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 보따리

도시애들™ 2006. 8. 7. 01:30

 

거제 청마생가와 폐왕성 정상에...


 

구 거제대교를 거너자 가파르게 우회전을해 덕호리 포구를 지나 항상 보던 아름다운 해변도로를 달렸다. 아니 달렸다기 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뒷차에 방해만 안되면 사람이 걸어가는 속도로 해안가를 지났다. 거제는 벌써 다섯 번째 찾는 곳이다. 왜인지 몰라도 저제와 남해는 해안 완주를 하고 싶은 그런심정이 많았던 곳이다. 거제는 거의 완주단계인데 작은 포구길이나 또 산길정도는 돌질 않은길이 많이있다. 항상 그리던 거제땅을 다시 밟으니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이 거제를 돌아 곤양쪽해안을 돌면 남해안쪽은 강진만쪽만 하루 돌면 남해안 지도를 다 그린 것이다. 또 올여름이 가기전에 동, 남해안 지도를 다 그렸지만 서해안은 영광까지만 돌아 무안쪽에서 목포까지가 숙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더욱 거제를 1박 2일로 감히 돌아보려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조금을 가니 편안한 들판과 마을이 자리한다. 이곳이 하둔리이다. 하둔리 다리를 건너려는데 위쪽에 또 밤색 표지판이 보였다. 항상 하는 이야기 이지만 우리는 사전에 공부를 안하고 다녀 후회를 하면서도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표지판엔 청마생가, 페왕성 이라는 안내판 이었다.


다시 좌회전해 마을길로 들어갔다. 기다랗게 조성되어있는 마을을 한참을 올라가니 방하리에 경로당옆에 청마생가라 쓰여진 돌담집이 보인다. 앞쪽에 공터에 주차를 하고 복원된지 한참 된 것같은 청마의 생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청마의 생가...]


[청마생가의 사랑채와 창고...]


[청마생가의 본채...]


[청마생가 부엌옆의 장독대와 수돗가앞 우물...]


[청마생가 우물옆 텃밭의 솔국화(송엽국)...]


[청마생가 우물에서 또 장난기가...]


[청마 유치환님의 출생기를 적은 액자...]



-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 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 시집 ‘旗빨’(정음사) 중에서


청마 유치환 시인은


1931년 시 '정적'을 [문예월간]에 발표하면서 등단
1937년 문예 동인지 [생리] 발행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 간행
1940년 만주 이주
1946년 청년 문학가 협회 회장 역임
1947년 제1회 청년 문학가 협회 시인상 수상
1951년 한국전쟁시 종군문인으로 참가, 종군시집 [보병과 더불어] 간행
1957년 한국 시인 협회 초대 회장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청마 유치환님의 저서는...


『미루나무와 남풍』(1964)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유치환 시선』(1958)
『유치환 시초』(1958)
『제9시집』(1957)
『청마 시집』(1954)
『예루살렘의 닭』(1953)
『보병과 더불어』(1951)
『청령 일기』(1949)
『울릉도』(1948)
『생명의 서』(1947)
『청마시초』(1939)


그리고 자료를 찾던중 청마 유치환님의 시를 잘 표현한 것같은 홈이있어 소개해 놓습니다.

 

 

거제도 둔덕골(巨濟島 屯德)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친(父親)의 살으신 곳
적은 골안 다가 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렀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 하고
바가지에 밥 벅고
갓난 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팔대 조카 젊는 과수 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활연(活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가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종손이며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딿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에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친(父親)의 묏가에 부친(父親)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는
슬픈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친(父親)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청마생가 본채 대청마루옆에 요강이 눈에...]


[청마생가 본채의 뒤쪽벽...]


[생가뒤 텃밭에 콩을 많이 심어놓았다...]


[콩잎과 꽃을 한꺼번에...]


[청마생가내 수돗가에 ...]


[작약 씨방...별같이 생겼네...]


[꽃쑥갓(만수국)...]


[청마생가 입구의 싸립문...]


청마생가를 둘러본후 표지판에 따라 청마묘소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생가에서 작은 농로로 조금내려서니 청마묘소라 쓰여진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좌측으로 꺾어 산길로 오르니 이곳은 비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는도중 삼거리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생각키로는 우선 삼거리가 나오면 바퀴자국이나 타이어색인 컴은색이 많은 곳으로 오르는데 방향이 아닌 것 같아 우측으로 머리를 돌린다. 한참을 올랐는데도 비포장과 시멘트 포장이 반복되며 드디어 꼭대기에 넓게 조성해놓은 주차장이 보인다.

아직은 준비중이라 되어있는 것은 없고 표지판도 없지만 옆에 모셔진 산소가 분명했다. 목례를 치루고 다시 내려서 혹시나해서 밑에서 올라올 때 삼거리를 생각하며 우회전을 하였다. 이곳은 과수원집이다. 온통 배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벌써 커다랗게 달려있는 배를 보며 벌써 여름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내려선다.


[하고초{꿀풀}...]


[선복화...]


[동네 할아버님께 여쭈어도 모르는 꽃...]


[동네 할아버님께 여쭈어도 모르는 꽃...]


[배나무엔 벌써 배가 커다랗게 달려있다...]


배밭을 뒤로하고 올랐던 산방산 비탈길을 다 내려오도록 멀리보이는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 둔덕초교 뒤로해서 페왕성길에 오른다. 보통 성터는 차로 오르는길이 준비되어있다. 물론 비포장도 많지만 복원하느라 차량들이 많이 드나든 까닭이다. 이곳도 어김없이 성곽밑에까지 차량이 진입할 수 있었다. 길은 상태가 좋아 바로 우리 앞전에 올랐다 내려오는 승용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페왕성앞에서 동네를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또한번 감탄을 자아내게 해준다.


[밑에보이는 동네가 둔덕면이다....]


[둔덕면에서 페왕성으로 올라온 산길이 보인다....]


드림위즈홈의 체기천사라는님의 내고장 자랑에서 표현된 페왕성은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의 뒷산 우두봉(牛頭峰)의 중허리에 있는 산성(山城)이다. 1974년 2월 16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 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500m, 높이 4.8m로 성내에는 천지못(天池)이 있으며, 북단에는 기우제(祈雨祭)와 산신제 (山神祭)를 지내는 제단이 있다. 이성은 1170년(고려 제18대 의종24년) 9월에 상장군 정중부(上將軍 鄭仲夫)등 무신(武臣)들이 경인란을 일으켜 왕이 거제도로 쫓겨와서 3년간 살았던 산성이라 한다.


- 폐왕성의 유래-


폐왕성(廢王城)은 거제군 둔덕면 거림리 뒷산 우두봉 밑의 작은 영봉에 있는 목성과 같이 산허리에 테를 두르고 있는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550m 높이가 5m이고 남북에 성문이 있으며 성안에는 천지못이라는 우물이 있고 북단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행사하는 제단이 있다. 이 성은 서기 1170넌 고려 18대 의종왕이(1127 - 1173) 정중부의 반란에 쫓겨나 3년 동안 패왕이 되어 살다 간 성으로, 성 주위의 마을에 둔전과 마장을 두어 이용하였고 둔전의 남산에는 대비장을 설치하여 주위를 감시하게 하였다.


마장은 그 당시 군마를 키웠던 곳이고, 농막 마을은 농사를 지었으며, 가축 기르는 시목마을도 두었다고 한다. 성의 서북쪽 아래에다가 오량성을 쌓아 군영을 두고 견내량의 해상을 감시하게 하였고, 거림은 숲이 우거진 거관으로 거제시 관문의 역할을 하였으며 옥동 마을은 옥터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감옥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술역은 해상교통의 중심지로 부두 기능을 하여 진남(통영시)과 교역을 하였으며 동남에 상둔과 하둔을 설치하여 주민 스스로 자주국방을 하였던 곳이다.


둔덕면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기인한 듯하다. 성주위의 마을인 방하리에 남아 있는 시종무관 및 귀족들의 시해를 매장한 고분과 농막에서는 지금도 당시의 유물이 출도되기도 한다. 폐왕성은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거림리는 기성현의 관아지(官衙地)로 울창한 숲으로 둘러 싸였고, 아래의 마을에 둔전(屯田)을 두어 농사를 짓도록 한 농막리(農幕里), 윗 마을은 말을 기른 마장(馬場), 그 윗 마을은 목장인 시목(視牧)으로 8.15해방후 까지도 조롱말 10여두를 기르고,


관혼(冠婚)에 이용하였다. 농막의 남산에는 대비장(大妃庄)을 설치하여 안주시킨 안치봉(安置峰)이 있으며, 하둔리 접경에는 자주방(自主防)과 여관(如關)을 두었고, 근산에는 망허를 두어 감시케 하였으며, 둔덕천 건너 방하리(芳下里)는 고려 시종무관(侍從武官) 및 귀족계급의 사해(死骸)를 매장한 고려 무덤이 있어 유품이 종종 출토되고 있다. 폐왕성의 서북하에 오량성(烏良城)을 쌓아 군영을 두어 견내량의 해상을 감시하고, 수역(水驛)을 두어 진남(忠武市)과 교역을 하였으며,


동남에 상둔(上屯)과 하둔(下屯)의 양둔을 설치하여 방어케 하였으니, 둔덕면(屯德面)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폐왕성은 95년부터 국고보조를 받기 위해 수차례 정부에 재정 지원 건의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2000년도 폐왕성복원을 위해 99년도 시 자체 예산 1천5백만원을 투입하여 종합 기본계획을 수립코자 추진중에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은 산뜻하고 알기쉬운 문장으로 일반 관광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98년부터 2000년까지 전체 지정 문화재를 대상으로 신규로 제작 교체중에 있으며,


98년에 15개소, 99년에 10개소에 대하여 사업비를 기 확보하여 추진중에 있으며 폐왕성의 안내판은 새롭게 제작하여 1월('99)에 설치하였다." 라고 자세하게 소개를 해주었다.


[페왕성에 오르니 발아래 둔덕면이 보인다...]


[깨끝하게 복원된 페왕성의 성터와 성곽...]


[복원중인 페왕성터에서...]


[페왕성터 정상에 오르니 좌측으론 통영이 한눈에...]


[페왕성 정상에 오르니 전면에 고성과 마산이 보인다....]


[페왕성 정상에 오르니 전면에 고성과 마산이 보인다...]


[페왕성 넘어로 통영이...]


[당아욱 꽃...]


지난번 통영 남망산에서 만난적이 있는 안치환 시인 그리고 그 시인이 살았던 흔적들을 어루만진 것 처럼 느낀 산방산 자락을 뒤로하고 거제의 현대시인 이진우씨를 만나러 저구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여행일시 : 2004년 06월 01일,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오늘 오랫만에 고향과 청마를 만나게 되어 기쁜 하루가될 것 같습니다
너무 멋진곳 입니다.
올해 다시한번 찾을...
산에도 오르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