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규의 글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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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4월은 / 장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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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2009. 4. 25.

음력 사월이 시작된다. 고향의 이맘때는 봄이 한창 무르익는다. 앞산과 뒷산에 소나무 숲 사이는 온갖 풀들로

푸르게 물들고 진달래가 한창 피어 있을 것이다. 들판에도 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군데군데 심어놓은 보리와

밀이 바람에 나부낄 것이다. 보리 냄새 밀 냄새가 맑은 공기와 함께 마을까지 날아올 것이다. 지금 그곳에도 물

걱정을 해야 한다. 물 걱정 없이 살아가는 곳인데. 이제 기후변화로 먹는 물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농사를

무난하게 짓기 위해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봄에도 비가 자주 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일부 농작물은

시기를 놓치고 재배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뒷산과 앞산의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레 들려,

물 걱정만은 하지 않고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월에는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 초파일이 들어 있기도 하다. 어느 종교도 선택하지 못한 나로서는 아는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다. 남원에서는 사월 초파일을 남원시민의 날로 정했다. 이때가 되면  남원시내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춘향제는 며칠간 계속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구경하러 다니기도 한다.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남원시내는 걷기도 힘들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춘향이 선발대회와 그네뛰기 등 볼거리도 많다, 광한루원에는 춘향이 사당도 있고

오작교도 있고 경치도 좋아,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가까운 곳에 지리산이 있어 

관광코스로 좋은 편이다.     
          
마을에는 사월 초파일 무렵에  "술 먹기 날"이 있었다. "술 먹는 날"인지 "술 내는 날"인지 구전으로 전해오기 

때문에 확실한 명칭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술 먹기 날"이라고 부르는 날이 있는데, 이장이 날짜를 잡고 미리

동네 사람들에게 알린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막걸리 한 말을 낸다. 또 지난해에 애사든 경사든 대사를 치른

집에서도 술을 한 말 낸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자진해서 술을 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군대를 가기

위해 신체검사를 한 남성도 술을 한 말 내는 것이다. 일종의 성인식도 함께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른

대접을 받으며 동네 어른들과 함께 동등하게 품앗이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기 전에는 미성년이라

해서 노동력을 성인의 절반만 인정해 주었다.       

 

이 "술 먹기 날"은 사흘 정도 이어진다. 주조장에서 술이 도착하면 고령의 어른들이 있는 집안에는 술을 적당량

갖다 드렸다. 그리고는 마을회관에 모여 술도 마시고 윷놀이도 하며 휴식을 취한다. 이튿날은 마을 길을 고치고

농로도 고치는 일을 한다. 농사짓기 위해서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구지나 리어카가 다니기 좋게 보수해야 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고친다. 땔감과 풀을 베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동쪽의 읍내 가는 길은 "접밭퉁"을 거쳐

운교리 가는 길하고 연결되는 "매산이"까지 길을 고친다. 서쪽의 "죽뱅이" 길을 고칠 때는 미륵골에 있는 부처상 

가까이로 가서 구경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남쪽에는 이웃마을인 월계 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은 안골을

거쳐 '삭재' 입구까지 길을 보수한다. 북쪽의 초등학교 가는 길은 "세피 고개"까지 길을 고친다. 길을 고치면서

새참을 먹을 때 막걸리도 가지고 다니며 함께 먹는 것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에서 모를 재배하지만, 그러기 전에는 논바닥에다 볍씨를 직접 뿌려 모를 길렀다. 먼저 논을

쟁기질하여 물을 채우고 써레질을 해서 흙을 잘게 부순 다음  일정한 크기로 둑을 만든다. 논에 물을 완전히 뺀 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논바닥을 햇빛과 바람으로 말린다. 둑이 단단한 상태가 되면 다시 물을 채운다. 이렇게 하면 물못자리가

완성된다. 여기에 미리 담가서 싹을 틔운 볍씨를 뿌리는데, 이 일도 역시 사월 초파일을 전후해서 했다. 논은 물로 온도를

조절하는데 낮에는 논의 물을 약간씩 빼주고,  밤에는 다시 가득 채워주어야 냉해를 입지 않는다. 도랑에서 논으로 들어오는

물도 막바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흙으로 수로를 만들 때 논을 절반쯤 돌아서 물이 들어오게 하면 수온도 올라가게

된다. 농사일은 아침 일찍 나가서 살펴야 한다. 낮에는 여러 번 살피는 것이 기본이고, 해 질 녘에 집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서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하는 것이다.          
         
골짜기며 고개 이름도 활자화된 문자로 전해오는 것이 아니고 구전으로 이어오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또한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내력도 알 길이 없다. 옛 어른들은 시대상황상 공부할 기회도 적었고 그러다 보니 기록하는 습관도 멀리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이 생활해 온 걸 보면 지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자(漢字) 같은 것도 '내외간'을

'내우간'으로 말해도 서로 알아듣고 의사소통이 됐다. 그렇지만 "시나브로"와 같은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하며 뜻도

정확히 알고 있는 걸 보면 우리말 실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사투리를 쓰면서 센 발음도 많이 사용한다. 또 "성"을

"셍"으로 "학교"를 "핵교"로 발음하기도 했다. 결혼한 부부에겐 호칭이 있기 마련이다. "남원댁" 이거나 "신촌댁"으로 불러야

하는데, "남원떡" 또는 "신촌떡"으로 불렀다. 또한 호칭은 부부를 같이 부르는 것인데도, 여성을 호칭할 때는 "신촌댁" 남성을

호칭할 때는 "신촌양반"으로 불러 구별하기가 쉽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포도시"라는 말이 있다. 겨우 또는 간신히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그곳의 말이다. 고향의 옛이야기를 포도시 생각해 글을 마무리한다. 살았던 곳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모든 것이 기억에서 점차 잊혀가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