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대전의 철도, 도시를이루다(테미오래 1호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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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문화.공연.전시

2021. 4. 4.

20210330

20210407

대전 테미공원아래 관사촌에는 대전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관사촌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테미오래 팀이 열심히 준비한 다양한 공연, 전시등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라 새로운 테마를 시작하면 가끔 찾아가고는 합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 파란하늘이라 테미공원의 벚꽃을 보고 천천히 걸어서 테미오래의 1호관사를 찾았습니다.
 

충청남도관사촌이라는 것은 1930~1940년대 일본 관료들을 위해 일본식 양옥으로 지어진 관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충청남도관사로 사용되다가, 몇년전 83년만에 일반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1호관사에서

대전의 철도, 도시를 이루다 라는

제목으로 상설 전시를 진행중입니다.

2021.03.23 ~ 2021.12.26

 

1호관사 들어가면서 부터

대전역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전철도, 도시를 이루다

[대전은 철도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철도가 부설되면서 대전역 주변을 중심으로 도시는 발전되기 시작했으며, 대전은 한반도 교통의 중심부로서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연히 대전의 발전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1932년 충남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게 된 충남도청 역시 대전역과 마주하면서, 남북의 축으로 도시는 크게 확장된다. 여기에 호남선 서대전역까지 만들어지면서 대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우뚝 서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 대전은 폐허나 다름없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대전은 용기와 희망의 도시로서 성장을 거듭하였고, 다시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전국의 거점 철도도시로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다.

 

[태전정차장과 그 이전의 대전]

1904년 경부철도가 완공되면서 대전지역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확장하게 된다. 1905년 1월 1일에 개통된 대전역은 목조간이역이었지만 1918년에 세워진 새 대전역[조선의 사정,(조선공론사, 1922)34쪽, 참조]은 중세풍의 2층 역사로 지어진다. 역사 중심부에는 큰 원형시계가 있었고 2층에는 고급 레스토랑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대파되고 흑백사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벽면에 붙어있는 대전역은

지금의 현재 운행하고 있는

노선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시관을 담당하는 직원분이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체온측정과

QR체크를 진행해줍니다.

 

전시관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람할 수 있습니다.

 

 

디오라마 모형으로 기차들을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기차나 철도에 대한 이야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볼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1호관사의 한쪽 벽면은 기관차 내부에서

밖을 내다보는 듯한 창으로 된곳도 있습니다.

 

 

옛날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해서

아주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 입니다.

 

 

역장의 사무실 같은 장소와

 

대전역 인근 대동천의

벚꽃 그림이 파노라마로 걸려있습니다.

 

대전철도복 의상도 입어볼 수 있습니다.

 

 

원조 밀가루에서 빵과 국수의 문화로...

우리의 주식은 전통적으로 쌀이다. 기후 특성상 이모작으로 보리를 재배하여 왔고, 밀은 일부지역에섬만 재배되었을 뿐이다. 일제 수탈과 광복 이후, 곧 이어진 참혹한 한국전쟁으로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광복군과 한국전쟁으로 한반도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경제 협조와 한국재건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은 원조를 시작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겨우 거리의 배급소를 찾아 우유죽과 꿀꿀이죽이라는 희귀음식으로 곯은 배를 채워야 했다.

한국에 제공된 원조 물품은 밀, 설탕, 면화 따위로 이른바 삼백산업원조를 받는다. 1955년 이후 초등학교에 식빵과 밀가루가 무상으로 배급된다. 1962년 벼의 큰 흉작에 쌀값은 폭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혼식과 분식 장려운동을 전개하고, 대규모로 밀가루를 도입하여 분식을 주안점으로 식생활 개선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이 분식장려운동은 밀가루음식, 국수와 제빵제과 문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0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혼식과 분식은 단순한 끼니 해결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음식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갔다.

[참조 발췌] 김성곤,'한국의 제분산업발달사''식품과학과 산업' 87쪽, 2017-국가기록원

 

식량 절약과 식사 생활 개선 행정명령

 

 

[밀가루이야기1]-대전 빵이야기

'풍국제분주식회사'와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

우리나라 최초의 빵에 대한 기록은 일암 이기지(1690~1722)가 저술한 <일암연기>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의 한 성당에서 서양떡(밀떡)을 먹었다고 적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빵을 처음 소개한 것은 19세기 선교를 위해 한반도를 찾은 유럽 출신의 카톨릭 신부들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빵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풍국제분주식회사'가1921년 11월 서울 용산에 설립되면서라고 합니다. 제분회사 이전에 일본은 다양한 빵들을 만들고 있었고, 현재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종류의 빵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원조해준 '밀가루'와 '설탕'은 우리날의 빵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듭니다. 허창성(1914~2003)은 제과업에 뛰어들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1959년 서울 용산에서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량으로 빵과 비스킷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엽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늘날은 삼립, 샤니 브랜드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1980년대부터는 유명한 제빵 가게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데, 2000년대 '뚜레쥬르'나 '파리바게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대형 프렌차이즈에 밀려 동네빵집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만 씁쓸함도 있지만 각기 고유한 제빵 기술을 선보이면서 전통 있는 지역의 빵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게들도 여전히 우리곁에 남아있습니다.

 

 

전에 대전의 대표빵집 성심당의 역사에

대해서 빵이야기와 함께 전시 했었는데,

그때의 자료들도 일부 전시되어 있습니다.

 

20161112 성심당과 함께 60년의 추억

blog.daum.net/chulinbone/6018

 

 

대전은 빵과 칼국수 같은 밀가루에 대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어서 공부가 됩니다.

 

 

[밀가루이야기2]-대전 칼국수이야기

대전에서 또 빠뜨릴 수 없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칼국수 입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의 음식, 칼국수. 예전에는 왕실이나 양반집의 큰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결혼할 친구가 있으면 흔히, "국수 언제 먹어?"라고 묻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밀가루가잘 나지 않아서 예전엔 주로 메밀가루를 활용해 국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메밀국수에 대한 향수를 가지신 분도 많으실 겁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과거 귀한 취급을 받던 밀가루는 미국의 식량원조로 서민의 구호물자로 대량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또한 정부는 전쟁으로 부족해진 쌀 수급에 '분식장려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기도 하면서 '분식의 날'을 지정해 쌀 대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는 캠페인을 벌이고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칼국수가 대표적인 서민음식으로 자리잡게 하게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전을 상징하는 대표하는 음식이 대전역 가락국수부터 시작해, 이제는 칼국수가 되어버렸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대전에서 칼국수 가게를 열면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대전 사람이 칼국수를 즐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전은 우리나라 철도운송의 중요 거점으로 대전역이 구호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한데다, 6~70년대 대규모 간척사업 등 굵직한 국가사업에 동원된 근로자에게 노임으로 돈 대신 밀가루를 지급하게 되고, 분식장려운동 등과 맞물려 밀가루 유통의 거점이 됐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대전역 주변과 중앙시장을 비롯한 원도심 지역에 칼국수 전문점이 활성화 된 것도 그러한 연유에 있을 것입니다.

대전의 칼국수는 대전 근대 역사와 함께하는 대표적인 대전의 향토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9년도 기사를 보니 대전은 칼국수집이 1700여 곳에 이르고, 칽구수 종류도 20여종에 달하며 50년 이상 맛을 지켜온 칼국수집도 상당수라고 합니다. 대전이 철도와 함께 태어난 도시로서 외지인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다보니 우리의 칼국수에는 다양한 지역색의 칼국수가 조화롭게섞여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색이 어우러진 그 어느 지역에도 찾아 볼 수 없는 맛 이라는 평가는 우리지역 칼국수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멸치로 육수를 낸 칼국수부터 들깨칼국수, 바지락칼국수, 사골칼국수, 팥칼국수, 닭칼국수, 오징어칼국수, 김치칼국수, 비빔칼국수, 옹심이메밀칼국수, 얼큰이칽구수, 등 수 많은 칼국수들이 우리곁에 있습니다. 여기에 칼국수와 곁들여 먹기에 좋은 수육과 족발, 두부두루치기, 오징어두루치기, 파전, 김밥 등 메뉴도 음식점마다 다양하게 내놓고 있어서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칼국수가 대전의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우선 지리적으로 대전은 '한밭'이라는 옛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밭이 많았고, 이곳에 밀을 많이 심게 되면서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조리법이 비교적 간단해서 서민들에게 칼국수가 쉽게 자리잡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한국전쟁이후 주둔한 미군 부대가 대량 보유한 밀가루 일부가 외부로 반출되면서 칼국수가 유행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군부대가 대전에 오래 주둔해 있었고, 대전역 부근 정동이나 대흥동 일대 칼국수 식당의 원재료로 공급됐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는 원조물자로 대전이 근대철도 물류의 중요한 도시로 대전역 주변으로 밀가루가 많이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전역 주변으로 제분공장들이 잇따라 생기기도 했습니다. 무던한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과도 닮은 칼국수는 이러한 시대적상황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이 칼국수 도시라는 말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1960~70년대의 전후복구, 또 산업화라는 근대도시 대전의 성장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집을 이야기 한다면, 1958년부터 3대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대선칼국수와 1961년 문을 연 대전역 앞 신도칼국수가 지금은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호관사 벽면에 있던 칼국수 이야기>

 

대전에서 칼국수축제도 몇번 했었는데,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양한 행사들을

편하게 진행해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대전발 0시50분,

기다림과 그리움이 머무르는 곳

대전역

가락국수와 대전부르스

서울과 전라도지역을 오가는 호남선열차는 경부선에서 분기되어 목포까지 연결된 철도로 공식적으로는 대전조차장-목포구간을 뜻했습니다. 지금은 2015년 4월 개통한 호남고속철도는 경부고속선 오송역을 기점으로 광주광역시 광주송정역에서 기존 호남선과 합류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호남선철도는 본래 대전역이 기점이었고, 현 대전조차장역에서 호남선으로 직결되는 선로가 없어서 부산행이든 목포행이든 무조건 대전역까지 들어온 뒤 다시 행선지에 따라 열차운행이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남선열차들은 대전역에서 기관차를 분리했다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붙여야 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호남을 곧바로 오가는 선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후 오정선이라는 일종의 단선 삼각선이 신설되었다가 호남선 복선화에 맞춰 현 대전조차장역에서 경부선과 입체교차하는 방식의 옛 대전선 철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헤 신설된 옛 대전선은 대전조차장-서대전 구간을 뜻하는 삼각선이였고 서울발 호남선 열차들이 모두 옛 대전선을 통해 운행해 옛 대전선이 호남선으로 승격되고, 호남선의 기점은 대전역에서 대전조차장역으로 변경됩니다.

당시 이런 회차 구조로 인해서 대전역은 2개의 유명한 명물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가락국수와 노래 대전블루스입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호남선열차는 대전역에 정차한 후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서 반대방향으로 운행하기 위해 대전역에 장시간 머물게 되는데, 열차 안에 승차하 있던 승객들은 잠시 역에 내려 열차 맞은편에서 판매하고 있는 가락국수를 먹으며 열차를 기다린 것이 지금의 대전역 가락국수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락국수 가격은 3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여 일반대중들도 간단히 요기를 채울 수 있었으며 이후 가락국수는 대전역 뿐아니라 대전시를 상징하는 음식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다 1959년 트로트 가수 최치수씨가 대전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다가 얻은 감흥으로 지은 <대전블루스>는 1963년 개봉된 영화 '대전발 0시50분'의 삽입곡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대전지하철 1호선 대전역에 도착하기 전에 나오는 음악도 대전블루스 입니다.

 

20210330 이때는, 전시준비중인 곳이었는데,

 

20210407 다시 가보니 준비된 내용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1970년대 중아시장/대전중앙철도시장

 

보문산케이블카(1968)

 

한국전쟁 대전역(1950)

 

옛 충남도지사관사. 테미오래(1932)

 

소제동 철도관사

 

대전역(1905)

 

본정통

 

삼일운동(인동, 1919. 3.16)

 

대전형무소(1923)

 

골령골(1950)

 

4.19의거(1960)

 

대전역 귀성열차

(1960), (1990)

 

대전엑스포(1993)

 

대흥동성당(1945)

 

충남도청(1932, 대전근현대전시관)

 

대전과 대전역, 기차, 철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천천히 둘러볼 수있었습니다.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현재 대전현충원에 위치)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여담으로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추가해봅니다.

대한민국의 고속철도기술의 발전은

 

KTX(1세대) - 프랑스TGV의 고속열차를 그대로 가져옴

HSR-350X(기술개발열차)- 프랑스의 핵심기술이전이 안되서. 국산화하려고 독자개발

KTX산천(2세대.상용화), HSR-350X에서 검증되고 국산화된 기술을 대거 가져옴

HEMU-430X(해무.기술개발열차)-대한민국 최초로 430km/h 돌파. 독자개발

EMU-320(KTX-이음/EUM-320.상용화)-해무의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됨

하이퍼루프(하이퍼튜브.차세대이동수단)-진공관속을 시속1000km/h의 속도로 주행-현재 전세계적으로 개발중

 

하이퍼루프는 전세계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아서 각국에서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201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2026년 시험운행을 하기위해 연구중.

2020년11월11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시속 1,019km/h 속도 달성. 초고속 주행을 과학적으로 규명함.

미국에서 앞서 유인테스트 성공하기도 함. 속도 309km/h. 이로써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아짐.

상용화 되면 서울-부산 20분이면 이동가능한 기술.


 

 

전시가 끝날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

시간 날때, 방문해서 천천히

과거의 시간속으로 빠져 보기를 바랍니다.

 

 

대전이 궁금했고,

대전의 철도이야기가 궁금하면

아주 좋은 전시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는 창가에서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