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choyeung 2008. 12. 26. 23:46

  

로버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그리고 브람스와의 사랑


로버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사랑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46세)의 양친은 둘 다 교양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하지요. 아버지는 서적상으로 번역은 물론 소설까지 쓰기도 했으며, 어머니는 외과의사의 딸로 둘은 뜨거운 연애 끝에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는군요.

음악사에 빛나는 슈만과 클라라와의 극적인 결혼의 이면에는 아마 양친에게서 물려받은 그 용기가 유전이 된 게 아닐까요?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길러줘야겠다고 생각해 슈만이 15세가 되던 해 작곡가 웨버의 제자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 아버지는 눈을 감고 마는군요.

아무래도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와 클라라(Clara Schumann 1819~1896, 77세)와 얽힌 사랑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지 않을까 합니다.

슈만은 음악을 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찌히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가장 유명했던 피아노선생 비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비크의 아름답고 재치있고 훌륭한 딸이 바로 클라라였구요. 당시 피아노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릴 때 나이는 방년 16세 였는데, 클라라라는 이름은 “화려하게 빛나고 유명하리라”는 뜻입니다.

클라라는 슈만보다 9살 어렸는데 사실 두 사람 이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슈만이 18세, 클라라가 9세 때였다는군요.

1832년 5월에 쓴 슈만의 일기에는 "클라라는 더 귀여워지고, 자랐고 힘도 세고 건강해졌다"고 13세의 소녀 피아니스트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클라라도 이 20세가 갓 넘은 오빠를 잘 따랐으며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확실히 변한 것은 3년여 지나고 부터입니다.

첫 입맞춤


첫 입맞춤을 교환(?)한 것이 클라라가 16세였고 슈만은 25세였을 때였습니다. 그 후 결혼하기까지 5년 간의 큰 시련 끝에 두 사람은 맺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슈만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기다립니다.

1832년 6월에 갑자기 손가락에 마비가 와서(피아노를 쉽게 치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다가)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를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그 결과인지 1833년 가을, 그에게 최초의 심한 우울증이 발작합니다.

1835년 둘의 입맞춤을 시작으로 사랑이 싹트지만, 클라라의 아버지는 이미 피아니스트의 꿈을 저버리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작곡가 슈만이, 천재 피아니스트로 만인에게 인정받는 딸과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합니다.

1837.9.18일에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아주 안 좋았소. 차가움과 증오밖에 남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랑을 멸망시킬 준비를 다 마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이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렸는데, 이제 어찌해야 좋은가?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둘이 헤어지지 않자 비크는 1939년 결혼 조건이라는 것을 내 놓게 됩니다.

비크가 살아있는 동안 둘은 작센을 떠날 것,

슈만은 비크에게 말이든 글이든 일체의 연락을 하지 말 것,

슈만의 수입증명을 법적으로 공증할 것,

클라라의 개인재산은 5년간 압류,

클라라는 모든 유산을 포기할 것......

엄청난 조건에 불복하고 결국 전대미문의 소송 즉 아버지의 허락 없이도 결혼 할 수 있다는 재판에 승소하여 1840년 9.12 드디어 둘은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그 바람에 비크는 12일간의 감옥생활이 언도되고 클라라는 이렇게 괴로운 심경을 기록합니다.

“나 자신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의 품에 안긴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신이여 모든 어려움을 인내할수 있는 여자가 되도록 저에게 힘을 주소서.”

여기서 왜 슈만은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을 가져 봅니다.

아버지가 정신착란으로 돌아가신 지 1년 전인 1826년 누님이 죽는데 누님 역시 정신착란으로 인한 자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1836년에 돌아가시구요.

더구나 세 명의 형도 그의 생전에 죽고,또 친구인 의사의 아내 아그네스 카루스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성장기의 위험의 빛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는군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버지와 누이가 연이어 정신 착란의 증세를 보이며 죽어 가자 그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혔겠지요.

혈통적인 정신질환이 자신에게도 미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려고까지 한 그는 생을 마칠 때까지 원초적 공포감과 대화 기피증, 환청으로 고생합니다.

이런 우울하고 회색이던 슈만에게 클라라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구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클라라 역시 피아니스로의 꿈을 접은 9살 위인 슈만을 따스하게 위로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혹은 존경까지)하여 주었을 것이고, 오랜 순회 연주등에서 느낀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넉넉한 품으로 슈만을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슈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클라라와 결혼하고, 1841년 〈교향곡의 해〉에는 장녀 마리 Marie가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교향곡 제1번, 서곡, 스케르쪼와 피날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1845년에 유명한 협주곡이 된다), 교향곡 제4번 등이 완성되었으며, 이 곡들에는 슈만의 마음의 평정과 정열까지도 나타나 있습니다.

 슈만은 클라라와 함께 연주여행도 다니지만, 결국 혈통적인 정신 질환을 이기지 못한 채 그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가 본 근처의 한 정신 병원에서 1856년 7월 29일 46년의 짧은 생을 마칩니다.

그가 죽기 두 달 전인 5.1일에 클라라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5월 1일 그대에게 봄 인사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네- 이 편지가 다 하지 못한 우리의 얘기를 대신하겠지, 우리네 사랑의 생일을 지나치다니... 잘 있으오 내 사랑 - 당신의 슈만이”

슈만의 정신질환은 결혼한 지 3년 쯤 되는 1843년 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데, 클라라가 받은 충격이 너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의 다섯째 아들도 정신병원에서 사망)

1845년 쯤 병세가 다소 호전되어 몇 곡의 작품을 쓰게 되는데 교향곡 2번이 이에 속합니다. (교향곡 2번은 1845년 12월 12일 착수하여 이듬해 10월 완성)

생을 마치기까지의 그 과정도 참 비극적입니다.

슈만의 마지막 말년의 2년간은 청각이상과 환각증상에 시달리면서 본 교외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서 혼자서 살았습니다.

몸소 정신병원에 들어갈 것을 주장한 슈만은 자신의 의지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미쳐서 라인강에 몸을 던지죠. 다행히 그는 어부에게 구원되어 본 교외의 엔데니히 정신병원에 수용되구요. 여기서 2년여의 요양생활을 한 뒤에 숨을 거둡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남편을 돌보지 못하고 연주계에 복귀하여 2년간의 연주여행을 떠나있던 크라라는 슈만이 죽기 이틀 전에야 병원에 있는 남편을 면회하는군요.

다른 기록에는 의사의 권유로 단 한번도 남편을 방문하지 못했다는데 한번 방문을 한 것이었군요.

그때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였을 초췌한 정신병자 슈만을 바라보는 클라라의 한없는 슬픔과 회한 섞인 눈망울이 그려집니다. 그 날 슈만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클라라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슈만은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내가 요하암을 맞으러 기차역에 간 사이, 그는 병원에서 홀로 영원히 잠들었다. 숨을 거둔지 30분이 지났다고 했지만 그는 평상시처럼 단아한 모습이었다. 뜨겁게 사랑했던 그이.... 아! 그는 나를 함께 데려 갈 수 없었는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머리맡에 몇 송이 꽃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나의 모든 사랑을 가져갔다.”


♥ 그리고 브람스와의 사랑

-브람스의 젊은 시절

슈만이 병원에 있을 때 클라라와의 연락병은 그 유명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64세)였습니다. 37세에 과부가 된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도 또 한편의 시입니다. ( 40여년의 우정(?)을 함께 나눈 사랑은 클라라가 죽은 후 11개월 뒤 브람스도 뒤따라 죽었습니다.)

브람스의 스승이 바로 슈만이었다는 것은 아시죠?

스승의 딸을 사랑한 슈만, 14년 연상 (그러니까 릴케가 사랑한 안드레아스 살로메도 14살 연상이었죠?) 인 스승의 아내를 사랑한 브람스.

왜 그때는, 아니 유명한 이들은 흔하지 않은 사랑만 하였는가 싶습니다.

사랑이 참 평범하지 않았구나 합니다.

그들이 남긴 불멸하는 예술의 원천, 바로 그런 애타고 애닯고 때로는 격정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정말 아닐까요?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가슴으로만 새기고 묻어두는 사랑과 운명적인 슬픔 앞에 그가 마비된 손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슈만의 유해는 본의 묘지에 묻힙니다.

이 무덤에는 뒤에 아내 클라라도 함께 묻히구요.

결국 슈만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품에 안긴 것인가요?

슈만은 아마 클라라 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결혼할 때 이미 느끼지 않았는가 추측을 해 봅니다.

1840년이면 그의 나이 30세, 그리고 클라라와 결혼을 할 시기입니다.

그는 그때 클라라의 사랑에 힘입어 무려 150편의 노래를 작곡하게 됩니다.

그가 독일의 시인 샤미소가 쓴 8편의 시에 곡을 붙인 “여자의 사랑과 생애” 라는 가곡이 있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한 여성이 사랑을 하여 결혼한 후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다.

이 노래는 이러한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었습니다.

그 시에 곡을 붙이며 슈만은 이미 다가올 운명을 예지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그이를 처음 만난 다음부터 오직 그이만을 생각했다.

 . 저 분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를 동경하고 있다.  그 입 술, 눈, 지혜, 용기... .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만약 그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말았으면.... . 손가락에 낀 반지여 나는 너를 평생토록 귀히 여길 것이다.

행복하게 지내던 그녀가 남편을 잃고 과부의 몸이 되었다, 남편의 죽음은 아내에게 일생 처음의 슬픔을 안겨다 준 것이다.

  “그대는 영원히 잠들었네, 나에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네, 난 단지 옛날의 회상을 그리며 산다. 첫 사랑의 회상을..... -

이상은 가곡 “여자의 사랑과 생애”의 가사입니다.

  그는 음악 뿐 아니라 문학, 특히 서정적인 시문에서의 재능이 특히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가곡에 관해서 흔히 말하듯, 문학과 음악이 호응하는 영역에서 슈만은 고차원의 '시'에 근원을 둔 독자적 표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슈만의 자질을 보여주는 것은, 자성적 경향의 조숙성이라고도 하지요.

15세의 소년이 자서전을 시도한 것은 천재 중에서도 특별한 예에 속한다고 하는군요.

슈만의 자의식은 아주 날카로웠는데, 밖으로 자기 시현(示顯)으로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이러한 내면 생활의 풍부함은 슈만의 음악의 특질이기도 하구요.



♥ 슈만의 교향곡 1번 ‘봄’


나는 언젠가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 로버트 슈만은 늘 불안했을 겁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던 1833년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누나인 에밀리에는 이보다 8년 전에 강물에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지요. 슈만은 자신의 몸 속에,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악마’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불안함이 술과 여성 편력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지요. 일설에는 성병도 앓았다고 합니다. 매독이라는 구체적 병명까지 거론되곤 하지만, 이 ‘설’의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지요. 지난해 8월 음악전문지 ‘도이치그라모폰’에 게재된 제레미 니콜라스의 글은, 슈만의 병명을 ‘조울증’으로 지칭하면서 흔히 주장되는 매독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고 있습니다.


1840년은 슈만의 인생에서 단 한번 찾아왔던 ‘화창한 봄날’이었지요. 그는 마침내 아름다운 클라라와 ‘합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었던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었지요. 슈만이 스승의 집에서 클라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고작 아홉 살이었습니다.


비크는 슈만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창간해 낭만주의를 함께 설파했던 ‘음악적 동지’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슈만과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꼭 나이가 어려서였을까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무렵, 클라라는 이미 성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아마 핑계였을 겁니다. 비크는 이미 슈만의 ‘정신적 불안’을 눈치챘던 것이지요. 초상화로 확인할 수 있는 클라라의 미모는 정말 대단합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며 결혼에 골인했지요. 그해가 바로 1840년이었습니다. 슈만은 이듬해 2월에 교향곡 1번 ‘봄’을 완성하지요. ‘봄’이라는 제목은 슈만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이 교향곡을 거론할 때 흔히 등장하는 ‘신혼의 단꿈’이나 ‘봄날의 화사함’ 같은 어휘는 반쪽의 진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슈만의 불안, 현재의 행복이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前兆)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지요.


트럼펫의 힘찬 울림으로 막을 여는 1악장은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금관은 태양처럼 빛나고 현(絃)은 활기찬 리듬을 합주하지요. 목관은 나비처럼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굵고 낮은 현악기들의 음색은 왠지 쓸쓸합니다.


1악장 마지막의 폭발적인 고조 이후, 느리고 섬세한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는 교향곡 ‘봄’에서 가장 정제된 악장이지요. 활기 넘치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다시 나비가 춤을 추고, 마지막 4악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잘게 쪼개지면서 춤의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목관의 음향은 마치 새의 지저귐처럼 들려오지요.


그러나 교향곡 ‘봄’의 즐거움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리듬은 활기차지만 색조는 어둡고, 음악적 구성도 왠지 어수선합니다. 고전과 낭만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수작’이나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지요.


당시의 슈만은 상처입은 영혼을 지닌 31세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교향적 어법은 아직 설익은 상태였지요. 그는 44세에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46세에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Symphony 1 "Spring", Scherzo

https://www.youtube.com/watch?v=q-ypdJE5khU

Schumann: Symphony No. 1 in B-Flat Major (IV)

https://www.youtube.com/watch?v=AusSXtMZ5gk

♥ 추억의 영화

 

1947년에 캐스린 햅번이 주연한 <트로이 메라이Song of Love)> , 또한 1983년에는 독일의 여배우 나타샤 킨스키(당시 독일 영화 주연상 수상)가 클라라로 헤르베르트 그레네마이어가 슈만으로 주연한  <애수의 트로이메라이(Spring Symphony)>에 아름다운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A6iknPOmhY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XhmIhDsazyY   

                https://www.youtube.com/watch?v=u8fskE4Rd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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