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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이야기와 좋아하는 것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성의 그레이트 홀 The Grea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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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Kingdom 여행/스코틀랜드

2020. 12. 18.

 

1633년에 에딘버러 성에서 왕권을 물려받은 찰스 1세는 1649년에 잉글랜드 크롬웰 군의 침공으로 처형이 되고

 

 

그의 아들 찰스 2세가 1651년 스콘 성에서 즉위한 것이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이라고 적혀 있다.

 

 

 

 

 

 

 

크롬웰 군의 침공으로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 등은 던노타 성으로 옮겨졌고, 던노타 성을 포위하고 있는

 

크롬웰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10마일 정도 남쪽에 떨어진 키네프로 옮겨져 키네프 교회의 침대 밑에 8년간 숨겨졌었다고

 

한다.

 

 

던노타 성은 아버딘의 남쪽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바닷가의 조그마한 성이라서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 성에도 이런 사연이 담겨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던노타 성이 함락되기 전의 성 안에는 성주를 위시한 40여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던노타 성은 거의 허물어져

 

폐허 같은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1707년에 앵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 의회가 발족하고, 왕관 등은 크롬웰 방에 보관된 채,

 

111년의 긴 세월 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나무궤에 보관되었던 왕관과 검 그리고 Sceptre 모습이다.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했던 검과 왕관, Sceptre 모습이다.

 

 

 

 

 

 

 

 

 

 

 

로얄 팰리스에 보관된 왕관과 홀의 사진이다.

 

 

홀 Sceptre은 1494년 제임스 4세가, 왕관은 1543년 메리 여왕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조약이 체결된 후 궤에 보관되었던 것을 1818년 소설가 월터 스콧이

 

발견했다고 한다.

 

 

이 크라운 주얼스의 실제 모습은 촬영이 금지되어 사진으로 대신 했다.

 

 

 

왜~? 한번 써 보실려우~?

 

 

 

 

 

 

 

 

 

 

 

스코틀랜드의 상징 유니콘과 잉글랜드의 사자가 왕권을 받들고 있는 문장 모습이다.

 

 

로얄 팰리스 내부 모습이고~

 

 

 

 

 

 

 

로얄 팰리스의 기념품점 모습이다.

 

 

 

 

 

 

 

 

 

 

 

로얄 팰리스 바로 앞 건물인데 스코틀랜드 전쟁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전쟁 박물관 Scottish National War Museum의 전면 모습이다.

 

 

 

 

 

 

 

 

 

 

 

1914년 이후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이 박물관에는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용기, 평화, 정의를

 

주제로 공예품과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이들의 희생 정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진 촬영 등은 금해 달라는 안내판이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로얄 팰리스와 전쟁 기념관은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궁전의 그레이트 홀 Great Hall 입구인데

 

 

The Other Mary에 대한 소개를 정해진 시간에 해주고 있다는 안내판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예쁘게 생긴 처자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The Other Mary, Mary of Guise~

 

스코틀랜드의 그 유명한 메리 여왕의 모후다.

 

 

프랑스 명문 귀족 출신의 마리 드 기즈 Mary of Guise는 제임스 5세와 혼인을 했는데,

 

제임스 5세는 메리가 태어난 지 6일 만에 숨을 거두었고,

 

1543년 9개월의 아기였던 메리는 대관식을 치르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으며,

 

이후 아란 백작 제임스 해밀턴과 메리의 모후 마리가 섭정을 했다고 한다.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의 협박에 가까운 추진으로 그의 아들 에드워드와 약혼했으나

 

헨리 8세가 노골적으로 스코틀랜드에 대한 합병 야욕을 드러내자 동맹도 약혼도 깨졌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외교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딸 메리를 염려한 모후 마리 드 기즈는 잉글랜드의 숙적인 프랑스에 도움을 청해서,

 

1548년 메리는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의 아들 도팽 프랑수아와 약혼하고,

 

그 해 메리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모후 마리 드 기즈가 섭정으로서 스코틀랜드 왕위를 지켰다고 한다.

 

 

프랑스에 온 지 10년 만인 1558년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와 프랑스의 도팽 프랑수아의 결혼식이 열렸고

 

다음 해 앙리 2세가 사망하자 도팽 프랑수아는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2세로,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로 즉위하였다고 한다.

 

 

프랑수아 2세가 오래 살지 못하고 즉위한 지 1년 만인 1560년 세상을 떠나자

 

메리는 1561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는데,

 

시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의 갈등이 심해졌을 뿐만아니라 프랑스에서 미망인으로 살기보다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모인 마리 드 기즈는 이미 1560년에 사망한 후였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영토분쟁 뿐만아니라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충돌로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린 메리 여왕의 모후로 메리 여왕을 보호하고 잉글랜드로부터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지키려 했던 그녀의 삶도

 

딸 메리 여왕만큼이나 순탄치 못한 일생을 살았을 듯 싶다.

 

 

 

 

 

 

 

이제 그레이트 홀의 면면을 살펴보자.

 

 

 

수많은 창검과 갑옷이 전시되어 있다.

 

 

 

 

 

 

 

 

 

 

 

그레이트 홀 모습이다.

 

 

 

 

 

 

 

 

 

 

 

천장의 목구조물이 아름답다.

 

 

 

 

 

 

 

 

 

 

 

홀의 높은 벽면도 창검과 갑옷으로 장식되어 있다.

 

 

 

 

 

 

 

벽면의 나무 장식이 아름답다.

 

 

그레이트 홀의 외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