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천화대 2017. 6. 19. 08:55

초기 불교의 수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사마타를 닦은 후 위팟사나를 닦는 방법, 사마타 없이 바로 위팟사나를 닦는 방법,

사마타와 위팟사나를 함께 닦는 수행법이다.


사마타(Ⓟsamatha)는 ‘고요함’이라는 뜻이다.

한곳에 집중해서 마음의 동요와 산란이 가라앉고 그친 상태이므로 ‘지(止)’라고 번역했다.


위팟사나(Ⓟvipassanā)는 ‘뛰어난, 특별한(vi) 봄, 관찰(passanā)’이라는 뜻이다.

그냥 보는게 아니라 모든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 보아, 그것이 모두 무상 · · 무아라고 통찰하는 수행이다. 그래서 ‘관(觀)’이라 번역했다.

사마타는 집중하는 삼매(定)이고,

위팟사나는 모든 현상을 무상 · 고 · 무아라고 통찰하는 지혜(慧)의 수행이다.


그런데 사마타만으로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마타에서는 탐 · 진 · 치가 ‘고요함’에 눌려 잠복되어 있는 상태여서 삼매에서 나오면 다시 탐 · 진 · 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팟사나는 이들의 뿌리를 뽑는 수행이다. 그래서 무상 · 고 · 무아를 열반으로 가는 세 관문이라 한다.


사마타위팟사나 사티를 바탕으로 하는데,

사티는 ‘지금 이 순간의 현상에 집중해서 어떠한 판단이나 통제를 하지 않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란 지금 지각하거나 의식하는 대상 · 이미지 · 관념을 뜻하고,

 ‘어떠한 판단이나 통제를 하지 않고’는 그 현상에 대해 ‘좋다/나쁘다’ 등의 분별을 하지 않고,

생각이 일어나면 거기에 저항해서 없애려거나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고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는 그 현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안팎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분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제하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두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분별하고 통제하려거나 저항하면 그것과 싸우게 되고, 그 싸움이 불안과 갈등, 긴장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위팟사나는 사티와 사마타를 기반으로 해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해탈의 지혜를 얻는 수행이다.

특히 4염처나 5온에서 매 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일어나는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림(ⓟsati)으로써 무상과 고를 절감하고, 4염처와 5온에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실체도 없고,

고유한 본질도 없고, 독립된 개체적 자아도 없다고 통찰하는 것이다.

몸-마음이 무상 · 고 · 무아이다.

이것을 거듭 알아차리고 거듭 통찰함으로써 몸-마음에 대한 집착이 점점 떨어져 나가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