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큰믿음 교회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2009. 3. 12. 02:39

계시가 임하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신물 날 정도로 봐야 합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즉흥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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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가 임하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신물 날 정도로 봐야 합니다.

 

2005. 12. 20.

 

 

  잠 23:4 “...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회의 때나 토론할 때 보면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사로운 지혜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지혜로운 줄 아는데 진짜 지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지혜로 진짜 지혜를 가릴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나 설교할 때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사사로운 지혜를 가지고 진리를 가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조리 있고 원어를 들이대고 학설을 인용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니까 굉장히 지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비진리를 말하고 어둠을 옹호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사사로운 지혜가 신학에도 많습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강해설교자들이 그렇습니다. 무슨 시를 쓰는 것같이 문학적으로 설교하는데 문학은 영의 양식이 아닙니다. 시적인 표현이나 문학적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표현은 영의 양식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그것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철학적인 것이나 논리적인 것도 영의 양식이 아닙니다. 진리 자체를 증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진리가 우리 영혼에 와 닿아야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자기 목회의 성패를 건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성령께서 제 영에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합리성을 믿지 마라. 논리적인 설명을 믿지 마라.”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바른 것이 아니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진리를 잘 모릅니다. 정확한 답을 모릅니다. 그래도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 책을 덜 읽어서 정보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내 주장이 옳다는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럴싸한 설명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자기도 확신이 없고 자기도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이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논리적인 이론과 추론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끙끙 앓고 생각을 해봤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제한된 것입니다. 우리는 전지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고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그것을 혼자 독점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계시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서 보세요.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빛이 임하면 성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정확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설교 도중 “성령님께서 지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전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만 듣는다면 진짜로 정확합니다. 이렇게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저 같은 목회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목회 뿐 아니라 장사할 때나 사업할 때도 사사로운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는 꼭 될 것 같지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에 안 될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지혜로 생각한 것입니다. 사업을 해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논쟁과 토론을 싫어합니다. 말씀은 주님과 교통해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업도 머리 짜낸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과 교통이 되어서, 주님의 음성을 정확히 듣고 주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혜의 한계를 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 목사님들의 다수가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총신대학 나왔다. 나는 영어 잘한다. 외국에 가서 박사학위 땄다. 나는 강해설교의 대가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가지고는 진리를 알 수 없고, 영혼들을 움직일 수 없고, 주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습니다.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지혜로운 자가 되지 못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내가 철저하게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면, 참 지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사사로운 지혜로 가득 담겨 있으면 어떻게 무엇을 담겠습니까? 그릇을 비워야 담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능한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원래 지식과 재능이 많은 사람은 얄팍한 목회하다가 인생이 끝납니다. 재능이 많으니까 자기 재능으로 목회합니다. 그것은 혼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영의 세계에서 어떻게 자기 재능으로 목회합니까? 노래 잘 부르는 재능으로 가수는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대학 교수는 될 수 있어도 좋은 설교자는 못 됩니다. 자기 지식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평생 하늘의 지혜가 오지 않습니다. 잘난 재능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평생 하늘의 기름부음과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자기 지식을 내려놓고 어리석은 자가 될 때 하늘의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재능을 내려놓고 무능한 자가 될 때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가 되어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는 말씀대로 하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능력 주시옵소서.’ 그런다고 능력이 오는 줄 압니까? 절대로 안 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렇게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처럼 자기 지혜를 부정하고 내가 미련한 것을 깨닫고, 지식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를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저는 연구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의 한계를 대낮 같이 환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어거스틴이 말했다.”하면 그냥 믿습니다. 어거스틴의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지식이나 논리적인 사고 능력이 굉장하거든요. 일반 사람이 하나를 생각하면 이런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열, 스물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조나단 에드워드나 로이드 존즈가 말했다면 그냥 믿습니다. 그들에게도 구멍이 많은데 못 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워치만 니의 책에 그냥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고 감칠맛나게 설명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그 사람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얼마나 지성적이고 얼마나 천재적인 사람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천재가 아니라 만재가 되어도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런 분들이 다 훌륭한 분들이고 바른 분들이지만 온전하게 정확하게 진리를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분들보다 훨씬 부족한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내 자신이 내 지식과 내 사고력을 가지고 연구해서 진리를 알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칼빈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들에게 압도당하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보다 똑똑한 것은 인정하지만 저보다 열 배, 스무 배 뛰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알고 보면 오십 보, 백 보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의 것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다 읽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혜를 가지고도 분별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도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서 바르게 된 것은 다 받아들이고 다 흡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추종자가 되어 그들의 말에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제가 진짜로 신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계시를 믿습니다. 왜? 그것은 제가 신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와 유명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진리의 순수성에 있어서, 진리의 정확성에 있어서, 제가 믿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인간 지혜의 한계를 처절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시를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들은 계시적인 글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찰스 피니나 썬다 싱이나 케네스 해긴이나 릭 조이너의 책인데 그들의 책은 계시적입니다. 물론 계시도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성경을 가지고, 그들의 열매를 가지고, 그외 여러 가지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게 분별해서 그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맞을 때는 그것은 100%입니다. 그것은 진짜입니다. 설명을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떠나서 진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완벽한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시에 신경 쓰지 않고 말씀, 말씀, 말씀하면서 말씀을 자꾸 깊이 연구하면 정확해지는 줄 아는데 절대 아닙니다. 왜? 성경은 정확하지만 우리의 지성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이해력이나 분별력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가지고 씨름하면서도 비성경적인 깨달음이나 이론들이 수없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교단들이 나오고, 심지어 이단과 사이비도 나오는 것입니다. 진짜 정확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제대로 교통이 되면, 그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으면 그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아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어른 말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최고의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에서 최고의 지혜일뿐입니다. 최고의 지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최고의 설교자는 신학대학 총장이나 유명한 강해설교자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최고의 설교자는 기도 많이 하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정말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리고 자기가 미련한 것을 알고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사람 중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고 깊게 듣는 사람들 속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말씀의 은사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비결은 마음이 녹는 것입니다. 마음이 녹는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자기 한계를 아주 처절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지적으로가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 무지, 자기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목마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는 제 능력을 믿지도 않고, 어떤 유명한 신학자나 설교자들에게 압도당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분토같이 여깁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워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이 큰믿음교회를 만든 것이고 그것이 큰믿음교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저력입니다. 그것이 큰믿음교회의 강단이 가지고 있는 파워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삶의 성공을 바라십니까? 그러면 자기 생각을 다 버리세요. 자기 지혜를 다 버리세요. 사사로운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합니다. 말은 자기 생각의 표현인데 자기 생각을 그렇게 표현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사무엘처럼,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꿇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지, 그것이 가장 좋은 편을 택한 것이고 그것이 지혜지 무슨 말과 이론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것은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정말 성공하기를 원하시면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세요.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사업할 때도 전심으로 주님을 향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자는 다 성공합니다.

 

  릭 조이너가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대부흥과 대추수에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다.” 참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고, 최고의 말씀이고, 최고의 전략입니다. 주님과 친밀해짐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 목회에서도 사활적으로 중요하고, 세상사에서도 생사와 성공과 실패를 가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꿈을 꾸는 것입니까? 환상을 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더 뒤죽박죽 될 수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임한다고, 입신한다고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첫째로 성경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 전에는 여러분이 듣는 음성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약 90% 이상의 분별력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생각과 머리가 성경으로 젖고 배어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열심히 읽을 때는 하루에 다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을 매일 읽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성경을 몇 번 읽었냐고 물어보는데 성경은 몇 번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시간을 읽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막 깨달아지고 묵상이 되고 다른 곳을 찾아 봐야 되고 그리고 깨달은 것을 메모해야 하고 정신없이 읽다 보니까 성경 반 페이지 읽는데 두세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으려면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이 열리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만으로는 아주 이상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말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분별력이 생깁니다. 이 과정을 사람들이 무시하기 때문에 탈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성경 말씀으로 머리가 채색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인데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지요.

 

 

  계시가 임하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신물 날 정도로 봐야 합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주셨기 때문에 성경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영분별의 은사만으로는 절대 분별 못합니다. 영분별의 은사는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주는 분별이 따로 있고, 영분별의 은사가 주는 분별이 따로 있는데 성경이 주는 분별의 기초 위에서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 것이지 성경이 주는 분별이 없는 데서의 영분별의 은사는 어둠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못 믿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겸손입니다. 자기 지혜가, 머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판단력과 분별력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주님이 자기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자기 마음이 녹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주님을 향할 수밖에 없고, 전적으로 주님께 매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겸손이 없으면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습니다.

 

  겸손이 없으면, 내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생각이 살아나서 주님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 생각이 말하게 됩니다. 내 생각과 지혜와 판단력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성경 읽고 깨닫는다 하지만 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전부 자기 생각이 말합니다. 그런데도 설교자들은 그것이 주님의 음성인 줄로 착각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력을 완전히 부정해서 내가 무(無)로 내려가지 않으면 꿈을 꿔도 환상을 봐도 내 생각이 꿈과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입신까지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완전히 불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진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때 지혜의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야만 자기 생각이 죽어서 성경을 볼 때 자기 생각이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인데, 첫 번째는 내가 나한테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나한테 속삭이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잖아요. 세 번째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게 생각나게 하십니다. 거의 대부분 90% 이상의 성령의 음성은 생각으로 들립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 때 생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생각을 주신다.”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안 죽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위장해서 생각이 말합니다. 내 생각이 완전히 죽어야 성경을 봐도 내가 성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성경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고 진정한 말씀의 은사입니다. 진정한 말씀의 은사는 내 생각이 죽어야 오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는 자는 늘 자기의 음성을 듣습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는 잠언 말씀처럼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의사를 드러내는 것만 기뻐합니다. 겸손한 사람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겸손이 없으면 자기가 말할 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겸손한 자만이 진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꿈을 꾸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하고 예언을 하게 하는 요엘이 약속한 그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께로부터 주어지는 ‘지혜’와 ‘구변’이 임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친밀해져야 합니다. 기도 생활을 통해서, 마음의 정결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밀해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 듣는 것에 우리의 모든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습니다. 이 일에 성공하는 자는 앞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될 것이고, 이 일에 실패하는 자는 종교적인 설교자로 인생을 끝낼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실 진정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특징은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사역할 때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사역에 성공과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 안에서 오중사역자들의 완전한 회복이 있을 것이고, 일당백 일당천 할 수 있는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사도적인, 선지자적인 기업가(일터 사도)를 세우실 것입니다. 세상의 부(富)를 교회 안으로 가지고 올 사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통로로 쓰임 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중사역자가 하나님께 선택 받는 것처럼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사도적인, 선지자적인 기업가로 세워질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 될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 분야에 있어서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것입니다. 사도는 사도 사역에 관해서 정확하게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선지자는 선지자 사역에 있어서 정확하게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 전하는 일에 있어서, 목사는 목회에 있어서,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정확하게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사도가 사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선지자고,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고, 어떤 사람은 목사고, 어떤 사람은 교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도적인 기업가들을 세우실 것인데 사도적인 기업가들은 사업의 영역에서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것입니다. “이 일에 투자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 사업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 사람을 만나야 되느냐, 안 만나야 되느냐?” 자기 판단으로 사업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백 번을 투자하면 백 번을 다 이득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나 기드온이나 다윗이나 왕들에게 알려주신 전술들이 사람 보기에는 허황된 것 같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을 때 한 번도 그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승리도 보통 승리가 아니라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아군의 전사자도 거의 없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사역할 때 사도 사역에 압승이 주어질 것입니다.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사역에도 압승이 주어질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일하게 될 때 성도 운동에서 쓰임 받는 사람들은 압승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도 한 명이 수천 명, 수만 명, 수십만 명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여러분의 사업 분야에서도 이뤄져서 압승을 거둘 것입니다. 돈을 긁어모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대부흥과 대추수를 위해서, 열방과 나라와 도시와 뭇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오늘 새벽 4시 반쯤에 일어났는데 너무너무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하지?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나 보다. 그래서 사탄이 방해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제 설교는 준비된 정형화된 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이 거친 것이 있지만 오늘 설교 안에 주님의 음성들이 있음을 저는 압니다. 특히 후반부는 진정한 예언입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데 빌 해몬 박사가 2002년도 제게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너는 말씀에 관한 지식과 말씀에 관한 지혜로 아주 정확한 예언을 선포하게 되리라.” 저는 말씀으로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으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관한 지식과 말씀에 관한 지혜로 아주 정확한 예언들을 선포하리라.” 이것이 제가 예언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성경으로 머리를, 두뇌를 채색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겸손해져서 자기 지혜와 판단력을 부정하고 생각이 죽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을 읽을 때나 꿈을 꿀 때나 환상을 볼 때나 예언을 할 때 자기 생각이 섞이지 않습니다. 그래야 정확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주님이 얼굴을 가리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 친밀해져야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중 사역자로, 그리스도의 용사들로, 여호수아의 군대들로, 사도적인 기업가들로 세워져서(사도적인 기업가는 탄약창, 보급부대, 군수부대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오중사역자, 평신도 사역자, 사도적인 기업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고 기적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감사 드리고 찬송 드리고 찬양 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말씀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한 놀라운 예언의 말씀으로 축복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우리 생각이 도배가 되고 채색이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 앞에 겸비해지게 해주옵소서. 인간 지혜와 판단력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닫고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전심으로 주님을 향하는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그릇이 준비된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 또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받게 해주옵소서. 그런 상태에서 꿈이 열리게 하시고, 그런 상태에서 환상이 열리게 하시고, 그런 상태에서 예언의 말씀이 주어지고, 그런 상태에서 입신이 일어나며, 그런 상태에서 성도의 교제가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주님과 친밀해지고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바꿔 말해서 “친구들에게 비밀을 알리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다.”고 하신 주님의 그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때 불필요한 실패나 시행착오를 격지 않게 되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들의 사역과 사업에 압도적인 승리와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기적적인 축복과 승리들이 뒤따르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