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주줄까 2010. 3. 3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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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구성주의 미술

 

 

1. 구성주의의 선구-프랑스 입체파, 이탈리아 미래주의

 

러시아 구성주의는 20세기 초 혁명을 전후로 발생한 예술 운동으로 이 운동 양식은 단지 순수예술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디자인 건축 등 조형예술 분야를 비롯하여 음악, 무용, 문학,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예술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된 운동이다.. 미술에 있어서 구성주의의 의미 있는 새로운 개념들 중의 하나는 구성의 개념이었다. 회화의 경우 이러한 구성의 개념은 큐비즘 화가의 실험으로 이미 예고되었던 결과였다. 1912년 피카소는 종이와 노끈으로 된 3차원의 큐비즘적 구조물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분석적 큐비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회화에 입체를 도입한 파피에 콜레(Papier Colle), 콜라주(Collage)의 개념을 보다 확장시킨 것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이후 그는 얇은 금속판과 철사, 또는 나무로 구성된 큐비즘적 구조물을 선보였는데, 그 속에서 피카소는 구성주의 조각의 기본 문제였던 조각적 입체감보다는 조각적 공간에 중점을 두는 것에 주목했다.

 

피카소의 이러한 선구적인 작업 이후로 구성주의 조각의 발전, 특히 완전한 추상을 향한 발전은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조각에서 일어났다. 1912년 보치오니의 미래주의 조각 선언은 구성에 적합한 비정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실제로 그가 구성해낸 조각은 큐비즘적인 주제에 매여 있었다. 또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의 전통적인 조각 기법 즉, 모형 제작, 새기기, 브론즈로 뜨기 등은 너무 깊게 뿌리박힌 전통이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프랑스의 현대조각은 현대회화보다도 더욱 혁신적인 방법으로 르네상스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났고, 큐비즘적 콜라주의 3차원적 추상 조각으로의 전환은 피카소의 독자적인 실험을 시발점으로 러시아와 네델란드, 독일 등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중요: 큐비즘과 미래주의 강의노트 필수로 참고할 것!!!

 

 

2. 구성주의의 태동배경과 전개

 

우선 러시아 구성주의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 속에서 태동하였는데, 그것은 10월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강한 열망으로서 예술가들은 사회적 흐름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예술가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의지는 러시아 사회가 불안정하게 된 원인과 맥을 같이 하는데,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러시아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1905년 1월), 전함 포템킨에서 반란 등으로 왕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고 빈번하게 쿠데타 등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후 러시아는 계속되는 사회적 동요와 혼란을 겪게 된다.

 

구성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을 열렬히 환영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미술상의 혁명(추상주의)과 정치적 혁명(사회주의)을 동일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자연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전통적인 미술개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현대의 기술적 원리에 따라 실제 산물을 생산하는 것을 예술적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일반생산과 예술 창작이 구별되지 않았다. 구성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형을 통한 사회주의 문화건설에 있었으나, 당시 낙후된 러시아의 생산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시도는 대부분 계획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라리오노프 <푸른색의 레이요니즘>, 1912. 초기 입체파 영향을 받은 작품

 

 

 

  말레비치, <칼가는 사람>, 1912. 입체파의 영향

 

 

               콘차로바, <파랑과 녹색의 숲>, 1911. 입체파의 영향

 

 

                               료로프 포포바, <구성>, 1921 . 입체파의 영향으로 오르피즘적인 경향을 보인다.

 

또한 예술의 추상적 본질 즉 순수한 표면, 구성, 선과 색 등을 과학적 실천적 입장에서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미술을 건축과 관련시키고 또한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여러 분야와 실험하면서 이시기의 사회적, 산업적 요구에 맞추어 적용하려 했다. 러시아의 구성주의는 특히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에 큰 영향을 주었다.

 

 

                                                 타틀린,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 모형>, 1919-20. 

원래 구상은 396미터. 1920년 소비에트 체제의 합병이 이루어지자 예술이란 쉽게 이해되고 실용적인 것이어야 하며 사회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의 신조를 자신의 물질의 본성에 대한 철학과 결합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가는 근대산업의 재료와 기계를 사용하는 기술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계적 또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중시하여 역학적인 미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기계생산과 건축공학 및 그래픽, 사진 등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미술가들을 조화시킴으로써 사회 전체의 물질적, 지적 요구를 고양시키려는 신념을 가졌으나 공산주의 경제체제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스탈린에 의해 종식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하일 라리오노프, 나탈리아 곤차로바, 카시미르 말레비치, 블라디미르 타틀린, 류보프 포포바, 바실리 칸딘스키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 전날의 섬
글쓴이 : 전날의 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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