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명소, 서울성곽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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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둘레길 한양도성 순성길

2011. 7. 11.

 

서울의 명소, 서울성곽걷기

 

서울성곽 걷기 출발지인 와룡공원입니다.

위치는종로구 명륜3가로 이곳에서 서울과학고까지는 성곽안쪽을 걷고

경신고부터 낙산공원까지는 성곽 바깥쪽을 걷게 됩니다.

암문을 통하여 낙산공원 들어서면 이화마을을 돌아보고

 다시 암문을 통하여 성곽 바깥길로 흥인지문(동대문)에 이르는

 3.218km의 완만한 코스로 1시간30분정도가 소요됩니다.

 

 

 

 

 

 

 

서울성곽은 서울을 둘러 싸고있는 조선시대의

성으로 사적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축조시기는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성곽의 안쪽은 명륜동이고 바깥쪽은 성북동입니다.

 

 

 

 

 

의 중간 중간에 적의 관측이 어려운곳에 은밀하게 출입하던인 암문이 있습니다

 

 

 

 

 

서울과학고에서 혜화문까지의 구간은 성곽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많지않던 지난세월에 훼손되어 성곽이 아쉽게도 끊긴구간입니다.

 

 

 

 

 

서울과학고를 지나면 경신고의 담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개교 125년이된 이 학교는 서울성곽위에 담장을 치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시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알수있는 부분입니다.

 

 

 

 

 

 

안타깝게도 경신고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코스는

성곽위로 경신고가 세워졌고 교회당,일반주택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지난 세월의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한 개발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울성곽위에 학교를 세운 경신고는 1885년 미국인 목사가

정동에 설립한 학교로 1955년 현재의 혜화동으로 이전해 왔다.

이 학교 출신 독립투사로는 김규식,안창호등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했습니다

 

 

 

 

 

일부 성곽이 남아있는 구간도 성곽위에는 일반 주택이 들어서 있습니다

 

 

 

 

 

 

도로가  생긴곳은 성곽은 철거 되었고 혜화문도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1994년 현재의 자리에 비슷하게 새로 지어 졌습니다.

 

 

 

 

 

원래의 혜화문(惠化門)은 은 서울성곽의 사소문 중 하나로,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을 폐쇄하고, 혜화문을 북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원래 소문을 지키는 출직호군(出直護軍, 문을 지키는 병사)이 20명이고

대문은 30명이지만 혜화문은 출직호군이 30명이었다

 

 

 

 

 

 

혜화문에서 낙산공원까지의 코스는 차도를 건너야합니다

지상 건널목이 없으니 한성대입구역 지하도를 통해 건너야 합니다.

길을 건너면 삼선SK주유소 오른쪽 골목으로 진입하면 성곽이 보입니다.

이 구간은 성곽 바깥쪽을 걷다가 암문으로낙산공원으로 진입해서

1박2일애서 방송된 이승기천사날개가 있는 이화마을 돌아보고

암문을 통해 다시 성밖길을 걸어 흥인지문으로 갑니다.

삼선SK주유소 우측골목입니다.

 

 

 

 

 

 

최근엔 kbs 인기 프로인 1박2일 서울 당일치기여행 촬영이후

서울성곽 탐방객이 급격히 늘어나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니

주거지역을 통과 할때는 가급적 조용히 다니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에 성곽 안쪽은 가톨릭대학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구간에 성곽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잇습니다.

 

 

 

 

 

이코스에서 제일 높은지대인 낙산공원 올라가는 길입니다

낙산공원은 주소상으로는 종로구 동숭동이며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공원중에 한곳입니다

풍수 지리적으로 주산인 북한산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우백호인 인왕산과 대치되면서

조선왕조의 수도로서의 한양 입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울성곽은 서울을 둘러 싸고있는 조선시대의

성으로 사적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축조시기는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암문을 통하여 낙산공원에 들어 섰습니다.

이젠 이화마을을 돌아보고 흥인지문으로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