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 장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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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28.

바퀴 / 장미숙
201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자전거가 푹 주저앉아 버렸다. 공사현장 옆 도로를 구르고 난 뒤였다. 뒷바퀴 타이어에서 쉭쉭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자전거가 묵직해졌다.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땅을 숫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날카로운 뭔가 바퀴에 구멍을 낸 게 분명했다. 타이어는 벌써 바람이 다 빠져 버렸는지 납작하게 땅에 붙어 있었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았다. 굴러갈 때는 한없이 가볍던 바퀴가 끌고 가려니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수리점 아저씨는 손쉽게 자전거에서 바퀴를 분리했다. 바퀴가 분리되자 자전거는 순간 기능을 잃고 기우뚱댔다. 바닥에 널브러진 바퀴를 보고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찼다.

 “아따, 요놈도 엔간히 힘들게 살아왔네. 너덜너덜한 게 어지간히 굴러 다녔는갑소. 웬만하면 새 타이어로 바꾸는 게 좋겠소.”

 아저씨는 대수롭잖게 타이어를 툭툭 쳤다. 쪼그려 앉은 내 시야에 타이어가 가득 들어왔다. 처음에 선명하고 단단했던 무늬는 닳아서 매끄럽게 변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못에 뚫려 땜질한 자국, 껌 딱지가 붙었다 떨어진 흔적도 남아 있었다. 수직으로 있을 때는 질주의 본능으로 야생 같던 바퀴가 수평으로 누워 있으니 고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등으로 받쳤던 세상이 힘겨웠던 것일까. 바퀴는 이쯤에서 쉬고 싶다는 듯, 바닥에 등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바퀴에서 화석을 보았다. 바퀴가 지나온 세상의 온갖 길들이 타이어에 거친 무늬로 남아 있었다.

 세월을 거스를 수도 운명을 피해갈 수도 없는 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마찬가지인 것 일까. 조금 느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요즘 들어서다. 탱탱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늘 긴장과 조급함으로 달려왔던 날들이 내 등을 후려치는 일이 많아진 것도 요즈음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면 그대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잦아졌다. 시간의 그늘 속으로 숨어 버리고 싶을 때도 여러 번 찾아왔다.

  지난 날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 속에는 희망이랄지, 보상이랄지 이런 단어들도 함께 했었다.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서 손을 내밀지도 모를 행운 같은 것도 기대했다. 거친 길을 구르다 보면 언젠가는 탄탄대로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다소의 자긍심도 있었다.

  기대는 단지 기대에 불과하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실체이지만, 생의 바퀴를 끊임없이 구르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 힘에 나사가 풀리듯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대한 불안은 거대한 블랙홀인 갱년기의 늪에 날 가두어 버렸다. 풀리지 않는 경제난은 이미 포화상태인 내 등에 노동의 시간을 덤으로 얹어 주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해독이 어려운 남편의 성격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있는 덫처럼 다가왔다. 그 모든 것들의 시초는 달려온 길보다 달려갈 길이 더 짧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전거 바퀴는 구르는 게 본능이다. 곧은 길, 거친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틀먼틀한 길, 질척질척한 길이라고 뒷걸음치지 않는다. 질주의 본능은 몸에 수많은 상처를 새긴다. 불쑥 튀어나온 가달썩에 긁히고, 심지어는 날카로운 못에 찔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곧은길에 서면 비거스렁이를 만난 듯, 바람의 방향마저 바꿀 기세로 달려 나간다. 꽃길에서는 낭만을 온몸에 걸치고 휘파람소리로 계절을 유혹한다. 그럴 때 자전거 바퀴는 지나온 거친 길에서 몸에 새겼던 상처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꽃향기에 마냥 신이 나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다. 굴러가는 본능은 나쁜 기억을 지우는 힘이 있다.

  인생의 바퀴도 자전거의 바퀴처럼 쉴 새 없이 굴러간다. 내 삶의 바퀴도 주어진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자전거 바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시간을 부여받지만, 각자 가는 길은 다르다. 가는 길이 다르니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질척한 길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바퀴가 있는가 하면, 매끄럽게 다져진 길을 장애물 없이 달려가는 생도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흘러가는 한 절대 멈출 수 없는 게 삶이다. 하지만, 삶이 팍팍해질수록 인생의 바퀴는 숨이 차다. 주저앉고 싶은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안간힘을 쓸수록 헤어 나오기 힘든 수렁도 있다.

  자전거 바퀴의 선명했던 무늬가 닳아버린 건, 그만큼 거친 길을 굴러왔다는 증거다. 구를 수밖에 없는 숙명 앞에 그래도 당당했던 한 생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바퀴는 몸의 무늬를 지우면서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데 충실했다. 내 삶의 바퀴는 어떤 그림으로 남게 될 것인가.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아름답진 못하더라도, 숙연함을 줄 수 있는 삽화(揷話)하나 쯤 새겨 넣었을까.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는 내 얼굴에 거부할 수 없는 그늘로 남았다. 아무리 표정을 밝게 해도 감출 수 없는 그늘 앞에 나는 가끔 가슴이 무너진다. 우유부단한 성격과 순응적인 삶에 길들여진 나약한 마음은 스스로 내 등에 짐을 올려놓은 결과가 되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자갈밭을 구르는 바퀴였다. 구르면 구를수록 짐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짐을 끌다시피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몸에는 생채기가 가실 날 없었다. 피가 흐르면 쓱 닦아버리고 치료도 못한 채 또다시 굴러야 했다.

  어느 날은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길이었다. 굽도 젖도 할 수 없는 아득함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온몸의 무늬를 지우면서라도 앞으로 굴러가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불합리한 삶에 대항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 상처를 냈다. 가슴을 쥐어뜯을 때마다 상처는 점점 크게 번졌다. 누군가에게 드러내놓을 수도 없는 상처 앞에서 꺽꺽 울음을 삼키는 사이, 내 몸의 푸른 기운은 점점 엷어져 갔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내가 못나서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 만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마지막 힘이었다. 그렇게 이십년이라는 세월을 쉬지 않고 굴러왔다. 돌이켜 보면 아득하기만 한 날들이었다. 내가 지나온 길인데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길들일 만큼 험난하고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았다. 자전거 바퀴의 흔적처럼 상처로 얼룩진 내 가슴이 요즈음 아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달리고 싶다. 잠자리에 누워 영원한 잠에 빠져들고 싶던 마음도 아침이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늘진 시간 속에 웅크리고 싶던 못난 마음도 단련된 일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에는 가야할 길이 너무 짧은 탓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강한 채찍질 앞에 나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쥔다.

  삶의 바퀴는 닳을 대로 닳아 너덜거리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한 희망이 있기에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행인 것은 수많은 길을 굴러온 탓에 넘어지면 일어서는 힘을 길렀고, 상처를 싸매는 법도 알아냈다는 것이다. 오르막길에서는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배웠고, 두려우면 뒷걸음질 치기보다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구를 힘이 남아있는 한 내 삶의 바퀴는 멈추지 않으리라. 내가 굴러가야 할 길이 저만치서 손짓한다. 지친 시간을 다독거리며 인생바퀴의 페달에 나는 한 발을 힘차게 올려놓는다. 다시 시작이다.

 


당선소감 - "삶의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인생의 깨달음"

며칠 전 새벽, 출근을 하는데 전날 내린 눈으로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좀 늦었던 터라 저는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어둑한 길을 겁도 없이 힘차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밝은 곳을 지나는 순간,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길이 온통 빙판이었던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급브레이크를 잡았고, 동시에 저는 자전거와 함께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잠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모름과 앎의 차이였습니다.

 멋모르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수필은 제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글 쓰는 게 두려웠습니다. 삶의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맑고 향기로운 샘물을 퍼 올려야 하는 게 수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관조 없이는 진정한 수필을 쓸 수 없다는 진실 앞에서 저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 없기에 저는 싸목싸목 수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걸어가려 합니다. 혼자서 공부한 오랜 시간동안 외롭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피붙이들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늘 제 편이 되어주는 금희언니, 정순언니, 정식이, 그리고 꼬두람이인 정희는 저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오늘도 저는 맏뜻을 가슴에 새깁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제게 당선소식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모두 씻어주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진정 행복합니다.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온 마음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심사평 - "삶의 온기와 지혜 그리워지는 세태의 어름에서"

대체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었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어디선가 영혼을 붙들고 앉아 무엇이라는 대상을 놓고 깊이 사색하고 고뇌한다는 것 자체가 생명성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노작들에서 경이를 느꼈다. 다만, 어둡고 차갑고 외로운 우리 시대의 굴곡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나 일부 생활 속의 안이함을 양념 없이 비비거나 문학 수필의 기본을 외면한 다수의 작품들 앞에선 조금 아쉽고 서운하고 씁쓸했다.

 300여 편 속에서 고르고 고르는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대여섯 편의 수작을 꼽았다. 그들 중에서 최종까지 송종숙 씨의 ‘어머니의 장롱’이냐 장미숙 씨의 ‘바퀴’냐를 놓고 고심했지만, 결국 선자의 뇌리에 끝까지 떠나지 않고 따라붙은 작품이 ‘바퀴’였다. 아픈 이 시대를 관통하면서 제대로의 삶을 지향하고 천착하고자 하는 의지를 자연스럽게 용해한 매력적인 문장의 호흡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에 돌파구로 작용한 큰 에너지원을 형상화함에 별반 무리가 없었다. 작품의 마무리 문장인 “다시 시작이다”에서 보여주는 굳은 작심 또한 미쁘기 한량없었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장롱의 향방을 두고 고심하는, 끈끈한 정분의 행로를 그린 가족사가 너무나도 따뜻하게 전해지는 작품 송종숙 씨의 ‘어머니의 장롱’을 내려놓을 땐 참 가슴이 짠했다. 대대손손 조상들의 혼과 정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송귀연 씨의 ‘씨장’에서도, 꼭 다문 입으로 무엇인가를 지키기에 있는 힘을 다할 것 같은 장미숙 씨의 ‘뚜껑’ 이야기에서도, 수행자의 졸음을 깨우는 죽비 같은 이야기인 김이랑 씨의 ‘풍경소리’에서도, 달공이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천착하는 배영미 씨의 ‘달팽이의 네트워크’에서도 순정한 글을 지향하며 쏟아낸 가열함을 전해 받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삭막하고 갈등스런 세상살이라서 그런지 삶의 지혜와 온기를 품은 구순하고 다사로운 이야기들에 몹시도 목마른 시절을 살고 있다, 우리들 모두는 지금. 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공모에 응답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심사위원=공숙자<수필가, 전북여류문학회·전국대표에세이문학회·전북수필문학회 회장역임>