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이야기)

choyeung 2008. 12. 24. 22:24

 

1 고종황제의 전신 초상화 등

 

 

한국에서 유화로 그린 초상화는 고종황제의 전신 초상화와 황태자 순종의 초상화 및 대신 민상호의 초상화 3점이다. 작가는 네델란드 출생의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 )로서 모두 1898~1899년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보스는 고종황제의 초상화를 완성한 후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갖고 떠났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슬픈 예감"은 몇 년 후에 현실로 닥쳤다. 고종황제는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일본과 친일파 각료들의 강요에 의해 순종에게 황위를 넘겼고 그 얼마 후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휴버트 보스는 네덜란드 출생으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네델란드 회화관의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그러나 몇년 후 미국에 정착하면서 귀화했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미국인 화가로 참가했다. 따라서 <고종황제 초상화>와 <민상호 초상>은 미국관에서 전시되었는데, 보스가 출품한 작품은 '다양한 민족의 모습' 시리즈였기 때문에 '회화관'이 아니라 '사회관'에서 전시되었다.

 

 

보스가 그의 부인으로 하와이의 마지막 공주와 함께 신혼여행길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체류 기간은 짧았으나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잘 통찰하면서 그의 <자서전> 속에는 한국의 불운과 고종황제의 불행한 일생, 그리고 일본의 횡포에 대하여 쓰고 있으며 덧붙여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미술의 모든 건축 유적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가들을 포로로서 일본에 끌고 가서 미술작품을 만들게 하는 한편 일본인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미술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한국적인데...,

제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를 먼저 그려서 황제가 보신 후 저는 황제폐하 및 황태자 순종의 실물크기 전신 초상화를 그리라는 어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개인이 소지하기 위해 황제의 전신상 하나를 더 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저는 황제로부터의 선물, 그리고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안고 한국을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종과 순종황태자의 초상화는 1904년 덕수궁 화재로 소실되어 버리고 미국의 화가 가족들이 보관하던 고종황제의 초상화가 남았던 것이다.   

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어진>이나 <서울풍경>에 접한 국내의 화가들은 깜짝 놀랐다.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달리 원근법과 색채명암법으로 묘사된 보스의 정교한 그림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에서 자연히 서양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근대미술을 배울 곳이 없었고 가르칠 사람도 없었다. 근대미술의 선구자들은 드디어 서양화가 이미 전해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고종은 보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사진과 같은 유화의 사실성에 대단히 만족하였다고 전해진다. 작품 하나는 덕수궁에 보존되던 작품이었으나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똑같이 그린 다른 작품은 전신초상화로서 현존하지만 미국에 사는 화가의 후손들이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

국내에서 2005년에 보스3세의 후손들로부터 고종의 전신초상화를 대여하여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에 전시하였으며 이기간에 국내에서 작품인수를 위하여 협상을 하였으나 가격문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적인 귀환하여야 할 귀중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가격이 약 2~3억원으로 예산이 없어 한국에 반입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휴버트 보스란 화가는 파리와 브러셀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의 작품은 파리와 암스텔담, 브러셀, 드레스덴, 뮤니히 등 여러 곳에서, 1885년부터 1992년에는 주로 영국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왕립아카데미에서 전시를 하였다. 그는 1891년에 설립되어 현존하고 있는 영국 왕립초상화가협회(Royal Society of Portrait Painters)의 회원이었던 것이다. 이 협회의 초기 회원에는 유명한 오필리아(Ophelia)라는 작품을 남긴 밀라이스 卿(영국 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미국의 초상화가의 대부격인 존 싱어 서전트(미국 John Singer Sargent 1856-1925) 및 휘슬러(미국 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4)와  여류화가인 나이트(Laura Knight 1877-1972) 등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는 미국 시에틀에 정착하였다.

보스는 중국에 건너가서 여황제인 서태후(西太后 The Empress Dowager 1835-1908)의 초상화도 그렸다. 서태후는 중국 청(淸)나라 함풍제(咸豊帝)의 황후이며 동치제(同治帝)의 어머니로 함풍제가 죽은 후 동치제의 섭정이 되었고, 동치제가 죽은 후에는 광서제(光緖帝)를 즉위시키고 거의 반세기 동안 실권을 장악한 여걸이다.

 

 

 

 Hubert Vos의 초상화 작품  [청국, 여황제 서태후1835~1908] Empress-Dowager-Cixi 1905년

 

 Hubert Vos의 초상화 작품 앨리스의 초상화  [Alice Berney]

 

 Hubert Vos의 정물화 작품  'Study of Hawaiian Fish', oil on canvas. 1898

2 문신 민상호(閔商鎬) (1870-1933)

휴버트 보스가 1898년도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최초로 그린 초상화 작품>으로 사실적인 필치로 잘 묘사하고 있다. 민상호(1870~1933)는 1882년 미국에 건너가서 1887년까지 6년간 교육을 받고 귀국한 구한말의 문신이다. 보스가 민상호를 특별히 그리게 된 동기는 민상호가 한국인의 가장 순수한 형이라고 생각하였고, 연초록의 선비복을 입은 근엄하고 세련된 민상호의 모습에서 보이는 매력과 높은 지식 수준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891년 과거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 등을 거쳤으며 1896년에 외부교섭국장·중추원 의관등을 거쳐, 이듬해부터 1년7개월간에 걸쳐 영국·독일·러시아·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공사관, 참서관으로 근무하였다. 1899년에 한성판윤과 1902년에 육군참장·통신원총판으로 통신기관의 정비와 우정사업의 확장 등에 종사하였다. 이어 경기도 및 강원도 관찰사등으로 지냈다.  

그러나 보스가 대표적 한국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초상화를 그렸던 민상호는 친일에 앞장서며 일본제국의 남작(男爵)이 되었다. 그러나 2007년, 그가 후손에게 물려준 재산 중에서 시가기준 110억128만원 상당의 토지 10필지와 43만1천251 ㎡가 국고로 귀속당했으니 사필귀정이 된 것이다.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 초상화>와 <민상호 초상화>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근대의 모습이 한자락 담겨있다. 

3  보스의 <서울 풍경> (캔버스에 유채 31X61cm 1899년),

 

 

휴버트 보스의 1899년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한말 지금의 정동에 있는 미공사관 쪽 에서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그린 것으로 멀리 光化門, 慶會樓, 北漢山 등이 보인다. 시기는 초봄으로 그림 왼편에 보이는 기와집 마당에는 복사꽃이 한창 피어있다. 보스는 1911년 친구에게 보낸 자서전적 서한에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한국은 가장 흥미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언덕과 골짜기, 고요한 강, 꿈같은 호숫가에 정말로 아름다운 꽃들이 자라고 있었으나, 그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인종 중의 하나로 늘 유령처럼 흰옷을 입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조용히 걸어 다닌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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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료 너무 감사드려요.
감사히 받아 갑니다.
행복 가득 하세요.
인물화 공부를 위해 모셔가 잘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