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큰믿음 교회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2009. 3. 8. 02:46

어떻게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것인가?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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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것인가?

2006. 3. 3.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성구는 너무 잘 아는 말씀이지만 너무 실천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 신학교 가고, 목사 안수 받고, 나가서 목회하고, 선교사로 나갑니다. 너무 잘 알지만 너무 실천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 수는 많은데, 그래서 교회 건물은 크게 지었는데 하나님의 일은 제대로 되지 않고 차질이 심하고, 능력 없는 교회가 되고 목회자가 직업인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비극들이 너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까 이제 그것이 정상이고 누가 성령의 기름부음 받으면 그 사람들은 이단으로 정죄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 받지 않은 사람들은 정통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교회가 망해 가도 아무 소리 하지 않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교회가 부흥하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날 정도로 심각하게 무시되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고 자리를 잡고 거기서 자기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교회부터 떠나야 합니다. 교회 벽부터 넘어서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도시를 말하는 것이지 예루살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았으면 교회 안에서만 있지 말고 교회 담을 넘어서서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갈 자신이 없으면 아는 사람한테라도 복음을 전하세요. 사실은 그것이 제일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야 합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을 그대로 두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도 사마리아도 땅 끝도 그 상태 그대로면 안 됩니다.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바꿔놔야 합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에 가는 이유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을 바꿔놓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고,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그 속에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을 위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복 받고 내가 신앙생활 잘하면 된다.” 이렇게 좁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도시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나라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을 미워하지 말고 이웃나라들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열방을, 지구를 가슴으로 품어야 합니다. 지구보다 크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지구도 못 품어서야 되겠습니까? 성령님이 오신 것은 천지가 감당하지 못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시를, 나라를, 열방을 품지 못한다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다 도시를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부름을 받았습니까? 성령이 왜 임하실까요? 구약시대 때는 성령님이 선지자들에게만 임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보냄 받을 자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상에 파송하는 자에게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기 원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으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도시를 변화시키라고, 나라를, 열방을 바꿔놓으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도시를 변화시키고, 도시와 나라와 역사를 바꿔놓고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기신 분량만큼 열방을 바꿔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지도를 바꿔놓아야 합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쳐서 정복하면 국경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도가 바뀌잖아요. 우리는 영적인 국경선을 넓혀가야 합니다. 복음으로 사탄의 왕국을 침노해서 영적인 지도를 바꿔놓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지도를 바꿔놓고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세계지도를 바꿔놓는 사람,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해서 세 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권능을 받고 그 권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에는 가라고 하시지 않고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으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이, 많은 목회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강해설교로, 제자훈련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것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도시와 나라와 이웃나라와 열방을 바꾸려면 성령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기 전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절대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자신도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에는 사역을 하시지 않았는데 우리가 뭔데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령의 권능에 초점을 맞추고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사모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지식과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까? 더구나 바울은 의지력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것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일에는 그것 가지고 성과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설교할 때, 사역할 때 성령께서 나타나셔야 합니다. 예배 때 성령께서 나타나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는데 어떻게 나타나십니까? 성령님은 역사하심으로 나타나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서 역사함으로 나뭇잎이 흔들리고 나타나는 것처럼, 성령님은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역사함으로 나타나십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으로 역사합니다. 능력 행함과 믿음의 은사로 역사하고 병 고치는 은사로 역사하고 방언으로 역사하고 방언 통변으로 역사하고 영들을 분별하는 것으로 역사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성령의 나타남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사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사역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지식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식을 활용하되 의존하지는 마십시오. 재능을 버리지 말고 재능을 활용하되 의존하지는 마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지식을 향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재능이나 프로그램을 향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나타남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심이라.”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터부시하면 성령의 나타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기를 원하시는 유익을 놓치게 됩니다. 실제로 교회들이 종교적이 되어서 “말씀, 말씀”하고 자꾸 다른 쪽으로 가면서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이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면 이용당하는 것 같습니다. 헌금만 해야 하고 봉사만 해야 하고 별 유익이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 활성하게 될 때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길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길을 발견하고,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분명한 비전을 발견하고, 병든 사람들이 신유의 은사를 통해서 고침을 받고,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활성화 되어야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유익을 충만하게 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유익이 없는 곳에서는 모이지 않습니다. 유익이 있어서야만 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성령의 은사가 풀어지고 성령의 은사가 활성화 되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들이 아니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없이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없이 믿음의 은사도 없이 능력 행함의 은사도 없이 병 고치는 은사도 없이 방언도, 통역도, 예언도 없이 어떤 유익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냥 성경 구절만 되풀이 해 가지고는 많은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냥 끊임없이 설교나 하고 예배드리면 많은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형식화 되어 갈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들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들이 역사해야 합니다. 성령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 시간마다 성령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병 고침을 통해서, 능력 행함을 통해서, 예언과 방언 통변을 통해서 영분별을 통해서 예배 시간마다 성령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하고 우리는 은사를 받아야 하고 우리는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라.”(고전 14:1) 이것을 바꿔 말하면 사랑이 없어서 은사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사를 구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없어서, 이기적이라서 은사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사는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남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남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은사들이 남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기적이니까 성령의 은사를 구하지 않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타면 성령의 은사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과 교감이 된다면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수없이 많은데 교회는 많고 목사는 많고 성도는 많아도 구원 받는 사람은 너무나 적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고 있는데 “주님, 저들을 어떻게 해야 돌이킬 수 있습니까? 저들을 어떻게 해야 구원할 수 있습니까?” 답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적과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능력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 은사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있으면 능력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사를 구하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지 은사를 구하면 되나.’ 그러나 “사랑을 따라 구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구하세요. 마귀가 주는 거짓 죄책감에서 자유하세요. 여러분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은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은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입을 넓게 여시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달라고 부르짖으세요. “하나님, 제게 예언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신유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강력한 기름부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제게 능력 행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옵소서.” 입을 넓게 열고 성령의 은사들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그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세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은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대로 예언 전도를 하세요. 예언은 복음 전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다 예언을 하면… 그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됨으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사를 받지만 말고 사용하세요.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나타남으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특정 은사가 아니라 모든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복음 전도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를 복음 전도에, 영혼 구원에 집중시키고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세요.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을 때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이 옵니다. 그것이 성령세례인데 성령세례만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것은 위험합니다. 성령세례와 함께 반드시 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세례입니다. 불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릅니다. 불세례와 성령세례는 함께 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었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불세례와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이것이 동시에 우리 속에 일어나야 합니다.

 

  인도의 묵티에서 일어난 부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잠깐 눈을 떴는데 어떤 여자들이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통에 있는 물을 부어 끌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진짜 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데 진짜 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들이 기도할 때 속에서 불이 타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누군가 하니 몸을 파는 창녀들이었습니다. 창녀들이 전도 받아 그곳에서 합숙하면서 회개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불세례가 임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불세례가 임하면서 그들이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는 능력을, 권능을 갖다 줍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런데 불세례는 정결을 갖다 줍니다.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물세례를, 회개의 세례를 줬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죄 사함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그 사람을 정결하게 만드는 불세례를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만 사모하고 불세례는 사모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세례 요한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어쩌면 하나의 세례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이 그냥 성령의 상징이고 하나의 세례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리해서 말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성령세례만 받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은사만 받았을 뿐이지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은 것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령세례만 받지 말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풀무 불 속에서 은이 정결하게 되고 금이 정결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불세례를 받음으로서 우리 속에 있는 찌끼가 제거되고 정결하게 되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만 받기 때문에 쓰임 받고 버림 받고 나중에 이상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과 불로 세례 받아서 정결하게 되고 그 다음에 성령의 은사들을 받으십시오. 정결함과 은사가 우리에게 같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강력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구하십시오. 성령의 권능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나타남을 구하십시오. “성령님, 저를 통해서 나타나주십시오. 저를 통해서 지식의 말씀으로, 지혜의 말씀으로, 병 고치는 은사로, 능력 행함으로, 영분별로, 예언으로 저를 통해서 나타나 주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받고 여러분을 통해서 성령님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도시를, 나라를, 열방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안 됩니다. 그것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키는 비결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말씀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권능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권능입니다. 바꿔 말해서 이 권능은 말씀의 권능입니다. 말씀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적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있는데 기적은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기적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적은 메시지입니다. 기적이 메시지가, 말씀이 될 수 있다면 반대로도 가능합니다. 말씀이 기적과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표적 중에 가장 놀라운 표적은 어떤 의미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표적과 기적 중에 가장 놀라운 표적은 말씀이 말씀이 되는 표적입니다. 왜냐하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헛되지 않고 그 명한 일을 다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표적 중에 가장 위대한 표적은 말씀이 말씀 되는 표적입니다. 기적이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은 기적이,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릭 조이너가 어떤 책에서 요나에 대해서 말한 것이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룻길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부터 종들에게 이르기까지 전부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그것은 요나의 메시지 자체가 표적,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기름부음이 강력하게 임하면 그 하나님의 능력과 기름부음에 의해서 병이 낫는 것처럼, 귀신이 쫓겨 가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씀의 기름부음이 강력하게 임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표적이 됩니다. 요나의 경우 왜 하룻길을 행하면서 했는데 온 도시가 회개를 했는가? 왜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이 평생을 목회를 해도 도시가 회개하지 않는가? 요나는 어떻게 됐기에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한 사람들에게 갔는데 하룻길만 행했는데 어떻게 도시가 발칵 뒤집어지고 회개했는가? 요나의 말씀은 그 자체가 표적이었습니다.

 

  표적은 왜 필요합니까? 표적은 말씀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말씀을)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표적은 말씀을 받쳐주는 것입니다. 표적은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권능이 강하게 임하면 표적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말씀 자체가 표적이 되어버립니다. 다른 표적이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 말씀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갑니다. 그래서 표적과 기적이 없어도 사람들이 회개하고 거꾸러지고 변화됩니다.

 

  요나에게 나타났던 것이 그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에게 나타났던 것이 그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고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말할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병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그때 베드로가 방언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리고 3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이 표적이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음이 오면 말씀은 살아나게 됩니다. 말씀이 운동력을 갖게 됩니다.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처럼 됩니다. 말씀은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그러면 사람이 꼼짝 못합니다. 그것이 말씀이 표적이 된 것입니다. 찰스 피니의 삶에 나타난 것이 그것입니다. 찰스 피니는 설교할 때 큰 칼을 들고 사람을 도륙하는 자 같았습니다. 찰스 피니는 설교할 때 마치 큰 방망이를 들고 사람들을 가루로 박살내는 자 같았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장정들도 나가 떨어졌습니다. 장정들도 통곡하고 쓰러지고 실신하고 들것에 실려 나갔습니다. 왜? 말씀의 권능 때문에 그랬습니다. 말씀의 권능 때문에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갔습니다. 말씀의 권능 때문에 사람들이 말씀을 듣다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말씀의 파괴력 때문에 사람의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 두려워서 정도를 낮춰서, 요즘 부흥사들은 어떻게 하든지 감정을 끌어내려고 하는데 감정을 유발시키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절제된 설교를 한 사람이 찰스 피니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표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종교의 영에 대해서 분노심을 느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성령이 충만해야지 종교의 영이 충만하면 안 됩니다. 제가 간구하고 있는 것은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입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유의 기름부음보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기름부음보다, 창조의 기적을 행하는 기름부음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을 원하십시오. 말씀이 표적이 되는 은혜를 원하십시오. 그 은혜를 간구하고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말씀이 표적이 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은사와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설교가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율법을 주면서도 “내가 생명과 사망을,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고 말했는데 설교는 생사를 가르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복과 저주를 운명 짓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 속에서 깊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이키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성하고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되고 지옥 갈 사람들이 천국 갈 사람으로 변화되는 그런 집회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기적이 아니라 그 사람을 회개시키는 능력입니다. 그 사람을 회개시키고 죄의 잠에 빠져 있는 그 사람의 영혼들을 각성시키고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 시대에는 그런 능력이, 그런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말씀이 표적과 기적이 되는 기름부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 저와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요나의 기름부음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베드로의 기름부음, 찰스 피니의 기름부음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찰스 피니에게 주셨던 그 강력한 기름부음을 주시옵소서.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을 주시옵소서. 저는 그것이 진정한 부흥의 비결 중에 하나인 것을 압니다. 회개해야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야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그것보다 더 깊은 것입니다. 부흥은 구원이 아니고 부흥은 구원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부흥이 일어나려고 하면 깊은 회개가 일어나야 됩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부흥은 통회하는 곳에게 임하십니다. 부흥은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곳에 임합니다. 사람을 통회하게 하는 것은 찌르는 검과 같은 말씀입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은 빛과 같이 그의 실체를 비춰주는 찌르는 빛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나의 기름부음, 베드로의 기름부음, 찰스 피니의 기름부음입니다.

 

  그런 부음이 이 교회에 충만하게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향방 없이 기도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교회에서 표적과 기사와 이적, 성령의 나타남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을 원합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이 이 교회에 충만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기름부음이 이 교회에 넘쳐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이 깨어지고 낮아지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임하시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그러면 이것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바꿀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기름부음과 이런 은사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성령의 권능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의 권능입니다. 세 번째는 사랑의 권능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우리가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키려면 사랑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최고의 지혜, 최고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본문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예수님의 증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열방이 바뀌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사영리를 안다고, 복음을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원하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고 하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를 보면 서로 애인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누가 남의 남자나 여자에 대해서 물어봤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입을 아무도 못 다물게 만듭니다. 자기 애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증거합니다. 우리가 진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을 깊이 알게 될 것이고 주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분입니다. “그가 오시면 나를 증거할 것이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성령을, 성령의 권능을 받았는데 복음의 증인이 되기 때문에 도시와 나라와 열방이 바뀌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시작하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은 바뀌어 집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신유를 받고 신유의 증인이 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언을 받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신의 증인이 되는, 신유를 받고 신유의 은사를 받은 자신의 증인이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초점이 되면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높임을 받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높아지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돌아올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놋 뱀이 달리기 전에는 아무도 치유 받을 수 없었습니다. 놋 뱀이 들렸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아무리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나도 예수님이 높이 들리기까지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오직 예수님만 높이 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존귀해지고 존귀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고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대화의 주제가, 찬양과 경배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높아지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끄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되고 사람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됨으로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40년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니까 “왜 우리의 경건과 능력으로 이 사람이 나은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 나사렛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 그 이름이, 그분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때 5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자랑하고 끝났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기적에 놀라고 그냥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기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베드로가 그 시간을 통해서 그 기적을 기회로 해서 정말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니까 5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언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우리는 기적과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기적과 표적은 우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은사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 대한 사랑이요, 사랑 속에 있는 겸손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과 겸손입니다. 이것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바꿔놓을 수 있는 비결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군대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의 군대의 용사는 아가에 나오는 것처럼 신부된 자입니다. 술람미 여인 같은 사람입니다.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 바로 여자, 바로 신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 그가 용사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했던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이길 수 있는 용사가 된 것처럼 오늘날 다윗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 대해서 목마른 사람들, 주님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그를 사모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영적인 다윗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적인 군대가 되어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날에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그때 그런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 이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말로 주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그 날에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성경의 예언이 그들에게 응할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말씀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여러분, 사랑에 빠져보세요. 겸손해집니다. 도도했던 아가씨가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섬기는 하녀같이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왕이신 그분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이유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허리에 수건을 둘렀습니다. 사랑 때문에 종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모세오경에 성전 문지방에 귀를 뚫고 사랑 때문에 영원한 종이 되는 그 예표가 말해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그 여자의 종이 됩니다. 정말로 어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면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종이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종이 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낮아지게 만듭니다. 낮은 자리로 가게 만듭니다. 도도하고 콧대 높은 아가씨가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면 거기서는 도도한 것도 콧대 높은 것도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죽고 가정이 어려워지면 자존심 다 버리고 어떤 천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낮아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겸손으로 옷 입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해서 은사와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들어 올릴 때 우리는 겸손의 옷을 입게 됩니다.

 

  릭 조이너의 책에 나오는 것처럼 겸손의 겉옷은 영계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집니다. 천사들도 거기에 굴복하고 악령들도 그것을 알아봅니다. 귀신들도 거기에 굴복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그것은 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약한 것 때문에 겸손해졌기 때문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곧 강함이란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하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는 은혜 속에서만 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강합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는 은혜 속에서만 강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강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들이 마귀를 칠 것입니다. 귀신들도 두려워하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우리가 정말로 겸손해지면 영적인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고 마귀를, 사탄을, 귀신의 장들을 꾸짖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이 강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하게 될 때 우리는 도시와 나라와 열방에 대한 권위를 갖게 됩니다. 사랑과 겸손으로 예수님만을 높일 때 우리는 진정한 영적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되고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명예와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겸손의 옷을 입고 예수님만 높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십니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찬송 중에 거한다는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겸손한 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머리 조아리고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찬양이 아닙니다. 예배는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겸손하면 마음이 통회하고 겸손한 자에게 주님께서 임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영이, 마음이 소성됩니다. 그것이 기름부음입니다. 생수의 강입니다. 생명력을 주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름부음입니다. 그때 우리가 진짜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높이면 예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임재하시면 사람이 변화합니다.

 

  사람은 주님의 임재 속에서 변화됩니다. 사람은 단순히 노력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주님의 얼굴을 볼 때, 주님의 영광을 볼 때 변화됩니다. 이사야가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꾸짖는 사람이 없고 아무도 설교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회개하고 달라지는 것을 보십시오. 사람은 주님의 임재 속에서 변화됩니다. 주님이 높임 받고 주님이 임재하시면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사람이 바뀌어 집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주님이 임재하시고 높임을 받으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서 기적과 놀라운 능력들이 나타납니다. 주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면 계시들이 임합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서, 그래서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의 친밀감 속에서 주님과 비밀을 나누는 계시의 기름부음들이 풀려나는 것입니다. 계시의 기름부음들이 풀려나고 계시들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물질이 풀립니다. 돈이 모입니다. 재정이 쏟아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재정이 풀립니다. 필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냐하면 주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 회개가, 변화가, 거룩이, 이적이, 능력과 기적이, 계시가, 물질 축복이, 경제적인 번영이, 재정적인 공급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부흥이, 대추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단순히 큰믿음교회를 위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키라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안 느끼는 부담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도시와 나라와 열방 때문에 고민하고 부담감을 느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도시와 나라와 열방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인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 은사로, 여러 가지 은사와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이 표적이 되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병을 고치고 단순히 귀신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회개시키고 바꿔놓고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자아가 죽게 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군사들로 일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님의 신부와 친구로, 사람들을 영적인 용사와 군대로 일으키는 것입니다. 말씀이 표적이 되는 은사와 기름부음을 통해서 그것을 간구함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사랑의 권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서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이 교회에서 들려지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만 높아지시고 들려지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하십니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 오십니다. 주님께서 강한 용사로 일어나십니다. 그 다음에 주님의 임재 속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십니다. 사람들을 바꿔놓으십니다. 병을 치유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계시들이 풀어집니다. 깊은 비밀들이 풀려납니다. 물질이, 재정이 모입니다. 이사야 60장 1~3절 말씀처럼 동서남북에서, 열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열방에서 바다의 풍부와 재물이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도시와 나라와 열방이 바뀌고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부르심이 때때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우리의 부르심이 때로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됩니다. 어떻게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나라를 바꿔놓을 수 있는가? 어떻게 열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시간에 주님께서 구체적인 비밀과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말씀을 좇아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하옵소서. 각양 은사들로 성령님이 모습을 드러내시고 성령님이 나타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의 영권을 주시옵소서. 말씀의 강력한 기름부음을 주시옵소서. 말씀의 계시가 증가되게 하시고 말씀이 검이 되게 하시고 말씀이 방망이가 되게 하시고 말씀이 불이 되게 하시고 찰스 피니의 기름부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말씀으로 겉사람을 도륙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옛사람 자아를 도륙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들, 그리스도의 용사들을 세워나가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님과 사랑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겸손의 겉옷을 입고 주님만을 높임으로 말미암아, 이 교회에서 주님만이 높임을 받고 우리들의 모든 모임과 대화에서 주님만이 높임을 받고, 주님만이 높아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이끌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주님의 임재 속에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사람들이 치유되고 자유하게 되며 주님의 임재 속에서 계시의 영이 증가하고 모든 은사들이 풀어지며 주님의 임재 속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며 주님의 임재 속에서 열방에서 재물이 몰려오게 하여주옵소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확증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주님의 임재입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2~3) 그 다음에 보면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사 60:5) 확증입니다. 우리가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시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들은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부르짖고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한 목소리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