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사찰을찾아서

도시애들™ 2009. 1. 1. 01:48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해남의 미황사 이다. 물론 가을을 따지자면 단풍이 우선이겠지만 여짓것 내가 찾아다닌 사찰의 수가 꼭 108번째가 되는 곳을 이 미황사로 잡았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사찰을 찾아보지를 않았다. 물론 다닌 사찰의 수는 이것보다 더 많겠지만 카메라를 못챙기고 간 사찰도 있고 또 자료가 없어진 곳도 있고 또 가고 싶어도 그렇게 일이 생겨 못가던 해인사도 한여름에 다녀와 이젠 모두 성취한 기분이었는데 가을 여행을 준비하며 사찰일 세어보니 107군데 째로 들른 곳이 지난 8월 초하루에 귀경하며 들러 본 공주 신원사이다.


그래서 이번 가을 여행에서는 미황사를 108번째의 사찰로 목표를 삼았기에 아무 사찰도 들르지 않고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완도를 끝으로 완도대교를 넘어 13번국도를 이용 공사 중인 방두 마을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서정지를 지나 작은 휴식터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올라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다. 미황사 주차장은 삼단계로 되어있다. 우리는 중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측도로를 이용 가파른 길로 올랐다. 미황사에 오르는 길목에선 달마산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 미황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


땅끝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미황사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다는 것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찰이다. 그리하여 미황사는 바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창건이야기, 중창이야기를 비롯 경내의 성보에도 바다 냄새가 가득한 사찰이다. 미황사의 바다는 부처님 세계이며, 부처님 나라로 가는 길이다. 땅끝은 중생들에게는 삶의 종착역이지만, 수행자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부처님나라 서방극락정토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는 항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황사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행공간이다.


"미황사사적비"에 의하면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때 인도 국왕이 한 척의 배에다 법화경과 화엄경, 비로자나 및 여러 불상과 불화를 가득 실고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獅子浦口)에 들어와 이를 의조(義照) 스님이 옮겨 봉안하게 되면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미황사의 불법은 부처님 나라에서 직접 전해 받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인들이 부처님 나라로 가는 길이 바로 미황사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부처님 나라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기 위한 중생들의 발원과 수행의 흔적이 미황사 곳곳에 남아있다.


[마당에 올라서면 보이는 미항사 경내의 첫건물 자하루가 돌계단 위로 보이고...]


대웅보전 4개의 초석을 살펴보면, 게와 거북이, 자라들이 바다 속에서 노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또한 깨달음을 증득하고 적멸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계신 부도전의 세계에 가보면, 선지식들이 성취한 깨달음의 세계마다 거북이 자라 가재 게 등 바다 물고기와 노루 토끼 다람쥐 새 사자 말 같은 동물 그리고 연꽃과 화초들이 장엄하고 있으며, 용은 깨달음의 세계를 호위하고 있다. 미황사는 끝과 시작을 함께 공유한 시간적 공간입니다. 수행의 시간을 통해 불법의 진리를 깨달으며 부처님 나라로 항해하는 배를 탈 수 있는 공간을 부여받게 되는 도량이다. 라고 "코리아템플"에서 알려준다.


[좌측엔 차향이 풍기는 전통찻집이...]


[우측 선방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단풍나무가 눈길을...]


[단풍나무 밑에서 올려다본 달마산 하늘선...]


[경내로 들어 가려면 돌계단을 올라 자하루 밑으로 들어서야...]


[정면에서 보면 자하루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우측 축대위에서 보면 만세루라는 현판이...]


미황사 중심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누각으로 2001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형 맞배집이다. 하층 어칸을 통로로 사용하고 좌우는 각각 벽과 문을 달아 사용하고 있다. 상층은 전체적으로 트인 한 공간으로 한문학당이나 수련회 등 대규모 행사 때 사용하고 있다. 출입은 배면으로 드나드는데 어칸을 중심으로 좌우 끝에서 두 번째 칸 앞에 통로용 목조다리를 가설하였다. 큼직한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았으며 초석은 널찍한 자연석을 놓았다. 초석 위에 누하주를 세웠는데 정연하게 치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휜 목재를 그대로 썼다. 누하주 기둥머리는 귀틀로 짜서 상층 마루바닥을 형성하였다.


[자하루 정면엔 두걔의 입구 나무다리와 만세루라 쓰인 현판이 걸려있고...]


누상주 기둥머리는 창방을 결구하고 익공을 짰는데 출목 하나를 두었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화반 하나를 각 칸마다 끼웠다. 화반 모양은 일반적인 화반과 달리 게, 사자, 등을 맞댄 거북이, 꽃 등을 새겨 수중생물과 인연 깊은 미황사의 건물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구조는 앞뒤 기둥 위로 거대한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친 다음, 파련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친 5량가를 결구하였다. 천장은 구조를 노출한 연등천장이며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 상태이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둔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로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으며 좌우에는 풍판을 달았다.


[나무다리가 약간 경사진 듯 한 것이 안정적으로...]


하층은 통로를 제외한 나머지 벽은 화방벽을 들였는데 정면과 배면은 살홍창을 설치하였지만 좌우 측면은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상층 좌우 측면은 전체적으로 판벽을 치고, 전후면은 문을 달았다. 전면은 밑에 머름을 두고 위에 2짝 판문을 달고 그 안에 2분합문을 겹으로 설치하였다. 배면도 출입문을 단 칸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부에 머름을 들였다. 좌우의 가장 끝 칸은 머름 위에 벽을 들이고 들창을 달았다. 어칸과 좌우 협칸은 머름 위에 2분합문을 설치하였다. 건물 측면의 상인방 위쪽에는 미황사 창건설화를 벽화를 그려 넣었다.


[담장엔 가을을 무르익어 가게 하는 담장이가 발갛게...]


[달마전(승방)뒤로 달마산 스카리라인이 정말 환상적이고...]


[기와공사가 한창인 대웅보전 뒤로는 달마산 바위들이 들쑥날쑥...]


[미황사 범종각(梵鐘閣)...]


범종이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범음구를 말한다. 이 범종은 미황사의 누각 만하당과 동일 수평선상의 왼쪽에 위치하는 범종각에 모셔진 것이다. 2004년 범종각을 새로 지으면서 함께 조성하였다. 대개 근년에 조성된 범종은 통일신라 범종의 예를 따른 예가 많이 전하는데, 이 범종 역시 통일신라 범종의 예를 따랐다. 종정(鍾頂)에는 음통을 감싼 용뉴를 장식하고, 종신(鐘身) 상단과 하단에는 당초문이 장식된 상대와 하대를 둘렀다. 상대 아래로는 9개의 종유가 있는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중앙 당좌(撞座) 위에는 ‘달마범종(達摩梵鐘)’이라 새기고 좌우에 4분의 공양비천상을 새겼다.


한편 종신에는 의례히 기록되는 시주자명이나 화기가 없는데, 다만 당좌 아래 ‘성종사(聖鐘社) 제112호’라는 제기가 있어 그 제작지를 밝히고 있다. 누각 바로 옆에 자리한 종각으로 2004년에 새로 지었다. '미황사대종중성기'에는 창건 때 조성한 종이 오래되어 도광 14년 즉 1834년에 새로 종을 조성했다고 하나 종은 물론 종각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현재 종각은 평면 사방 1칸의 단층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창방과 평방을 걸고 다포계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외2출목, 내2출목으로 내외 출목수가 같다. 내부 천장은 대들보 높이에 맞춰 우물반자를 가설하여 구조를 볼 수 없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모임지붕을 만들고 한가운데 돌로 만든 절병통을 장식하였다. 내부는 대들보 사이에 가로질러 보를 걸고 거기에 종을 매달았다. 바닥은 종구가 향한 바닥 부분만 약간 옴폭 팠는데 음향효과를 노린 시도이다. 대웅전 마당을 향한 면에 현판을 걸고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다. 현재는 단청하지 않고 백골 상태로 두었다.


[미황사 종무소가 종각옆에 자리하고...]


[요사채의 담장이 아주 인상적이고...]


[대웅보전은 기와를 올리느라 분주한...]


[미황사 향적당...]


[미황사 뜰 옆 사각 우물이...]


[세심당근처 마당도 어지럽긴 마찬가지...]


[미황사 향적당을 우화당쪽에서...]


[미황사 우화당...]


[미황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대웅보전 왼쪽에 자리한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재 건물은 1997년 원래 자리에 새로 지었다. 내부에는 뒷벽과 측벽에 붙여서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중앙에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해 시왕상 등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좌우 출입문에는 금강역사상이 시립해있는데 오른쪽의 금강역사 앞에 근년에 조성된 법고와 법고대가 모셔져 있다. 건물은 대웅전과 같은 높이의 석축 위에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널찍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민흘림으로 치목한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창방을 결구한 뒤에 익공을 짰는데 1출목을 두었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화반을 1구씩 받쳤다. 구조는 5량가로 짰는데 앞뒤 기둥 위로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종보와 종도리를 올렸다. 중도리 사이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지만 그 외곽은 서까래를 드러낸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로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다. 지붕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ㄷ자형 불단으로 인해 전면 3칸에만 출입문을 달았다. 어칸에는 4분합이며, 좌우 협칸에는 3분합문을 설치하였다. 다른 면은 벽을 치고 상하로 나눠 하부는 긋기단청으로 마감하고 상부는 벽화를 그려 장엄하였다.


[명부전 내부의 중앙불단...]


명부전은 대웅보전 왼쪽에 있다. 안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해 시왕상 등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중앙 지장보살상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협시로 중앙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였는데, 지장상만이 개금되었으며 화염문의 광배를 갖추고 있다. 얼굴은 원만상으로 가늘고 긴 눈, 작은 코와 입을 갖추고 있으며, 승문형의 머리를 하고 있다. 두 눈썹 중앙에는 백호가 있는데, 두꺼운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지 않았고, 신체는 건장하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으로 걸치고,


가슴 아래 드러난 내의는 띠매듭으로 고정하였다. 광배는 주형(舟形)인데 외곽에 화염문이 두르고, 안쪽에는 5분의 두 손을 합장한 비천을 투각하였다. 지장보살상 옆으로는 합장인을 결한 도명존자와 함을 받쳐 든 무독귀왕이 시립하였으며, 그 좌우로 10분의 시왕이 의좌하고 있는데, 시왕은 각각 시자를 대동하고 있다. 이 외에 불단의 측면에는 금강저와 검을 들고 있는 2位의 금강역사가 좌우 입구 앞에 보좌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금강역사 앞에는 근년에 조성된 법고와 법고대가 모셔져 있다.


[금강저와 검을든 좌측 금강역사...]


[금강저와 검을든 우측 금강역사...]


[포근하게 자리잡은 요사채...]


[삼성각앞 석등이 눈길을...]


[미황사 삼성각 앞뜰에 서있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석등...]


[미황사 삼성각의 측면과 앞마당에 아름다운 석등이...]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이 나온다. 현재 전각은 1998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뒷벽에 일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건물 주변은 석축을 낮게 쌓아 일곽을 형성하였다. 기단은 모양이 가지런한 자연석을 외곽을 돌리고 운두가 높은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으로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워 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뒤 익공을 짰다.


주간에는 장혀 밑에 소로를 받쳤다. 구조는 간결한 3량가로 결구하고 천장은 구조를 드러낸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기와는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고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으며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면에만 문을 달았는데 어칸에는 4분합문을,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이다. 문짝은 궁판을 두고 그 위는 띠살로 짰다.


[미황사 삼성각 칠성탱(七星幀)...]


삼성각 내부에는 뒷벽에 ‘一’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3폭의 불화는 모두 불기 2970년 계미년(癸未年, 1943)에 조성하였다. 칠성탱은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표현한 것으로 화면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그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과 칠성을 묘사한다. 가로로 긴 폭의 이 칠성탱은 본존의 광배 뒤쪽으로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좌우로 길게 태상노군(太士老君), 좌보필성(左補弼星), 우보필성(右補弼星) 등의 권속을 배치하고, 화면 좌우 상단에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칠성(七星)을 묘사하였다.


[미황사 삼성각 독성탱(獨聖幀)...]


삼성각 가운데에 걸린 칠성탱의 왼편에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독성탱의 독성은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수선(修禪)하여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리는 나반존자(那般尊者)를 일컫는다. 이 독성탱은 크기는 물론 제작시기도 산신탱과 같다.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독성이 왼손에 염주를 들고 중앙에 앉아 있고, 차를 달이는 동자와 여인이 좌우에 작게 등장한다.


[미황사 삼성각 산신탱(山神幀)...]


삼성각 가운데 있는 칠성탱의 오른편에 걸려 있다. 산신탱의 크기는 97× 112cm인데, 그 앞에 노란 호랑이를 탄 산신상을 함께 모셨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화면 왼쪽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등에 걸터앉은 산신과 그 좌우에 동자와 천녀가 배치되어 있다. 동자와 천녀는 함께 봉안되어 있는 독성탱과 모습이 흡사하다. 배경으로는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 폭포가 표현되었다.


[가운데 있던 호랑이를 탄 산신상이 구석으로 밀려나?...]


[삼성각 내에 요령종이...]


[천불심 만불심 모아 밝혀놓은...]


[미황사 삼성각 벽화...]


[미황사 삼성각 벽화...]


[미황사 삼성각...]


미황사는 사찰의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건물과 건물사이가 좀 넓은 편이어서 답답함이 없는 그런 복잡한 가운데 한가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석담들과 돌계단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야릇한 그런 맛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제일 위에 자리한 삼성각과 또 응진전을 돌아 다시 밑으로 내려가 공사 중이라고 어지럽게 만들어놓은 미황사 대웅전을 들여다 본다.


[한창 공사중인 미황사 대웅보전...]


미황사 대웅보전(보물 제947호)은 미황사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건물의 공포 모습을 볼 때 18세기 중반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건축시기도 이 무렵으로 보고 있다.내부에는 후불벽을 만들고 조선후기에 봉안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세불(木造三世佛)을 봉안하였다. 불화는 후불탱인 삼세불탱(三世佛幀, 1993년)과 좌측벽 불단에 신중탱(神衆幀, 1943년)이 모셔져 있다. 이밖에 법고대(法鼓臺)와 1979년에 주조된 중간 크기의 종(鍾), 그리고 괘불(보물 제1342호)을 담은 목조 괘불함이 들어 있다. 전각 앞에는 괘불대와 배례석이 남아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허튼층으로 쌓았다.


초석은 다듬은 것과 다듬지 않은 것을 섞어 사용하였다. 다듬은 초석은 원형주좌를 도드라지게 새긴 원형초석을 놓았는데 초석 표면에 연꽃 외에 거북이나 게 등 수중생물을 새겼다. 초석에 새긴 다양한 수중생물은 단순히 바다와 가깝다는 미황사의 입지적인 이유 외에도 민간신앙을 수용한 불교적 이해로 보인다. 기둥은 모두 약하게 민흘림으로 치목한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창방과 평방을 걸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렸다. 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안쪽 출목수가 많다. 쇠서 끝은 연봉오리와 연밥 등을 새기고 도리를 받친 초공은 봉황머리 모양으로 다듬었다. 정면 어칸 기둥 머리에 끼운 안초공은 용두를 새긴 부재를 썼다.


[미황사 대웅보전 현판...]


건물의 구조는 고주 하나를 세워 짠 2중량 형식의 5량가로 결구하였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팔작을 만들었으며 기와골 끝은 막새를 사용하였다. 지붕 양측면에는 풍판을 달아 합각벽을 만들었다. 내부 천장은 반자를 가설하여 구조를 볼 수 없다. 건물 중앙 쪽 천장은 우물반자를 수평으로 설치하였지만 외곽은 빗천장임에도 반자를 갖춘 우물천장을 들인 점은 색다르다. 정면 창호는 모두 꽃살문인데 어칸에는 4분합문, 좌우 협칸은 3분합문을 달았다.


배면과 좌우 측면에도 출입문을 달아 드나들고 있다. 대웅보전 포벽에는 천불사상을 표현하려는 듯 수많은 부처를 구름위에 묘사하였다. 불상 머리 위에는 아자형 닫집을 설치하였으며 불단에도 비천이나 괴면, 모란 등을 세밀하게 조각했지만 지금은 붉은 칠을 해서 아쉽다. 고주에는 옛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기둥 전체에 가득 그려진 용은 아직도 생동감 있다고 "코리템플"에서 알려준다.


[미황사 대웅보전 처마에 걸린 용두...]


[미황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삼세불...]


대웅보전 중앙 불단에는 조선후기에 제작한 목조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의 삼세불(三世佛)을 봉안하였다. 크기는 중앙 석가모니불이 높이 136cm이고 좌우 협시불은 이보다 조금 작다. 본존불은 볼이 통통한 계란형의 얼굴에 머리는 나발로 낮은 육계와 반달형의 계주를 갖추었다. 이마에는 백호가 묘사되었고, 작은 눈은 반개하여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명상에 잠긴 표정이다. 코와 입은 반듯하며 귀는 길게 목까지 늘어뜨렸으며,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通肩式)으로 걸치고, 두 어깨에서 흐른 옷자락은 가슴 아래에서 U자형을 이룬다. 법의 안에 보이는 내의자락은 띠매듭으로 고정하였으며,


[목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다. 좌우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크기와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취한 점만 본존불과 다를 뿐 얼굴의 생김새나 법의 착의형식은 동일하다. 삼세불의 대좌는 3단의 중앙 불단위에 3개의 연화대좌가 올려진 팔각대좌이며, 대좌의 문양은 화려하진 않지만 연화대좌에는 채색을 팔각대좌에는 금채를 하였다. 삼세불의 각각 앞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약사여래불(南無藥師如來佛)’이 적힌 화려한 불패를 봉안하였고, 후불탱으로는 1993년에 조성한 것으로 삼세불과 그 권속들을 묘사한 삼세불탱(三世佛幀)을 봉안하였다.


[해태상 위엔 법고가 있어야 하는데...]


[대웅보전 마루바닥엔 아직도 깍귀 자국이...]


[미황사 대웅보전 문창살...]


[미황사 대웅보전 문창살...]


[응진당과 만하당...]


[미황사 옥암당 부도(玉岩堂 浮屠)...]


대웅보전 오른편에는 옥암당(玉岩堂, 1721년) 부도가 있다. 이 부도는 원래 북부도군에 있었으나 북부도군의 다른 부도를 모두 도난당해 이곳에 옮겨놓았다. 그러나 옥암당 부도 역시 제작시기가 적힌 상륜부 석재가 유실되고 몸돌만 남아있는 상태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피라칸다 빨간열매 밑엔 불두상이...]


[미황사 응진당앞 문없는 담장이 너무 아름답고...]


[미황사 응진당(應眞堂)...]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데 대웅전 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았다. 전면에 쌓은 담장 사이를 개방하여 마치 돌문을 통해 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측면과 배면에도 석축을 쌓아 일곽을 형성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안에는 뒷벽과 좌우 측면벽에 붙여서 'ㄷ'자형 불단을 두고 그 위에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한 석가삼존불상과 16나한상, 인왕상, 시자상 및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불상 머리 위에는 봉황과 황룡을 조각한 판재를 걸어 닫집처럼 장엄하였다.


[미황사 응진당 측면에서 보면...]


'달마산 미황사 대법당중수상량문'에는 나한전으로 적혀 있으나 현재 현판은 응진당이다. 기단은 비교적 모양이 정연한 자연석을 사용하였는데 일부는 원래 제자리에 있던 커다란 자연암반을 그대로 기단으로 활용하였다. 초석도 자연석을 사용하고 그 위에 민흘림으로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창방과 평방을 결구한 뒤 다포계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안쪽 출목수가 많다. 정면 어칸 기둥에 끼운 안초공을 용머리 모양으로 다듬었다. 가구는 간결한 5량가로 짰다.


앞뒤 기둥 위로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천장은 대들보 높이에 맞춰 우물반자를 쳐 구조를 볼 수 없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갖춘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정면 창호는 모두 2분합인데 문살은 꽃살로 짰다. 응진당은 공포 형태나 '달마산 미황사 응진당 중수상량문'으로 미루어 1660년에 중건된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1754년에 서까래와 천장 등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뒤 지금까지 이어진 건물로 판단된다.


[미황사 응진당 불전...]


응진당은 대웅보전에서 석축을 따라 오른쪽 위편에 위치하고 있다. 내부에는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한 석가삼존불상과 16나한상, 인왕상, 시자상 및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중앙 석가불은 원만한 방형의 얼굴에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코와 입을 갖추고, 낮은 육계가 있는 나발의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었다. 두 눈썹 중앙에는 백호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외소하나 결가부좌한 두 무릎의 두께는 높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으로 걸치고,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가슴에서 U자형을 그리다 무릎 아래에서 부채꼴의 형태로 흐른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다.


[담장 넘어로 삼성각과 석등 그리고 요사지붕들...]


[담장이 담밑으로 삐꼼이 보이는 세심당...]


[햇살에 담장이색이 아름다웠는데 사진엔 별로...]


[응진당옆 선방에 자리한 만하당(선원)...]


[미황사 세심당과 뒤에 후원건물이...]


[멀리 켭켭이 둘러쌓고 있는 달마산 석봉들...]


[미황사 선방...]


[선방 뒤로 응전전옆 만하당 과 어우러져...]


[해우소, 일심관, 그리고 세심당이...]


[쑥부쟁이가 아름답게...]


[왜인지 가을을 표현하는 듯한 모습들이 정겨워...]


[담장의 단풍색보다 눈길은 멀리 보이는 달마산에...]


[한차례 공양을 띁내고 한산해진 세심당 앞마당...]


[제일 보고픈 모습이 대웅보전 이었는데 또 아쉬워서...]


[내려가며 보면 만세루아 적힌 현판이 걸린 자하루...]


[웅진전과 만하당 뒤로 환상적인 달마산의 풍광이...]


[무척이나 올라가고 팟던 달마산...]


[다녀오는데 한시간도 안걸린다는데...]


[그저 달마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다시한번 자하루에서 잡아본 만하당 뒤의 달마산...]


[끝으로 다시한번 눈도장을 대웅보전과 달마산에...]


[조용해진 세심당(수련원) 주변...]


[석조를 이용하여 감로수가...]


석조(石槽-구유) 2개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대웅전 앞뜰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사적비가 있는 부도전 건물 옆에 있다. 전자는 장방형인데 현재 음수대로 사용하며, 크기는 2.6× 2.1× 1.3m이다. 후자는 주형(舟形)으로 방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이루어 졌으며, 크기는 길이 2.25m, 폭 1.4m, 높이 0.65m로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감로수터...]


[미황사 달마전(승방)...]


[주차장 내려서는 곳에 멋진 단풍이...]


이제 그렇게도 꿈꾸어오던 108군데의 사찰을 찾아본 셈이다. 오늘도 미황사 부도는 가보질 못했다. 미황사의 꽃이라는데 하는 아쉬움은 무엇을 뜻할까? 아쉽거나 보고 싶은 곳이 생각나면 다시 들르라는 그런 마음으로 만족을 해보며 이제 다시 108사찰을 소개해놓은 포스트들을 정리해 없어진 사진은 다시 찍어 올리고 또 보고 싶었던 곳은 다시 찾아 보며 4년여 넘게 다닌 사찰들을 총정리 해 보아야겠다. 108배를 드리고 내려서는 발길 보다 더 개운하고 시원한 마음은 왜일까?.... -<끝>-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

예정대로라면 7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곡성으로 향하고 있을 시간인데...
빗줄기가 장난이 아니라 오늘은 별 수 없이 방콕함시로 엑스레이나??? 참나원...쩝...
에고 글세말여 이여름 좋은기회였는데 글게 비가 많이 온다네 ....
뭐 백여미리 온곳도 있더구먼...여긴 시원하면서 비는 안와
산책다녀오기 아주 좋았어...낼모리 아들 미국가면 난 이제
철창신세로구먼...에효 불쌍타 엄니쿠 재밋게..케케케케
아덜이 미국 가는디 우째 자네가 철창 신세랑가???
혹간 자네가 아들 대신 철창갈 일이라도??? 헐헐헐...
그나 저나 나넌 어즈개 하래네 방콕에서 엑스레이만 허벌나게 찍어더만...
지녁에넌 허리, 다리, 고개, 어깨. 으디 한군디 썽헌디가 없더구먼, 그랴... 참나원...
그려 조용한데서 야그하니 정신줄을 놓아도 되게꾸먼..ㅎㅎ
아인제 집에 엄니뿐이 시니 내가 독수리 혀야지..강쥔 이씅게..ㅎㅎ
사형제가 다 나갔으니 내 혼자 지키야지 지구를..케케
절집이라서 조용헌갑넹...
아니 우째 아덜꺼정 미국으로 쫓아 부럿능가???
아덜꺼정 믹애 살리기가 고로케 심들고 아라분가??? 헐헐헐...
아 뒤늦게...
영어 공부좀 시키느라고
아주 원어민 교육이 아니고
원어민을 맹글어 버릴깜..케케
원어민 교육꺼정도 조코 원어민얼 맹기는 것도 조치만...
그라믄 자네 늘거서 지팽이가 없잔여...??? ㅎㅎㅎ.
숨겨논 딸아나 이씅게...
젯밥이야 ...ㅎㅎㅎ
아~그려~~~
글믄 되았구먼, 그려...
근디, 은제 고론 재주가락얼 혓당가???? 참나원...
곰탱이가 궁구넌 재주는 있다고 허지만....
자네도 고론 재주가 있었구먼잉... 헐헐헐...
이것도 겁나게 길어젼네..
이제 선국사에서 놀아야 게꾸먼..
108사찰 순례를 추카추카*^^*
낭중에 저도 따라할람미다.
일단 계획부텀 세워놔야것네연.

소싯적에 해남을루 달마산 찾으러 갔다가 지나쳐
어찌어찌 하다보니 제주도까정 가게 됐다능.ㅋㅋㅋ
언제고 달마산을 가보것지여.
산중에 '황금샘'이 있다던데연.
맞아요...달마산 황금샘...ㅎㅎ
그때만 해도 산을 덜 좋아해서리..
한시간이면 올라가는 산을 ...에효...
달마산의 미황사
새롭습니다.

도솔암의
그 고적함도.

산행을 좋아하시는군요.

흔적따라 뵙고 갑니다.
반갑습니다.....나그네님...
네 ....그냥 자연이 좋을 뿐입니다.
산은 좀 힘들어서 지향했었는데..
이제와 후회가 됩니다. 달마산...참으로
서울서는 가기 힘든 곳이었는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