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choyeung 2008. 12. 23. 10:40

 

이길봉수(현재 아이봉수) 발굴 및 지정된 과정 :

 

행정구역 변경 및 봉수대의 명칭변경 과정  

 

1987.5.19   이길봉수(爾吉烽燧) 경상남도 기념물 제84호 최초 지정

1995.12.15  이길봉수(爾吉烽燧) 부산직할시 기념물 제38호 재지정

-19953월에 경남도에서 부산직할시로 행정구역이 변경

  2010.6.20 부산광역시 명칭변경 및 소급 적용 : 이길봉수를 기장(機張) 아이봉수(阿爾烽燧)로 명칭을 변경 

-부산직할시는  이길봉수를 아이봉수로 명칭변경을 위한 1) 실태조사 및 2) 문화재심의후 3) 명칭변경을 고시

-고시하면서 약 15년전인 1995.12.15로 소급하여 부산직할시 기념물 제38호 재지정

-199810.19  서생(西生) 나사봉수(羅士烽燧)는 울산광역시 기념물 15호로  지정

-울산광역시는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 <이길봉수> 위치의 오류를 들어 부산시에 명칭변경 요청

-2010.12.17 울산광역시는 서생 이길봉수 (西生 爾吉烽燧)로 명칭변경을 고시함

-울산광역시는 기념물 15호로 <이길봉수> 명칭변경과 199810.19 소급하여 지정

 

당초 이길봉수의 위치는 부산직할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산 51-1번지 일대이다이곳은 고리원자력의 경계 부지내에 있으며 지리적으로 고리원자력 북쪽 봉대산 (해발 129.2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대로서 사방에 뛰어난 전망을 보유하여 천혜의 적지로 여겨진다. 여기에 올라서면 한마디로 일망무제(一望無題)의 바다풍경과  발아래는 고리원자력의 전체 모습과 남으로는 부산, 북으로는 울산으로 이어진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으로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길봉수 현장에는 지금도 당시의 역사적인 흔적을 보여주는 듯이 검정색 그을름이 묻은 이끼 낀 자연석과 도자기 조각들이 널려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이길봉수 가운데 직경 9m의 봉돈(烽墩)은 봉화 연기를 피우는 '()'를 말한다

 

-이길봉수 가운데 직경 9m의 봉돈 뒷부분

 

 

-이길봉수 둘레 직경 30m의 담장과 통로-복원이후의 모습

 

 

-이길봉수 표지판과 밑에서 본 광경 

 

 

-월내마을에서 보이는 봉대산, 이길봉수 위치와 고리원자력

(발굴동기)

지금부터 23년전인 1985년에 본인은 당시경남 양산군 기장면 고리에 소재한 한국전력 고리원자력 본부에 근무하였다김정호(金正浩)1861년에 목판본으로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한 질()의 복사판(영인본)을 보면서 특히 과거부터 부산, 기장, 양산, 울주등 동해안 지역에 봉화대(烽火臺)를 설치했던 위치가 표기되어 있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졌다.

일대 지역은 역사문헌을 찾아보면 과거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대까지 간헐적으로 일본의 침략과 노략질이 있던 지역이다. 이와 관련된 문화 유적중에서 봉수대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차츰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고려시대와 특히 조선의 세종(世宗) 대에는 전국에 걸쳐 많은 봉화대를 정비하고 축성하였다. 왜적등의 침입시에 먼저 변방(邊防)에서부터 중앙으로 즉각적인 통신연락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왜적과 대적(對敵)시에는 최일선의 방어역할까지 수행하였다. 봉수체제는 말단지역에서 단 4시간이면 조정까지 보고되는 통신수단으로 위급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설이 되었다.

5만분의 1 지도상에 고리(古里)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인근지역은 봉대산(峰臺山 129m)이라는 고지(高地)로 표기되어 있다. 과거 이곳 해안마을은 주민들을 통하여 화포(火浦)라고 전해오고 있다.  따라서 지명의 유래가 봉화대가 있어서 기인한다고 보였다. 만약 추측대로라면 봉화대가 있던 자리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된 것과 어떤 역사적 사실의 일치가 된 셈이다.

 

(학술자료)

봉수(烽燧)는 적의 침략행위가 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하여 주로 밤에는 횃불(), 낮 시간은 연기()로서 통신수단을 한 곳이다. 그리고 봉수대의 종류는 전국적으로 역할과 위치로 보아 경()봉수, 내지(內地)봉수, 연변(沿邊)봉수 3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경봉수(京烽燧)는 서울의 목멱산 봉수 또는 남산(南山)봉수라고 하며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되는 중앙봉수이다. 내지봉수(內地烽燧)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육지 내륙봉수로서 복리봉수(腹裏烽燧)와 같은 말이다. 연변봉수(沿邊烽燧)는 국경과 해변에 설치되어 연대(煙臺)라고도 불리며 해안 연변지역의 최일선 봉수로 요새역할을 겸하는 곳이다. 통상적으로 봉수대 주변에 봉수꾼들이 기거하는 주거가 있었고 봉수의 수칙과 규율은 엄격하였고 교대로 기거하였다.

이조실록(李朝實錄)에 의하면 이길봉수의 창건연대는 세종(世宗)대에 봉수체제가 확립되어 건설되었다. 형태는 원형(圓形)의 석축을 각각 3겹을 축성한 것이다. 먼저 가운데 9m 석축안은 연대(烟臺)로 되어 있다. 연대 주위에는 30m, 40m로 따로 이루어진 원형의 석축이 형성되어 있다. 안쪽내부는 흙으로 채워져 있다. 석축 담장의 뚜게 폭은 150~250cm, 높이는 100~250cm가 되고 있다

이길봉수의 발굴당시의 보존상태는 봉화대 일부가 무너지고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으나 현장을 찾아온 문화재 위원들도 다른 곳과 비교한 결과 원형(原型)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발굴당시 직경 9m의 연대와 30m의 원형 석축사이에 경계용 콩크리트 초소(기념물 지정이후 철거됨)2층으로 지어 활용하였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보존상태가 잘 유지된 점도 있었다.

경상도 지역의 연변봉수의 기본적인 형태는 장방형방형원형, 외에 이형의 4가지 형태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장방형(長方形)은 고성 좌이산양산 위천봉수 원형(圓形)은 영덕 대소산기장 이길봉수(爾吉烽燧),·남해 대방산남해 금산봉수, 이형(異形)은 암반을 파내고 연소실을 조성한 통영 미륵산봉수등의 형식이 있고 방형(方形)에는 동해 어달산 봉수가 있다

 

(봉화대의 현장)

낮시간은 연기로, 밤은 불빛으로 즉 주연야화(晝烟夜火)를 주요 전보통신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봉수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방화벽· 담장· ()연통 등의 필수 기본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관련 부속시설로 출입시설건물우물이나 저수시설거화방호, 생활에 필요한 각종 시설 및 재료와 비품,무기 등의 비치물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전해진다.

조선후기 발간된여지도서(1760)에는 당시 경상지역 63개소의 지역 내 총 153개소의 봉수 중 양산군 위천봉수와 삼가현 금성봉수 등 2개소 봉수에 한해 각종 봉수대 비치물목이 명기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면 각 봉수별로 거화(炬火)시설 및 재료 약 33, 방호시설 및 무기 약 30, 생활시설 및 비품 약 21종으로 총 80종 내외의 봉수운용 및 유지와 봉수군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치물목이 일목요연하게 구분되어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당시 경상지역 봉수의 각종 비치시설 및 물목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봉수의 시설 및 비치물목은 대동소이하나 주된 거화 재료로는 말과 소의 똥 외에 쑥싸리관솔섶 등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연료로 하였다. 이러한 거화 재료의 수집을 위해 애쓰던 봉수군의 하루 일상생활의 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

끝으로 봉수의 운용주체자인 봉수군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활시설 및 비품현황에서는  초가·가가 등으로 임시거쳐가 있었다. 와가와 고사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던 규모가 컷던 봉수대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개인방호 무기를 더 갖추게 되었다. 생활시설 및 비품현황에서도 기와집과 창고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이는 항구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음을 통해 봉수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지대함을 알 수 있다.

 

(발굴시 주위의 봉수 현장확인)

우선 부산에서 울산에 이르는 대동여지도에 명기된 언양, 온산, 울산지역의 봉수를 근거로 하였다. 현장확인 작업은 지도를 감안하여 수행하였고 형태도 확인하고자 하였다. 행정관서에서는 봉수의 존재를 모르는 실정이 대부분이었다. 봉수가 표시된 일대는 인적이 땋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발견하기 어려웠다. 또한 유적의 형태조차 거의 없어져서 당시의 여러번 현장조사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부산시 해운대의 해발 634m인 장산(長山) 산정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그 형태는 검은 벽돌로 다시 재현한 것으로 이는 그 곳에 주둔하며 관할하던 부대에서 고증(考證)없이 형태를 다르게 복원하였다고 하여 지금은 문화적 가치가 상실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1986년 여름에는 역사학(歷史學)을 전공하던 대학생 2명과 같이 평일 일과후에 현장의 자료수집에 같이 나섰다토요일 오후시간에는 기장, 언양 등 일대의 정상까지 산길을 오르면서 땀흘렸던 때가 여러번 있었다.

 

(경상지역의 봉수 지정현황)

울산, 부산, 경남의 경상지역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봉수가 분포하는 지역이다. 1986년도 당시 이곳 지역 봉수의 지정현황을 살펴보면 31개소 가량으로 다수의 봉수가 기념물 또는 문화재 자료, () 보호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울산시의 경우는 관내 8개소의 봉수 중 6개소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정식으로 학술조사를 거친 봉수는 한 개소도 없는 실정이었다. 다음 부산시의 경우는 모두 12개소의 봉수가 소재하는 지역이다. 이중 문화재로 지정된 봉수는 기장 이길봉수(爾吉烽燧) (기념물 38), 기장 남산봉수대(문화재 자료 2) 2기에 불과하였다.

 

(문화재 발굴 신청)  

자료와 현장 조사를 마무리하고 1986.8.1일 문화재를 관리하는 경남도(도지사)에 접수시키기 위하여 먼저 양산군청 공보실에 [지방지정문화재 신청서] 접수시켰다. 두 달이 지난 1986.10월경에는 부산대의 건축과 학생 한명이 고리원자력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연유를 물어보니 그가 졸업논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고대 봉화대의 건축양식에 대한 자료를 입수하고자 경남도를 방문하였고 고리에 근무하던 본인의 이름을 가려켜 주면서 방문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학생과는 서로 유익한 자료를 상호 교환한 적이 있었다.

1986년 6월 이길봉수 발굴 기념 사진 필자(좌1), 서석천 고리원전 본부장(좌3) .jpg
장차 이길봉수대 복원후의 조감도 스케치 -그림 필자, -이길봉수 기념관, 정자 및 봉수관 숙소의 건립

(경남도 문화재 위원의 현장조사)

마침 신년 휴일인 1987.1.1일에는 당시 경남도 문화재 관리위원인 동아대 박물관장이던 심봉근(沈奉槿)교수와 부산대 박물관장인 김종원 교수 두 분이 함께 경남도의 문화재위원 자격으로 본인의 지방문화재 지정신청서에 의거하여 현장을 조사하겠다는 사전에 연락이 왔으며 당일에 찾아왔다.

본인은 이분들에게 가지고 있는 현장조사 및 학술자료를 설명하고 현장을 보게한 후 여러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심봉근 동아대 교수는 이길봉수의 현장을 보고나서 추후에 남해 금산에 있는 봉화터도 형태가 비슷하다고 하여 조사결과 187,5,19일자로 같이 지정된 일이 있었다고 후문으로 들었다.

 

(경남도의 문화재 지정통보)

1987.5.19일자로 경남도는 [경남도 기념물 제 84]로 양산 <이길봉수>를 문화재로 지정하였음을 문서로 알려왔다. 아래는 당시 고리원자력의 <고리동산>이라는 잡지의 창간호에 실린 본인의 이길봉수에 대한 소개 글이다. 그리고 별도로 19924월호에 다시 고리원자력 마을소식지에 글로 소개되었다. 이길봉수는 그 이후 2003년에 부산박물관 등 여러차례 학술적인 발굴조사를 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문화재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학술적인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공문1-1995.2.3 경남도지정 문화재 확인서 공문 -이길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84호 문화재

곰문2-1995.2.2 경남도지사 공문, 양산 이길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84호 문화재 1987 5.19 지정 확인서
봉투-1995.2.2 경남도 문화체육과 공문 -양산 이길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84호 문화재 1987 5.19 지정 확인서

(고리원자력의 문화재 발굴상 의미)     

고리원지력 발전소의 경계내에서 지역문화 유적지 발굴을 통하여 원자력발전소와 주변지역의 유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즉 전력사업과 지역협력사업을 더욱 원활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근무자들도 선조들이 국가방위에 이바지한 현장임을 알고나서 발전소 근무에 정신적인 유대감과 사명감을 이루게 된 의미가 있었다

 

(문화재 복원)

지정이후의 문화재 복원소식을 살펴보면

-1997.12.11~12.31 부산시립박물관 시굴조사 및 봉돈.담장등 복원.정비

-2001.7.23~9.2 부산시립박물관 발굴조사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부산박물관 -이길봉수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8호) 발굴조사 2001.7월~2001.9월

 

(부산시의 문화재로 재지정)

19953월에 행정구역이 경남도(양산군 장안읍 효암리)에서 부산시(기장군 장안읍 효암리)로 이관됨에 따라 부산시는 1995. 12.15일에 부산시 기념물 제84호에서 제 38호로 재지정 하였다.

-소유자 : 기장군, 한국전력

-관리자 : 기장군

 

경남도 장안군이 부산직할시로 행정구역 이관후의 문화재 현황-이길봉수(기념물84호)에서 제38호로 재지정

(이길봉수 발굴후 파급효과)

 

-1987~200316년간 경남에서 20, 울산에서 6기가 발굴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

 

1985년부터 [이길봉수]를 발굴시작, 1986.8.1 경남도에 문화재 지정 신청, 19875.19[경남도 문화재 제 84호로 지정] 이는 당시 문화재로서는 남해 금산봉수대(동아대 박물관장이며 문화재위원인 심봉근 교수의 발굴)2건이 동시에 지정된 것으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기념물이 되었다

이러한 파급효과는 아래 표와 같이 1987년부터 2003년까지 16년동안 경남(부산 포함)에서 20, 울산에서 6, 도합 26기가 대거 발굴되는 계기가 되었다특히 학술적으로 조사결과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이길봉수의 발굴은 문화유적으로서 봉수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게 증가하게 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경남,부산, 울산 일원의 봉수라는 단일 문화재로서 기념물의 지정현황은 아래와 같다이는 고무적인 현상으로 시너지 효과를 거두웠다특히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영남지역에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된 여러 곳의 봉수가 당당히 문화재로 발굴되고 지정된 것은 국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되었다

 

경남.부산,울산지역의 봉화대 기념물 지정시기별 현황

 

소재지

종별

지정

번호

봉수명칭

지정일

 

경남

 

84

 양산 이길봉수

1987. 05. 19

 당초 경남도 지정

부산

38

기장 이길봉수대

1995. 12. 15 부산시 편입으로 재지정 )

당초 1987.8.1  경남도 기념물 84호 지정(양산 이길봉수)

 시굴조사 정비·복원

경남

 

기념물

87

 남해 금산봉수대

1987. 05. 19

 지표조사,정비·복원

경남

118

 양산 원적산봉수대

1992. 10. 21

 지표조사,정비·복원

여지도서의 위천봉수

경남

122

 하동 금오산봉수대

1993. 01. 08

 지표조사

경남

129

 거제 옥녀봉봉수대

1993. 12. 27

 지표조사,정비·복원

경남

138

 고성 좌이산봉수대

1994. 07. 04

 지표조사,정비·복원

경남

147

 거제 가라산봉수대

1995. 05. 02

 

경남

157

 마산 봉화산봉수대

1997. 01. 30

 

경남

158

 진주 광제산봉수대

1997. 01. 30

 

경남

210

 통영 미륵산봉수대

1997. 11. 13

 지표조사,정비·복원 예정

경남

169

 마산 가을포봉수대

1997. 12. 31

 

경남

175

 사천 안점산봉수대

1997. 12. 31

 

경남

176

 사천 우산봉수대

1997. 12. 31

 

경남

186

 진해 사화랑산봉수대

1997. 12. 31

 

경남

202

 거제 강망산봉수대

1998. 11. 13

 

경남

219

 합천 금성산봉수대

1999. 08. 06

여지도서의 봉수비치물  목 표기

경남

220

 함안 파산봉수대

1999. 08. 06

경상도읍지의 봉수비치  물목 표기

경남

221

 고성 천왕점봉수대

1999. 08. 06

 

경남

227

 밀양 남산봉수대

2000. 08. 31

 시굴조사

경남

228

 의령 가막산봉수대

2000. 08. 31

 

경남

236

 고성 곡산봉수

 2001.9.27

 

경남

248

 남해 설흘산봉수대

 2003.6.7

 

소재지

종별

지정

번호

봉수명칭

지정일

 

울산

 

13

 우가산 유포봉수대

1993. 09. 20

 정비·복원

울산

3

 주전봉수대

1997. 10. 09

 정비·복원

울산

14

 화정천내봉수대

1998. 10. 19

 정비·복원

울산

기념물

15

 서생 나사봉수대

1998. 10. 19(

 정비·복원

서생 이길봉수로

명칭변경 (2010.7)

1998.10.19. 소급

나사봉수 지정일은 1998년 당초 지정일로 소급 적용

울산

 

16

 언양 부로산봉수대

1998. 10. 19

 정비·복원

울산

36

 하산봉수대

2000. 11. 09

 정비·복원

소재지

종별

지정번호

봉수명칭

지정일

 

경남

문화재

자료

96

 사천 각산봉수대

1983. 12. 20

 정비·복원

부산

2

 기장 남산봉수대

1995. 12. 15

 

[기념물]은 국가가 지정하지 않은 문화재를 시도에서 지정한 문화재

[문화재 자료]는 시도에서 지정하지 않은 문화재를 다시 시도가 자체적으로 지정한 자료임

 

1987.7월호 고리원자력 사내월간지 <고리동산> 이길봉수를 찾아서 #1

 

 

 

 1987.7월호 고리원자력 사내월간지 <고리동산> 이길봉수를 찾아서 #2

 

 

문제가 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상의 <이길봉수> 위치는 현재의 지도상과 같이 임랑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울산시가 1998년에 지정한 <나사봉수>는 대동여지도의 지도상에 없다

 

서울대학교 소장 대동여지도의 경상도 봉수대 위치

서울대학교 소장 대동여지도의 경상도

남쪽으로부터 기장(남산봉수)-거물산(아이봉수)-임랑포-(이길봉수)-서생포(하산봉수)-개운포(가리산봉수)가 기재되고 있으며 <이길봉수> 위치는 현재의 지도상과 같이 임랑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자로서 보는 의견

* 부산시와 울산시는 위와같이 변경고시한 시행일부터 재지정을 하지 않고부산시는 약 15년전으로 소급하여, 울산시는 약 12년전으로 소급하여 시행일을 변경하였다

* 문화 역사는 진위여부 (眞僞與否)를 떠나서 변천과정을 기록으로 그대로 보존하여야 할 성질이다.   

* 위와 같은 아이봉수,이길봉수,나사봉수의 세가지 명칭의 봉수는 중요한 역사물로서 보존되어야 하고 문화재로서 기념물 지정의 변천과정 기록도 정확히 유지되어야 한다.

* 그러나 세 봉수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다룬 행정기관(부산직할시나 울산광역시 및 예하관청  또는 문화재청)과 박물관 등 학술기관과 연구기관 등의 자료를 검색해 보면 위와 같이 지정일자를 소급하여 기재하므로서 기념물 지정의 변천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 따라서 12~16년의 소급적용 기간에 이루어진 각종 학술조사서연구보고서, 발간 서적 및 문화재 보수 등에 대상 명칭의 혼란과 기록상실 등의 소지가 생긴다.

* 해결방안은 지금이라도 당초의 지정된 과정의 스토리를 명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위키백과의 (기장) 아이봉수대-1987년 이후의 이길봉수 지정이후의 과정은 사라지고 있다.

.

 

문화재 지정시의 웹사이트에 나타난 이길봉수와 아이봉수의 내용  

 

 

 

문화재청의 아이봉수 웹사이트에는 1987년 경남도 기념물 제84 지정과 부산직할시

관할변경으로 인한 1995년 재지정의 기록을 볼 수 없다.

 

 


문화재청의 이길봉수 웹사이트에는 1998 울산시 기념물 제15 나사봉수의 기록을 볼 수 없다

 

* 부산직할시의 웹사이트에 나타난 아이봉수(과거 1987년의 이길봉수)

 

 

-1987.5.19 경남도 기념물 84호 지정에 대한 기록이 없다.

 

산림청의 산림문화자산 실태조사연구 최종보고서 (2012.12.14)-아이봉수에는

경남도 지정 내용과 부산시의 재지정 일자가 없다.

 

산림청의 산림문화자산 실태조사연구 최종보고서 (2012.12.14)--이길봉수에는

울산시의 당초 1998.10.19 기념물 15호로 지정된 <나사봉수>의 지정내용과 지정일자가 없다.

 

이길봉수(현재의 아이봉수)로 기재된 사례

이길봉수

(현재 아이봉수)

위치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산 51-1

한국학 중앙연구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38

지정일 : 19951215

소유자 :기장군, 한국전력

관리자 : 기장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1451&cid=46633&categoryId=46633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기장 이길봉수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4357&cid=49345&categoryId=49345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산 이길봉수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38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0&cp_code=cp0905&index_id=cp09050929&content_id=cp090509290001&search_left_menu=

 

네이버 지식

기장 이길봉수대(機張 爾吉烽燧臺) 19951215

부산시지정 기념물 제38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2&docId=139629192&qb=7J206ri467SJ7IiY64yA&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장 이길봉수대

19951215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38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8406

 

한국지역진흥재단

기장 이길봉수대

.1987519일 경상남도 도지정 기념물 제 84호로 지정

199531일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8호로 재지정

http://www.oneclick.or.kr/contents/travelinfo/v_historyList4.jsp?cid=33166

 

두산백과 사전

기장 이길봉수대

1995.12.15.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8

https://www.doopedia.co.kr/photobox/comm/community.do?_method=view&mainType=imgslide&position=0&GAL_IDX=101012000715618&GAL_TYPE_CD=01&page=1&openYn=&ptm_idx=&ptm_cidx=

 

구글지도

이길봉수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산 51-1

https://plus.google.com/100084959605866501747/about

 

 

나사봉수대(현재 이길봉수)로 기재된 사례

나사봉수대

현재 이길봉수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산36

두산백과

doopedia

서생 나사 봉수대

[西生羅士烽燧臺]울산기념물 제15

지정일 19981019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산 36

http://www.doopedia.co.kr/mv.do?id=101013000869091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서생 나사 봉수대

[西生羅士烽燧臺]

울산기념물 제15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산 36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0549&content_id=cp020805490001&print=Y

 

한국지역진흥재단

울산기념물 제15

나사봉수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http://www.oneclick.or.kr/contents/nativecult/area09.jsp?cid=42819

 

구글지도

서생 나사봉수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84%9C%EC%83%9D%EB%82%98%EC%82%AC%EB%B4%89%EC%88%98%EB%8C%80/@35.3578717,129.3352793,17z/data=!3m1!4b1!4m2!3m1!1s0x35687febca831b47:0x8119acf0de7b62c5?hl=ko

 

이길봉수아이봉수 및 나사봉수 이길봉수로 명칭변경 보도기사

 

 

이길봉수아이봉수 및 나사봉수 이길봉수로 명칭변경 보도기사

 

부산일보 2000-02-28

 

이길봉수대를 아이봉수대로 불러야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00228000103

그렇다면 아이포 봉수대를 지금의 이길봉수대와 혼돈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오류는 대동여지도(1834)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 나씨의 말

대동여지도에는 아이봉수가 임랑포보다 남쪽에 있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의 기장현 지도는 남산,임랑포,아이포,이길봉수대를 거쳐 하산봉수대로 연결된다.

 

울산제일일보 2009.11.22.

 

이길봉수대제 이름 찾는다

부산 기장 봉수대는 아이봉수대변경

아이포옛지명 살려 부르기로 결정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87

홍종필 의원은 울산시 관내 해안선을 따라 분포돼 있는 임랑포아이포(阿爾浦)이길(爾吉)하산(下山)가리(加里)천내(川內)남목유등포(柳等浦) 봉수대 중에서 나사(羅士)라는 명칭은 없는데 그런 명칭을 썼고,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현재 기장읍과 울산시의 경계지점에 있는 이길봉수대이 정식 명칭은 아이봉수대’”라고 밝혔다.

한겨레 : 2010-07-19

울주군 나사봉수대앞으론 이길봉수대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31140.html

 

경상일보 2010.07.20

나사봉수대이길봉수대로 이름 바뀐다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586

 

조선일보 2010.07.20

[울산] '나사' '이길' 봉수대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19/2010071901925.html

 

국제신문

2010-07-19 울산 '나사봉수대' 이름 고쳐 '이길봉수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40&key=20100719.9900209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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