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규의 글 한 모금

움직임은 생각이며 생각은 글이 된다.

그곳의 2월은 / 장광규(張光圭)

댓글 0

그곳은

2009. 3. 2.

군대생활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 말고는 스무 살 남짓 쭉 살았던 고향.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그곳의 명절이

떠오르고 놀이나 풍습 같은 것이 생각나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 곳이기에 음력을 주로 사용한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것도 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날짜를 짚어가면 농사일하기가 쉬웠다. 명절은 보통

초하루 또는 보름날에 들어있고 생일도 음력으로 찾는다.

음력 2월 초하룻날은 영등 할매가 내려오는 날이다. 바람과 비를 가지고 있는 신으로 믿는다. 그래서인지 음력 2월에는

봄바람도 많이 불고, 봄을 재촉한 비도 자주 내린다. 이날 고향에서는 콩을 볶는다. 영등 할매에게 올리기 위해서다.

콩만 볶는 것보다 콩과 밀을 섞어서 볶으면 먹기가 좋았다. 콩을 볶는 구수한 냄새로 영등 할매에게 바람은 너무 강하게

불지 않게 하고, 비는 곱게 내리게 해달라고 알린다.

낙엽을 땔감으로 해서 밥을 해 먹던 시절, 재래식 부엌의 살강에 올려놓는 대발이 있었다. 여기에 밥그릇 국그릇을 씻어

물이 빠지게 차곡차곡 엎어놓는 곳이다. 이 대발을 내려 깨끗이 씻고 말려 다시 엮어 올려놓는다. 대나무 막대기에

청솔가지를 묶어 부엌과 부엌 주위의 거미줄을 걷어내기도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부엌 주변을 대청소하여

청결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 일도 역시 2월 초하룻날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논밭에 자라고 있는 보리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기였다. 겨울에 내린 눈이 녹아

물이 빠지지 않으면 보리가 자라지 못하고 잡초만 무성하게 된다. 그래서 물이 잘 빠지게 배수로를 손질한다. 비료도

뿌려주고 잘 자라도록 날마다 살핀다. 이때쯤엔 양지바른 곳에 돋아나는 논둑의 쑥을 캐러 다니거나 밭의 나물을 캐러

다니기도 한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잡풀을 뽑거나 베어다 잘 씻은 다음 잘라서 소 먹이로 사용하기도 했다.

농촌도 많이 발전해 도시화되었다. 내려오던 풍습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기기도 한다. 풍습은 미신을 믿거나

흐리멍덩한 마음으로 신에게 의지하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면서

농작물이 잘 자라 풍년이 들도록 하늘을 쳐다보며 열심히 일했던 것이다. 비도 알맞게 내리고 추울 땐 햇빛을, 더울

땐 구름을 보내 달라는 소박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2009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