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큰믿음 교회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2009. 3. 16. 06:39

2004년에 설교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설교의 1대지인데 교계 안에 널리 퍼진 "계시에 대한 알레르기"를 없애기 위해 소개합니다.

  • 글쓴이: 겸손
  • 조회수 : 966
  • 09.03.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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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뜬금 없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지지 않으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는커녕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회심, 혹은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대답은 아닙니다.

 

  얼마 전 새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성령님의 아주 명백한 계시가 저에게 임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제 영에 아주 선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주께서 말씀하신 바 돌이켜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느냐? 그것은 정확하게,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지식으로 받지 않고 계시로 받을 수 있을 만큼 겸손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든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지식이 아닌 계시로 받을 만큼 겸손해지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처럼 실제로 본문의 문맥 속에서 어린아이는 겸손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5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은 뭘 좀 안다고 교만한 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감춘다”는 말 안에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에게 감춥니까? 지혜롭고 슬기 있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감출만한 이유가 됩니까? 아니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지혜롭고 슬기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가진 지식이나 지혜 때문에 마음이 교만하여진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린아이들”은 본문 4절에서와 마찬가지로 겸손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음의 비밀 혹은 천국의 비밀을 누구에게 계시하시는가?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 겸손한 자들에게 입니다.

 

  한편, “숨기시고” "나타내신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계시와 관련 있는 표현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니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이 “어찌하여 저희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마 13:11)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나타내는 것” 혹은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우리는 이런 계시를 필요로 합니다. 구원에는 이런 계시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잘못 가르침을 받아서 “계시”하면 바짝 경계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시고 잘 들으십시오. 계시가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즉 누구도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비록 생소하더라도 성경적인 매우 명백한 진리입니다.

 

  (1) 구원은 ‘예수님에 관하여’ 아는 자들의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즉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그런데 예수님은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아버지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11:27).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 영혼에 계시가 임해야만 합니다.

 

  (2)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복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계시가 임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즉 머리로가 아니라 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천국 열쇠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런 계시는 꼭 환상이나 들리는 음성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계시는 영에 임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머리에 지식으로 들어가지 않고 영에 계시로 임해야 지식고백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 26:16-18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제일 먼저 되어져야 할 일은 “그 눈을 뜨는 것”임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왜 눈이 떠져야만 합니까? 왜냐하면 그래야 복음에 관한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로고스요 다른 하나는 레마입니다. 로고스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지적인 말씀이요. 레마는 성령에 의해 이 말씀이 살아나서 계시로 사람들의 심령에 가서 꽂히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로마서 10:17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레마”입니다.

 

  레마는 일종의 성령의 계시입니다. 로고스는 지식을 가져다주고 레마는 바울이 말한 대로 믿음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결국 계시가 있어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5) 성령은 바울이 소개한 대로 “지혜와 계시의 영”(엡 1:17)입니다. 성령은 학자들처럼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를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후서 3:2-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바울이 말한 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8장 및 10장에 기록되어 있는 새 언약에 관한 진술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고후 3:3)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오직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에 의하면 오직 그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된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계시가 없으면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6) 고후 4:3-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것은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신(마귀와 귀신)이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계시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중보 기도하고 영적 전쟁을 치뤄 불신자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가림을 제거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도 뭐가 나타납니까? 바로 계시를 받아야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상 몇 가지로 입증한 대로 계시가 임해야만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씨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깨닫는 것은 다릅니다. 이해하는 것은 머리의 작용이요, 깨닫는 것은 영(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계시가 임해야만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죄를 깨닫는 것도 계시가 없으면 안 되고, 복음을 깨닫는 것도 계시가 없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계시가 없으면 회개도 없고 믿음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계시는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는 주님이 마태복음 11:25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아이들” 즉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만 임합니다. 그래서 찰스 하지는 "겸손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겸손 없이는 참된 신앙, 하나님과의 교제,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능력이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하십시오. 그래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말씀을 진짜 들을 수 있고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아주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설교를 하면서 관찰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인데, 어떤 사람은 착하고 겸손합니다. 이런 사람은 옥토 밭으로 복음을 들으면 즉각 구원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악하나 겸손합니다. 이런 사람은 앞의 경우만 못하지만 구원받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착한데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만이 깨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악하고 교만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묻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이 4종류의 사람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