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가봐야 할 곳 서울 국립 4.19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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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곳서울

2021. 1. 13.

 

한번은 가봐야 할 곳 서울 국립 4.19민주묘지.. (여행일자 2021년 1월11일)

 

집콕만 하다가 한달만에 모처럼 외출인데도 하늘은 기분이 안좋은 모양이다.. 따뜻한 햇빛을 기대를 했건만 하루종일

불편한 안색이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갈만한곳이 있다고 안내해준곳이 바로 국립 4.19민주묘지다.. 

이곳은 오래전 북한산둘레길 2코스를 걸으면서 전망대에서 봐온곳으로 한번은 가봐야 했던곳중에 한곳이였다.. 

 

 

 

 

 

4.19민주묘지 뒤편으로 보이는게 삼각산 북한산이라고 했고 주변으로는 북한산둘레길 2코스의 둘레길이 보인다..

몇년전이지만 땀을 흘리며 걸었던 북한산둘레길을 3코스부터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4.19민주묘지는

1960년 4월19일 전후로 일어났던 4.19혁명에 참가해 희생장들을 모시기위해 만들어진 국가보훈처 소속 국립묘지다..

 

 

 

 

 

4.19혁명의 역사적인 의미를 불꽃형상으로 표현한 조각상으로 정의의 불꽃으로 불린다고 한다.. 행사때면 무대가

설치되고 음악회가 열리고 있으며 함께 했던 지인은 예전 코로나가 창궐하기전에는 윤도현밴드가 이곳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열정의 시간이였다한다.. 정의의 불꽃조각상 옆 언덕에는 4.19라는 글씨를 나무로 꾸며놓아 되새기고 있다.. 

 

 

 

 

 

 

산책나온 동네 어르신들의 사회적 거리두기실천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요즘 시대에 웃지못한 모습에 씁씁하다..

주차장부터 다목적광장과 참배대기광장 옆으로는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 가을철이면 단풍의 명소로도 알려져있다..

봄이면 연못에 커다란 잉어도 살고 있고 이용객들이 쉼터가 되고 있으니 평화롭기 그지없는곳이다.. 

 

 

 

 

 

커다란 태극기밑으로 4.19혁명에서 희생하신 분들이 안장되어 있는 묘역이다..  겨울이라 썰렁한 분위기 내린 눈으로

덮혀 더 스산한 느낌이다.. 기념탑 좌 우 뒤편으로 묘역이 10개씩 위치하고 있으며 제4묘역까지 안장되어 있다.. 묘지옆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을 새겨두었고 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했으니 정의앞에선 나이도 성별도 다 필요없다.. 

 

 

 

 

 

현재 국립4.19민주묘지의 안장능력은 547기이며 1묘역과 2묘역에는 4.19혁명 당시 사망자와 부상자 277명의 안치

되어 있고 3묘역에는 4.19혁명 유공건국포장 수상사 38명이 안치되어 있다..  4묘역은 현재 예비묘역으로 남겨져있다..

 

 

 

 

 

유영봉안소는 4.19 혁명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위패와 영정을 올린곳으로 죽은사람의 초상이나 사진이 있다한다..

평소때에는 들어가 볼수 있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때문인지 아니면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문이 닫혀 보지를 못했다..

 

 

 

 

 

 

 

4.19민주묘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기념탑과 분향소가 세워져 있고 4.19 혁명의 드높은 기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사월학생 혁명기념탑에는 1960년 4월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린 186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라고 쓰여져 있는 문구가 숙연하게 만든다.. 

 

 

 

 

 

 

 

4.19민주묘지 잔디광장에는 궐기학생과 진압경찰의 대치된 상황을 묘사한 조형물과 4.19혁명을 소재로 발표된

시중에서 많은분들이 추천한 12수를 새겨둔 수호예찬비가 있다.. 조형물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모습은 쓰려진

자식을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귀퉁이 한쪽면에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

하기위해 불의의 독재권력에 항거한 혁명이였던 4.19 그들의 희생이 있었으니 지금의 자유가 있지 않았을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 4월에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위해 불의의 독재권력에

항거한 4.19혁명이 일어났다고한다.. 자유당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 그리고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기위해 발생했고

그전에 대구 2.28학생의거가 4.19항거의 처음 시발점이였다 한다..  1960년 2월28일 대구에서 개최될 민주당 선거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등교시켜 영화를 보게하거나 토끼사냥등에 

동원시키자 대구지역 고교생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그후 3월15일 사상유례없는 추악하고 불법적인 부정선거가 있었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우는 4월19일 학생들은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고한다.. 부정선거의 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요구했던 시위가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바뀌고 결국은 무차별 사격이 가해져 젊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도없이 희생되었다 한다..  

 

 

 

 

 

이젠 있어서는 안될 역사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자유민주주의 무엇인지 모르는 일부 사람들 덕분에 도태해져가는

느낌이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요즘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

이지만 그래도 이땅에 민주주의는 4.19라는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