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원산 2021. 10. 21. 21:08

    [ 말씨 ,말씀 ,말투 ]

    등산 모임이 있는 날에 
    한 친구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손자를 봐야 한답니다.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유독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냅니다.

    “그 친구 왜 그리 살아
    그러니 허구한 날 붙잡혀 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넨 손자가 지방에 있지 옆에 있어봐 똑 같아”

    손자 양육이 논쟁으로 커집니다.

    “난 처음부터 선언했어, 
    내가 애를 보면 성을 간다고!”

    ‘못 생긴 남자와는 
    절대 결혼 않는다’는 처녀!

    ‘난 죽어도 요양원에는 안 간다’고 한 선배!

    ‘딱 100세만 살 거야
    호언했던 대학 동기...

    그런데 어쩌나, 
    다 헛 맹세가 됐으니까요.

    여자는 못 생긴 남자와 천생연분을 맺고, 

    선배는 치매가 들어 일찌감치 요양원으로 향했지요.

    100세를 장담할 만큼 
    건강했던 친구는 아홉수에 걸려 69세에 심장마비로 떠났습니다.

    나이들며 갖춰야 할 덕목이‘절제’입니다.

    삶에 고루 적용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조심’하라는 뜻이 있지요. 

    무엇보다 ‘말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듣는 귀가 둘인데 비해
    말하는 입은 하나뿐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수 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도 많습니다.

    같은 말인데도 누구는 복이 되는 말을 하고 누구는 독이 되는 말을 합니다.

    황창연 신부가 말하는 
    말의 세 부류도 같습니다.

    말씨, 말씀, 말투가 그것이죠!!

    씨를 뿌리는 사람(말씨)!
    기분 좋게 전하는 사람(말씀)!
    말을 던지는 사람(말투)이 있는 것처럼 
    말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말씀은 말과 다릅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같이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말씀이라 하지요.

    말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초등생 어린이에게
    “씩씩하고 멋지구나. 
    넌 장군감이다.”

    “넌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되겠구나."

    이렇듯 말에 복을 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좋은 언어 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지하철에서 중년 여인이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어쩜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내리기 무섭게...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늙은거 누가 몰라.”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빤한 얘기인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줍니다. 

    이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 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말 효과를 높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어키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는 두 번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주춤하게 됩니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줍니다.

    얼쑤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사용하나요.

    자기를 앞세운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주기가 어려워집니다.

    오늘도 내가 한 말을 돌아 보면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인색했음을 깨닫습니다. 

    내 말에 감탄하며 
    나의 감정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이란? 
    닦을수록 빛나고 향기가 납니다.

    말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말을 나눌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늘 염두에 두라고 합니다. 

    적어도 失言(실언)이나 
    虛言(허언) 같은 말실수는 막아야 하니까요?

    그러면 덤으로 얻는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리 말을 예쁘게 하세요.”
    “복 들어올 말만 하시네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는 좋아하는 행위와 다르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지(like) 사랑(love)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쥐를 사랑한다면 함부로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등산가는 산을 좋아하지 사랑하지 않는다.
    등산가가 산을 사랑한다면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산을 자신과 혼연일체가 되는 입산의 대상으로 삼는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등산(登山)보다 입산(入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좋아하는 것은 감정의 흔들림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떨림이다.
    `들꽃처럼 살으리라`라는 책을 쓴 최영배 신부의 말씀이다. 좋아하는 것은 일시적 감정으로 시작해서 쉽게 끝나지만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울림이 동반돼 느리게 시작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걸림돌도 함께 넘어서야 될 디딤돌이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걸림돌은 걸림돌일 뿐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면 추운 겨울도 새봄의 희망을 싹틔우는 즐거운 고통의 시간이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추운 겨울은 견딜 수 없는 혹한일 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은 매일 가슴에서 용솟음치지만 좋아하는 대상은 가끔 기억날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다 싫어지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더 아롱지게 다가올 뿐이다.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머리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일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하는 일을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거나 그 대상에 예속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 하거나 강압적으로 종속시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그 대상에 예속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사랑하는 대상이 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감싸 안고 어루만지며 깊은 관심으로 돌본다.
    진짜 사랑은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희생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진리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지혜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친구와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아름다운 파트너로 변신시키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좋아하는 것은 감정의 흔들림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떨림이다."
    이 글귀에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듯 하네요.
    반갑습니다
    비 바람 쨍쨍한 햇볕
    변화 무쌍한 날씨에
    가을이 깊어갑니다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좋은꿈 꾸세요 ~~~~*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