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큰믿음 교회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2009. 2. 17. 03:15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출애굽기 20:8~11

 

본문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돌비에 깊이 새겨졌으며, 새 언약 하에서 이것은 마땅히 우리의 심비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저는 너무나도 많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이 계명이 새겨져 있지 않은 것을 봅니다.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주일날 공부를 하거나 승단 시험을 치릅니다. 주일날 직장에 가거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에릭 리델의 이야기를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에릭 리델은 1920년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육상선수였습니다. "불수레"라는 영화는 그의 전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자였습니다. 그러나 1924년 올림픽 결승전이 주일이라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그후 그는 평생을 중국 선교에 힘쓰다가 중국 현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영화 "불수레"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는 아니지만 신앙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분명히 알고 산 사람이다."

에릭 리델은 주일 성수를 위해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했습니다. 그토록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 그는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주일 성수를 위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도 예배에 불참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사실상 어떤 일이든 예배의 불참할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죄악입니다. 그리고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작금의 이러한 상태에 대해 통탄하는 마음을 금할 길 없으며 여기에 대해 경고해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4계명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안식일의 중요성.

하나님은 천지창조 직후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제4계명을 아주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일 감독은 안식일은 "멍에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A. B. 부르스는 "안식일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일까요?

 

(1) 안식일은 사람의 몸을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몸에 유익합니다. 우리 모두는 쉬는 날을 필요로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의학자들도 동의합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13-14)

사람의 몸은 밤낮 돌아가는 기계처럼 쇠덩이가 아니라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사람의 몸이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그릇입니다. 따라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라일 감독은 "만약에 육체가 필요한 것을 말할 수가 있다면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큰 소리로 외칠 게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로드 비컨스필드(Lord Beaconsfield)는 "모든 거룩한 제도 가운데 가장 거룩한 제도는 인간에게 하루의 휴식이 보장된 제도이다. 이 하루야말로 인간에게 허용된 가장 가치 있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하루는 모든 문명의 주춧돌이다. 하루를 없앤다면 사람의 건강까지도 침해될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휴식의 날로 지켜야 합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종류의 노동을 가능한 한 중지해야 합니다(출 20:8-10). 그래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건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안식일은 사람의 정신을 위한 것입니다.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정신력도 끊임없는 긴장을 견딜 수 없습니다. 쉬면서 회복될 틈을 주어야 합니다.

오래 전 주원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저는 이것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성이 독특한데다 나름대로 일정한 의미를 지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이름을 지으려니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옥편을 찾아가며 새벽 세시까지 고심한 적이 있는데, 그만 잠을 자려고 누워도 끝없이 이름들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돌고 영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괴로운지 '하나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발 저에게 잠을 주세요' 라고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은 계속되는 긴장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몸처럼 정신도 안식을 필요로 합니다.

 

(3) 안식일은 사람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몸과 정신뿐 아니라 영혼에도 필요합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혼의 관심사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관심사에 올바른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특별한 날이 필요합니다.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과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신성한 제도다. 7일 중에서 하루를 떼어놓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정해 놓은 것도 사회적인 편의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안식일을 만드셨다고 예수님께서는 강조하셨다(막 2:27). 또한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도 만드셨기 때문에, 안식일이 인간의 필요에 맞게 하셨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의 영은 예배 기회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안식일은, 휴식의 날이며 동시에 예배의 날이다."

A. B. 부르스 역시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기본 원리에 의해 제정된 안식일 준수법은 두 가지의 목적에 이바지하였다. 하나는 육신의 안식이요 다른 하나는 영혼의 쉼을 위한 예배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일에 육체적인 노동을 그만두고 안식을 취해야 옳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드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참된 행복에 절실한 것이다."

비록 사람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안식을 취하더라도 예배를 통해 그 영혼이 안식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근본적으로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라도 주일에는 꼭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첫째로,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로, 안식일을 기쁘고 즐거운 날로 여겨야 합니다(사 58:13-14).

셋째로, 마치 일하는 사람이 쉬는 시간을 기다리듯이 안식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한 주간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자기를 해하는 것이 됩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자기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해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단명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안식일을 기억하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로 굳게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

안식일을 준수하는 법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으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과 다음으로, 긍정적인 측면으로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1) 안식일에 절대 하면 안 되는 일.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구는 이사야 58:13-14절 말씀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첫째로, 안식일에는 발을 금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13)

유대인 학자들은 이 부분을 "만일 네가 안식일에 먼 길이나 여행을 가지 않도록 네 발을 삼가면"이라고 해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날 여행을 떠나거나 친정이나 시가를 방문합니다. 그리하여 안식일을 범합니다. 그리고 요즘 정부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밤부터 여행을 떠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될 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D. L. 무디는 "안식일을 깨뜨리는 가장 커다란 수단 중의 하나가 자전거"라고 했습니다. 무디는 19세기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자전거는 오늘날 자가용에 해당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자가용이 자전거를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이카시대가 되면서부터 여행이 급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머리에 새겨두십시오.

따라합시다. "주일날 여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에 '직통 심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회계 집사님이 노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는 돈을 다 날리고 집까지 날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판돈이 부족하니까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노름을 해서 다 날렸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직통 심판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은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갑작스런 가시적인 심판으로 벌하신다. 그는 그들의 재산 혹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신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주일날 곡식을 창고로 운반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집과 곡식이 다 타버렸고, 어느 무용경연대회가 주일날 열렸는데 참가자 중 하나가 춤을 추다가 갑자기 엎드러져 죽었고, 매 주일 설교 시간에 사냥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의 아내가 아기를 낳았는데 개와 같은 머리를 가졌고 사냥개처럼 울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님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주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다니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직통 심판이 많고 그래서 주일에 대형사고가 많이 난다."는 의미심장한 지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해 페리호 사고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다낚시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탔던 서해 페리호 사고가 일어난 날은 주일입니다. 그런데 300여 명의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합니다.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다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고구마 전도법으로 유명한 김기동 집사님 역시 주일 날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다가 정면충돌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딸의 얼굴에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주일의 낙반사고, 익사사고가 평일의 평균치에 비해 6배나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병욱 목사님의 말대로 "주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는 것은 목숨을 걸고 떠나는 여행길"인 것입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주일날 여행을 하거나 친척집을 방문한다고 주일을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안식일에는 오락을 금해야 합니다.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13)

물론 안식일은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즐겁게 안식할 날"이지 즐겁게 오락할 날은 아닙니다. 오락이란 육체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스포츠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친목을 도모한다고 주일날마다 축구경기를 하고 다른 교회는 매주 족구 경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남전도회의 친목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주일밤예배가 끝난 후 볼링장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모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사과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특별히 자녀를 키우는 분들은 자녀들에게 주일에는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을 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일을 범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안식일에는 자기 길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14)

이 말은 무슨 일이든지 세상일을 행하므로 이 날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일날 장사를 하거나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이 안에 포함됩니다.

출 20:8-10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처럼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이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성경이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얼마나 무섭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출 35:2-3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민 15:32-36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한번은 찰스 스펄전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다가 회중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제화공은 주일날에도 가게를 여는군요. 지난 주일 아침에도 가게를 열었어요. 그날 그 사람은 9페니를 벌었는데 이익은 4페니였습니다. 그는 4페니 때문에 사탄에게 영혼을 팔은 셈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지적한 그 사람은 목사님이 자기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은 제화공인데 주일날에도 장사를 한다"고 말할 때까지도 그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이어 "전 주일에 9페니를 벌었는데 이익은 4페니였다"고 말하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스펄전 목사님을 통해서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고 당장 그 다음 주부터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넷째로, 안식일에는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14)

저는 주일 예배 후 성도님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교제로 보고 사랑스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의 내용을 점검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적어도 주일날만큼은 세상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의 내용이 수다 내지는 잡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령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해야 합니다.

마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처럼 평소에도 무익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주일이겠습니까?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처럼 살리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사람을 살립니까? 바로 영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육적인 말을 하지 말고 영적인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딛 3:8-9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처럼 우리가 굳세게 말해야 할 내용이 있고, 피해야할 무익하고 헛된 말이 있습니다. 전자는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이고 후자는 듣는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익하고 헛된 말은 하지 말고 바울의 권고를 따라 듣는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말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

여러분은 안식일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안식일에 첫째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그 이유를 알려면 최초의 안식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초의 안식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6일 동안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창조의 걸작품이요 면류관인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어서 창조가 끝난 다음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음 받은 후 처음으로 맞이한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 날 인간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에덴 동산을 거닐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안식일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안식일은 교제를 위해 주님과 데이트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주님과 시간이 약속되어 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깊이 교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안식일에는 주님을 기념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7:l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떡을 떼는 것"은 성만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만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1장 24절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주일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시작입니다.

 

셋째로, 안식일에는 주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성경은 안식일을 "성일", 혹은 "거룩한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요일은 하나님을 위해 따로 마련된 '거룩한' 날이다. 이 날은 주님의 날이요 우리의 날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대로, 우리 자신의 이기적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이 날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받은 은사와 직분과 사명 따라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넷째로,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정성스런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안식일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헌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날 주께 연보를 드리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연보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 16:2)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주 하나님께 정성껏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다섯째로, 안식일에는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노동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마 12:9-13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이처럼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의무입니다.

선 중에 최고의 선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주보에 보면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것을 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이런 형식으로 고쳐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 육신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짐승을 구덩이에서 끌어내는 것이 선일진대, 사람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끄집어내는 일은 얼마나 큰 선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선 중의 선입니다. 반면에 죽어 가는 영혼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악 중의 악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주일 오후 2시에 있는 전도 모임에 적극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안식일에는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피곤해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가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다"(전 1:8)고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안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합니다.

눅 23:56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이처럼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입니다. 휴식을 취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힘을 재충전하는 날입니다.

탈매지(Talmage)는 "안식일을 계속 어기면서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글래드스턴(Gladstone)은 자신의 장수의 비결은 "모든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안식일을 잊지 않고 지킴으로써 육체와 영혼의 휴식을 취한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식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옛날 전기가 없던 시대에 탄광에서 석탄을 캘 때 노새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는 탄광의 갱도에서 밖으로 노새를 꺼내어 햇빛에 매놓고 쉬게 하였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새는 어두운 곳에만 있어서 눈이 멀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두 번 씩 그렇게 하면 게을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하루의 안식은 꼭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적당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을 뿐 분명히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4.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임하는 복.

미국의 존 홉킨스(John Hopkins) 대학 의학 연구원의 컴스톡(Comstock) 박사는 "정규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암병에 잘 안 걸리고 교통사고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적게 나고 자살자도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는 거의 없다"는 통계를 발표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깁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직통 심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양한 복이 임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어떤 복이 임할까요?

 

(1) 안식일을 지키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안식일은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면 즐거움이 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안식일은 즐거움을 줍니다. 그 즐거움은 여행이나 오락이 주는 즐거움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안에서의 즐거움"으로 세상이 줄 수도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류의 즐거움입니다. 그것은 체험한 자만이 아는 감추인 만나와도 같은 즐거움이며, 사람을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즐거움입니다.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면 모든 것이 즐겁습니다. 예배가 즐겁고, 찬송이 즐겁고, 말씀 듣는 것이 즐겁고, 기도가 즐겁고, 헌금이 즐겁고, 봉사가 즐겁고, 전도가 즐겁습니다. 다른 성도를 만나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즐거움이요, 모든 것이 즐거움입니다. 주일을 성수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러나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는 즐거움으로 잔치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행복하고 싶으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2) 안식일을 지키면 믿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습니다.

히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어떤 사람이 무디에게 교회를 떠나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벌겋게 타고 있는 석탄 가운데 하나를 끄집어내어 난로의 한 쪽 구석에 따로 놓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습니다.

그 석탄의 불은 곧 사그러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당신이 말씀하시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지용수 목사님은 이런 실감나는 말을 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가는 곳에 팔도 같이 가야지 머리와 몸은 있는데 팔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주일에 다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한 사람이 바닷가에 낚시를 하러 간다면 그 사람은 몸에서 잘려 나간 낙지 다리와도 같다. 몸에서 잘려 나간 낙지 다리는 꾸물거리다 곧 죽는다."

여러 해전 제주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한 바닷가에서 커다란 문어를 팔고 있었습니다. 불쌍하게도 그 문어는 통째로 요리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올 때마다 다리 한 짝씩 잘라서 요리했습니다. 손님이 올 때마다 문어의 다리는 하나씩 잘려졌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빠지는 성도는 어떤 의미에서 문어의 잘려나간 다리와도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실은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이는 일에 열심인 성도는 마치 화로 속에 있는 석탄과도 같습니다. 때로 본인의 믿음이 식을 때에도 예배를 통해 다시 뜨거워지고 다른 성도들을 통해 다시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항상 뜨거운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안식일을 지키면 물질적으로 부유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일을 못하면 그만큼 경제적으로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7년마다 한 해를 쉬도록 하면 6년 동안의 소득이 7년 동안의 소득과 같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49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은 단 한 번도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느부갓네살이 침입하여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되었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약속의 땅은 70년간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70년에 7을 곱하면 490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7년마다 한 해를 쉬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이득을 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70년간 농사를 짓지 못하고 더구나 포로가 되었으니 엄청난 손해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해보면 안식일을 지키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유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14)

우리는 믿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일에는 절대 출근하지 말고 절대 가게 문도 열지 마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더 부유하게 될 것입니다.

 

(4)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방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올포드가 쓴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웨일즈 지방의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에반 로버츠(Evan Roberts)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878년 록서에서 태어난 에반 로버츠는 광부와 대장장이로 일하다가, 어느 사립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때부터 부흥에 대한 갈망이 그의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던 도중 그는 블레이너치에 소집된 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1904년). 그리고 이 회의 기간 중 그는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그는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집사인 월리엄 데이비스(William Davies)는 어느 날 저녁 우리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성령께서 오셨는데도 우리가 그 자리에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마의 예를 기억하십시오.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요 20:24 참조).

그 말을 듣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어코 성령 충만을 받고야 말리라.' 그리고 나서 나는 날씨야 어떻든, 어떠한 어려움이 있든 상관치 않고 부지런히 모임에 참석했다. 다른 아이들이 보트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로 되돌아가서 같이 놀고 싶은 유혹에 휩싸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럴 수는 없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너의 결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나에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했다.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셨던 분은 바로 성령님이셨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모임 때, 설교자가 주님께 '무릎 꿇게' 해 주실 것을 기원했습니다. 이 때 로버츠는, 성령님께서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무릎을 꿇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당시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어떤 살아 있는 힘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힘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더니, 결국은 꼭 폭발할 것만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가슴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위탁하신다'는 말씀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는 앞좌석 위에 두 손을 얹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눈물과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고, 마치 피가 용솟음쳐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몇몇 친구가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고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오, 주여, 무릎을 꿇게 하소서!" 하고 외쳤고, 그러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그는 강력한 부흥의 기수로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평소와는 달리 성령으로 강하게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회 때나 예배 때 보면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에는 와야 될 사람들이 많이 빠집니다.

평소에 주일 성수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방문하시는 이런 보배로운 시간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들은 이런 시간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 보너스입니다.

 

5.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이유.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토요일 안식일이 일요일 주일로 바뀐 이유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본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으며, 더 정확히 말한다면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식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 안식일이 주일로 날자만 바뀐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적 근거도 없을 뿐더러 설득력도 없습니다. 안식일에 나타난 안식의 교훈과 정신은 지금도 강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의식 혹은 제도로서의 안식일은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안식일이 폐하여지고 그 대신 주일이 제정되었을까요?

 

(1) 안식일이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서 첫째 날로 바뀐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지정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의 권위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퍼킨스(Perkins)는 "교회는 안식일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에임스는 "신학의 정수"에서 "인간적인 권위가 아니라 신적 권위가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첫 번째 날로 변화시켰다. 오직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 즉 그리스도만이 안식의 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막 2:28)이십니다. 그리고 그 날의 주인이신 분 외에 누가 한 날을 지정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경에 이것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왓슨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노비우스(Arnobius)와 대부분의 해석가들은 '주의 날'(계 1:10)이라고 불려지는 날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이해한다. 주님이 떡과 포도주를 제정하사 속된 용도에서 특별하고 성스러운 용도로 따로 구별해놓으셨기 때문에 이것이 '주의 만찬'이라고 불려지는 것처럼 주의 날도 주님이 이것을 제정하사 보통 날들에서 그의 특별 예배와 봉사를 위해 따로 구별해놓으셨기 때문에 이것이 주의 날이라 불려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일의 첫째 날 무덤에서 살아나셨으며, 그 날 그의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셨는데(요 20:19, 25), 이것은 어거스틴과 아타나시우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가 유대인의 안식일을 주의 날로 옮기셨다는 것을 그들에게 암시하시는 것이었다."

 

(2)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사도들의 관례였습니다.

행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고전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처럼 주일에 말씀을 강론하는 것과 성찬식과 헌금이 있었습니다. 즉 주일날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윌리엄 에임스는 "신학의 정수"에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주일이 사도적 제정에 의해 인정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초는 신적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복음의 교리를 말과 문서로 선언할 때처럼 거룩한 행위들에 있어서도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위임한 일을 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성령을 부여받은 사람이 성령의 인도도 없이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한 주일을 지정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이 성령의 인도로 쓰여졌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모든 장과 절을 불확실한 것으로 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날 예배하기 위해 모였던 사도들의 관례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3) 초대교회는 우리가 현재 기념하는 주의 날을 존중하였습니다.

이 날을 지키는 것이 초기 기독교의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 살았던 초대교회의 교부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주일의 첫째 날 곧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킬지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날은 교회에 의해서 1,600년 이상이나 지켜져 왔습니다.

웰즈(Wells)는 "안식일 엄수의 실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초기의 제도와 명령에 대해 논쟁하느라고 암흑에 쌓인 채 분열을 일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에 대해서만은 교회가 항상 침묵을 지켰던 것으로 볼 때 주의 날의 신성한 권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의 날에 대해서 교회가 그처럼 침묵을 지켰던 까닭은 감히 하나님께서 세운 제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4)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며 그림자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하여졌습니다.

구약에서 아무리 중요한 율법이라도 신약에 와서 폐한 것이라면 그것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식일 문제가 그렇습니다. 구약에서는 중요하게 지켜졌지만 신약에서는 폐한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는 더 이상 우리의 의무가 아닙니다.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즉 성, 속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엡 2:11∼22). 구약 시대에는 성·속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이방인, 레위인과 일반인, 거룩한 곳, 부정하고 정한 것, 거룩한 날 등의 규례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성·속의 구별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1)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엡 2:11∼17).

구약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이 법은 엄격하여 이방인과의 결혼이나 교제를 금하고 이방인은 기업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구별이 폐하여졌습니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5, 1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처럼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분이 없습니다.

 

2) 신약 시대에는 레위인과 일반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벧전 2:9).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안에서도 레위인과 일반백성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제사장은 언제나 레위지파, 아론의 자손들이라야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졌고 거듭난 성도는 누구나 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5∼9).

 

3)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곳, 즉 성전의 개념이 없어졌습니다(신 12:5, 11, 14 마 18:20 고전 3:16 엡 2:21).

구약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곳(성전)이 따로 있어서 그곳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신 12:13). 만약 지금도 거룩한 곳의 구별이 있다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폐하여졌기 때문입니다.

 

4) 신약 시대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에 대한 구별이 없어졌습니다(겔 36:17 민 19:9 레5:3 히 9:13 롬 14:14).

구약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의 규례들이 있어서 죽은 시체나 무덤이 부정하고, 경도하는 여인이 부정하고, 출산한 산모가 부정하고, 짐승이나 물고기 등도 부정하고 정결한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정한 것은 먹거나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다 사라졌습니다.

만약 지금도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있다면 경도하는 여인은 부정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5)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날과 보통 날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골 2:16 롬 14:6 갈 4:10∼11).

구약에는 거룩한 날(절기, 월삭, 안식일 등)과 보통 날을 구별했습니다. 이러한 날 중에 안식일에 대한 구별은 철저했습니다. 만일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돌로 쳐죽이라는 엄격한 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했던 안식일 구별도 다른 성·속의 구별이 폐한 것처럼 폐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5)라고 말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어떻게 폐해졌는지를 말씀드리지요. 모델 하우스는 아파트 분양이 끝난 후에는 없애버립니다. 마치 이와 같이 실체가 이루어지면 모형과 그림자는 폐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역시 같은 원리에서 폐해졌습니다(히 4:1∼6 마 11:28).

안식일은 실체가 아닙니다.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이처럼 안식일은 그림자인데, 참 안식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마 11:28)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실체인 예수님이 오시면 안식일은 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이 "왜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키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런 질문은 "오늘날 우리는 왜 양을 제물로 잡아서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한 류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심으로 속죄 제도의 의미가 성취된 것처럼, 안식일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심으로 안식일의 의미를 완성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오라"는 말은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4:3절에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 4: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안식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본래 인류가 안식을 잃어버린 이유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짐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안식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안식의 그림자였던 안식일 역시 이미 폐해진 것입니다.

"안식일교회 대논쟁"이라는 책에서 최삼경 목사와 진용식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약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구절은 한 곳도 없다... 왜 신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말씀이 한 곳도 없는가? 또 지켰다는 기록도 없는가?... 구약 성경에 그렇게도 많이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신약 성경에 와서 안식일 명령이 전혀 없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안식일이 폐했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구약 성경에 할례가 강조되다가 신약 성경에 전혀 그 명령이 없는 것은 할례 제도가 폐했기 때문인 것처럼 안식일도 폐한 것이다."

그럼 안식일이 폐해졌으니 이제는 칠일을 모두 일해도 됩니까? 모일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대신 다른 날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날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정복하고 인간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오늘날 우리가 성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그리스도의 죽음에서의 부활)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2-24)

복음송 중에 "이 날은 주의 지으신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이 아니라 바로 주일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 증거로 이 복음송의 출처인 시편 118편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그 날을 가리킵니다. 물론 그 날은 천지창조 후 하루를 쉬신 그 안식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날은 언제일까요?

행 4:10-11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로 보건대 그 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이 바로 여호와께서 정하신 그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성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5)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날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생각나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창조를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안식일을 폐하고 주일을 제정하셨을까요? 그것은 창조보다 더 영광스러운 사역, 곧 구속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조의 사역도 위대하지만, 구속의 사역은 훨씬 더 위대합니다. 큰 지혜가 우리를 지으시는 데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구원에 나타났습니다. 큰 능력이 우리를 무에서 이끌어내시는데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더 큰 능력이 우리가 무보다도 더 악할 때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나타났습니다. 창조보다도 구속이 더 많은 값이 듭니다. 창조에서는 한마디 말씀하시는 것뿐이었으나(시 148:5), 구속에서는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벧전 1:19). 성경에 의하면 창조는 하나님의 손가락의 사역이었고(시 8:3), 구속은 그의 팔의 사역입니다(눅 1:51).

창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속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창조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상의 낙원에 대한 권리를 가졌으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천국의 후사가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모로 보나 창조보다는 구속이 더 위대하고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속을 기념하시기 위해 주일을 거룩한 날로 제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윌리엄 에임스는 "신학의 정수"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중지하고 그가 안식한 날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셨듯이, 그리스도가 자신의 일에서 안식하신 바로 그 날이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썼습니다. 참으로 주일은 안식일보다 배나 더 기념할만한 가치가 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성일로 지켜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를 보게 되면 왕을 살해한 맥베드가 독백으로 "이제 나는 잠을 자지 못한다. 맥베드여, 너는 잠을 죽였다. 아! 천진난만한 잠이여, 고민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던 잠, 피곤을 풀어주던 잠이여"라고 영혼의 창백한 절규를 합니다. 마치 이 맥베드와 같이 인류는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안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안식일의 그림자가 아니라 안식일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입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수 천년 째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오고 있지만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자인 안식일만 취하고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가슴속에 안식이 있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 저는 이것이야말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3절에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 4: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을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거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거운 마음은 짐을 지고 있는 마음이고 편한 마음은 쉬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저는 여러분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맡길 수 있는 짐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죄 짐입니다.

시 38: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다음으로, 문제의 짐입니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다윗이 날마다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짐은 분명 죄짐이 아니라 문제의 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의 짐도 맡아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마지막으로, 질병의 짐입니다.

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은 이 세 가지 짐을 모두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세 가지 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인 안식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 짐을 모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특별한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히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들에 의하면 안식할 때가 성도들에게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계 14:9-13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에 의하면 지옥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곳이고 천국은 수고를 그치고 쉬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지상에서부터 천국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천국은 죄가 없고 가난이 없고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바로 이런 삶을 하나님은 이 땅에서 모든 신자들이 살기를 원하십니다(요삼 2). 그리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죄를 이깁니다. 믿음은 가난을 이깁니다. 그리고 믿음은 질병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담대한 고백을 통해 믿음을 활성화시키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같이 여러분의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여러분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