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choyeung 2009. 1. 2. 11:08

◯ 만해 한용운과 진주 논개

 

[만해 한용운의 초상] (1879-1944) 캔버스에 유채, 65.2x50.cm, 2009, 조영규




낮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同時)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서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친 한(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 곡조를 낙인(烙印)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제종(祭鐘)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세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를 아니 한 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문학, 그 현장을 찾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때 작품은 작가의 삶의 기쁨과 고뇌의 응집체로서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드러낸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우리나라 문학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무대가 되고 배경이 된 도내의 문학작품 현장을 찾아 작품이,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암울한 일제 침략기, 의기(義妓) 논개와 만해(卍海) 한용운이 진주 남강가 사당에서 만났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었지만, 암울한 시대는 계속되고 있었다. 만해는 의기 논개의 사당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울분을 한 편의 노래로서 토로했다.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廟)에’는 한용운의 대표적 시집 ‘님의 침묵’(1926)에 있는, 400여년 전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산화(散華)한 논개의 넋을 기리는 시다. 시집 ‘님의 침묵’ 전편 중에서도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둔 작가의 충의사상과 애국 정신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해 자신이 논개의 사당을 찾아 애인이라는 가정 아래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절절히 풀어 가고 있는 애도시이다.

시공을 초월한 이들의 만남을 지속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논개의 넋과 만해의 마음이 ‘광복’이라는 염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논개의 충절을 노래했다. 하지만 이들처럼 바라는 마음이 일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해는 진정으로 논개의 애인이고 싶어했다. 논개를 진정 사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해는 진정으로 논개의 애인이 되지 못했다. 논개와의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만해는 논개는 언약을 저버리지 않았으나 자기는 저버렸다 했다.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지키자’는 두 사람의 언약을 논개는 지켰지만 정작 약속을 먼저한 만해는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만해는 ‘천추에 죽지 않은’ 논개 사당앞에 와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해의 용서는 만해의 몫이 아니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만해의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눈물이 스며든 논개 사당은 지금도 남강을 굽어보며 논개의 미소를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경남일보  문학박사 강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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