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대.조헌사당.일본식주택(금산.복수면.곡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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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8.

20210201

충남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수심대라 불리는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었고, 오늘 우연히 발견해서 천천히 둘러보고,

수심대와 조헌사당에 대한 글을 남겨봅니다.

 

동네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따라가다가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의 장소였습니다.

 

 

낮은 돌무더기 같은 바위들이 있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겨울이라 잎이 하나도 없어서,

음산한 느낌이었습니다.

날씨마저 흐린 날이라 파란하늘이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수심대에 대한 안내판과 수심대가 한자로 써있는 비석이 있습니다.

 

수심대(水心臺)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6호

수심대는 중봉 조헌의 사당 뒤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이다. 낮은 동산에 자리를 잡고서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들과 함께 조헌 사당을 지키고 있다. 하천 쪽을 향하고 있는 낮은 위치에 '수심대(水心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수심대라는 이름은 조헌이 지었고, 글씨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새겼다. 글시 안쪽에는 붉은색이 칠해져 있다. 수심대라는 이름은 유등천 상류에서부터 굽이쳐 흐르는 사행천 양쪽으로 3개의 마을이 마치 심(心) 자와 같이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헌은 임진왜란 이전에 옥천군 안읍 밤티율치에 살면서 이곳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후손들에게 이곳에서 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심천(心川)과 북수(北水) 사이가 곧 이곳이니 당당히 화를 피하고 기(氣)를 솟게 하는 어귀이다. 이 어귀는 그 땅을 안정시킬 것이니 이곳이 요지(要地)이다. 뒤에 논함이 번거롭게 끝없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삼가 없어짐이 없도록 할 것이다."

 

 

수심대는 마을 입구에 바위들과 소나무들의 조화가 신비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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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대 바로 뒤에 조헌사당이 있습니다.

 

 

조헌사당(趙憲祠堂)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호

조헌사당은 복수면 수심대길, 수심대교를 건너 50m정도 가면 길 오른쪽의 수심대(水心臺)입구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성 전투에서 칠백여 의사와 같이 순절한 중봉 조헌(趙憲 1544~1592)을 향사(享祀)하는 사우(祀宇)이다. 순사(殉死)후, 1604년(선조37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1609년(광해군1년)에 그의 사당에 '표충(表忠)'이라는 편액이 하사되었으며, 1740년(영조16년) 7월에 중봉집(重峰集)을 간행하도록 하였다. 1754년(영조30년)에 영의정으로 추증, 문묘에 종사되었다. 조헌사당은 원래 1734년(영조 10년)에 복수면 곡남리 장등산에 창건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 임에도 각도에 향교와, 유림들의 모금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되었다.

 

 

낮은 기와지붕이 이어진 담벽이 길가로 이어져 있습니다.

 

 

조헌사당.

 

 

수심대와 조헌사당

 

 

수심대(水心臺)

 

 

수심대와 조헌사당을 지나 마을쪽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듯한 집 한채가 있는데,

일본식 건물입니다.

조헌사당과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후손들이 살았던 집 아닐까 싶은데,

지금은 대문도 잠겨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도 보이지 않아 폐가 느낌입니다.

 

 

전혀 몰랐던 과거의 흔적을 발견해서 천천히 둘러보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