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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 2021. 10. 18. 14:51

    어느 청년이 집앞에서 자전거를 열심히 닦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곁에서 계속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소년은 윤이 번쩍번쩍 나는 자전거가 
    몹시 부러운듯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자전거 꽤 비싸게 주고 사셨지요?"

    그러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아니야, 내가 산게 아니고 우리 형이 사주셨어." "아~ 그래요?" 

    소년은 매우 부드러운 소리로 대꾸 했습니다.

    청년은 자전거를 닦으면서 이 소년은 틀림없이 '나도 자전거를 사주는 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거라고 믿고 그런 형을 가진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소년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너도 이런 자전거 
    갖고 싶지?"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었습니다.

    "아뇨, 나도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주는 그런 형이 되고 싶어요. 

    우리 집엔 심장이 약한 동생이 있는데 
    그애는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거든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멋진 자전거를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소년의 생각은 청년의 짐작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그 소년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받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반해, 그 소년은 자전거를 주는 소원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늘 도움 받는 동생이 되고픈 사람이 있고, 도움 주는 형님이 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더 많이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늘 안타까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3세에 백만 장자가 된 록펠러는 
    43세에 미국에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록펠러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 시켜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 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룩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보다 
    무엇을 주려고 하는 생각을 먼저 하는 복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진폭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쓰레기 정보와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민과 대중의 각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략>

    - 김경집의《6I 사고 혁명》중에서-

    우리 사회의 큰 병폐가
    이른바 쓰레기 정보와 가짜 뉴스라는 의견

    하나 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적다는 현실

    집단지성의 발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10월의 하늘처럼
    푸르름이 넘치는 사람들
    쓰레기 정보와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일
    우리 모두의 책무입니다.

    소중한 블벗님 행복 가득한 한주 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강가에 혼자 사는 노인이 된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어제 정원에 있는 나무를 다듬고 상추밭을 정리했는데 몸이 작년하고 완전히 다른 것 같아.
    힘이 들어. 그나마 이렇게 흙을 만질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한 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데도 그 친구는 나무를 사랑하고 흙을 좋아했다.

    바람결에 묻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정원에 핀 꽃들의 향기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오래된 집 앞에 있는 호수같이 조용한 강물을 즐겼다.

    그의 집에서 며칠 간 묵은 적이 있었다.

    밤이 되면 강가의 푸른 가로등의 불빛들이 검은 물 위에서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친구는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잠시 침묵한 후에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잘해야 오년, 십년(?) 정도겠지? 지나보면 순간인 세월인데 이제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야.”

    우리는 칠십, 팔십 고개를 넘어 와 있다.

    성경을 보면 인생 칠십이고 근력이 좋아야 팔십이라고 했다.

    백세시대라고 하고 칠십 청춘이라고 하지만 순간순간 최면을 거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그와 친한 나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

    젊어서는 가난이 그의 욕망을 막았다.

    나이를 먹고 혼자되어도 아버지라는 위치 때문에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 남없이 나이가 먹어도 가슴 속에 잃어버리지 않는 꿈들을 한 둘씩은 가지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한 여성이 평생을 가슴에 담고 있던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인생길이 엇갈려 서로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의 임종 때 다행히도 우연히 그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됐다.

    평생을 과묵하던 남자가 죽어가는 여인에게 한 마디 한다.

    “니 내 마음 알제?”

    사랑한다는 소리였다.

    “압니더.”

    여인은 그 한 마디를 하고 행복하게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사랑의 모습이었다.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 스치면서 녹아 물이 되어 하나가 되는 사랑이라고 할까.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변을 보면 갑자기 암을 선고받는 친구들이 많다.

    또 부인을 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는 경우도 있다. 친한 친구의 부인이 있었다. 예쁘면서 능력 있고 정숙한 여인이었다.

    젊어서 외국계 회사에 들어 가 나중에는 뉴욕 본사에까지 가서 임원을 했던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남편 앞에서는 절대복종하는 현모양처였다고 할까.

    남편이 까탈을 부려도 인내하고 절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되는 나의 친구가 처의 암 투병 사실을 얘기하면서 당황해 했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많은 후회들이 따랐다.

    어떤 선배는 병실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예쁜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히지 못하고 맨날 술 먹고 밤에 늦게 들어갔던 걸 후회했다.

    외교관으로 총영사를 지낸 사람이 있었다.

    주위에서 신사라고 할 만큼 깔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가 암이라는 하늘의 초청장을 받았다.

    그는 가족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너무 하지 않았었다고 뒤늦게 후회를 하는 모습이었다.

    죽음만이 아니라 갑자기 닥친 병에 낚시에 걸린 물고기 모양 당황하기도 했다.

    며칠 전 소싯 적 친구
    한 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갑자기 중풍을 맞아서 반신마비가 됐다고 연락했다.

    일을 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병실 침대에서 먹고 자고 텔레비전 보고 하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 온 것 같다고 심정을 표현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집고 뒤척거리면서도
    산책을 하는 게 이제 남은 인생의 목표가 됐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뭘까. 바람같이 지나 가는 남은 한정된 시간을 잘 사는 게 아닐까.

    잘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음악을 듣고 천천히 걷고 글을 쓰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감사하는 건 아닐까.

    매일 카톡을 통해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또 신세졌던 분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라도 보내 고마움의 결제를 미리 해 두는 건 어떨까.

    나는 전화를 내게 걸었던 친구에게 말했다.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지금 이 순간이야. 내일을 보장할 수 없잖아.”

    그 말이 나의 내면으로도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다.
    아~~안 아프고 얼마나 더 살까?

    ㅡ옮긴 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