술띠를 둘러맨 그림이 있는데
매우 어색해 보입니다. 철저한 고증을 재검해 주시길 바랍니다,.
(답글) 술띠는 도포의 허리부분에 둘러서 앞이 헤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묶는 띠로 양쪽 끝에는 술이 달려 있어서 술띠라고 부릅니다. 조선시대의 주로 양반들이 착용한 도포는 소매크기가 넓은 옷으로 도포의 옷고름 매듭과 술띠 일명 세조대(細絛帶(세조대)의 위치를 유명한 초상화 속의 고증으로 살펴봅니다. 조선후기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석지 채용신(蔡龍臣 1850년(철종~1941년)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술띠가 1)채용신필 박만환 초상 (1910년작)에는 옷고름 아래에 술띠가 위치해 있습니다, 2) 채용신필 민재 전우(民齋田愚 (1841~1922) 초상 (1931년작)에는 옷고름은 보이지 않지만 짐작컨대 옷그름 아래부분에 술띠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채용신필 유중악 초상 (1897년작)에는 옷고름이 술띠 위에 분명히 위치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같은 초상화가 그리는 술띠의 위치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4) 그리고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자화상을 살펴보면 옷고름과 높이가 같은 위치에 즉 겹쳐서 술띠가 놓여 있습니다. 또한 위의 문학진 화가의 김대건 성인의 초상화에도 술띠가 옷고름 아래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0.9.4.~9.27에 명동성당 1898갤러리에서 전시한 한국 103위 순교성인화 전시에서도 도포를 입은 남자 초상화를 제작할 때 술띠는 옷고름 아래에 위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술띠는 반드시 옷고름 위쪽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