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자료

배디링 2019. 12.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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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는 옛부터 우리나라와
많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영파박물관의 최부 선생 像
우리나라의 남쪽 목포 앞바다에서 빈병을 바다에 띄우면
어디로 흘러가는지 혹시 짐작이 가시는지요?
그 병은 해류를 따라 떠다니다가 영파 앞바다에 도착하게 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이라는 중국 기행문을 쓴
최부(崔溥) 선생이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인 1488년 1월,
제주에서 관리로 근무하던 최부 선생은 부친상을 당해
전라도 나주로 귀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됩니다.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먹을 것이 없어 오줌을 받아마시기도 하면서
조류를 따라 흐르던 표류선은 모진 고난 끝에 육지에 닿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영파 연안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훗날 실제 실험을 해본 결과로도 그대로 입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해적을 만나는 등 여러번 죽을 고비를 겪었고,  
왜구라는 의심을 받아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 탁월한 지식으로 중국 땅에서 조선 관리의 신분을 인정받게 되고, 그 결과 136일만인 6월에는 
동료 42명과 함께 북경을 거쳐 모두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최부의 표류 귀환로
최부 선생이 귀국 후 불과 8일만에 집필한 책이 "표해록"인데
어떤 조선인도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정밀한 관찰과 유려한 필체로 생생하게
엮어내어, 13세기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
9세기 일본 엔닌(圓仁) 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책입니다.
최부 선생은 영파에서 항주까지는 걷기도 하고 배도 타면서 이동하고,
항주에서 북경까지는 배를 타고 운하를 이용해 이동하였는데, 표해록에는
중국에서 처음 본 운하를 통한 이동 과정에서 느낀 여러가지 소감,
이동하면서 만난 중국인 이야기, 중국 문물에 대한 다양한 경험,
중국의 강남과 강북에 대한 평가 등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최부 선생의 이야기와 관련 유물들은 "영파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파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해신(海神) 장보고(張保臯)도 등장합니다.




적산 법화원의 장보고 像
신라 시대 남해안 어느 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보고는
어릴 적부터 무예가 뛰어나고 영민하기까지 했지만,
미천한 신분 때문에 신라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라보다는 개방적이던 당나라로 건너갔으며, 당나라에서 그는
용맹함과 무예를 인정받아 군대의 중간 지휘자로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서, 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하고,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국제 무역을 주도했으며, 해상 무역의 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때 장보고가 중국에서 활동한 영역이
북쪽으로는 위해(威海)였고, 남쪽으로는 영파까지였다고 합니다.


위해 적산 풍경구의 장보고가 지은 절 "법화원"
따라서 위해에 있는 적산(赤山)에는 장보고가 세운 절인 법화원(法華院),
장보고 기념비 등 여러 가지 관련 유적이 남아 있으며,
영파에서도 장보고와 관련된 흔적들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일본 엔닌(圓仁) 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자신이 당나라를 여행할 때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갔던 인연을
소개하는 글이 남아있는 등
장보고는 중국의 역사서나 일본의 역사서에도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보고에 대한 평가와 관심이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항상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려사관 유적지
이런 최부 선생과 장보고에 관한 이야기는
영파에 있는 "고려사관(高麗使館)"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려사관은
영파의 아름답고 조용한 호수인 월호(月湖)에 있는 기념관으로
우리나라와 영파의 교류, 해상 실크로드에 관한 자료 등을 전시한 곳입니다.
규모로는 조금 큰 집 한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수천 년간 이어온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화 교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후세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영파에서 가장 의미가 큰, 반드시 가보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려사관 유적지 내부 전시물
고려사관은 고려청, 명주(영파)청, 문화교류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북송 초기인 희녕(熙宁) 7년(1074년) 영파에서 처음으로 고려 사신을
맞이할 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대형 그림도 있으며,
북송 정화(政和) 7년인 1117년, 황제가 영파 태수에게 고려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고려사(高麗司)"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내린 글도 남아 있습니다.
또한 장보고의 흉상과 활약상도 전시되고 있으며,
최부 선생의 표해록과 관련하여 최부의 모습과 지나간 장소를
지도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전시물들도 있습니다. 


고려사관 유적지 내부 전시물
다른 유명 유적지에 비하여 작고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는 곳이지만,
편액에 정리되어 있는 다음 글처럼 정말 의미가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중국과 한반도와의 친선적 교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송 시기에는 고려 왕조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어 쌍방은 공식적인 사절들을 빈번히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의 무역 거래도 매우 활발했다.
정화 7년(기원 1117년)에 송나라 조정은 명주에 '고려사'를 설립하여
고려 관련 사무를 맡게 하고 '고려사관'을 건설하여 사절들에게 왕래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동해안에 자리잡은 명주(현 닝보)는 양국 사절 왕래의 유일한
항구로 되었다. 고려사관은 우리나라 고대 대외 교류사의 꽃이며,
또한 닝보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천일각 입구
영파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도서관으로 알려진 "천일각(天一閣)"입니다.
월호(月湖) 북쪽에 있는 천일각은 명나라 가정제(嘉靖帝) 때인 1561년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을 지낸 범흠(范欽)이
자신이 소장한 책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개인 도서관으로, 8만여권의
선본(善本: 옛날 문헌 가운데 예술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희귀한 책)이
수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명나라의 지방지(地方誌)와
과거제명록(科擧制名錄) 등은 명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소중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범흠의 像
천일각이라는 이름은 "역경(易經)"의 "천일이 물을 낳고,
지육이 그것을 이룬다(天一生水, 地六成之)"에서 따온 것인데,
불과 상극인 천일이 낳은 물의 힘을 빌려
화재로부터 장서들을 보호하려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에 와서는 범흠의 후손들이 천일각 앞뒤로 

가산(假山)을 만들고, 각종 조각품들을 배치하고, 대나무 등을 심어 주변 환경이 더욱 수려하면서도 그윽하고 운치있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벽면을 장식한 부조상
보관된 책은 어차피 읽어볼 수도 없는 것이니 그냥 역사를 둘러보는 곳인데,
개인의 장서각이면서 엄청나게 큰 규모에 놀라면서,
아름답게 꾸며진 조경과 조개껍질을 부셔서 그 가루로 만든
다양한 부조상(浮彫像)과 동상들, 1993년 복구 공사를 하면서 옮겨놓은 영파의 송·원·명·청 시대의 전각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경관은
정말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여유있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천일각에는 의외의 볼거리로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인 마작을 소개하는 "마작 정원"이 있습니다. 천일각의 마작 정원은 중국에서도 유일하게
마작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진열관이 있는 곳입니다.


마작정원의 마작하는 사람들 像
옛부터 마작은 다양한 형태로 중국에서 성행하였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현대적인 마작은 청나라 초기 영파 사람인 진어문(陣魚門)이 만들었으며,
이후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여러 나라로 전파가 됩니다.
마작 정원에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마작 패, 마작의 역사, 게임 방법 등 다양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세 사람이 마작을 하고 있는 동상도 있는데,  중앙에는 진어문이
앉아 있고, 좌우로 영국인과 일본인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옛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영파의 모습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라오와이탄
또 서구 열강의 조계지(租界地: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로 지정이 되면서
많은 서양식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노외탄(老外灘: 라오와이탄)"도 있습니다.
상해의 황포강(黃浦江) 주변으로 유명한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는 와이탄(外灘)을
잘 아실 것인데, 영파보다 역사가 짧은 상해에서 와이탄을 내세우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영파에서, 상해의 와이탄보다 더 오래된 와이탄이라는 뜻에서
"라오와이탄"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강북천주교당(江北天主教堂)
영파를 관통하며 흐르는 봉화강(奉化江)과 용강(甬江)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 라오와이탄은 500m 정도의 짧은 거리이지만,
이국적인 풍모의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으며,
히 상해처럼 화려하지도 상업적이지도 않은 야경으로
정말 조용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주는 곳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라오와이탄 초입에 있는 100년 정도 되었다는
"강북천주교당(江北天主教堂)"은
유럽의 어느 성당에 못지 않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오와이탄 끝자락에는 "영파미술관"도 있는데,
넓은 공간에 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으므로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들러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천일광장 야경
고려사관, 천일각, 라오와이탄 외 영파 시내에만 해도 볼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다 모여있다고 할 수 있는 쇼핑의 천국으로
넓은 광장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즐길 수 있는 "천일광장(天一廣場)",
옛날에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鼓樓)"도 있습니다.
지금은 커다란 시계가 달려있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해주는 고루에서는
다양한 물건과 먹거리가 있는 전통 시장통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또한 홍방재봉(紅帮裁縫: 전문 양복을 재봉하는 재봉사)의 발원지인 영파를
상징하는 "영파복장박물관(寧波服装博物館)"과 고려사관 등 다양한 유적이 있는
달 모양으로 생긴 아름다운 호수인 "월호(月湖)",


천봉탑
영파의 상징탑으로 겉으로는 7층탑이지만, 속에 들어가면 14층탑인
"천봉탑(天封塔)"도 있습니다. 천봉탑은 당나라 측천무후 때 세워진
평면 6각형의 탑으로, 무측천이 연호로 사용한 천책만세(天冊萬歲)와
만세등봉(萬歲登封)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름지어진 탑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의 인사동을 연상하게 하면서 아기자기한 장식품이나
전통 물건들을 파는 옛날 거리인 "남당로가(南塘老街: 난탕라오쟈)",
상가와 먹자 골목으로 유명한 "성황묘(城隍庙)"등
이런 저런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아육왕사 안내도
또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나면 사고가 난 동물원이 있는 "동전호(東錢湖)"도
있습니다. 동전호는 항주의 서호(西湖)와 비슷한 휴양 호수로
크기는 서호의 4배 정도이며,
다양한 육상 활동과 해상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조금 더 변두리로 나가면 아육왕사(阿育王寺), 천녕사(天寧寺), 천룡사(天龍寺), 천동사(千童寺) 등 해마다 몰려드는 불교 성지 순례자들의 행렬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저명한 불교 사적과 명승지가 많이 있으며,



장개석 고가
장개석의 고향인 봉화(奉化)에서는
"장개석의 고가"와 "장개석 박물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장개석과 관련된 내용이 많지 않아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장개석과 관련된 기념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국민당과 공산당 인물들을
통하여 중국에서 장개석을 어떻게 보는지를 한번 느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처럼 영파는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보다 볼 곳이 많은 곳이니,
기회가 되시면 영파를 한번 다녀오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영파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아직도 보통화(普通話)보다는
영파 사투리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영파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특색있는 부분이 보통화에서 런(rén)으로 발음되는 "사람 인(人)"자를
닌(nin)으로 발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통화에서 "라오런"으로 발음되는
노인(老人)을 영파 사투리에서는 거의 "로인"으로 발음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외에도 어찌 들으면 우리나라 말과 비슷하게 발음하는 한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옛부터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는 것을 보면, 영파는 우리와 꽤 인연이 깊은 곳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영파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