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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 경주 동부동 - 새해에 찾아본 경주 읍성 복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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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아름다운 시간여행

2016. 1. 14.

 

 

 

 

 

 

 경주읍성 복원 현장을 다녀오며... 

 

           사적 96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읍성은 조선시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인

           행정기능을 담당했던 돌성이였는데 다른 신라문화재에 가려 오랜기간 방치 되어 있다가

           경주시가 2020년까지 사업비 605억원을 투입하여 발굴조사와 성체, 동.북문 복원,

           성내 유적정비 등 복원사업을 추진 중 입니다.

 

             경주읍성 소재지는 경주시  동부동(東部洞) 및 북부동(北部洞)에 걸쳐있는 읍성으로

           서부동 2-4번지, 서부동93번지, 북부동 187번지, 북부동 1-4번지, 북부동 1-52번지,

           성동동 223-1번지, 성동동 386-6번지 등에는 경주 읍성에서 옮겨다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석재들이 민가내에도 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와 그 이후에도 경주를 중시하여 왔으므로 읍성(邑城)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축성 연대는 불확실하며 '동경통지'에는"고려 폐왕 우(禑) 무오(戊午)에 개축하였고, 높이는

           12자 7치"라고 되어 있고 조선 문종 세조년간에 해자를 시설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 영조 22년(1746)에

           확장되었는데, 당시 둘레가 약 2,300m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집경전(集慶殿) 뒤쪽의 석축 구조물을 고려시대의 북문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동국여지승람' 에는 "주위가 4,075자이고 높이는 12자인데, 성내에 우물이 80개소나 있다"고

           되어 있고,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징례문(徵禮門)은 읍성의 남문인데, 조선 초기에 개축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숭정(崇禎) 임신(壬申)에 인조 10년(1632) 부윤(府尹) 전식(全湜)이 남문인

           징례문(徵禮門)을 중수하고 동․서․북의 3문을 차례로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헐리고 약 70 m만 남아 있는데, 가로 40~50 cm, 세로 20~30 cm의 잘 다듬은 돌로

           축성되어 있습니다.

           성문은 동쪽에 향일문(向日門), 서쪽에 망미문(望美門), 남쪽에 징례문(微禮門), 북쪽에 공진문(拱辰門)이

           있었는데, 당시 징례문에는 봉덕사(奉德寺)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달아놓고 매일 시각을 알리는

           타종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축성한 석재의 돌더미 속에서 귀중한 석물(石物)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절에 있던 석탑부재

           사적 제 96호인 경주읍성(慶州邑城)에 대한 보수작업 과정에서 다량의 유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004년 6월 20일 경북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읍성의 치(성곽방어를 위해 돌출시킨 부분)부분을

           보수하기 위해 읍성을 해체하자 지반석을 비롯한 성곽 축조 당시의 유구가 드러났는데 경주시는 
           유구와 성곽 부재 처리문제에 대해 문화재청에 기술지도를 요청했으며 발견된 유구는 읍성을 쌓을 때

           사용된 지반석과 지대석, 수십개의 성곽부재로, 경주시는 이들을 보수작업에 활용할지 여부를

           문화재청에 질의했다고 합니다.

 

           경주시는 지난해 4월 경주읍성 성곽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배불림 현상을 보임에 따라 사업비 2억원을

           들여 56m 길이의 읍성 복원사업을 7개월만에 마친 바 있으며 경주읍성은 고려 현종(顯宗) 3년(1012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동쪽 성벽 90m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조선 선조25년(1592) 4월 21일에 왜병에게 쫓겨 안강(安康)으로 진을 옮긴 경상좌병사 박진(朴晋)이

           9월 8일 경주읍성 탈환 작전에 경주 판관 박의장(朴毅長)을 선봉으로 하여 군기시(軍器寺)의

           화포장(火砲匠)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하여 큰 성과를 올린

           역사의 현장이 바로 경주 읍성이라고 합니다. 

                          

                             ( 최효식,「경주와임진왜란,『한국향토사연구,국학자료원, 2002, pp.35~49.)

 

 

 ▲ 경주 읍성 가는길 서부동에서 만난 일출 모습...

 

 

 

 

 

 

 

 1월의 해와 하늘

수십 억 년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날마다 변함없이 뜨고 지는 해.
해는 똑같은 해인데
12월에 떠오르는 해는
낡아 보이고
1월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
적과 동지
아름다움과 추함
빠름과 느림
배부름과 배고픔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나약함...

본질은 같으나
느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무엇들,
세상에 너무 많은.

1월 어느 날의 청명한 하늘,
12월 어느 날에 청명했던 바로 그
하늘이 아닌.


(안재동·시인, 1958-)

 

 

 

 

 

 

▲ 경주읍성 주변의 겨울 텃밭 ...

 

▲ 경주 읍성을 표시한 비석

 

 

 

 

▲ 경주 읍성의 우람한 나무들...

 

 

 

 

 

 

 

▲ 어느새 해가 중천으로...

 

 

                                               블친님들 따뜻한 차 한잔하시면서 

                                           웃음을 나누는 즐거운 오후되시기 바랍니다^-^

 

                                                                                                      타임리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