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떠나기

choyeung 2020. 11. 9. 09:18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 ◇7만평의 연꽃밭 세미원, ♡1,100년의 사찰 용문사, ♡ 용문사의 수령 1,100년의 동양최대이고 천연기념물 30호인 은행나무 ♡ 해발 1,157m의 용문산, ♡북한강과 남한강의 강변 절경, ♡토종 국민음식인 양평해장국, ◇다산 정약용의 생가(여유당) 과 기념관

● 100대 관광명소인 두물머리

 

 

ㅡ두물머리에서 보이는 풍경


11월초 짙은 늦가을의 풍경은 사실 사람의 감성을 가장 진하게 우수와 멜랑꼴리로 만드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단풍이나 은행잎들의 풍성한 기간이 지나 버렸고 낙엽은 거의 땅위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른 가지에 드문 드문 달린 잎새를 보고 있노라면 노년에는 문득 인간의 모습을 비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침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여 코로나19로 극심한 불황을 맞고 있는 폐업직전의 호텔,팬션 등 숙박업소를 지원코자 올해 두번째로 11.4일부터 연말까지 선착순으로 1인1매 3만원(7만원 미만 숙박료)과 4만원(7만원 이상)의 할인쿠폰이 발급되는 (숙박대전) 기간이라 집에서 70km 떨어진 한강과 산이 멋진 양평지역 여러곳으로 현장 스케치를 겸해 발품을 팔아 보기로 했다. 원래는 11.3일에 출발하려 했으나 마침 보도를 보고 쿠폰 신청하여 지원을 받게된 셈이다.

 

 

두물머리에는 한쪽은 멀리 충청도 청평호수로부터 남한강이 앞쪽으로 흐른다. 오른쪽은 느티나무 쉽터
느티나무 뒷편은 두물경으로 물안개가 약간 피어 오르고 있었다

ㅡ아름다운 자연과 산책길에 만추를 완상하는 사람들. 이들의 모습과 쳐다보는 눈매는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는 자연의 풍광에 힘입어 경건하고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이들은 이곳에 와서 연인(戀人)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실을 가지고 상대의 말을 묶어 마음속에 담아버려서 일까?

 

11월 초는 두물머리 강변에 풍성히 자라던 연꽃나무 잎이 마른 모습이었다. 뒤는 느티나무 쉽터

 

물안개 쉼터

 

야생의 청둥오리와 가마우지가 보얐다. 뒤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와 쉽터

 

ㅡ하늘의 옅은 구름이 강위에 비쳐있다


경기도 양평읍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즉 두물머리가 있는 관광 명소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이웃에 위치해 있고 역사적인 기념관을 들릴 수 있다. 두물머리에서 북한강 쪽으로 <두물경>이라는 1km 떨어진 위치까지 호젓한 산책길을 최근에 조성해서 늦가을 강가에 흐드러지게 보이는 갈대와 억새 및 시들어 버린 연꽃 잎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강물이 가득 차버린 양쪽 강의 기슭은 아련히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신비한 모습을 볼수 있었다.

 

 

 

ㅡ두물경 부근의 풍경

간혹 야생의 청둥오리와 가마우지가 강변쪽에서 헤엄치며 물속을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는데 평화스런 모습이었다

 

ㅡ갈대의 무리가 지나가는 가을을 아쉬어 멈추게 하였다
은행나무와 갈대의 무리
벤치에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

 

 

● 두물경 쪽의 산책길

 

두물머리에서 두물경으로 가는 약 1km의 산책길 표지물
두물경으로 가는 길
넓은 강변에 차지한채 잎이 마른 연꽃나무
[(양수리 풍경] 캔버스에 유채, 53x73cm, 2007년 작품, 미술대 지석철 교수와 화우들이 가끔 양수리 현장에 나와 그린 작품

* www.choyeung.com
[Korean Artists]한국의 화가-김경렬, 박기호, 지석철, 김봉기 등

 

ㅡ갈대와 억새가 한데 섞여 있다는 아름다운 만추의 강변풍경

● 세미원


그리고 두물머리 인근에는 <세미원>이라는 약 7만평의 넓은 연꽃 정원과 기념관이 있으나 5월전후의 개화기 철이 지나 나는 따로 이곳에 들리지는 않았다.

매년 6~8월 만개하는 세미원의 연꽃, 세미원과 두물머리는 정조시대의 배다리(배다리-열수주교(洌水舟橋)로 재현하여 이어져 있다)


● 서기 973년 신라시대 신덕왕때에 창건한 1,047년된 용문사 (龍門寺)

 

ㅡ용문사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암약으로 전개하던 은거지이며 아지터로 알려지자 일제는 역사깊은 절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래서 해방 이후부터 조금씩 대웅전 등을 새로 재건한 곳이다. 이곳에는 절앞에 무려 수령이 1,100년~1,500년로 추측되는 높이 42미터와 둘레14미터가 되는 동양에서 최대, 최고의 은행나무가 아직도 살아서 자라고 있으며 많은 은행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어 비록 철이 지나 은행잎은 떨어졌지만 신비롭기만 하였다.

양평읍의 관광명소는 신라시대에 건축된 <용문사>와 해발 1,157미터의 <용문산>이다.  용문산은 두물머리에서도 멀리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이는데 주위에 8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10개나 된다고 하니 산새가 험한 곳이며 정상까지 왕복 8시간의 산행을 요하는 곳으로 단풍이 좋아 진짜 등산객이 찾는 장소이다.

 

ㅡ주차장에서 용문사까지 약 15분정도 걸어가는 경사진 도로와 단풍나무

 

ㅡ용문산이 높아서 계곡이 넓고 깊다.

 

물이 말라버린 넓고 깊은 길가의 개울
동행으로 간혹 스냅해 준 가족
ㅡ수령 1,100년이 넘고 높이 42m, 둘레 14m의 살아있는 천연기념물인 유명한 은행나무
ㅡ용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 일제가 사찰을 불태웠으나 나무는 온전했다고 한다.
ㅡ용문산 1,157m 높은 산은 왜 명산일까? 신선이 살아서 일까? 아니면 1,500년이 된 거목이 버티어 있어서 일까? 유우석의 누실명이 생각난다.

m.blog.daum.net/choyeungart/260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 등

산 높지 않으나 신선(神仙)이 있으면 유명하고, 물 깊지 않으나 용이 있으면 신령하도다. 이 집이 좁다 해도 내 덕이 향내를 날리리. 돌계단에 이끼 푸르고, 초록빛은 발을 넘어 마구 들어온다네.

blog.daum.net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 등산 높지 않으나 신선(神仙)이 있으면 유명하고, 물 깊지 않으나 용이 있으면 신령하도다. 이 집이 좁다 해도 내 덕이 향내를 날리리. 돌계단에 이끼 푸르고, 초록빛은 발을 넘어 마구 들어온다네.

대웅전
대웅전과 지장전
삼층사리탑
옥외의 개금한 금제좌불상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과 탱화

 

 용문사는 1919.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근거지

양평은 의병의 근거지로 의향(義鄕)이라 불린다. 특히 용문사(龍門寺)와 용문산(龍門山)은 한국독립운동 발상지로 사찰의 입구에 [양평의병기념비] [용문항일투쟁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민족독립운동발상지 비석과 [ 양평의병기념비 ] [ 용문항일투쟁기념비 ]

1896년에 단발령이 내려지자 양평 안창리에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을미의병(乙未義兵)을 일으키고 의병장에 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이승룡, 김백선(金伯善 장군과 포수500명등이 활약하였다.

1907.7.1.일 일본군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을 일으키자 1907.8.24일에 일본보병의 무장병력이 용문사로 진입하여 사찰을 전부 불로 소각시켰다.

운암 김성숙(1898-1969)은 용문사의 승려로 1919.3.1.운동에 참여하여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선전부장으로 활동, 1942년에 임시정부 내무차장, 1943년에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약하고 1982년에는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용문사 외에 활동지역은 상원사(上院寺 : 용문사계곡의 서쪽 기암절벽), 용천골의 사나사(舍那寺)가 있으며 독립운동가 권득수(權得洙), 조인환(曺仁煥)이 활약하였다.

몽양 여운형(1886-1947)은 생가와 기념비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있다.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하였다,

 

● 남한강 강변풍경(힐하우스)에서

아래는 남한강변의 <힐하우스> 라는 숙소와 음식점을 하는 곳으로 인근의 숙소에서 이동하는 길에 들려보았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이다. 과거 야생화 정원으로 유명했으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ㅡ강변이 바라보는 힐하우스 정원에 은행잎이 떨어져 있다.

은행잎은 하트모양 (♡) 사랑의 연서를 쓰다만 잎새이다. 그리고 잎을 자세히 보면 인고의 무수한 침이 들어있다. 은행목은 오직 고생대부터 내려오고 한 종류의 유일한 나무로 고독했다. 다른 나무는 한가지에 암수가 같이 있으나 은행은 암수가 떨어져 있고 암나무에 따로 열매가 달린다. 은행열매는 열매에 가진 성분으로 동물은 범접을 못하고 오직 사람만이 먹을 수 있다. 가을의 은행은 고독한 존재의 화신으로 땅에 떨어진 은행잎은 잎속에 박힌 무수한 침처럼 인고로 다 못쓴 연서임에 틀림없다.

은행나무는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에 해당된다. 자세히 보면 많은 침엽이 잎새에 들어 있다.
은행의 수나무는 가지를 하늘로 치켜 세우고 있다. 반대로 암나무는 어떤 모양일까? 가지를 옆으로 뻗고 있는 자세이다. 이는 수나무의 화분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해 가지의 팔을 뻗고 있으되 암나무는 그 화분을 더 많이 안기 위해 거의 수평으로 드리워야 한다. 은행이라는 나무에서 자연의 이치가 신비롭기만 하다.

더구나 한국의 토양에는 은행열매에 있는 징코민이라는 영약의 성분이 가장 많다고 하며 따라서 전세계에서 수입코자 인기가 많다. 더불어 수령이 수백년이 넘는 은행목의 숫자가 가장 많은 것은 물론이다.

 

ㅡ은행잎은 침엽수로 가는 실선이 들어있다

 

화면 가운데 멀리 삼각형으로 1,057m의 용문산이 보인다
ㅡ정원에 높이가 있는 큰 맨드라미 꽃

 

단풍이 떨어진 곳에 봄에 야생화가 이름난 곳이었다.

 

●본가 양평해장국집

ㅡ<양평해장국집>의 식당안, 맛이 있는 점심을 들었다.

양평지역은 또한 청평호수로 부터 흘러내리는 남한강과 북한의 금강산으로 부터 내려오는 북한강이 만나며 양쪽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볼 수 있는 지역이라 강변을 따라 숙소와 관람소 및 갤러리가 많고 찻집과 베이커리 및 음식점이 연이어 있는 곳이다.

특히 양평해장국이 유명한데 선지와 소양 및 우거지를 넣어 우러낸 맛으로 전국에 흔히 간판을 볼 수 있는 원조이기도 하다. 나는 양평읍 행정관서에서 음식조리의 명인으로 지정하였고 강변 숙소에서 가까운 <본가 양평해장국집>에 찾아서 8,000원으로 매긴 양평선지국 점심을 먹었는데 과연 여태까지 먹어본 이러한 식당중에 일품이라고 생각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거늘 이날은 양수겹장의 날이라고나 할까.

 

본가 양평해장국집 내부

 

 정약용의 생가

 

이번에는 여유당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올린 블로그 글을 옮겨본다
http://m.blog.daum.net/choyeungart/59

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1762~1836)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1762~1836) 다산 정약용의 초상화 -정약용의 초상화 왕명으로 다시 상경했으나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급서하자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정적들은 일제히..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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