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천화대 2017. 9. 19. 09:31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오지의 대명사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인제나들목에서 아침가리와 살둔, 달둔이 30여분 거리에 있다.

아침가리골은 인제군에서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2020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어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백두대간트레일 6구간인 방동약수에서 조경분교를 거쳐 월둔까지의

아침가리길은 인터넷 사전예약(www.komount.kr)을 통해 1일 100명에

한해 입장이 가능하다.

예약이 필요 없는 계곡트레킹 역시 가능 여부를

백두대간트레일 안내센터(033-461-4453)에 문의하면 된다.

살둔마을에 살둔체험마을(070-7793-0366)에서 운영하는

옛 생둔분교 캠핑장과 흙과 나무로 지어진 5동의 귀틀집 숙박시설이 있다.

내린천 최상류 계방천을 끼고 있는 달둔산장(033-435-5285)에서도

민박과 캠핑이 가능하다.

 
 
 

여행

천화대 2015. 8. 28. 17:01

중국의 7대 고도(古都)

 

북경(北京, Beijing) 북경직할시

서안(西安, Xian) 섬서성의 성도

항주(杭州, Hangzhou) 절강성의 성도(省都)

남경(南京, 금릉 Nanjing) 강소성의 성도(省都)

낙양(洛陽, Luoyang) 하남성

개봉(開封, Kaifeng) 하남성

안양(安陽, Anyang) 하남성

 

20년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선전, 200년은 상하이(上海), 500년은 베이징(北京), 1000년은 카이펑(開封), 3000년은 시안(西安)으로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중국에 전한다. 장구한 5000년 역사의 중국을 알려면 단연 뤄양(洛陽)행을 꼽는다.

 

 

1 개요

 

중국 7대 고도(古都)란 시안(西安, 즉 예전의 장안), 베이징(北京, 즉 북경), 뤄양(洛陽, 즉 낙양), 난징(南京, 즉 남경, 금릉), 카이펑(開封, 즉 개봉), 항저우(杭州, 즉 항주), 또는 임안(臨安)), 안양(安陽, 즉 업군)을 아우르는 호칭으로, 중국 역사상 국가의 중심지인 수도로서의 역사가 깊은 지역을 뜻한다. 

 

물론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수도가 있었고, 그 중에는 저 일곱 도시에 전혀 밀리지 않는 곳(대표적으로 청두, 즉 성도(成都)라든가)도 있지만 저 7개 도시가 대표적인 중국의 고도로 대표성을 지닌다. 해마다 고도(古都)를 택해 열리는 중국고도학회(中國古都學會)의 회의가 저 7곳을 돌아가면서 열리기 때문. 이 학회는 중국 도시사 연구 방면에서 최대 규모의 학회로, 연간 잡지인 <중국고도연구(中國古都硏究)>를 간행하는 등 중국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2 선정 역사 

 

중국의 대표적인 고도(古都)에 관한 논의는 1920년대에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시안, 베이징, 뤄양, 난징, 카이펑, 이렇게 해서 5대 고도가 선정되었다. 이들 도시들은 모두 수백년동안 수도였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가장 수도의 역사가 짧은 카이펑도 후랑, 후진, 후한, 후주, 북송 합처 366년동안 수도였고, 그중 북송은 통일왕조였다. 가장 역사가 긴 시안의 경우 수도의 역사가 무려 1000년이 넘는다.) 따라서 이 5개 도시는 중국의 대표적인 고도로 인정받을 만 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들어 5대 고도에 항저우를 더해야 한다는 6대 고도설이 등장했다. 이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 상당한 지지를 얻었고, 1988년까지 인정되었다. 이러한 6대 고도설이 제기된 배경은 남송의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거기다 당시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이민족 왕조인 금나라와 원나라의 남침에 대향한 남송의 역사적 경험이 환기('일본군 = 여진 = 몽골, 남송 = 현재(1930년대)의 중국'이라는 인식) 된 결과 한족 전통 문화의 근거지로서 항저우의 의미가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항저우가 들어가니까 다른 여러 도시들 중에서도 '아니 우리 도시 역사가 항저우보다 못한게 뭔데?'하는 인식 하에서 '우리 도시도 고도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특히 그 선두에 선 것은 안양이었다  명나라 주원장에게 반향했다가 초토화돼서 오늘날에는 별로 크지도 않은 이 도시가 '우리가 항저우만 못한게 뭐냐'는 주장을 할 수 있게된 것은, 다름아닌 은허의 발굴때문이었다. 1920~1930년대 북경의 중앙연구원 주도하에 은허가 발굴된 결과, 안양은 단숨에 우리는 중화문명의 시초인 은나라의 수도라고 내세울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 점을 내세워서 '우리가 지금은 좀 초라하지만 수도였던 역사로 따지면 항저우에 못하지 않거든?'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 

 

이러한 이유에서 제기된 7대 고도설은 1981년 상해 복단대학 역사지리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찬반양론이 이어지다가 결국 198810, 중국고도학회 제6차 대회가 안양시에서 열리게 되면서 공인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7대 고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5대 고도 + 2라고 봐도 무방하다. 앞의 다섯개는 대부분이 납득하지만 뒤의 두개는 아무래도 비슷한 격을 지닌 고도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3 각각의 도시 소개 

 

3.1 시안

 

중국 고대~중세까지 가장 역사가 깊은 고도. 수도로서의 역사가 1000년을 넘는다. 서주시대의 수도였던 호경부터 수도로 이름을 올렸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진나라의 수도 함양도 이 곳에 있었고, 항우가 파괴해 버렸지만 초한쟁패시기를 거처 천하를 재통일한 전한이 다시 장안으로 재건해 수도로 삼았고, 신나라때도 이쪽이 수도. 후한이 세워질 당시 왕망과 경시제, 적미군의 트리플 콤보로 또한번 초토화되면서 뤄양에 수도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이후에도 관서, 관중지역의 중심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오호십육국시대에는 이 시기 서쪽지역에 성립된 국가였던 전조, 전진, 후진의 수도였고, 북위시절엔 약간 뒤로 밀렸다가 북위의 분열로 서위가 성립되면서 다시 수도가 되었다. 서위에서 북주까지 전한대 장안을 수도로 삼았으나 수나라때 수문제가 전한대 장안성에서 약간만 자리를 옮겨 대흥성을 쌓았고, 당나라때 대흥성이 다시 장안으로 개칭되어 수-당대 장안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당나라가 망하면서 수-당대 장안성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이후 지력의 쇠퇴가 겹치면서 다시는 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게 된다. 

 

고대로부터 시작해 수 차례에 걸쳐 도읍이 된 곳이지만, 한편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 차례 파괴되고 다시 지어지면서 그 때마다 실제 도읍의 위치가 조금식 바뀐 곳이기도 하다. (진나라의 함양과 한나라의 장안, /당의 장안은 각각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3.2 베이징  

 

중국 근세~현대까지 가장 수도로서의 역사가 깊은 곳.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였던 계, 또는 연경이라고 불리면서 주요도시로 대두. 이후 전연, 후연, 북연 등 동북쪽에 자리잡은 왕조들이 이지역을 수도로 삼았다. 그래도 이시기까지는 아직 지나치게 동북쪽으로 몰려 있고 하북을 넘어선 지역과의 연계망이 원활하지 않아 수도로서 적당한 편은 아니었으나 수양제가 이지역을 대운하의 북쪽 종점으로 삼으면서 여타 지역과의 수송, 통신망이 갖춰지게 되었다. 당나라때도 동북쪽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중요시되었고 안록산의 난당시 안록산의 핵심 거점도 이곳. 

 

오대십국시대를 거치면서 이 지역은 연운십륙주에 속하여 요나라에게로 넘어갔고, 마찬가지로 5경 중 한곳이자 매우 핵심적인 지역으로 중요시되었다. 북송은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 이후 금나라가 들어서면서 화북까지 빼앗긴다. 금나라또한 이지역을 수도급 대도시로 중요시하여 동북변 관리의 중추로 삼았다. 그러나 이렇게 남북 대치형국이 펼처지면서 수양제의 대운하로 구축되었던 연계망이 끊겼다. 

 

이 연계망을 다시 잇고, 베이징을 완전한 수도로 만든 게 원나라, 원나라는 대운하를 철저하게 복구하여 강남의 물자를 운송할 체계를 완성했고, 베이징(대도(大都))을 기점으로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역참제도를 완비하여 베이징을 북부의 중심도시에서 중국 전체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로 부흥시켰다. 이렇게 수도로 완비된 것을 이후 중국 통일국가인 명나라, 청나라도 아주 잘 써먹었고, 산해혁명 이후에도 중국의 수도 하면 베이징으로 인식될 정도였으며, 오늘날까지 중국의 수도가 되고 있다.

 

 

3.3 뤄양 

 

중국 고~중세에 시안에 맞먹는 위상을 차지한 고도. 낙양으로 유명하다. 황하의 지류인 낙수가 남쪽에 흐르고 있어 '()' 또는 '낙읍'으로 불리고, 도시의 입지가 워낙에 좋아서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때부터 주요 도시로 거론되던 곳. 서주의 수도 호경이 견융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되어 버리면서 동주가 이쪽으로 천도하여 춘추전국시대 명목상이나마 종죽국인 주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전한시대에도 유방이 처음에 낙양을 수도로 삼으려 할 정도였고, 후한은 아예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동탁의 천도 과정에서 쑥대밭이 되었지만 조조는 이지역을 꾸준히 복구했고, 선양을 통해 위나라가 세워지면서 복구한 낙양을 다시 수도로 삼았다. 이후 서진까지 이어진다. 

 

오호십육국시대초기 수도로 번창하던 낙양은 다시 이민족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낙양은 대도시 중 한곳으로, 몇번이나 동진의 북벌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북위가 선비족의 한화정책을 밀어붙이는 와중에서 낙양은 또다시 수도로 주목받게 되었고, 효문제에 의해 이전보다 더 큰 대도시로 확충되어 수도가 되었다. 이후 북위가 분열되고, 시안을 수도로 한 수나라에 의해 재통일되었지만 여전히 낙양은 제2수도, '동도'로 불리며 종종 황제와 조정이 이동하여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 이후 오대십국시대에 후량은 이지역을 서도하남부로 삼고 제2수도로 중시하였으며, 후량을 멸망시킨 후당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이때를 마지막으로 이지역은 수도가 되지 못한다.

 

  

3.4 난징 

 

중국 강남정권의 고도. 최초로 이지역이 이름이 거론된 건 진시황의 천하 순행 시기. 진시황은 이지역이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소나무를 빽빽히 심고 '금릉(金陵)'이라 불리던 이곳을 '말릉(末陵)'이라고 이름믈 바꿨다. 이지역이 수도가 된 것은 삼국시대 손오에 의해서이다. 손권은 이지역을 수도로 삼고 이름도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의 건업(建業)으로 바꿨다 

 

이때부터 난징은 강남 지역에 세워진 한족 왕조인 육조시대의 주 무대가 되여 역사에 오르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휘를 위해 건강(建康)이라고 이름이 개칭된다. 그리고 통일왕조인 당나라 시기에 이름이 다시 금릉(金陵)으로 원상복귀. 오대십국시대에는 십국에 속하는 오와 남당의 수도였다. 

 

14세기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을때 최초의 수도를 이곳으로 잡았다. 이때 베이징을 '북경'이라고 부르면서 이지역이 자연스럽게 '남경'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영락제가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제2수도가 되었고, 이후 북경이 완전한 수도로 확정되면서 수도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이후 남명이 이지역을 기점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뭐 제대로 되지 않고 금세 몰락. 그래도 대도시는 대도시라 신해혁명 이후 중국의 혼란기때 남경을 점령하고 이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남경정부가 몇번 성립되었던 적이 있다. 

 

 

3.5 카이펑 

 

'개봉'이라고 불렸던 도시. 오대십국시대~북송의 수도. 위의 네 도시에 비하면 역사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당나라를 멸망시킨 주전충의 봉지가 이곳이었기 때문에 주전충은 후량의 수도를 카이펑으로 잡았다.(동도개봉부) 이후 후당시대에 잠시 낙양이 수도가 되었으나 다시 카이펑이 수도가 되었고, 이는 북송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북송이 정강의 변으로 멸망하면서 그 지위를 상실. 

 

지리적으로는 양쯔강과 황하를 잇는 대운하 남부구간의 북쪽 종점이고, 황하에서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대운하 북부구간의 출발점이라는 위치를 지닌다. 광활한 평야라 방어에 취약점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될만큼 도시가 번창한 건 이때문.

 

 

3.6 항저우 

 

남송의 수도. 위에서도 언급했듯 앞선 5개 고도에 비한다면 격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다. 남송의 수도로 번창했으며, 지리적으로는 대운하의 남쪽 종점이라는 장점이 있다. 난징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

 

 

3.7 안양(업군) 

 

화북 평원의 주요 도시. 은허의 발굴로 이 지역이 상나라의 수도임이 확정되면서 7대 고도에 이름을 올리게되었다. 이때문에 이전까지 사실상 은나라의 수도 취급이던 뤄양은 그 지위를 빼앗겼다.(...) 어쨌든 은나라 시기의 수도로 번영했고, 이후에도 주요도시로 거론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위의 영토였고, 후한시기에 화북 평원의 중심지로, 기주의 주도가 되어 번영했다. 하북의 패자였던 원소, 원가를 제거한 조조가 이지역을 자신의 세력의 핵심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뤄양의 압도적인 위상에 밀릴 수밖엔 없었고, 위나라가 건국된 후 수도는 뤄양이 되었다 

 

다시 이지역이 수도가 된 것은 북위의 분열 이후. 동위의 실권자인 고환은 업을 수도로 삼았고, 이는 북제시기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수나라의 통일 후에 그 지위를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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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화대 2014. 5. 19. 22:23

5/16(금)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전 07:45

계획해오던 2박3일간의 가족여행을 출발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힐링이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좋은 곳이 나타나면 여유있게 감상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있으면 맛있게 먹으면서 즐기는 여행으로 정한것이다.

 

우선 첫날은 38번 국도를 타기로 했다.

평촌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신갈까지 간다음 영동고속도로로 여주JC,

그리고 감곡IC에서 나가서 천등산 제천 영월 태백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집에서부터 영월 청령포에 도착할 때까지 신호한번 걸리지 않고 논스톱으로 가서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니 09:40이다.

 

청령포는 조선조 단종임금의 애사가 있는곳이다.

영월에는 큰 강이 3개가 흐르는데 주천강과 평창강 그리고 동강이다.

다시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 서강을 이루는데

청령포는 서강이 섬처럼 감싸고 도는 곳에 있다.

한편은 절벽이고 다른 3면은 강이어서 육지와는 완전히 고립된 곳이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강탈한 삼촌 세조가 단종을 한양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쉽게 탈출할 수도 없는 그런 지형에 유배시킨 곳이다.

슬픈 역사와는 달리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진한 솔향을 내뿜는 아름드리 금강송 숲과 굽이도는 서강의 강물이

한폭의 동양화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해 낸다.

여유롭게 걸으며 시간을 잊은 채 온몸으로 힐링을 했다.

 

다음코스는 정선 하이원리조트로 정했다.

원래는 강원랜드로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하이원으로 바뀌었고

우리나라에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규모의 카지노다.

금요일 오전 인데도 카지노 내장객 수가 벌써 2,300명이다.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려고 일부러 택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고 절차도 까다로워 불쾌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블랙잭 바카라 원카드 투카드 파이브카드 스롯머신 등

온갖 들어보지도 못한 게임의 종류가 많았고 여기저기서 오만원짜리 지폐뭉치를

칩으로 교환하는 장면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1회배팅 천원짜리 만원어치만 경험하게 한 뒤에 소감을 물어보니

다시는 오고싶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교육을 제대로 시킨셈이다.

그러나 무료로 제공되는 홍삼차 레몬쥬스 토마토주스 불루베리쥬스 커피 등

차를 마셔가며 가족모두가 함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점심을 태백한우로 하기로 하고 태백으로 향했다.

20년전 태백실비식당에서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그곳을 찾아가는데

집식구가 작년에 라운딩을 하러 왔다가 맛있게 먹었다며 황지시장근처의

실비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맛있게 먹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자세한 정보가 없어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찾다가 결국 황지자유시장 근처의

태백한우실비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참숯 직화구이에 불에 타지않게 조심하면서 한점한점 구워내니 모두가 맛있다며

만족해 했다.

 

점심을 마친 후 삼척 신기 환선굴로 향했다.

태백에서 도계까지의 굽이굽이 도는 도로를 따라 가며 경치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도계에 다달아 블랙밸리골프장 이정표를 보더니 집식구가

이제야 그 맛있었던 실비식당이 태백이 아니라 도계에 있단다.

나와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태백에서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이게 한

집식구를 놀렸다.

 

15:50 삼척 신기 환선굴에 도착했다.

환선굴은 5억3천만년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동양 최대규모라고 한다.

1990년에 직원들을 인솔하여 왔던 기억은 있는데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산세가 좋은 덕항산 자락에 있어서인지 계곡물도 맑고 수량도 풍부하다.

계곡의 풍광은 바위와 물과 연초록 나무가 어우러져 정말 멋졌다.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입구에 다다르니 동굴에서 물이 폭포를 이루며

쉴새없이 흘러내린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니 석주며 석순이며 미인상 관음상 하트문양 등 갖가지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내고 크고 작은 폭포들이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한시간 넘게 걷는데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지를 몰랐다.

 

또 다시 신기 환선굴을 뒤로하고 동해시로 들어섰다.

저녁을 먹기가 조금 일러서 추암해변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추암해변은 촛대바위로 유명한 곳인데 동해안에 처음 도착한 설레임과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와 소나무,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했다.

추암해변은 정동진이 서울을 기점으로 정동쪽임에 반하여 남한산성을 기점으로

정동쪽이라고 한다.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촛대바위 형제바위 고운 모래사장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한 곳이다

 

저녁은 집식구의 제안으로 해물찜을 먹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추천 장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금방 찾았다. 삼삼해물찜 식당인데 우리가 들어서니

다섯팀정도가 푸짐한 해물찜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우리도 자릴잡고 해물찜에 소맥을 곁들여서 첫날 만찬을 기분좋게 즐겼다.

 

저녁을 먹은 다음 속초중앙시장에 도착하니 21:00이다.

속초의 유명한 닭강정을 사고 시장을 한바퀴 돌아본 다음

숙소인 국민은행 속초원수원에 도착하여 첫날 여장을 풀었다.

아이들과 닭강정에 맥주를 한잔 하고 아침 일찍 깨우지 말라는 협박성 경고를

받은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금요일은 아듀!

 

5/17(토) 눈을 뜨니 어김없이 05:00이다.

살짝 나와서 연수원주변을 산책하고 샤워를 마치고 왔는데도

모두 일어날 줄을 모른다. 할수없이 핸드폰으로 뉴스보기 놀이를 하며

깨기를 기다렸다. 오늘 일정도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아침식사를 하고 09:00 출발 첫 목적지를 양양에 있는 대명쏠비치로 정했다.

햇살좋은 오전에 잘 다듬어진 정원과 푸른 바다가 파도를 넘실대며 반갑게 맞아준다.

비치솔에 앉아 커피를 맛있게 마시며 가족단위 또는 연인끼리 자연과

잘 조화된 모습을 감상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다음여정은 양양 하조대로 잡았다. 하조대는 속초에 여러번 왔지만 낙산사에 가려져

스쳐지나기만 했던 곳이어서 풍광이 자못 기대 되었다.

양양 하조대는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주위의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진 가히 동해안의 절경으로 손꼽을만한 한 곳이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은둔하며 혁명을 도모한 곳이라 하여

하조대라 명명하였다는 등 많은 설화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음코스 역시 가까운 곳에 있는 죽도암으로 정했다.

양양 인구리 포구의 왼편으로 불쑥 솟은 동산 하나가 바닷가에 돌출돼 있는데 이곳이 죽도다.

죽도 왼편에 설치된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니

죽도정자가 숲속에 숨어 있다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정자와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동해안의 절경은 정말 아름답다.

정자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왼편으로 돌면 죽도암으로 연결된다.

건물이라곤 법당하나와 시멘트집 한채의 작은 규모 암자지만 해수보살상이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담한 암자다. 얼른 들어가 구배를 드리고 있는데 집식구가 따라들어온다.

 

점심은 막국수와 수육으로 유명한 강릉 삼교리동치미막국수를 먹기로 했다.

이곳 역시 집식구가 추천한 곳이다. 한적한 곳에 있는 식당임에도 어떻게들 알고

찾아왔는지 서빙하는 종업원들이 손이 모자랄 정도로 붐빈다.

그만큼 널리 유명세를 탈 정도로 검증된 맛집인것 같아 그 맛이 기대가 되었다.

역시 기대한 대로 막국수와 수육맛이 일품으로 입에 살살 녹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송림사이로 클로버가 하얀꽃을 자랑하듯 널려있다.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넷이 앉아서 찾는데 집식구가 아들이랑 내기를 하잔다.

네잎클로버 하나에 만원씩 이란다. 아들이 금새 두개를 찾아내자 집식구가 얼른 백기를 든다.

아들은 이런것 찾는것은 자기가 선수라며 으쓱댄다.

 

다음은 한옥 채험장인 선교장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정동진으로 가기로 했다.

모래시계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진 정동진역에 내려서 해변에 내려섯는데

웨딩비디오를 찍는 모습도 보이고 레일바이크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바로 옆에 시원한 바다전망과 배모양으로 멋지게 지어진 선크루즈리조트가 우리를 부른다.

아닌게아니라 미국CNN에서 한국의 가장아름다운 집으로 보도된 곳이라고 한다.

매우 아름답게 잘 다듬어진 정원과 바닷가 기암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나무계단,

그리고 투명한 유리에 까마득한 바닥이 보이도록 한 전망대가 무척 마음에든다.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가득담고 다시 속초로 출발했다.

 

속초 중앙시장에 다시 들려서 모시떡과 봄나물 선물용 닭강정을 사고

저녁먹기로 예정된 청초수물회 식당으로 갔다.

엑스포 해양공원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식당인데 이곳역시 토요일저녁답게 식객들로 붐빈다.

주차를 하고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딸레미가 이미 주문을 마쳤단다.

오징어물회와 아바이순대, 감자송편 그리고 조갯살탕이 나왔다.

아이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어제 그리고 오늘의 성공적인 코스선택을 자축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니 21시가 조금 안됐다. 둘째날도 아듀!

 

5/18(일) 오늘은 마지막 일정이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신 다음 짐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 행선지는 대관령 양떼목장이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양떼목장으로 들어서니 잘 가꾸어진 목초지와 순하게 생긴 양떼들이 우릴 반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과 황병산 선자령으로 둘러쌓인 목장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 양들은 사람들에게 노출 되는것에 익숙한듯 피하지 않고 잘 따른다.

목장을 한바퀴 일주를 한 다음 2박3일간의 최종 목적지 우리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