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정보

천화대 2017. 4. 6. 10:23

- DJ대통령 단골 ‘신안촌’ 이금심 대표. ‘엄마집 신안촌’을 운영. 호남의 해산물을 직송, 호남음식 1986년에 문을 연 ‘신안촌’은 업력이 30년. 


-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딸네 신안촌'의 밥상 차림. 엄마집과는 얼마쯤 다르다.

서울의 호남음식 맛집 

토담 (교대역 4번출구) : 02-582-5679

대중적인 모임을 가지기 좋은 곳이다. 가격대도 저녁 술자리 3만원 안팎. 호남 출신 여주인의 음식 만지는 솜씨가 매섭다. 홍어도 가능하다. 

해남천일관(역삼동 국기원사거리) : 02-568-7775 

최고의 호남 음식을 만날 수 있다. 가격은 비교적 높다. 각종 장류나 식재료 모두 최상품이다. 정성도 놀랍다. 수제 떡갈비 등도 압권이다. 

굴비마을 (학동사거리, 신사동 652-8,) : 02-518-4424

이름은 ‘굴비마을’이지만 꼬막, 굴비, 홍어, 덕자 등 호남 해산물 전문점이다. 점심은 인근 직장인을 위하여 싼 가격에 낸다. 저녁 술자리는 가격이 높다. 

노들강 (논현동 184-19) : 02-517-6044

민어로 유명해졌지만 역시 호남의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다. 각종 탕이나 회, 찜 등이 모두 가능하다. 음식 맛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목포자매집 (논현동 226-4) : 02-543-6729

호남 해산물 전문점 중에도 노포다. 현지 직송 식재료를 사용한다. 낙지탕탕이나 소낙비(쇠고기+낙지) 등을 서울에 전파했다. 밑반찬이 깔끔하다. 콩나물국이 압권. 

좋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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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대 2011. 10. 5. 12:22

오미자(五味子)는 열매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열매와 껍질은 달면서 시고, 씨앗은 맵고도 쓴데 모두 합치면 짠맛이 나기 때문에 오미자라고 했다.

열매 하나에서 여러 맛이 나는 만큼 약효도 다양할 것이라고 여겼는지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시고 짠맛은 신장에 좋고, 맵고 쓴맛은 심장에 좋으며 폐를 보호하고 단맛은 비위에 좋다고 나온다.

허준도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오미자는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눈을 밝게 하며 신장을 덥혀 양기를 돋워 준다고 했다. 남자가 먹으면 정력에 좋고 소갈증을 멈추며 기침이 나는 것과 숨이 찬 것을 치료해 준다고 적었다.

원나라 때 몽골 출신 의사인 홀사혜가 쓴 의학서이자 요리책 '음선정요(飮膳正要)'에도 오미자가 맵고 달고 시고 쓰고 짠 다섯 가지 약의 성질을 갖고 있는 과실이라며 기운을 돕고 정력을 보완한다고 풀이했다.

이처럼 다양한 약효가 있다는 오미자인데 그중에서도 정력을 높이는 강장효과가 가장 뛰어났던 모양이다. 오미자의 강장효과는 '소녀경(素女經)'과 함께 지금은 사라진 고대 중국의 방중술 비법을 적은 '동현자(洞玄子)'에도 임상 사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중국의 쓰촨 지방인 촉나라 태수로 여경대라는 인물이 있었다. 나이가 칠십이 넘어 성적 능력이 쇠약해졌지만 우연히 묘약을 먹고는 연속해서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 하지만 부인이 덜컥 병이 들었다. 칠순이 넘은 남편에게 너무 시달렸기 때문이다.

약효를 경험한 여경대가 이러다 자칫 사람이 상하겠다 싶어 마당에 약을 버렸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수탉이 버린 약을 냉큼 쪼아 먹었다. 그러더니 양기가 솟구쳤는지 옆에 있던 암탉에게 덤벼들어 올라타더니 한편으로는 교미를 하고 한편으로는 머리를 마구 쪼아댔다. 이렇게 며칠을 덤비니 마침내 암탉의 머리가 벗겨져 대머리가 됐다.

이를 본 사람들이 약의 이름을 대머리 독(禿)자에 닭 계(鷄)자를 써서 독계산(禿鷄散)이라고 지었다. 이 약이 동현자에 나오는 전설의 정력제인데 주원료가 오미자다.

이들 이야기에서 보듯 정력에도 좋지만 오미자를 계속 먹으면 피부가 어린이처럼 고와진다고도 했다. 4세기 진(晉)나라 때 사람인 갈홍이 '포박자(抱朴子)'라는 책을 썼다. 도교에서 춘추전국시대 이후 전해 내려오는 신선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여기에 신선들이 먹었다는 선약과 불로장생의 비법도 함께 보인다.

포박자 내편(內篇)에 각자에게 맞는 고유의 장수식품을 먹고 수백 살을 살았다는 여덟 명의 신선 이야기가 나온다. 이문자(移文子)라는 신선이 16년 동안 오미자를 복용했더니 장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게 변하며 물에 젖지 않아도 항상 촉촉하고 윤기가 돌면서 탄력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오미자는 고려에서 나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5세기 말 양나라 때 도홍경이 주석을 달았다는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에 고려의 오미자가 으뜸이라고 했고 조선후기 역사가인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도 중국의 의학서인 '명의별록(名醫別錄)'을 인용해 오미자는 고려 것이 살이 많아 최상품이라고 적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피부가 고운 이유도 까닭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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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대 2011. 10. 5. 12:15

가을 음식 중에 국화를 소재로 만든 음식이 꽤 있다. 국화차나 국화주 모두 가을에 마셔야 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화꽃으로 만드는 국화전도 요즘이 제철이다.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반죽해 동그랗게 빚은 후 그 위에다 국화 꽃잎을 붙여서 만든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봄철 삼짇날에는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고, 가을 중양절(重陽節)에는 국화전을 부쳐서 조상님께 바친다고 했다. 중양절이 도대체 어떤 날이며 이날 왜 국화로 전을 부치거나 국화차, 국화주를 마셨던 것일까.

국화전을 비롯해 국화차, 국화주 모두 가을이 국화의 계절이니 제철에 많이 피는 꽃으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여기겠지만 국화에는 또 다른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은 사라진 명절인 중양절은 음력으로 9월 9일(올해는 양력 10월 5일)이다. 음양으로 따지면 홀수는 양(陽)의 숫자이니 예전에는 홀수가 겹치는 날을 기념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설날, 삼짇날, 단오, 칠석, 중양절이 모두 홀수가 겹치는 날이다.

중양절은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다. 이 때문에 요즘에 단풍놀이를 겸해서 가을산행을 가는 것처럼 높은 산에 올라 가을을 맞았다. 이때 반드시 산수유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가서 국화꽃을 따다가 전을 부치거나 국화차, 국화주를 마셨다.

산수유를 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을 쫓아내 액운을 막을 수 있고 국화를 먹으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수유는 나쁜 기운을 피한다는 뜻의 벽사옹((벽,피)邪翁), 국화는 수명이 늘어난다는 뜻의 연수객(延壽客)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처럼 중양절은 양의 숫자가 겹친 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을을 환영하고 다가올 겨울철에 대비해 재앙을 막자는 액땜 의식이 담긴 날이다. 보통 중국에서 전해진 명절로 알고 있지만 고대 북방민족의 공통적인 명절이었다고 최남선은 주장했다. 다만 고려 이후에 중국적 색채가 강해졌을 뿐이라고 한다.

어쨌든 중양절에 사람들이 국화를 먹은 이유는 4세기 진나라 학자인 갈홍이 쓴 '포박자(抱朴子)'의 국화와 장수에 관한 전설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 국화에 대한 옛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남양이라는 곳에 감곡수(甘谷水)라는 약수가 있다. 좌우편에 모두 국화가 피어 있어 꽃잎이 물 위로 떨어졌다. 국화꽃이 떨어진 물맛이 너무 감미로워 그곳 사람들은 우물을 따로 파지 않고 꽃물을 그대로 마셨다. 이 마을에는 오래 살지 않는 이가 없어서 고령자는 150세까지 살았다."

국화가 몸에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국화는 두통을 없애고 귀를 밝게 해주며 부스럼을 치료한다고 했다. 조선후기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국화는 약재가 될 수 있고 또 술로 담가 놓고 수시로 마셔도 되는데 그 싹은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감미로운 맛의 노란 국화나 하얀 국화가 효과가 좋다고 적어 놓았다.

요즘은 국화전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화차나 국화주는 여전히 마신다. 한창 국화꽃이 필 계절이 왔으니 단지 꽃의 모양만 감상할 것이 아니라 국화를 바라보며 건강도 함께 챙겼으면 좋겠다. (출처: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