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문경]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새재, 마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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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이야기/천주교 성지순례

2012. 5. 13.

 

 

[경북/문경]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새재, 마원성지

 

 

소나무를 병풍 삼아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만큼 험한 고갯길, 해발 1천17미터의 새재에는 그 옛날 박해를 피해 산으로 산으로 깊숙이 숨어들어야 했던 슬픈 탄식이 서려 있다.
 
충주에서 문경, 괴산에서 제천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올라야 하는 새재는 영남의 관문이다. 그 밑으로 30여 분 거리에 위치 한 경북 문경군 문경읍 마원1리는 병인박해 당시 목숨을 빼앗긴 박상근 마티아 등 30여 명 순교자들이 살았던 신앙의 터이다.
 
본래 조선 시대 마포원(馬包院)이 있었던 터라 '마포원','마원' 또는 '마판'이라고 불린 이 지역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동면 우어리 일부를 병합해 '마원'이라 하고 문경군에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마원에는 일찍이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 지역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들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한실, 문경, 여우목, 건아기 등과 함께 마원은 교우들이 화전을 일구며 모여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그러던 중 이곳에 박해의 회오리가 불어온 것이 1866년 병인년, 서슬 퍼런 탄압은 새재를 넘어 이곳 마원에까지 들이 닥치게 됐고 이 때 마을의 교우 30여 명은 충주,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돼 갖은 고문과 혹형을 당한 끝에 순교했다고 전한다.
 
특히 30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순교한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이곳에 남아 있어 생생한 신앙의 숨결을 되새기게 해준다.
 
문경 토박이로 아전이었다고 전해지는 그는 아마도 신유박해(1801년) 이후 이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의 신자들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지방인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입교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레 신부의 전교 기록에 보면 문경에서 가까운 배고하산 중허리에 자리 잡은 한실에 신자 집이 서너 집씩 무리 지어 산재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신자들의 영향으로 그의 집안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칼레 신부는 그의 출중한 신앙심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를 자신의 집에 은신시킨 용기에 대해 치하하고 있다. 결국 병인년 12월에 체포된 그는 평소 친분을 가졌던 문경 현감의 간곡한 배교 권유를 단호하게 물리치고 칼을 받았던 것이다.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발굴된 것은 1985년 9월의 일이다. 마원리 박씨 문중산에 대대로 내려오는 묘가 있었는데 여러 정황과 중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이 묘가 "치명 일기"에서 말한던 순교자 박 마티아의 묘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동 교우는 마원에 순교 성지를 조성키로 결의하고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다각적인 성지 개발 계획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한편 순교자의 뜻을 기리기 위한 현양 대회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