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큰믿음 교회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2009. 4. 11. 07:37

세례 요한의 죽음을 사모합니다!

 

 

  세례 요한은 위대한 예언을 한 사람도 아니었고 하늘에서 불을 내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가르지도 않았고 죽은 사람을 살리지도 않았고 엄청난 표적이나 기사를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성경에서 가장 자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세례 요한은 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마 11:11, 눅 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큰 자는 주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예언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다."(눅 1:15) ‘사람들 앞에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광인처럼 볼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주님 앞에 큰 자가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입니다. 왜? 주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닮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자기를 비워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8) 주님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셨습니다. 내가 있는 상태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것이 아니라 주님은 하나님이신 그분의 자아를 비워 버렸습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을 닮았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완전히 비웠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땅에서 취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좋은 옷을 입지도 않았고 좋은 음식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집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습니다. 결혼하지도 않았고 많은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부터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었습니다. 광야에 거하면서 메뚜기를 잡아먹고 석청을 먹고 당시 서민의 옷감으로도 쓰지 않는 약대 털옷을 걸쳐 입고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좋은 사택을 제공한 것도 아니었고 사례비를 많이 제공한 것도 아니었고 좋은 자가용을 제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아무것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왔을 때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다 내어드렸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말했을 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그 친구가 기뻐하는 것처럼 나는 그런 기쁨으로 충만하였도다."(요 3:30) 사람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예수님께 간다는 것에 대해서 그는 기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처음 보고도 금방 알아봤습니다. "제가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제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다 꿰뚫어 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온 것처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심령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심령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이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다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이 있고 음란하고 시기하고 혈기를 부리고 싸우는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봤을 때 예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봤을 때 그는 독생자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성품을 보고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세례를 주는데 이분을 봤을 때 회개할 사람은 내 자신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분에게 회개하라고 세례를 줄 수 있겠는가?"

저는 세례 요한이 당시에 죄를 짓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온전히 거룩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완전 하라.”(마 5:48)고 한 그 완전에 분명히 도달해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무슨 죄에 매여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겸손도 같은 겸손이 아닙니다. 사랑도 같은 사랑이 아니고 거룩도 같은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이 같은 것이라면 천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스랍 천사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면서 완전히 하나님의 거룩에 압도당해서 영원히 "거룩하다, 거룩하다"(사 6:3, 계 4:8)를 외치면서 찬양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거룩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엡 3:19)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속에 미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에도 온유에도 겸손에도 거룩에도 정직에도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무한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이것을 본 것입니다. 거기서 세례 요한이 압도를 당해서 "제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영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 요한은 자기를 철저하게 비운 사람입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큰 자들의 특징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능력을 받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상급 받을 때 돈 열 냥 줄 것을 열한 냥 주는 식으로 상급이나 조금 왔다 갔다 하는 것일 뿐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들은 모세의 온유함에 나타나는 것처럼, 다윗의 겸손에 나타나는 것처럼, 세례 요한이 자기를 비우는 것에 나타나는 것처럼 도저히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그런 깊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진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큰 자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볼 때 그는 예수님께서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흠 없으시고 점 없으신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속에서 정결함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를 본 것입니다. 그 자신도 정결하고 흠이 없었고 온전했습니다. 그러나 온전이라고 같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거룩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처럼 세례 요한에게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예수님 속에서 바로 스랍 천사가 본 그것을 본 것입니다. 스랍 천사가 거룩했지만 영원히 압도당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같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했고 의로웠고 거룩했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었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 수 있었지만 자신 속에 있는 거룩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그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를 비교할 수 없는 측량할 수 없는 주님 속에 있는 대서양, 태평양 같은 거룩을 본 것입니다. 거기에 압도당해서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저입니다. 회개를 해야 할 사람은 저입니다. 정결하게 되어야 할 사람은 저입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께 회개의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세례를 받아야 할 자는 저입니다."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저는 요즘 세례 요한의 삶을 많이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진정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는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였고 그는 참으로 정결했고 겸손했고, 자기를 위하여 아무것도 챙긴 것이 없었고 그는 완전히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렸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집이나 좋은 음식이나 옷을 취한 것도 아니었고 오늘날 말하는 좋은 차를 취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좋은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짐승과 같이 살면서 요단강에서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메시지를 외치고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의 세례를 주고 제자들을 다 키워났더니, 이제는 큰 교회를 이루고 큰 종교적인 집단을 이뤄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존경받으며 강력한 기름부음을 사용해서 놀라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예수님께로 떠나갔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으나 죽이지 못하고 엘리야는 승천했지만 동일한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으로 온 세례 요한은 이세벨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헤로디아에게 잡혀서 감옥에 있다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인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헤롯을 충족시키는 음란한 춤을 춘 살로메의 요청에 의해 마치 잔치 날 돼지를 잡는 것처럼 목이 잘려서 잔치 석상으로 목이 들려서 갔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신실했던 사람인데,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거룩했던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삶에 무슨 흠이 있습니까? 모세는 사람을 때려죽인 흠이 있었고, 엘리야는 낙심한 흠이 있었지만, 세례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나실인으로 광야에서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제하면서 일생을 살았는데 그가 음란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가 살인한 적이, 혈기를 부린 적이 있었습니까? 평생을 가장 고결하고, 가장 완전하고 가장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산 사람인데 그는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 8:20, 눅 9:58)하신 것처럼 세례 요한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도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전 8:14)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세례 요한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의인이지만 악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악인의 행위대로 받은 의인이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강도질하다가 마지막에 사형을 당하는 것처럼 그는 의인이었지만 악인이 받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의인으로서 악인이 받는 것처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헛된 것입니까?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요즘 이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주님, 나를 버리게 해주옵소서. 세례 요한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주시옵소서. 세례 요한이 겸손했던 것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세례 요한이 세상 것을 취하지 않았던 것처럼 제게도 그런 마음을 주옵소서. 세례 요한이 자아를 완전히 죽였던 것처럼 나도 자아를 완전히 버리게 해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후회할 것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하늘의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까? 주여, 내 육은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 육이 세례 요한이 걸어간 길을 원하지 않고 내 육은 세례 요한의 최후처럼 내 인생이 그렇게 마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것이 가장 영광의 길인 것을 압니다. 주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에게 주신 영성과 은혜를 제게도 주시옵소서.' 이것이 솔직히 제 고민이고 갈등이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부분이고 주님 앞에 간구하는 부분입니다.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주님은 누구보다도 세례 요한을 성공시켰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받고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주님은 누구보다도 세례 요한은 이 세상에서 받고 누리게 했을 것입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청년과 같은 건강을 누리다가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어떠했습니까? 왜 주님께서 그토록 신실한 사람에게 그런 죽음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당신에게 그토록 충성된 사람에게,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다 보내면서 오히려 기뻐했던 자에게 주님은 무엇이 아까워서 그의 최후를 그렇게 비참하게, 그렇게 악인들에게, 천박한 사람들에게 목이 잘려서 죽게 하신 걸까요? 세례 요한과 함께 주님도 영원한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슬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진짜 영광에 들어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을 것임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 세례 요한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하늘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갚아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장 완전하게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까지 아무것도 그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영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고후 4:18)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 꿈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세례 요한 같은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진정한 지혜를 주셔서 주님의 얼굴이 빛나듯 우리의 얼굴이 빛나게 하시고 우리 얼굴에서 사나운 모든 것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원하옵고 기도하오니 세례 요한의 영성을 본받을 수 있게 해주옵소서. 그가 정결한 것처럼 정결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겸손했던 것처럼 겸손해지기를 원합니다. 그가 주님과 친밀했던 것처럼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도 세례 요한의 그 마음을 원합니다. 우리의 육은 원하지 않지만 세례 요한의 죽음을 사모합니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이 땅의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정말로 주님이 걸어가셨고 세례 요한이 걸어갔던 죽음 너머의 것을 추구하게 하시고 위엣 것을 찾게 하시고 위엣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