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지/淸水 꽃피는 고향은 어디에/에세이 작 글
1탄
우리의 민족은 8.15해방 후
일본이 2차대전으로 폐하고
대한에서 떠나가며
남긴말이 있다. 삼십년이 되면
다시온다. 일본은 50년만의
경제대국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떠나간지 백년이
되었으며 우리민족은
6.25전란으로 조선의 국토는
폭격으로 거의가 무너지고
대한의 민족은
산꼭대기 개울가 주변의 미군이 버린
씨래이숀 전쟁 중 휴대용
식량 BOX로 얼기설기 기어들어가
누울 수 있는
칸막이만 있으면 어떤 형태로던
끼니인
목구녕의 포도청인 뱃속을
채우는 것이 인생 살이었다.
역사적으로 가난을 물려받은
우리의 민족은
일자 무식으로 50.60년대에
시람들은 한문은 고사하고
한글 언문을 마저 배우지않아
일자 무식이었다.
2탄
우리의 민족은 6.25전란으로
미군이 유엔군으로 진주하면서
서양교회 문화가 들어 오면서
선교사는 먹지못하여
피기가 없는 이웃에게 밀가루
알랑미 쌀을 배급하며
야간에는 교회에서 영어을 가르켰으며
일부 선교사을 따르는 신도들은
농촌의 한글을 가르키기 시작하였다.
우리민족은 36년동안
일본의 침략으로 국토을
유린당하여 일제의 총칼의
압박으로 생명의 유지하는대
급급하였으나 6.25전란은 대한의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깨우침이었다.
60년대는 잘사는 집은 하루 된징찌게 밥세끼
먹는집이 잘사는 집이었다.
50년대는 똥구멍이 찌저지도록
가난 하였으며
강남 땅 밭에는 콩도심지 않았으며
돌맹이가 굴러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3탄
당시 서울은 판자촌 이었으며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군복 오바로 천개천
흐르는물 개천에 염색공장
미군이 버린드럼 통에
미군 오바에 검정 염색하여
학생복을 만들어 입었다.
덕수상고는
지금의 구평화시장 뒤에있었다.
60년대에는 성동공고 덕수상고을
졸업하면
최고의 학교를 졸업하였다고
상인들마저 우러러 보았다.
농촌에는 논을팔아 서울
성북고 다니며 레슬링을 하여
세계 올림픽을 나가는 것이었다.
내 동생은 덩치가 역도산
같아 힘이장사였다.
60년대는 자식을 대학교 졸업시키는 것이
부모의 큰 자랑이었으며
성공시키는 것은
검판사 아니면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다.
3탄
70년 대에는 아파트 복부인로
강남의 아파트 계약하자 마자
바로 전매하여
몇천만원의 이익을 남겨도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으며. 세금도 없었다.
이것은 부동산 투기의
시대였다면 버스을 잘타면
하루 아침의
로또의 당첨보다 빠른거부가 되었다
이같은 현상이 30년동안 지속되어
집없는 서민은 아파트 값이
부지기 수 로 뛰었으며 서민은
평생동안 수억의 아파트을
입주할 수 없었으며
잘아는 집주인은 수십채
어떤 집주인은 아파트 열채와
상가등 열채가있는 전직
공직자가 있었으며
세금도 전혀 내지 않는 건물주도 있었다.
이는 분명히 양극화로
우리시대의 격은
일본의 제국자에게 국토을
빼앗기고 민족의
목숨을 일제가 자유자제로 하였던
피눈물나든 그 시대을 잊었으며
6.25전란으로 천개천에
판자자촌에서 살던 우리의 설음을 잊었고
나만이 잘살면 그 만이라는 물질만능
시대가 도래되었다.
4탄
인간의 본성은 고난에서
생존을 요구하던
어려웠든 것을잊고 생존 자체에서
삶의적극성
충실이 담겨있다면 허욕이
따를리가 없으며.
살아가는 그 자체로 만으로
만족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을 때 에는 삶을
다소 즐긴다면
물질욕으로 몰두하는가다.
우리의 정치사는 후자의
부동산 투기에 대하여
누차 경고 하여 왔으면 지금이
아닌 전자에도
부동산 투기을 만류하였으며
실수 요자에게
돌아 가도록 권장한것은 오늘 어제가 아니었다.
후자에 경우 부동산으로
거부가 된자는
만족을 가지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부동산 땅투기의
입맛을 잊지못하고 사실상
만족을 가지지
못하고 정부가 하는일에
마치 구경꾼처럼
외부에서 방관자가되어 버티고 있었다.
그 것이 현실로 강남의
집한채가진 세대가
한채 아파트가 30억이다. 매년마다
오르면 5년이되면 일억의 종부세을
내야하는 판단이다.
이가구는 후자에는 아파트
최소한 삼체이상
팔고 하였다면 상당한
부을 누렸음으로 보아
70.80년대 아파트 투기을 생각하고
전자에 서민의 양극화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가지고 있는 30억아파트을
전자에 처분하여
생활의 안정된 삶을 생각을
조금도 하지않았을 것이다.
5탄
우리는 마음속의 고여있는
그 칠줄 모르는
허구성 더 나은것을 탐내는
욕구는 흘러가는
현실의 대하여 염증을 느끼고
그 중단을 바라는 반증이다.
우리가 가난의 집이 없어
떨며 배곱아 울적의
그 대들은 호화스럽게
먹으며 즐겁게 웃었다.
아파트 한채팔아 수억 남겨서
문벌이가 좋아서
호사와 영화를 누리며 멋스러운 옷으로 몸을 휘감고
주연을 베푸는
그 본인의 원인은 본래는 가난한자였으며 초라한 자신의 존재에서 벗어나려는
허울 좋은 노력의 불과한 것이다.
그 렇치 않았다면 부처 님 법당의 커다란
촛대와.금 보석. 부회.부적과 가면이든 등불이 무엇이 필요 하였단 말인가.
나는 전쟁고아로 다리 및 에서 밤새 떨며 하루밥
한끼겨우 먹으며 성장하여 허리띠에
호패을차고 군대의
입대하여 남지나 베트남의
참전하였을 때 의 그 대들은
아파트 부동산 투기하여
거부가 되어있어으며 강남의
거부가되어 형제인 나를 눈길을
주지 않았드라.
인간은 따르는 모든 노력의
대가가 바로 앞에서
무로 화하는 것이라면. 즉 인간은 의지의
노력은 공허다.이러함은 자연의의하여
인간이 사람으로써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존재의 조건을 인정하여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서민이 입주하여야 하는 임대아파트 마저
부동산 투기로 입주하여 외제 자가용을
굴리며 월세을 받아
서민을 울렸다면 종부세금은
여름의 내리는 겨울의 찬설이 만끔
집없이 떨어 본 기억을하여야 한다.
6탄
인간은 죽음은 필연적으로
누구나 도래하는 것은
인생이 다만 하나의 현실 주의이며
물질 자체는 참된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 본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게 국토을 빼앗기고
36년 동안 민족성을
잃고 6.25전란으로 인하여
서울과 전국토가 폐허가
되어 집없이 추운 겨울에
철길다리 및 에서 떨면서
어머니을 전쟁의 포격으로 잃고
아버지 전쟁통의
실종되어 배곱품의 울어도
그 누구도 거들지 않았어도
허리띠 졸라매며 성장하여
시대의 이대로 올기에
군인으로 미국 유엔군으로
한국 6.25전란 시 참전 생명을
희생한 유엔군 미국을 도와
이대올기 평화군으로 월남
참전하여 포화속에서 꽃다운 22세의
생명을 잃으며 고국을 그리워하였다.
나의 청춘은 돌릴 수 없는것은
이제는 령혼(靈 魂)으로
천국(天國)을 건너려는 길목에서
체바퀴도는 세월을 돌아보며
바라 볼때에 인생의
시초와 칠성별길을 건너는
종말사이에 불꽃의 무서운
심연의 가로놓인 시초에는
인생의 허구 욕망에 빠지게
되고 인생의 허울을
벗으려면 령(靈)혼에는 모든
신체가 파괴되어 썩은
냄새로 공기를 혼탁하게 풍기며
아름다웠던 인생은
혼령(魂靈)으로 영혼의 잠겨
활기찬 청년기.고난의 장년기는.
관대(冠大)을 차고 시들고
비참한 노년기로 질병의
고행의 마지막 임종을
이렇게 관찰을 하면은
인간의 존재의 물질의. 허욕은
하나의 오류이 다라는
것을 깨닫게되는 것은 내 자신을 알라
그 러면 천국으로 가는 요단강을 건너
신의 세계의 환생(換牲)하여 형체는 바람보다
빠르고 빛으로 비쳐지는 신선으로 환국하여 산자을 다스리는:":"":"::"~
종로 5가 광장 시장 막걸리 빈대떡 서민 淸水 꽃피는 고향에 시 현장 작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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