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의 서울 청계천 저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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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디까지 가봤니?/서울 걷기 좋은길

2011. 9. 15.

 

늦더위의 서울 청계천 저녁풍

 

청계천(淸溪川)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남산, 북악산 등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을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흘러드는 마른 하천이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반면에 청계천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본래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청계천"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태종때 부터

한양을 서울로 한 조선시대 내내 개거, 준설 등 치수 사업의 대상이었다.

태종은 1406년부터 자연상태에 있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았으나 큰비가 올 때마다 피해는 계속되었다.

 1411년 12월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개천도감(開渠都監)'를

설치하고, 이듬해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큰 공사를 실시하였다.

청계천의 양안을 돌로 쌓고,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들었다. '개천(開川)'이라는 말은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자연상태의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이 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세종은 청계천의 지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종로의 시전행랑(市廛行廊)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는데, 지천의 물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들어 넘쳐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도심의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세종은 1441년에 마전교 서쪽에 수표를 세워 수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복개 사업과 1970년대에 완공된

청계고가도로의 환경 오염 및 노후에 따른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공약사항으로 추진되었으며,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9월 30일까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를 걷어내는 복원 사업이 서울특별시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 사업으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 km의 구간이 복원되어 산책로, 녹지 등이 설치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청계천 본래 지류가 아닌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한다.

사업비는 386,739백만원 소요되었다. 청계천 통수(通水),

 자동차 운행 감소, 고가도로 철거에 따른 바람길 형성 등의 영향으로

청계천변 숭인빌딩 앞의 기온이 평균 3.6도 낮은 것으로 측정됐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 대해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일례로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저서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며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2011년 6월 조선일보가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청계천은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혔다.

건축가들은 "청계천은 한국을 상징하는 공공 건축물인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글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